한글의 위대함
-2019. 10. 31. <국어의 문법 요소> 수업을 듣고
광동고등학교 1학년 4반 14번 정지현 j1113jh@naver.com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1학년 생활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종이 치자, 활발함이 가장 큰 매력인 우리 반은 언제나 그렇듯 반장의 조용히 하라는 외침에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국어 선생님의 수업 들을 준비하는 건 항상 즐겁다. 오늘의 수업 기록 담당은 나와 정은이라서 우리는 선생님의 수업을 녹음하기 위해 교탁에 휴대폰을 나란히 두고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13번 손들~”
“14번 손들~”
수업 기록 담당인 나와 정은이는 각자의 번호가 불림에 따라 손을 들고 오늘도 수업을 열심히 들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요즘 우리가 배우는 내용은 문법 부분이다. 어렵다기보다 혼동되기 쉬운 부분이라 문법을 배울 때마다 우리 반 친구들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떠다니고, 선생님은 그런 우리 반 친구들을 보며 머쓱한 웃음을 지으신다. 국어 시간이면, 배운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게 꼼꼼히 복습한 뒤에 다음 진도를 넘어가고는 한다.
“자 여러분 단어를 성질 별로 나눈 것을?”
“품사요.”
“품사 중에서 모습이 바뀌는 애를?”
“용언이요.”
문법을 공부하기 전에 가장 기초적인 내용인 부분들을 정리했는데,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내용이라 우리 반 모두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높임 표현에는 주체 높임, 상대 높임, 객체 높임이 있는데, 주체 높임에는 선어말 어미가 필요하지만, 객체 높임은 선어말 어미가 아니라 특수 어휘를 쓰거나 부사격 조사를 쓸 수 있다고 했죠?”
“네!”
우리는 과도한 높임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동네 카페만 가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음료는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지나치게 예의를 중시하다 보니 과도한 높임 표현이 생겨난 듯하다. 선생님께서는 높임 표현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시며 우리에게 이해 여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신 후, 다시 수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하셨다.
“사과와 같은 명사는 과거형으로 쓸 수 있다, 없다?”
“없어요”
명사로 시제 표현하려면 먹은 사과, 먹는 사과, 먹을 사과처럼 명사 앞에 관형사를 붙여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표현해야 한다. ‘먹’은 변하지 않는 어간, ‘은/는/을’은 관형사형 전성 어미이다. 선생님은 우리나라 국어의 문법을 배우는 외국인들의 심정이 암담할 것이라며 짧은 농담으로 웃음을 주셨다. 시제 표현 정리를 마친 우리는 피동 표현의 복습을 시작했다. 영어 문법에서의 수동태를 우리는 피동이라 부른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이루어진 3형식 문장을 피동으로 바꾸려면 목적어가 주어로, 주어가 목적어로 와야 한다. 예를 들면, ‘순경이 도둑을 잡았다.’라는 문장을 피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도둑이 순경에게 잡혔다.’처럼 주어와 목적어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영어 공부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이중 피동은 써도 괜찮죠?”
우리 반의 대표 질문왕 시욱이가 또 손을 들고 질문했다. 시욱이가 질문하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이다.
“아니죠, 이중 피동은 안 돼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이중 피동의 어색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해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기도 해요.”
‘잡혔다’와 ‘잡혀졌다’에서 전자가 올바른 표현이다. 이미 피동 접미사인 ‘이, 히, 리, 기’에서 ‘히’를 써서 피동문이 되었는데, 피동 접미사 ‘히’에 ‘-어지다’를 또 붙여서 이중 피동을 만드는 경우는 잘못된 표현이다. 하지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대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언어의 경제성이 어긋나는 잘못된 표현을 쓰고 있다. 올바르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은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내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을 게 뻔하다. 깨달음을 얻게 해 준 피동 표현의 복습을 마치고 새로운 단어 생성(?)을 공부했다.
“여러분 ‘공부하다’는 국어사전에 있게, 없게?”
선생님의 헷갈리는 질문에 우리는 망설인 채로 하나의 답으로 통일되지 않고 웅얼대며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시며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단어라고 알려주셨다. ‘공부 + 하다’에서 원형인 ‘공부’라는 어근에 ‘하’라는 접사와 ‘다’라는 종결 어미를 붙인 것이다. 어간은 ‘공부하-’가 되고, 어미는 ‘-다’가 된다. 따라서 ‘공부하다는’ 복합어 중에서 파생어로 단어가 될 수 있다.
“근데 여러분 사실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은 시험에 안 나오는 거 알죠?”
“와, 다행이다”
선생님의 시험 문제로 출제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아마 나를 포함한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려운 복습 과정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드디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시기인 중세 시대의 국어로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제일 설렜던 순간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까지도 깊게 와닿을 수 있어서 중세 국어 부분은 내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러분 다들 킹세종 알죠? 우리 이제 중세 국어 배울 거예요.”
“아...”
친구들의 탄식이 들려온다. 해석하기 힘든 중세 국어를 배운다고 하니 앞으로의 수업이 막막해서일까? 선생님은 그런 우리가 웃기셨는지 육성으로 웃음을 터뜨리시고는 본격적인 수업을 나가기 전, 사담을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대학 시절 때 이야기인데 유학 온 2명의 중국인들이 서로 사는 지역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니 놀라웠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투리를 써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며 한글의 위대함을 언급하셨다.
“여러분! 김치 냉장고 중에서 최초로 나온 김치 냉장고가 뭐게?”
“딤채!!”
딤채는 절인 채소를 뜻하는 침채에서 오게 된 단어고, 딤채가 지금의 김치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주셨다. 또 시대별로 나눈 국어의 특징을 다루면서 임진왜란의 발발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비교적 평화로웠던 우리나라에 임진왜란은 큰 피해를 입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시대별 국어를 배우면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일본이 참 지독하다고 하셨다. 나도, 우리 반 친구들도 끄덕거리며 격하게 공감했다. 교과서의 중요한 내용을 밑줄 치다 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는 종이 쳤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안뇽!”
선생님의 발랄하신 끝마무리 인사와 함께 종이 치자마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며 오늘날 국어의 모습으로 발전한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또 나의 평소 말하기 습관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마련된 오늘의 수업은 우리나라 한글의 위대성을 보존하기 위해 올바른 언어문화를 형성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던 수업이 아닐까 싶다.
(수업기록)2019.10.31_한글의 위대함_정지현.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