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혹은 비유의 시적 전략
평론작가 한 상 훈
줄넘기 재미있다
줄을 잘 넘는 자가 이긴다
남보다 빨리 높이
뛰고 또 뛰어오르는 한평생
떨어질 때 다리 부러질 수 있음도 모르고
뛰어오르기만 한 그 사내
떨어져 내리면서 와장창 부서진 그 사내
_문효치, 「줄 ・ 5」 전문
독자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줄넘기’란 시어를 통해 현대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내적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였다. 타인을 의식하면서 비교하고 살아가는 일상은 늘 삭막하고 피곤하다. 정겹고 따뜻한 일상의 모습은 찾아볼 길 없고, 오직 남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긴장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삶의 과정은 없고 목표만 있는 것이다.
심미적 서정성보다는 사회학적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이 시는 “뛰고 또 뛰어오르는 한평생”의 구절처럼 치열한 현대사회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간결하게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시인이 강조하고자 하는 언술은 따로 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무작정 이겨 나가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한 것이다. “뛰어오르기만 한 그 사내/ 떨어져 내리면서 와장창 부서진 그 사내”라는 구절이 바로 핵심인 것. 현대인들이여, 제발 근시안적 야망에서 비껴서서 인생을 조금만 멀리 내다 보길 바라는 시인의 절실한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달항아리처럼 살자고 다짐한 날이 많았었다.
인생은 둥글다고, 아름답다고, 낭만적이라고
가슴으로 파란 하늘에 달항아리를 안고
멋있게 살아가자고 마주 보며 다짐한 때는
꼭 뭉게구름이 노을을 받아 붉은 꽃 피우고 있었다.
살아보니 인생은 결코 둥글고 아름다운 세월이 아니었다.
모나고 생채기 나기 쉬운 날카로운 돌멩이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벌판이었다.
고향 남녘 몽돌해변에서 둥근 돌 바다에 던지며
물수제비 뜨던 때는 달항아리 빚을 흙을 만지며
물빛을 그리워하던 때였다.
-김성부, 「달항아리처럼」 부분
둥글고 작은 돌을 바다에 던지며 ‘물수제비’ 뜨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낭만적이다. 그와 같은 유년기적 또는 청춘 시절을 회상하면서 지은 시로, 전형적인 노년문학의 성격에 속한다. 이 시의 ‘달항아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그러나 “달항아리처럼 살자고 다짐한 날이 많았었다.”라는 구절이 암시하고 있듯이 젊은 시절의 소망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회한의 정서가 이 작품의 바탕에 관류하고 있다.
노년에 들어서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만족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모나고 생채기 나기 쉬운 날카로운 돌멩이”의 구절처럼 거친 세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달항아리’ 같은 삶은 깨지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했던 것. 하지만 시인은 ‘달항아리’를 소망했던 나의 아름다운 삶이 거친 세월 속에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지만, 좌절과 패배의식 속에 빠져들지 않고 “거리에 핀 이름 없는 야생화 한 송이 들여다보며” 소소한 생의 즐거움을 찾는다. 그것은 삶의 관조를 통해 마음을 비우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아니던가. 가깝고 작은 것에서 얼마든지 지난날에 소망했던 ‘달항아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그리하여 청춘 시절의 꿈이 실현되지 않아 외롭고 공허했던 화자의 삶은 “곱게 이어갈 노을 같은”, “달항아리 모나지 않은 세월”처럼 밝고 아름다운 노년의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 ‘달항아리’나 ‘몽돌해변’, ‘물수제비’, ‘보름달’ 등과 같은 시어에서 환기되는 고향의 그리움과 함께 한국적 서정의 매력이 넘친다.
빛깔이
하도 고와서
향내가
하도 짙어서
색깔을
느닷없이 껴안았다
향기를 들이마셨다
가시가
화들짝 비명 질렀다
그리움이
두 번
사랑의 문 여닫았다
-박영춘, 「붉은 장미」 전문
장미는 아름답고 향기가 좋아서 사랑이나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미의 매혹과는 상반되는 ‘가시’가 있다. 남미의 대표적 작가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장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주인공 아리사는 평소에 연모해 왔던 다사를 찾아가기 위해 장미꽃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장미의 ‘가시’가 마음에 걸려 하나하나 다 잘라버린다. 사랑 때문에 소심해진 남성의 심리를 부각시키고 있는 장면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명에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라는 그의 싯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장미’가 지닌 이율배반적 성격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박영춘 시인의 작품에서도 장미의 그러한 속성을 절묘하게 살려냈다. “그리움이/ 두 번/ 사랑의 문 여닫았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그 비유가 지닌 함축성에 미소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움’의 대상이 너무나 곱고 향기가 짙어서 아무 생각 없이 감상적으로 다가갔는데, ‘그리움’의 리얼리티에는 나의 마음을 상처내는 따가운 ‘가시’가 있었기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 사랑의 문을 활짝 열었다가, 두 번째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서 서둘러 닫고 만 것이다. 물론 ‘가시’를 시적 대상으로 봐도 상관없을 듯. 장미꽃을 통해 포착해낸 그리움의 지점이 무척이나 신선하고 유머스럽다.
연분홍 벚꽃
나름 눈멀게 하고
하롱하롱 떨어지는 꽃잎이
나를 에워쌌다
나는 꼼짝할 수 없어
시 한 편 바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광석, 「벚꽃」 전문
벚꽃이 피고 지는 풍경에 대한 시적 화자의 감상이 1, 2연에 나란히 병치되어 있다. 1연에선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멀 정도다. 벚꽃 피는 4월 초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충분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꼼짝 못 하고 있는 화자의 정황을 적절하게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2연 역시 화자는 꼼짝 못 하고 있다. 벚꽃이 질 때는 순식간에 꽃비 내리듯 쏟아지지 않는가. “하롱하롱 떨어지는 꽃잎이/ 나를 에워” 싸고 있어서 갇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 2연은 벚꽃이 피고 지는 대조적인 풍경인데, 시적 화자는 벚꽃이 필 때나 질 때나 수인처럼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동일한 상황을 절묘하게 전개해 나갔다.
1, 2연에 대한 화자의 감상이 표현은 다르지만, 화자가 벚꽃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그 지점이 참신하다. 더구나,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 한 편’이었다 라는 3연의 언술은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다. 일상적 권태나 고난 속에서도 시 쓰기를 통해 나를 치유하거나 구원에 대한 암시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그리던 제자가
보낸 분(盆)엔
색 짙은 호접란 한 포기
피어난 송이송이
담긴 정 마음 두드리네
몽글몽글 곱게 열린 미소들
환히 피어올라
새록새록 담긴 정
방안 가득 채워지네
보내 준 정에
받은 마음 더해
그도 행복해지라 울컥하네.
-정광지, 「호접란」 전문
시인은 시적 대상을 선택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할까 고심한다. 반대로 소재를 먼저 선택할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아무리 소소한 사물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남다르게 사물을 관찰하게 된다. 그러한 사물 중에서, ‘꽃’에 대한 소재가 압도적이다. 앞에서 언급한 박영춘 시인의 ‘장미’나 안광석 시인의 ‘벚꽃’은 즐겨 선택되는 꽃들이고, 정광지 시인의 ‘호접란’도 많이 차용되는 꽃 중의 하나다.
호접란은 나비 모양의 꽃이 아름답고 키우기도 그리 까다롭지 않아 선물용으로 많이 쓰이는 난초다. 이 시 역시 멀리 있는 제자가 선물로 보내온 호접란을 시적 대상으로 하였다. 특별한 시적 기교나 과장, 반전이 없어 강렬한 느낌은 없지만, 시인의 진실이 담긴 내면세계가 독자들의 마음에 살포시 와닿는다. “피어난 송이송이/ 담긴 정 마음 두드리네”의 구절이 말해주듯이 제자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소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몽글몽글 곱게 열린 미소”가 환하게 피어 올라서 그 꽃에 담긴 정이 내 방안에 가득 채워진다는 진술을 통해 시인의 제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깊이가 감지된다. 특히 “그도 행복해지라 울컥하네.”라는 마지막 구절에선 짙은 여운을 남긴다.
무거운 건
안 하겠다고 거부하던
얼굴 없는 로봇 도우미가
깍두기, 새우젓을 싣고 온다
젓가락 들기 전에
깍두기에 먼저 앉는 파리
혼자 온 손님 겸상하라고
이 집엔 파리도 도우미로 쓰는구나
두 손을 싹싹 비벼가며
쌀밥에 앉는 특권을 누리는 파리
이제는 깍두기에도 앉아
겸상까지 하는 시대가 왔네
파리 도우미한테
식대를 내라 할 수 없어
계산하고 나왔다.
-김정숙, 「겸상」 전문
요즘은 식당에 가보면 간혹 낯선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로봇 도우미가 움직이고 테이블에는 키오스크가 있어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눌러서 식사를 주문해야 하는데 몇 번씩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고, 노년 세대는 이런 것들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디지털 문명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예전에는 어른이 아이들이 성장하면 살아가는 일상의 방법이나 기술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는데 이젠 정반대가 아닌가. 그런 탓에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그러한 요즘의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식당의 로봇 도우미가 투정을 부린 모양이다.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으면 작동하지 않아, 깍두기와 새우젓을 겨우 싣고 왔는데, 테이블 위에 시적 화자가 밥숟갈을 뜨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쌀밥에 앉아 버린 것. 그렇지 않아도 혼밥이라 외로운데 “쌀밥에 앉는 특권을 누리는 파리/ 이제는 깍두기에도 앉아/ 겸상까지 하는 시대가 왔네”의 구절처럼 시적 화자는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식당의 주인이나 종업원도 잘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역정을 내고 울컥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유머로 풀어나가는 시인의 마음의 여유가 돋보인다. 그 유머 속에는 디지털 문명의 비꼼을 품고 있어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이 날카롭기 그지없다.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