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의 고개’, 총령(蔥嶺)
한편 옛적부터 파미르고원의 동쪽편을 차지하고 있었던 중화권 자료에서는 파미르를 페르시아문화권과는 다른 용어로 차별하면서 불러왔는데, 그 연원의 유구함과 자료의 분량이 결코 페르시아권에 뒤지지 않는다.
필자가 언제부터 파미르답사길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산기슭 어디에서 야생파를 찾아서 먹어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갈 때 대한항공에서 얻은 츄브형 고추장을 가방에 신주단지까지 끼고 다니면서 그날을 기다린 지 몇 년째이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파의 종류는 210종이나 되는데, 그들 대부분의 원산지가 파미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현재도 파미르에는 야생파가 자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요즘도 <中, 야생 파 성공 재배>라는 중국의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기사가 검색되고 있다. 이하 그 요지이다.
중국 깐수(甘肅)성 사막정비연구소에서는 '야생파 인공재배 실험에 성공하여 그 종자를 하서주랑(河西走廊)내의 무위(武威)와 주천(酒泉)에 널리 보급했다고 보도하였다. 야생파는 일명 몽골파, 몽고부추, 산파, 후무리(몽골어)로 불리며 백합과 파종류의 다년생 인경총생초본 식물로 녹색천연식품이다.
파의 여린 잎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독특하여 식탁위의 좋은 요리가 된다. 야생파 윗 부분은 약으로도 쓰이는데 주로 소화불량에 좋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인은 파를 ‘충(蔥)’이라고 하면서 우리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권에서 이 고유명사를 처음으로 기록한 문헌은 고대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大荒西經」으로 부연 정리하면 파미르는 옛날에는 대지의 여신인 여와(女媧)의 창세기의 전설이 깃든 부주산(不周山)이라 하였고, 또한 춘추전국시기 초(楚)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서도, 한편『회남자(淮南子·道原訓)』에서도 부주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가 한나라 때에 이르러 드디어 총령이 등장한다.
“양관(陽關)을 나가서 뤄창[若羌]을 지나가면 ‘총령’에 이르는데, 산중에 야생파[野蔥]가 자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한서(漢書)』「서역전」
다음으로는 현장의 『대당서역기』가 바통을 이아 받는데, 그런데 현장은 그 서문에서는 기존의 ‘총령설’을 수록하면서 파와 관련된 사실은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총령은 첨부주(瞻部洲) 중에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남으로는 대설산과 접하고, 북으로는 열해(熱海)와 천천(千泉), 서로는 활국(活國), 동으로는 오단국(烏鍛國)에 이르며, 동서남북이 각각 수천 리나 된다.(중략) 산에서 야생파가 많이 나므로 총령이라 부른다.”
그러나 귀로길의 『대당서역기』권12에서는 앞에서 자신이 소개한 중국쪽 ‘총령설’을 무시하고 그가 현지에서 들은 이름을 그대로 중국어로 음사(音寫)하여 파미르[波謎羅 또는 波謎羅川]으로 표기하였다.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이름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우리의 혜초사문도 같은 방법으로 현지음을 음사하여 파밀천(播蜜川)이라 표기하여 현장의 외국지명 표기법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여기서 잠시 사족을 달아 보자먄, 우리의『한단고기』의「삼성기」에 나타나는, '파'의 나라 ‘파내류’ 이야기가 흥미롭다.
“ 고기에 이르기를 파내류(波奈留)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는데(古記云 波奈留之山下有桓仁氏之國)...
물론 위의 문헌들이 아직 정사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서이기는 해도 요즘 제시되는 재야측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주장들을 무조건 백안시만 할 성격도 아니기에 일단 학문적인 ‘가설(假說)’의 범주로 이 문제를 접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요지는 바로 필자가 작년인가 본 카페에 연재하다가 중단한, <초본아타의 길(Chopon Atha's Road)> 즉 “금성(金星)을 쫒아 파미르고원까지” 라는 부제의 글을 말한다.
천산 넘어의 대초원에, 반월처럼 생긴 커다란 이식쿨호수가에 ‘촐본아타’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그 뜻이 ‘금성(金星)의 고향’이고 한다. 고구려의 ‘졸본성’이나 산동의 금성 그리고 신라의 서라벌과 연결고리가 있는 지명 때문에 최근에 갑자기 이곳이 우리 원(原)한민족의 선조라는 환인족(桓因族)이 한 때 살았던 곳으로 비정된다는 것이다.
그 배경되는 문헌이 신라 때 박제상(朴堤上, 363-419?)이 지었다는 『부도지(符都誌)』이다. 물론 이 책도 『한단고기』처럼 정사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야사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원한민족의 근원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채를 띠는 문헌이다.
『부도지』내용을 요약해보면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출발한 우리민족은 천산, 적석산, 태백산, 만주벌판 그리고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천문역산, 거석문화, 빗살무늬 토기, 신화 등의 분야에서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는 일종의 ‘가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위의 ‘파내류, 즉 파미르의 아원을 분석해보면 ‘내류’는 <'나 또는 내' 류=노례=나례=낙랑=유리=내 등>로 음차된 알타이로 해석되어 결국 ‘파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하나가지고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측 자료가 가세하면 파와 파미르는 분명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보면 혜초의 ‘파밀(播密)’의 글자풀이는 ‘퍼트릴 파’+‘빽빽할 밀’이 되어 “파가 빽빽하다.” 라는 뜻이 되어 흥미를 더한다. 물론 혜초사문이 페르시아어 ‘파미르’를 음사한 것이 설득력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파미르를 답사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야생파를 찾아 헤매었다. 큰 마을의 바자르에서는 허여멀쑥한 대파들이 팔리고는 있었지만, 그것들은 한눈에도 중국산이 분명하였다. 내가 원했던 것은 야생파였기에 아주 깊은 산골에서 파를 구해야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막상 파를 현지인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어려웠다. 물론 중국권 같으며는 한문으로 ‘蔥’이라고 써서 보여주면 간단한데, 내 알량한 생존회화 수준의 현지어 실력으로는 그것을 말이나 글자로 표기하기가 어려웠다. 그곳에 갈 때 파 사진을 미리 몇 장 뽑아서 가지고 갈 걸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기에 이 미션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파마르고원의 야생파 군락지와 야생파 <사진-최갈렙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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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야생파가 있다니 정말 귀한
사진이네요ᆞ
아~~먹어보고싶다ᆞ
어떤 맛일지ᆞ
ㅎㅎㅎ 제가 다음에 파미르에 가면 직접 꼭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보고 감상문을 제출하지요
파미르벌판에 가서 신라면에다 이 파 한 융큼 집어 넣고 끓여서... 쐬주 한 잔 곁들이면... ㅋㅎ
그 야생파를 저는 <총파>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파미르의 파>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은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려고 합니다. 근데 몸은 병원을 떠날 수 없으니....
무슨 분신술이나 유체이탈술법이라도 부려야겠습니다. . ㅎㅎㅎ
저도 덩달아 역마살이 도집니다.
총령의 유래가 파에서 나왔다는 말이군요.
기원전의 역서서에서부터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 원조 야생파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