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비유
마가복음 4장 30-32절『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말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들렀을 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자기 밭에 심은 자는 바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기 밭(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겨자 씨)를 심었다. 그래서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되었다. 이 공중의 나는 새들이 바로 베드로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새들이다. 바로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겨자씨(예수 그리스도)를 성도의 심령 속의 밭에 심어주신다. 겨자씨 비유에서 밭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하나님 나라)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서는 하나님 나라 대신 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천국은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서 심령 속의 성전(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이셨다. 성도 역시 부활의 열매가 맺혀지고, 성도가 전도를 통해서 그 부활의 열매를 나눠주므로서 확산되는 것이다. 공중의 새들은 이방인을 의미하지만, 현재적 부활이 되지 못한 자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고쳐주었다. 제자들이『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물렀더니『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제자들이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겨자씨 만한 믿음을『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는『날마다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육정이나 혈통으로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오직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 이런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오직 이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땅을 기경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땅이 기경될 때 농부가 씨를 뿌려주는 것이다. 농부가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가꾸면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한다.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마음의 밭을 갈고 하나님 말씀의 씨를 뿌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씨를 뿌리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이고, 열매맺는 것은 부활과 연합되는 것이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한 것을 믿으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이 산)을 저리로 옮겨버린다. 그래서 저 산(새성전)을 저기서 여기로 옮겨버리라고 하면 옮겨지는 것이다. 이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서고 그리스도가 심령 속으로 재림해 들어오므로, 성도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권능은 병을 치료하고 죄를 사해주는 권능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간질병 들린 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활의 능력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적 부활의 능력이 없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죄인으로 머물러 있게 된다. 그래서 패역한 세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세 차례나 제자들에게 말을 했지만, 귀담아 듣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패역한 세다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인데, 어떻게 부활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 궁금하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분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동안에는 제자들이 직접 권능을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없었으므로 그들에게 능력이 임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