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의 환생
장 규 섭
햇살이 좋은 날 소창에 싸인 솜이불을 통풍시킬 겸 햇볕바라기를 했다. 노릿한 냄새가 살랑이는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일광 소독을 하고 보송하게 피어난 솜이불이 봄날의 미풍처럼 산뜻하게 부푼다.
겨울은 지났지만 꼬리 긴 추위가 남아 아침저녁 무렵에는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몸살기가 있거나 노그라질 때 솜이불 속에 몸을 누이면 부드러운 온기가 전신으로 번진다. 하루의 삶을 지탱하느라 힘들었을 몸의 피로를 솜이불이 위무하듯 말끔히 씻어준다.
솜이불은 시댁에서 농사지은 목화를 타서 만든 것이다. 양가의 사랑과 정성이 배어 있는 혼수이불은 난방이 잘 된 아파트에서 덮기엔 크고 무거운 애물단지였다. 솜틀집에 맡기자니 너무 비싸고 게다가 홑청과 속통도 쓸 수 없다니 마음은 진퇴양난이었다. 더러는 환기를 시키며 햇볕을 쬐어 두었지만, 미처 사랑 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불을 어쩌랴. 그러구러 긴 세월 동안 한쪽으로 밀쳐 두고 잊고 지냈다. 무릇 일질一秩의 성상星霜이 지나고 산들바람이 부는 봄날, 무식이 용감이듯 생심을 내었다.
산더미 같은 보퉁이를 펼치자 온 집안에 솜털이 연신 나실나실 거렸다. 그동안 세월을 겹겹이 입은 묵은 솜이 새털구름처럼 새하얗게 피어 삽상한 바람을 일으켰다. 마치 자연 속에서 생동하던 온갖 이미지가 되살아나 감실대는 것처럼. 편한 지름길을 두고 애먼 짓을 하는 나도 참 엔간하다며 일순 말문이 막혀 군빗질만 해댔다. 비용도 그렇지만 물건에 대한 정을 떼지 못하고 덥석 시작한 일이 대책 없이 덤터기만 쓰는 꼴이라니. 도리 없이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살손을 붙였다.
어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솜을 켜켜로 놓고 푸서가 생기지 않도록 성근 감침질을 해나갔다. 그런 다음 돌돌 말아 속통을 뒤집고 가장자리를 편편하게 한 후 트인 쪽을 꿰매고 다문다문 실 뜸으로 누볐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정에 겨운 물건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수월찮은 과정임에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완성했다는 저간의 수고로움에 느꺼운 마음이 일었다.
한때는 지천 꾸러미처럼 늘 마음에 끼어 있던 묵은 숙제를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무거운 이불을 새로 리폼reform하는 동안 집안은 온통 솜털투성이가 되었지만, 한 채를 두 채로 재생시켜 여유롭게 사용하게 된 것은 삶의 즐거운 보람이다. 하얀 소창을 입힌 폭신한 새 이불에 벌러덩 누워 기지개를 쭉 켰다. 드디어 해냈다는 충일감에 젖는 사이 실루엣처럼 사라져간 삽화 하나가 허공에 아른거렸다.
결혼을 앞두고 발품을 팔아 노란 차렵이불을 챙겨 왔었다. 부부의 화합과 부귀를 상징한다는 화조도가 수 놓인 이불이었다. 삼간 누옥陋屋이지만 방 안에 물색 고운 이불을 펴놓으면 신혼 분위기가 한결 화사해질 것만 같았다. 목 결에 닿는 부분에는 깃을 달아놓고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면 사랑을 움 틔울 설레던 마음과 함께 고이 접어두었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그 이불을 찾으셨다. 한 번도 덮어보지 못한 이불은 제대하여 객지로 나가는 시동생에게 챙겨 주어야 한다는 말씀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애지중지하던 이불을 건네야 하는 마음엔 묘한 파문이 일었다. 여린 마음에 그때 선뜻 드리지 못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무명천은 매만지는 손길에 따라 결이 다르다. 소독 겸 삶아 씻은 후 풀을 먹이고 녹녹할 때 접어 다듬질하면 최상의 무명천으로 거듭난다. 아름다운 다듬이 소리가 그리워 어머니가 주신 다듬잇돌을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층간 소음 때문에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무명 홑청은 꼽꼽할 때 접어 손질해야 일이 순조롭다. 남편과 함께 끝을 가지런히 맞추어 잡고 서로 리듬을 태우듯 잡아당긴다. 순간 묵직이 가라앉은 침묵이 펄럭이고 틀어진 부부 사이도 단박에 팽팽하게 균형을 맞춘다. 그러고는 접어 자근자근 밟은 다음 고이 펴서 말린다.
이불 만들기는 손방이어서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다. 차분히 공력을 들이다 보니 어느 순간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이 차오른다. 고리타분한 사고를 여태 버리지 못한다는 지인의 타박이 귓전에 울려도 몸이 먼저 누리게 될 그 호사를 어이 마다할까. 깔끔하게 손질된 옥당목 요 위에 누워 솜이불을 덮으면 솔향이 물씬 풍겨오고 따스한 감촉이 주는 위안은 깊고도 뭉근하다.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가볍고 포근한 캐시미어 이불을 덮는다. 하지만 나는 포근함의 밀도가 높은 솜이불이 좋다.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 때는 빈약한 잠을 위무해 줄 솜이불이 최고다. 여린 몸은 추위에 바들거리다가도 이불속으로 파고들면 따뜻이 그러안듯 품어 준다.
춘삼월 새봄을 맞아 낡은 홑청을 버리고 통이불을 쓴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간단치 않던 꾸밈을 생략하자 와스락거리던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간편한 통 커버의 사용이 두말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진작에 바꿔보지 못한 무딘 욕구가 미련 없이 옛것을 끌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