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시]
편두통 외 2편
임애월
태양빛을 닮은 품 안의 자식들
모두 다 내어주고 헐거워진 가슴으로
초겨울 추위를 견디는 감나무 숲속에
하얗게 내려깔린 된서리
그 서릿발에 심기 불편한 가지 한끝이
지나가는 바람의 신경세포를 건드렸는가
아침부터 후두엽을 관통하는 예리한 통증
흔들린 시각중추에 흐릿해진 풍경들
위태로운 겨울햇살이 짧게 머물다 떠나고
살점 빠진 앙상한 언어들은
발 시린 겨울 산맥을 서둘러 건너갔다
빙점이 오기 전에 갈무리해야 하는 것들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발등을 감추고
허술한 낮달이 낮아진 하늘을 건너는 사이
두통과 두통약의 상관관계처럼
기억과 시간의 접점 부근에서 문득 찾아드는
그 기억은 늘 편두통과 함께 온다
또다시 겨울은 목울대까지 차올랐는데
아직도 달빛에 발목 잡힌 눈빛 하나
매운 계절의 한끝을 서성거리고 있다
히말라야 소금
히말라야 소금으로 간을 할 때마다
원시의 바다였던 히말라야 하늘빛과
아슬한 벼랑길 등짐으로 소금을 나르는
순례자 야크의 속눈썹을 생각한다
수심 깊은 대양의 사구에서 하늘 향해
밤마다 바다가 꾸었던 꿈들은
마침내 하늘 가까운 곳에서
분홍빛 사리(舍利)가 되었다
1억년 시간이 만든 사리를 등에 지고
산맥의 험준한 바람길을 내딛는
야크의 속눈썹에 걸린 새벽달
1억년 전 하늘빛과 1억년 전 바다의 맛
히말라야 핑크 소금은
성스러운 경전의 행간 같은 신비함으로
싱겁지 않게, 짜지도 않게 살라고
그 맛을 조금씩 풀어내 준다
대나무꽃
대나무가 벼[禾]과라는 걸
우연히 알았다
하늘로 가는 가장 정직한 거리
직립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의지가
육십갑자의 시간 속에서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서지던 생(生)의 조각들
게워내고 비워버린 제 속살들은
어디쯤서 포만의 게으름을 좇고 있을까
마지막 공명(共鳴)으로 밀어올린 한 생애의 방점
딱 한 번 피워올린 꽃이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의 꿋꿋함이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땅 속 어둠을 거머쥐었던 단단한 발톱 끝에
비로소 어린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신작시]
별빛 줍기 외 2편
임애월
둘러보면 사방천지는 위대한 신전
베드로성당보다 더 크고 웅장한 대자연의 신전에서는
계절마다 바뀌는 새소리가 경전이다
아침을 열면
키 큰 나무가 섬세한 잎맥을 흔들고
앞산 이마는 이미 붉은 놀빛에 빛나고 있다
지나가던 바람이 숲속 새 새끼들을 깨우면
심오한 경전들은 뭇새들의 목소리로 발현된다
시공의 경계가 모호한 이곳에선
눈을 감아야 모든 게 선명하다
귀 끝에 와 닿는 미세한 소리들
히말라야 작은 왕국의 마니차처럼 평온하다
언제나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자연의 신은
그 크고 푸른 손을 내 정수리에 얹어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키고 방전되었던 실핏줄을 깨운다
야생의 언어들이 하나 둘 광합성을 시작한다
비로소 나는 큰 산맥 아래 잔뿌리를 내리고
발등 근처에 떨어지는
천 개의 별빛을 줍기 시작한다
탱자나무꽃
온통 가시뿐인 전 생애를 끌고
둥근 우주를 지키고 섰다
야생의 언어로 키워낸 곧은 문장들
무자비 겨울바람도
그 기세 허물지 못해 비틀거린다
총을 든 계엄군 맨손으로 막아서던
비무장 시민들의 짱짱한 스크럼
강추위 녹이는 짙푸른 함성들
잔 가지 흔들리는 해빙의 계절 지나
풀꽃들이 말갛게 자유로워지는 4월에
뼛속까지 맑혀주는 신비한 향기와
내가 생략된 연대의 공간에서
환하게 피워올리는 순한 꽃잎들과
자음과 모음, 모국어로 다시 써보는
여전히 뜨거운 그 이름, 민주주의여!
가시가 무섭지 않은 꿀벌들만
꽃잎마다 작은 지문 찍으며
해종일
그 향기 퍼나르고 있다
하현달을 듣다
어둠이 들면 귀가 더 밝아진다
원시림 속 거친 야생을 달리는 밤바람 소리가
투명한 계곡물 소리로 건너오는 밤
날기 위해 밤새 제 속을 비워내는 새가 있다
몇 알의 낟알마저 모두 비워내 헐거워진 내장과
숲이 키운 바람 소리로 뼛속을 채우면
비로소 가벼워진 날개로 지상의 어둠을 털어내는 새
그녀는 요즘 밤새 울음소리를 경전처럼 들으며
불면의 긴 계절을 견디고 있다
위장 속을 지나간 옥수수 몇 알의 온기가 가끔씩
목젖을 넘어올 때가 있다
해도 달도 되지 못한 채
옥수수밭으로 떨어져 피투성이 된 짐승처럼
기억의 퇴적층 한 칸에 문신으로 박혀
망각으로도 지우지 못한 암각화 몇 점과
한 번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해 제 몸만 덜어내는
그믐 달빛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뒤척인다
놓쳐버린 겨울새의 발자국을 찾다가
어둠 속에서 좌초된 생각들은
유년의 옥수수밭 붉은 바람에 붙들려 이미 눈이 멀었다
제 몸 태워 환하게 빛 부신 먼 별똥별에게
속죄 아닌 속죄의 안부를 전할 때
묵은 달빛 아슴한 새벽을 미세하게 흔드는 겨울새 울음
아직도 잠들지 못한 그녀의 귀 끝으로
금강경 한 구절 송신하고 있다
[시인의 에스프리]
야생의 언어를 꿈꾸며
임애월
전생이 새였을까. 아직도 가끔씩 날개가 생기는 꿈을 꾼다. 아득한 우주 공간에 나를 띄워놓고 푸른 지구별 위를 마구 날아다니다가 문득 잠이 깨곤 한다. 꿈속이었지만 너무나 생생했던 장면들, 그저 아쉬울 뿐이다. 몇 번의 변태를 거치면 날개옷을 얻을 수 있을까. 씨앗처럼 조그만 알에서부터 징그러운 애벌레, 무거운 침묵의 시간 고치를 벗어나면 가볍고 찬란한 날개가 정말 돋아날까. 아직도 애벌레처럼 지상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나는 영혼의 결핍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오늘도 사유(思惟)의 변태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인간의 속성 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욕망은 인간의 생활을 발전적으로 진보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서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게 한다. 그 욕망의 굴레에 갇혀 소유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은 무거워지고, 무거운 것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가 있다면 누군가의 생각 속에서나 존재하겠지만 자유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살맛 나게 하는 환희를 준다. 다른 동물에 비해 특히 정서적으로 매우 예민한 인간들에게 자유는 천금보다 귀하다. 소유하지 않는 자들의 자유로움, 그들에게는 강물이 풀리는 소리도 행복이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봄새의 날갯짓에서도 희망을 본다. 들꽃들이 향기 속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밤별들이 들려주는 노래는 열린 귀를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 경청하리라. 물론 어떻게 보면 무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조차도 또 다른 이름의 욕망일지도 모르겠지만.
치킨게임처럼 멈출 수 없는 시대의 갈림길에서 나는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맨 처음 원시의 길로 되돌아 왔다. 인공지능의 시대, 디지털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아날로그적 역주행 속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결국 예술이 추구하는 진정성과 자유, 즉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속성을 나름대로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폭주하는 이 시대의 낯선 속도에 더 이상 함께 매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불편하고 힘들고 결핍투성이인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하던 곳이기도 하다.
산골짜기에 나를 다시 이식하고 작은 다랑논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어린나무들이 혹한에도 살아남아 자라고 점점 굵어지는 밑동을 보며 나는 농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방전되어 게을러진 내 삶에 대자연으로부터 순수한 피를 수혈받아 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있는 셈이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아주 평범한 자연현상들이 마법처럼 신비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땀 흘리며 직접 체험으로 얻어낸 것들은 못난 열매 하나도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였고, 그 속으로 무한 감사와 감동이 스며들었다. 대자연은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속으로 나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작은 풀꽃 하나도 큰 의미를 지녔으며, 어느 것 하나 함부로 된 게 아니라 처절한 고통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벌거벗은 나신으로도 부끄럼이 없는 곳, 서로의 관계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체험을 통해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진정성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 아니 진정성이 담긴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오만하고 불온했던 눈먼 시간의 기억들을 정제하고, 실제로 몸 부딪쳐 얻어낸 현장체험을 통한 실존의 언어로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경쟁사회의 분주함이 소거된 소박하고 느리게 사는 이곳에서 나는, 산의 침묵을 읽고 바람과 별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새들의 노래와 들꽃들의 춤, 영원한 순례자 구름의 흔적을 좇으며 흙의 전해주는 가장 원시적인 언어로 시를 쓰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시는 대자연 속의 작은 개체인 내가 아직도 미몽 속을 헤매는 또 다른 나에게 가장 원시적인 언어로 전하는 순정한 메시지이다.
살아있는 야생의 원시성을 조금씩이나마 회복하고 헐거워진 생각의 근육을 키우려 한다. 깊은 산골짜기에 스스로를 위리안치시키고 한 그루 나무처럼 붙박이로 서 있지만, 고요한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 사유의 실타래는 길고 자유롭게 풀어 보리라.
임애월
1998년 한국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나비의 시간 등 6권
전영택문학상, 한국시학상, 시문학상 수상 외
현재 《한국시학》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