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任衡)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
임형(任衡,1360~1428년)은 고려 말 문신(文臣)으로 전주(全州) 출생이며 초명은 충(衝), 호(號)는 죽곡(竹谷), 諱는 형(衡),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본관(本貫)은 진주(晉州)이다. 고려조 말기 1385년에 음서(蔭敍)로 관직에 나갔다가 1389년(창왕1년) 문과(文科)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郞) 헌납(獻納)을 지내고 1392년(공양왕3년) 고려 멸망 후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라며 벼슬을 그만 두고 경상도(慶尙道) 수양산(首陽山)에 은거(隱居) 생활을 하며 충절(忠節)을 지킨 인물(人物)로 진주임씨(晉州任氏) 시조(始祖)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부지런하고 몸을 닦으며 충효입지(忠孝立志)하여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鄭圃隱)와 문안공(文安公) 사천(沙川) 남을진(南乙珍), 翼成公(익선공)과 방촌(厖村) 황희(黃喜)와 더불어 친교(親交)를 지내며 홍무을사(洪武乙巳)에 翼成公(황희)과 같이 급제하였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 조에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낙향하여 있을 때 태조(太祖) 이성계는 학문(學文)과 능력(能力)이 아깝다하여 황희(黃喜)를 보내 벼슬을 제의하고 여러차례 불으셨으나 나가시지 않았다. 上(임금)이 폐백을 보내고 翼成公(방촌 황희)이 같이 벼슬을 하자고 하며 말하기를 “어디를 섬기면 임금이 아니며 어디를 부리면 백성이 아니리요” 하자 임형(任衡)이 대답하기를 “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시니 翼成公(황희)이 말하길 “주나라 무왕은 열 번 다스리되 의가정란에 해됨이 없다.”하니 諱 형(衡)이 가로되 “백이숙재(伯夷淑齋)는 어찌하였는가” 묻는 말에 익성공(翼成公)이 어쩔 수 없이 물러 가시며 글을 지어 “임금이 부르지 못한 신하가 있으니 백이숙재(伯夷淑齋) 후에 또 한 사람”이라 하였다.
동료와 임금이 벼슬하기를 여러차례 권유하자 머리를 풀고 통곡하며 경상도 수양산(首陽山)으로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형(衡)으로 개명(改名)하고 장고의 은거(隱居) 생활을 하였다가 말년(末年)에 전라도(全羅道) 전주(全州) 지방으로 옮겨와 은신하다가 생(生)을 마쳤으며 사후 충정(忠貞)의 시호를 받았다. 고려시대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진주군(晋州君) 諱덕생(德生)은 諱 형(衡)의 조부(祖父)로 진주임씨(晉州任氏) 비조(鼻祖)이며 고려조 삼사(三司) 좌윤(左尹)을 지낸 諱 을일(乙馹)이 諱 형(衡)의 부친(父親)이다. 諱 형(衡)의 묘(墓)는 전주시 완산구 정여립로 석산에 모셔져 있으며 2016년 묘(墓) 입구에 진주임씨(晋州任氏) 후손들이 건립한 선모재(先慕齋)에서 매년 한식일에 향사(享祀)를 하고 있다.
(參考文獻 : 高麗史, 高麗史節要, 晋州任氏族譜)
晉州任氏諱衡19世孫和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