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안에서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앞에서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지.
542번은 청계로를 지나 한대앞을 거쳐 중곡동으로 간다지
440번이 지나가고, 시외버스, 좌석버스, 마을 버스
버스도 많지.
사람들은 왜 그리 많던지. 그날의 시위대보다 100배는 많아.
덤덤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 세상을 채워버릴 듯 깔깔대는 사람들.
버스가 오지 않길 바랬어, 모양모양 멋을 낸 옷차림, 환한 웃음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가방, 한손을 잡힌 채 사탕을 빠는 아이.
버스 왔어
응, 버스 왔구나
131번이란 큼지막한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바리케이트처럼
우리 앞을 막아서던, 버스는 한산했고 우린 뒷자석에 나란히 앉았지.
창틈으로 들여오는 하늘빛, 조그만 가방을 무릎에 내리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손끝에서 부셔져.
막 싹을 들이민 생글생글한 플라타너스가 시리게 예뻤지.
어제 비왔구나
조금
3년이란 시간을 훌떡이며 버스는 신나게 달려지.
광화문을 지나고 종로를 지나고
어디에선가는 가벼운 양복을 입은 사람이 급히 뛰어오르고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연신 시계를 보고 있었어.
사랑했어
응
동대문에선 밝은 자주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탔지.
커다란 푸른 파단이 머리를 내민 가방이 의자옆에 얌전히 놓이고
다음은 청량리입니다.
영동선이나 중앙선을 이용하실 분은 이번역에 하차하시어 청량리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내려야 했어.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가벼운 웃음으로 답했지.
잘가.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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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에서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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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8.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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