威儀寂靜分第二十九(二十四 斷化身出現受福疑)
須菩提
若有人 言
如來 若來若去若坐若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威儀寂靜分 (행주좌와에 흔들림 없이 고요함)
圭峰:
第二十四는 斷化身出現受福疑니라 論에 云하되
若諸菩薩이 不受福德이면 云何諸菩薩福德을
衆生受用인가 斷之니라 文二니 一은 遮錯解라.
규봉:
24.(疑斷)
화신이 출현한 것은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논에 이르기를
“만약 모든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모든 보살의 복덕을 중생이 받을까? 하는
그 의심을 끊은 것이라” 했다.
글에 둘이 있으니
(1)은 잘못 아는 것을 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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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若有人言
如來 若來若去若坐若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하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니라.
淸峯:
그렇게 안다면
여래가 형상이 있음이 아니라는 내 설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까닭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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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偈에 云하되
是福德報應은 爲化諸衆生으로 自然如是業으로
諸佛이 現十方이라하다 二는 示正見이라
규봉:
게송에 이르기를
“이 복덕의 인과에 따르는 과보(報應)는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것으로
자연히 이와 같은 일(업)로써
모든 부처님이 시방에 나타나신다”고 했다.
(是福등은 저 무루 복덕의 응보이므로
곧 때(塵)가 없는 果로
果 가운데 색상이 없는 것이다)
(2)는
바른 지견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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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왜냐하면,
여래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니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淸峯:
형상이나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불가사의한 것이나
억지 이름으로 여래라 한 것이니,
여래(眞身佛)는 형상이 없고
머무는 곳이 따로 정해 있지 않는 가운데
머무는(應無所住) 것이어서
크기를 헤아릴 수 없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옴이 없이
일체처에 두루 상주하는 것이다.
법신이 공하고 색신 화신의 본성이 공한 것이나
아주 없는 공함이 아니요, 여여한 가운데 나투므로
진여묘유라 하는 것이며,
모양이 없으니 아래 위가 없으며 인연 따라 응하되
끄달리지 않고 집착함이 없는 것이다.
진여는 온 곳이 없고, 이곳을 떠나갈 수 있는
다른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래라 하나 여래는 곧 여거이며,
따라서
여래․여거는 곧 오고감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체와 둘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일체 모든 차별적인 법상이 있는 듯 생각하나,
실상은 본질이 공한 것이다.
따라서
가고 오고 실제로는 가고 옴이 없는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부처의 나툼인 것이다.
說誼:
前言不可以身相得見如來며
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며 佛을
不應以具足色身見이며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라하니
此는 皆明佛非有相이로다
次言하시되 莫作是念하라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써
得阿耨菩提라시니 此는 明佛非無相이요
此言無所從來며 亦無所去라하시니
此는 明佛無去來니라 伊麽則眞法性身은
非相非非相이라
性相이 相融하여 無去亦無來이라
動靜一如로다.
설의:
앞에서 말하기를
가히 身相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으며
가히 三十二상으로써도 여래를 볼 수 없다 하며,
부처님을 마땅히 구족한 색신으로도 볼 수 없으며
마땅히 三十二상으로써도 여래를 觀하지 못한다 하니
이것은 모두 부처가 相이 있지 않음을 밝힌 것이로다.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여래가 구족한 相이 아님으로써
무상정등정각을 얻은 것이다”라고 하시니
이것은 부처가 無相이 아님을 밝힌 것이요.
이것을 말씀하시기를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다”하시니
이것은 부처란 가고 옴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라.
이러한즉 참다운 法性의 몸은
相도 아니며 相 아님도 아닌 것이라.
性과 相이 서로 융통하여,
가는 것도 없고 또한 오는 것도 없음이라.
움직일 때(動)와 고요할 때(靜)가 한결같다
(一如)는 것이로다.
청봉착어:
앞에서는 여래를 상으로써 볼 수 없다 하시니
이것은 여래는 형상이 없음을 밝히심이요
상이 구족되지 않음으로써
정각을 얻음으로 잘못 알까 염려해
상이 상이 아니어서
가고 옴이 없음을 밝히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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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峰:
偈에 云하되
去來化身佛이며 如來常不動이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衆生心水가 若淸淨하며 則見佛來이나
來無所從이요 濁則見佛雙林示滅하고
則云佛去이나 去無可至라하다 肇가 云하되
解極會如하면 體無方所라
緣至物見이나 來無所從이요
感畢爲隱이나 亦何所去리오하다.
규봉:
게송에 이르기를
“가고 오는 것은 化身佛이며
여래는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으며
大雲이 이르기를
“衆生心의 물이 만약 청정하면
곧 부처가 오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와도 쫓아온 바(온 곳)가 없음이요,
혼탁하면,
곧 부처가 쌍림(사라쌍수 아래)에서
적멸을 보이심을
곧 말하기를 부처가 갔다고 하나
가도 가히 이를 데(갈 곳)가 없다 했다.
肇법사가 이르기를
아는 것이 지극해서 같음(如)을 알면
體는 方所(두루하여 처소가 따로 없음)가 없음이라.
인연이 이르면 물질로 보이나
와도 쫓아온 바가 없고
느껴 앎이 끝나면 숨게 되나
또한 어찌 가는 바이리오”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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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
如來者는 非來非不來며 非去非不去며
非坐非不坐며 非臥非不臥이니
行住坐臥四威儀中에 常在空寂이
卽是如來也니라.
여래라는 것은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앉는 것도 아니고 앉지 않는 것도 아니며
눕는 것도 아니고 눕지 않는 것도 아니니,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 가운데
항상 비어 고요하게 있는 것이 곧 여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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傅大士:
如來何所來며 脩因幾劫功고
斷除人我見하면方用達眞宗이니라
見相不求相하면 身空法亦空이라
從來無所着하여 來去盡通通이리라.
부대사:
여래가 어찌 오는 것이며
因을 닦음이 몇 劫의 공인가?
인상 아상의 소견을 끊어 없애면
바야흐로 참다운 경지를 통달하여 쓰리라
相을 보되 相으로서 구하지 않으면
몸이 空하고 법 또한 空한 것이라
종래로 집착함이 없어서
오고 감이 모두 통하고 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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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山門頭合掌하고 佛殿裏燒香이로다
說誼:
雖云無去來하나 山門殿裏에서
進止從容하며
合掌燒香에 威儀炳著로다
야부:
절간 문(山門) 앞에서 合掌하고
佛殿 속에서 향을 사루도다.
설의:
비록 이르기를 거래가 없다 하나
山門과 불전 속에서 나아가고
멈춤이 자연스러우며
합장하고 향 사루는 위의가
환히 드러나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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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여래는 일체처에 두루 항상 머물러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으니
四見의 잘못을 끊으면
상을 보되 상을 구하지 않고
집착이 없어 오고 감에 걸림이 없게 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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冶父:
衲捲秋雲去復來하니 幾廻南岳與天台인가
寒山拾得이 相逢笑하니且道하라 笑箇甚麽인가
笑道同行步不擡로다
說誼:
飄然一條衲이 來去雲無心하도다
大千을 寄脚底하고
台岳을 經幾廻인가 撞着寒山與拾得하여
笑道同行步不擡로다
怎生是同行步不擡인가 寒山也宜去요
拾得也宜來인데 寒山之與拾得으로
來而不知去하며 拾得之與寒山으로
去而不知來하면 相緣不自由이니
取笑於焉在이나 此衲은
不如彼하여 來去自從容이도다
야부:
衲子(학인)가 가을 구름을 거두어 가고 다시 오니,
몇 번인가 남악산과 천태산을 돌았던가?
한산(청산:체)과 습득(길가:용)이 서로 만나 웃으니,
자 말하라!
그 웃음은 무엇인가.
웃으며 말하고 동행하되
걸음을 옮기지 않았도다.
설의:
세상사 떨쳐 버리고 떠나온
(飄然) 한 벌 옷(一條)의
납승이 오고 감이 구름처럼 무심하도다.
대천세계를 발 밑에 두고
천태산과 남악산을 몇 번이나 돌았던가?
한산과 습득이 만나서 웃고 말하며 동행하되
걸음을 옮기지 않았도다.
무엇이 동행하되 걸음을 옮기지 않는 것인가?
한산은 마땅히 가야하고
습득은 마땅히 와야 하는데
한산은 습득과 더불어 오기만 하고 갈 줄을 모르며
습득은 한산과 더불어 가기만 하고 올 줄 모르면서
서로 인연하여 자유롭지 못하니
웃음을 취함이 아! 여기에 있으나
이 납승은 저와 같지 않아서
오고감이 스스로 자유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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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수행인이 무명을 거두면
수고로이 구할 것이 없으니
가도 감이 없고 와도 옴이 없어
한산(體) 습득(用)이 함께 항상 머묾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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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
坐臥經行에 本自無來無去요 威儀不動하여
寂然非靜非搖로다 要解如來所說義否인가
隨緣赴感靡不周하나 而常處此菩提座로다
巍巍不動法中王이여 那有獼猴跳六窓이로다
笑指眞空無面目하고 連雲推月下千江이로다
說誼:
巍巍不動尊이여 號爲法中王이로다 古殿에서
寥寥常放光하니 六窓이 虛靜絶喧煩이로다
眞淨界中留不住하고 興悲運智爲機來로다
爲機來여 綠楊芳草岸에 無處不稱尊이로다.
종경:
앉고 눕고 다니고 행하는 것이 본래 스스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이요,
행주좌와에 부동하여 적연함이
고요함도 아니고 흔들림도 아닌 것이다.
여래의 설하신 뜻을 알고자 하는가?
인연을 따라 나아가서 느낌(感得)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나
항상 이 보리좌(각의 자리)에 있음인 것이다.
높고 높아 動하지 않는 法 가운데 王이여
어떤 원숭이(알음알이)가 있어서
六窓(六根 門頭)으로 뛰어나리오?
眞空이 面目(형체) 없음을 웃음으로 가리키니
어진 구름이 달을 밀어서 천강에 내리도다.
설의:
높고 높아서 動하지 않는 높음이여!
그 이름이 法 가운데 王이로다.
옛 法堂에서 고요히 항상 빛을 놓으시니
六窓이 비고 고요하여 시끄럽고 번거로움을 끊었도다.
참으로 깨끗한 법계
(眞法界:본체, 진여) 가운데
머물러 그치지 않고
자비를 일으키고
지혜를 운용하며
중생들을 위하여 오심이로다.
중생들을 위하여 오심이여!
녹양방초 언덕마다 세존이라
칭하지 않을 곳이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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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착어:
행주좌와 가운데도 움직임이 없으니
고요하기도 하고 분주하기도 하도다
일체의 왕이나 본래면목은 상이 없이
항상 일체를 비추고 나투느니라.
이름하여 여래라 하나 오고 감이 없어
인연 따라 나투되 움직임이 없어라
구름이 가리면 보이지 않고 걷히면 비취나
본래 달은 항상 가고 옴이 없이
머물고 있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