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집 제5권 / 칠언배율(七言排律)
박사 정자정이 강명원과 창수한 장편 율시를 보여 주기에 10운 〔鄭博士子精示與姜明遠唱酬長律 十韻〕
시단에 노련한 솜씨 두 영웅이 겨루니 / 老手騷壇角兩雄
붓끝의 신비한 광채 긴 무지개 꿰뚫었네 / 筆頭神彩貫長虹
진양의 빼어난 운치 원래 속되지 않고 / 晉陽逸韻元非俗
상당의 맑은 문사 역시 절로 공교롭네 / 上黨淸詞亦自工
읊조리는 사이에 양한의 광채 빛나고 / 兩漢光芒吟調裏
주고받는 가운데 삼당의 율격을 갖추었네 / 三唐格律唱酬中
삼시충 꾸짖었던 유자 응당 부끄러워하고 / 應羞柳子虫煩罵
궁귀 보낸 한옹에게도 배울 것이 없었네 / 不學韓翁鬼送窮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지식 구하려 했고 / 欲泝波瀾求委會
맥락을 깊이 찾아 사방으로 넓게 깨달았네 / 深搜脉絡悟旁通
뭇 꽃 다투어 피는 날 그윽한 계수나무 찾아갔고 / 群花閙日尋幽桂
갖은 풍류 뜰에 울려도 바른 음악 이해했네 / 衆樂轟庭觧正宮
산사에서는 십 년 동안 함께 책을 읽었고 / 山寺十年書榻共
천 리 밖 객창에서 동이 술 함께 마셨네 / 客窓千里酒樽同
자태 남달라 세상에서 사람 중의 봉황이라 했고 / 殊姿世擬人中鳳
매우 빼어나 당시에 바다 위 봉래산이라 했네 / 特秀時稱海上蓬
내 학업이 졸렬해 늘 성리서 베끼니 부끄러운데 / 劣業每慙謄性理
엄안과 종군의 굉박한 문사 어찌 본뜨리오 / 宏辭何敢效嚴終
생황 소리 밤에 울리고 달은 온 세상 비추는데 / 笙竽夜沸千門月
우습도다, 지금까지 귀머거리였던 것이 / 自笑從前耳病聾
[주-D001] 정자정(鄭子精) : 정탁(鄭琢, 1526~1605)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정, 호는 약포(藥圃)ㆍ매곡(梅谷)이다.[주-D002] 강명원(姜明遠) : 강제(姜霽, 1549~1606)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원, 호는 백석(白石)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냈다.[주-D003] 진양(晉陽) : 진양(晉陽)이 관향인 강제를 가리킨다. 진양은 진주(晉州)의 옛 지명이다.[주-D004] 상당(上黨) : 상당이 관향인 정탁을 가리킨다. 상당은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옛 지명이다.[주-D005] 삼시충(三尸蟲) …… 부끄러워하고 : 덕망을 갖추고 있어서 남에게 비난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매시충문(罵尸蟲文)〉에 “도사가 말하기를 사람에게 시충 셋이 있는데 뱃 속에 있다가 사람이 조금만 잘못한 것을 보면 경신일에 나가 제에게 참소한다.〔道士言人皆有尸蟲三 處腹中伺人隱微失誤, 日庚申, 出讒於帝.〕”라는 구절이 있다.[주-D006] 궁귀(窮鬼) …… 없었네 : 지혜, 문학, 문장, 천명, 교분을 다 갖추었다는 말이다. 한옹(韓翁)은 당나라 문장가인 한유(韓愈)로, 그가 지은 〈송궁문(送窮文)〉의 내용 중에,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의 다섯 궁귀(窮鬼)가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를 지적하며 “다섯이 각기 주장한 바가 있고 사사로이 이름자를 세워서, 내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엎지르게 하고 목청을 돋우었다 하면 남의 기휘를 저촉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면목을 가증스럽게 하고 언어를 무미건조하게 한 것은 모두 그대들의 뜻이다.〔各有主張, 私立名字, 捩手覆羹, 轉喉觸諱. 凡所以使吾面目可憎, 語言無味者, 皆子之志也.〕”라고 하였다.[주-D007] 엄안(嚴安)과 종군(終軍) : 엄안은 한(漢)나라 문인으로 무제(武帝) 때 낭중(郞中)에 제수되었다가 마침내 기마령(騎馬令)이 되었다. 종군은 한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문학과 언변이 매우 뛰어나서 약관(弱冠)의 나이로 간대부(諫大夫)에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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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姜霽, 1549~1606)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원, 호는 백석(白石)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냈다.->강제(姜霽) (1526~1582) 조선 명종(明宗) 때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인의(引儀) 강응청(姜應淸)의 아들로, 영덕 현감(盈德縣監)ㆍ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냄.<고전용어시소러스>
*1549년은 강제가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해이니 생년이 될 수 없다.
[생원] 명종(明宗) 4년(1549) 기유(己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29위(59/100)
[진사] 명종(明宗) 4년(1549) 기유(己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31위(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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蘫溪書院尊衛錄卷之三
裒寶錄
尙州敎授姜霽 楚辭貳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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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 영덕 현감을 지낸 강명원 제 에 대한 만사〔姜盈德明遠 霽 挽詞〕
넓고 넓은 도량으로 속세 일에 소홀하여 / 恢恢襟宇略機關
육십 년 세월 온 세상을 좁게 여겼네 / 六十光陰隘世寰
의성 고을 다스린 지 사 년 뒤에 / 文國鳴琴四載後
영덕 수령 맡은 것이 몇 해 동안이었네 / 野城遊刃數年間
시주의 생활에 천지가 드넓었고 / 酒詩活計乾坤闊
화류의 생애에 세월이 한가하였네 / 花柳生涯歲月閑
하루아침에 풍류 다해 서글픈데 / 惆悵風流一朝盡
구름 사이 석양이 황량한 산에 비치네 / 斷雲斜日照殘山
[주-D001] 강명원(姜明遠) : 강제(姜霽)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원, 호는 백석(白石)이다. 156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영덕 현감을 지내고, 이조 정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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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龍宮)
삼강서원(三江書院) 숭정 계미년에 세웠으며 사액하였다. : 정몽주(鄭夢周)ㆍ이황(李滉)ㆍ유성룡(柳成龍)
소천서원(蘇川書院) 신사년에 세웠다. : 전원발(全元發) 호는 국파(菊坡)이며 고려조에서 병부 상서를 지냈고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해졌다.
마산리사(馬山里社) 융경(隆慶) 무진년에 세웠는데 완담향사(浣潭鄕社)이다. : 정귀령(鄭龜齡) 호는 삼수(三樹)이며, 현감을 지냈고, 이조 판서에 증직되었다. ㆍ정옹(鄭雍) 수찬을 지냈다. ㆍ정사(鄭賜) 직제학을 지냈으며 찬성에 증직되었다. ㆍ정환(鄭渙) 응교를 지냈다. ㆍ정광필(鄭光弼)
기천정사(箕川精舍) 현종 기유년에 세웠다. : 문근(文瑾) 기묘록(己卯錄)에 있다. ㆍ문관(文瓘) 근(瑾)의 아우이며, 호는 옥계(玉溪)고, 승지를 지냈다. ㆍ이구(李搆) 기묘록(己卯錄)에 있다. ㆍ이문흥(李文興) 호는 몽암(夢庵)이며, 대사성을 지냈다. ㆍ안준(安俊) 호는 노포(蘆浦)이며 고려조에서 판봉상(判奉常)을 지냈다.
충효사(忠孝祠) 갑신년에 세웠다. : 반유(潘濡) 찰방에 증직되었다. ㆍ반충(潘沖) 호는 관물당(觀物堂)이다.
용곡리사(龍谷里社) 을축년에 세웠다. : 강응청(姜應淸) 호는 삼산(三山)이며 인의(引儀)를 지냈다. ㆍ강제(姜霽) 호는 백석(白石)이며, 이조좌랑을 지냈다. ㆍ강우(姜䨞) 호는 석봉(石峯)이며, 현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