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2eIC9WzVvs
둘다섯은 중, 고, 대학 선후배인 이두진과 오세복이 결성한 듀엣으로, 두 멤버의 성 이(둘)와 오(다섯)를 따 팀 이름을 지었습니다. 둘다섯은 1970년대 대학생가수라는 이미지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풋풋한 사랑얘기가 담긴 노랫말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5년 발표한 1집에 실린 <긴 머리 소녀>가 인기곡으로 떠오르면서 대학가와 공단의 여대생과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긴 생머리가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이어 이두진이 노랫말을 짓고 오세복이 곡을 붙인 <밤배>가 큰 히트를 했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기르고, 밤배를 타고 피서를 가는 게 붐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밤배>는 감성을 자아내는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로 한 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대학생들의 각종 모임에서 기타와 함께 꼭 등장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국민애창곡이 된 <밤배>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서경적인 가사로 정감을 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잔한 느낌을 듭니다. 노래가 발표된 지 32년이 지나 작사자 이두진이 노랫말에 얽힌 사연을 밝혔고, 노래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두진은 1973년 남해를 여행하던 중 금산 보리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발아래는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상주해수욕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캄한 밤바다에 작은 불빛이 외롭게 떠가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때 받은 인상을 그대로 메모해 즉석에서 흥얼거려 보니 어느 정도 노래가 되어 그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 다듬어 밤배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보리암에서 바라 본 밤바다의 작은 불빛, 그 밤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야하는 밤배는 거친 바다와 싸우며 삶을 영위해 가는 어민들의 운명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노래 < 밤배>는 그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밤배>의 배경이 상주 앞 바다라는 것이 알려진 2007년 해수욕장의 명칭을 상주은모래비치로 변경한 남해군은 그 이듬 해 해수욕장 송림 야영장 쪽에 노래비를 세웠습니다. 돛대 모양의 삼각형 노래비 상단에 밤배 악보를, 그 아래에 둘다섯의 사진과 함께 노래비를 세운 사연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밤배 노래비 (남해신문 2008.03.06)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포크 듀오 둘다섯 출신 오세복씨가 2021년 8월 11일 향년 67세로 별세했습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패혈증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간단한 곡조로 70~80년대 순수한 정서를 잘 표현한 듀오"라며 "3년 전에 이철식씨와 새로 둘다섯을 꾸려 신곡을 내려 했는데 사고가 나 무산됐고, 이렇게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오세복은 코로나19 확진을 비롯해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료. 경남공감 2014.08호, 한국일보 2021.08.12>
조금은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1년은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휴식처를 제공했던 가수들은 물론,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무자비한 총칼로 국민을 살해했던 전두환, 노태우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어느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습니다. 오래 전 미국 출장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한 재미교포가 "전두환을 제 명대로 살게 내버려 두면 안되는 것 이닙니까"라고 목청을 높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명대로 살다가 갔습니다. 법의 단죄를 받지도 못하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그들을 보내게 되어 오히려 가슴 한편이 저립니다.
그들이 총칼로 집권할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정권하에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통학번'입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이 쳐들어오는게 아닐까'하는 걱정을 할 정도로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무지했습니다. 모 대통령 후보가 말하듯 광주민주화운동은 불순한 집단에 의한 폭동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이후 느꼈던 세상은 고등학교시절 배웟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전두환은 자신이 집권하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이 그들 욕망의 희생물로 쓰러져 갔습니다. 대학가는 최루탄으로 몸살을 앓았고, 길거리에는 사복경찰들이 툭하면 불심검문을 자행하였으며, 시위가 일어나는 근처를 지나다보면 하루 저녁은 경찰서에서 자고 나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사회를 정화한다는 명분에 단지 불량스러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영장도 없이 삼청교육대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말 한마디로 온갖 고문을 당할 수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군부독재시절이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군부독재의 총칼에 맨손으로 목숨을 걸고 저항한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일이 나열하기 너무나 안타까워 거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실제로 많은 대학생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니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음에도 국민적인 슬픔이나 추모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봅니다. 최근 군사독재의 후예들이 모인 모 정당에서 툭하면 "독재"를 말합니다. 그들은 독재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을까요. 그들이 진짜 독재를 경험해 봤을까요.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야는 새의 두 날개처럼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집권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있는 법이고,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모든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최대라 합니다. 이런 후보들을 세워놓고 누굴 고르라는 말이냐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거는 최선(最善)을 고르는 게 목표이나 때로는 차선(次善)을 선택해야 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5년전 미국의 대선에서 처럼 최악(最惡)이 아닌 차악(最惡)을 골라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투표에는 참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때, 후보들의 농간이 줄어들 것이고 조금이라도 건전한 방식으로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202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