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사>
사람의 감성이 가장 풍부해진다는 새벽 4시, 지금 수료사를 쓰는건 저의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내일 선생님들 앞에서 얼굴 발게지지 않고 이 글을 읽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료사를 쓰기위해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봅니다.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읽을 수료사니 멋있고 있어 보이게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원래 뭔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냥 솔직하고 담백하게 적으려합니다.
항상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 어디로 갈지 결정할 때도 그랬고, 군대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항상 인생에서 큰 순간이 올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실습하기 위해 실습기관을 결정할 때도 그랬습니다.
남들처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기에 이번 실습기관 정할때의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자연주의 사회사업 하는 곳으로 가서 어떤 식으로 사회사업하는지 배우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공지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자연주의 사회사업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 여름 방학, 사회사업에다가 제주도까지? 참으로 낭만 넘칩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친구 한명 꼬셔서 실습 지원서 넣기로 했습니다.
제가 세운 제 처음 계획이었습니다.
지원 마감 일주일 전, 지원서 넣기 전에 전화 한통 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미 마감되었답니다.
아니 왜 아직 일주일 남았는데 벌써 마감인지 야속하기만 합니다.
시간 많이 남았다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머리가 빠르게 돌아갑니다.
친구는 그냥 집 근처에 있는 곳 가겠다고 신청 넣었습니다.
기관 안 정해진 사람이 없는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제주도에 전화 걸었을 때 마감되어 미안하다 하시며 서울에도 자연주의 사회사업하는 곳 있으니 찾아보라 하시며 두 곳 추천해주셨습니다.
방화에 있는 방화 11복지관과 관악구에 있는 강감찬 관악 복지관 추천해주셨습니다.
두곳 중 한 곳 지원서를 넣으려 하는데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됩니다.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친구들이 가까운 곳에 지원했던 것처럼 한번 집에서부터 거리를 따져봅니다.
방화 11 복지관은 5호선의 끝과 끝입니다. 마천 역에서 끝 역인 방화역까지 가면됩니다.
1시간 30분 걸리지만 갈아탈 필요없이 한번에 갑니다.
집에서 강감찬 관악 복지관까지 거리를 따져봅니다.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오금역에서 한번, 교대역에서 한번, 버스까지 3번 갈아타야 합니다.
편한거로 따지자면 방화 11복지관에 가는게 더 편합니다.
타는 곳이 시작 역이니 바로 앉을 수 있고, 가만히 앉아서 책읽다보면 도착합니다.
관악구에 가는 것은 조금 복잡합니다.
4정거장 갔다가 갈아타고, 12정거장 정도 갔다가 갈아타고, 여섯 정거장 갔다가 버스로 갈아타야 도착합니다.
합리적으로 따지자면 방화로 가는게 맞아 보입니다.
이런저런 고민하다가 결국 실습지원서는 강감찬관악복지관에만 넣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런진 모르겠습니다. 그냥 여기 오고 싶어 넣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실습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운이 좋게 붙었습니다.
1차 서류평가에서만 31명이 붙었길래 붙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붙었습니다.
떨어진다면 겨울에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참 다행이었습니다.
무언가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원래 그러했던 듯 자연스럽게 잘 흘러갑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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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사회사업이 시작된 후에도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건 여전합니다.
사실 내 뜻대로 흘러가면 안됩니다.
아이들이 주인 되어 놀기로 했으니 아이들 뜻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물론 아이들과 묻고 의논하는 과정도 잊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묻고 의논할수록 막혀있던 일이 하나씩 풀려갑니다.
이렇게 사회사업을 하며 아이들 뜻대로 흘러가면 갈수록 사회사업 속에서 사회사업가인 내 생각은 사라집니다.
사회사업을 잘 하면 잘 할수록 사회사업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남들 눈에는 슬퍼보일수도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 사회사업가의 주체성은 사라지다니 아이러니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유 중 가장 큰 자유는 자기의 자유를 포기할 자유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드러날 수 있음에도, 드러나고 싶음에도 오히려 그것을 포기하는 이 선택이 더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라질수록 아이들이 드러나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골목놀이 아이들이 주도했고 아이들이 만들었습니다.
놀이 당일 저는 그냥 아이들처럼 수건돌리기 하며 재밌게 놀았습니다. 한게 없다는 말이 겸손을 위한 말이 아니라 진짜 그러했습니다. 진행자, 관리자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여자처럼 있기도 했습니다.
그냥 같이 놀았습니다. 프로그램 책임자의 역할로서 본다면 빵점입니다.
한게 없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지역사회 사람살이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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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아이들이 이런 골목놀이라는 프로그램 없이도 만나서 뛰어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나 자연스럽게 놀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놀이가 아이들의 보통 생활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사회사업가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사업이라는 “일”을 통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이 있어야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도 만나서 놀고 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이 있어야만 만난다면 목적이 사라진다면 만날 이유를 잃게 됩니다.
처음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났더라도 그것이 구실이 되어 나중에는 목적 없이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실습은 참으로 자연스러웠습니다. 내뜻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계획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가야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사회사업이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게 되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사회사업이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당연한 사람살이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사회사업은 없어져갈 겁니다.
만약 제가 사회사업가가 된다면 제 모습은 없어질 것입니다.
나는 지워지겠지요. 그래도 그게 최고의 기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두루 스미어 흐르게 된다면, 내 모습 지워진들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그저 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원래 그러했듯이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