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꽃구경, 꽃
인생은 함박꽃처럼
신근식
점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혹서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우로 수해를 입어 사람이 실종되거나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등 많은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하듯 다시 온 대지를 폭염으로 달구고 있다. 정말 자연의 섭리는 인력으로서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또 인생에서 새삼 느꼈다.
아파트에 살다가 2016년 삼월, 성주 선남면 소학리 전원주택에 이사 왔을 때 봄이 한창 무르익어갔다. 뜰 주위에는 함박꽃과 찔레꽃 등 여러 가지 꽃이 피어있다. 감나무에도 새잎이 돋아나서 아파트 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들이다. 또 유기견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봄에 왔다고 ‘봄’이라고 이름 지어서 귀여워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가족 중 큰딸이 손주를 데리고 예전의 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한 번씩 내려와 잔디밭에 ‘봄’이와 같이 뛰어놀던 ‘지호’의 모습이 못내 그립다.
이맘때쯤이면 서울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받아 내려올 것인데 이번 여름은 고민이 많다. 지난 해 8월에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하였다. 아파트 평수도 줄였기 때문에 세 집 식구가 지내기에 턱없이 불편하여 외부 다른 장소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함박꽃과 인연이 깊다. 고향은 앞에 남산이 있고, 뒤로 영취산(681.3m)이 있다. 동쪽에는 함박산(500.6m)이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하고 엄마 품 같은 곳이다. 연대(年代)를 알 수 없는 석빙고와 13세 소년이 설계해서 만들었다는 만년교, 향교, 함박 약수터 등 고만고만한 고적이 많은 동네다.
함박산 약수터는 만년교가 있는 남산 호국공원을 지나 석빙고 방향으로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다. 그곳에는 이름 그대로 함박꽃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다. 지금은 지고 없지만 함박꽃이 피는 5월이 되면 아름다운 꽃이 주변을 황홀하게 만들어 준다. 어릴 때 이른 아침에 한 되짜리 작은 주전자 들고 약수터에 오면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줄지어 약수를 받는다. 약수는 그야말로 어린애 오줌 누듯이 쫄쫄 나온다. 그렇게 귀한 약수를 큰 물통으로 받아 가는 양심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 년 전에 대구 페놀사건으로 인하여 어떻게 대구에까지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약수 받기가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한 번씩 고향을 찾을 때면 함박산 약수터에 간다. 어릴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요즈음은 그때와 달리 아스팔트에 승용차가 약수터 바로 밑에까지 가서 약수를 받기가 좋았다. 지금도 약수 받으러 오신 분과 얘기 해보았더니 연료하신 어머님을 위하여 10Km 이상 멀리서 왔다고 해서 효자라고 생각하였다. 어릴 때부터 약수가 배 아프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먹으면 금방 낫는다고 하였다. 한국관광공사 표지판에 전국 청정약수터 7선 중에서 함박산약수가 1위이고, 2위가 청송 달기약수라고 적혀 있다. 또한 함박산약수터는 전국 약수터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약수터로 신라 경덕왕 때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처음 보는 놀라운 사실이다. 본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까운 내 고향에 이렇게 훌륭한 약수터가 있을 줄을 몰랐다. 짬이 나면 5월에 함박꽃이 만발할 때 쯤 약수터를 찾을 것이다.
함박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함박꽃은 고려 여인의 후덕함 닮은 함박꽃 앞에서 초라함을 느낀 제국공주의 이야기이다. 원에 정복당한 고려는 1274년 쿠빌라이 칸의 딸과 고려 25대 충렬왕과의 혼인은 속국 고려 왕실과 몽골 황실 최초의 결혼이었다. 그 딸이 바로 제국공주이다. 결혼 당시 제국공주는 16세 꽃처녀였고, 충렬왕은 39세의 아저씨다. 차이는 크지만, 제국공주는 대장공주로서 고려를 좌지우지하는 권세 행사했으나 사랑은 아니었다. 충렬왕에게는 후덕한 미모의 고려 여인들이 후궁으로 있었다. 하루는 수녕궁 화원을 산책하던 제국공주는 탐스럽게 피어난 함박꽃을 발견하고 시녀에게 명하여 꺾어오게 하였다. 꽃을 감상하던 공주는 홍루(붉은 눈물)를 하염없이 흘렸다. 그리고 이로부터 병이 들어 얼마 만에 죽었다. 당시 충렬왕이 사랑한 궁녀 무비가 함박꽃 같았다. 함박꽃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던 것이다.
충렬왕과 제국공주 사이에 태어난 왕자 충선왕(36대)은 궁녀에 대한 임금의 사랑을 질투하다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된 것을 분하게 여겨 부왕의 특별 총애를 받은 후궁 무비는 물론 낌새가 있어 보이는 궁녀들을 모두 귀양 보내거나 죽이고 궁궐 내의 함박꽃도 없애버렸다. 함박꽃은 고려 여인의 아름답고 후덕함을 보여준다는 꽃이다.
함박꽃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 중 가장 큰 꽃을 피운다. 자목련, 백목련 등이 같은 목련과로 함박꽃나무보다 크지만 그건 외국에서 들어왔고, 자생종 목련은 함박꽃보다 꽃이 조금 작다. 여름날 숲에서 문득 만나면 그 크고 아름다운 자태와 매혹적인 향기에 누구라도 함박웃음을 머금게 된다. 그야말로 산골 처녀가 활짝, 함박웃음을 짓는 청순한 모습이다.
요즘은 누구나 어디서나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여럿이 모여 웃고 자유분방하게 떠들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드러내어 웃는 걸 천박하다 했다. 약간은 자기를 숨기는 게 매력적이라고 하며, 웃을 때도 손으로 살짝 입을 가려야 인품의 향기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런 점에서 함박꽃은, 잎이 나온 다음 가지 끝마다 꽃이 한 송이씩 살짝 밑을 향해 달린다. 시인 묵객들은 그 모양이 만족한 웃음을 안으로 삼키며 다소곳한 모습을 보여주는 겸양을 갖춘 예스러운 한국 여인의 상징과 같다고 노래했다.
알록달록 꽃 피는 싱그러운 봄, 여름은 금방 지나가고, 우수수 낙엽 날리고 소슬한 바람 부는 가을이 옵니다, 때로는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혹한이 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찌하겠습니까? 세월은 빨리도 흐르는데, 어느 5월 뜰에 핀 함박꽃은 아내의 미소만큼이나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상하면 지금이 최고로 행복하다. 우리 모두 함박꽃처럼 함박 웃고 행복하게 살아 갑시다.
(20230731)
첫댓글 함박꽃처럼 행복한 삶 응원하겠습니다.
멋진 글 잘 읶었어요^^
졸작을 읽어 주셔서 감사요
정말 함박꽃을 좋아합니다
긴 글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