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 3-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는 지금 율법과 관련하여 할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 역시 할례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의 관점에서 본 할례는 사도의 생각과는 다름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즉,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할 때에, 그 율법은 선별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면 모든 율법을 지키며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여기서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μαρτύρομαι δὲ πάλιν παντὶ ἀνθρώπῳ περιτεμνομένῳ)라고 하면서, 이처럼 할례를 비롯한 율법을 지키려면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율법을 남김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할례를 받는 사람에게,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ὀφειλέτης ἐστὶν ὅλον τὸν νόμον ποιῆσαι)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는 여기서 언급한 것처럼 율법을 완전히 남김없이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율법을 준수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표준은 완전한 의로움이다. 그러므로 몇 가지의 율법을 지킨 것으로는 하나님의 표준에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가 쓴 로마서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라고 한 것이다. 즉,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몽학선생은 될 수 있어도, 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율법은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율법 앞에서는 우리 모두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죄인의 결과는 사망뿐이다. 주님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마 5:17).
여기에 율법주의자들의 오류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결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음도 분명하다. 만약 할례를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의 그 주장에 동의를 한다면, 이 할례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찌 인생이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으리요.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또 누가 있겠는가?
따라서 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οἵτινες ἐν νόμῳ δικαιοῦσθε) 어리석은 자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이미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율법과 죄, 하갈과 여종, 결국은 종노릇을 하는 것밖에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그의 공로로 의롭게 되어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가련하고 불쌍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κατηργήθητε ἀπὸ Χριστοῦ,… τῆς χάριτος ἐξεπέσατε)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끊어진”으로 번역된 헬라어 κατηργήθητε(You are severed)는 ‘분리되다’, ‘절단되다’는 뜻을 지니는 말이다. 그리고 “떨어진”으로 번역된 헬라어 ἐξεπέσατε(you have fallen away)는 ‘무엇인가 붙잡고 있는 것을 놓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사도는 율법을 통하여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통해 주어지는 구원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는 이처럼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에 동의하는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며, 할례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도리어 믿음과 은혜에서 분리되어 멸망할 수밖에 없고, 성도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구원과 하등 상관없으며 경건에도 유익이 되지 못함을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이하 계속/ 구모영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