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세검정 방향으로 가다가 자하문 옛 도로로 접어들면 넓지 않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와집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법 품격이 있어 보입니다. 단청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왕실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웬 기와집들일까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칠궁 七宮’이라 하며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곳입니다. 왕의 사친 私親이나 비 妃의 신분이 아니므로 종묘에는 봉안될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곳 또한 사당이므로 아직도 해마다 때맞추어 제사를 모시고 있어요. 옛 청와대 영빈관의 서쪽이며 행정 구역으로는 종로구 궁정동이 되겠습니다.
칠궁이란 명칭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이곳은 영조가 1725년(영조 1) 자신의 생모 숙빈 최씨의 사당으로 세운 숙빈묘 淑嬪廟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영조는 출신 성분이 미천한 생모의 신분 격상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합니다. 숙빈묘의 명칭을 육상묘로 그리고는 육상궁으로 점차 끌어올렸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때인 1908년 칙령에 의해 다른 후궁의 사당들이 이곳으로 옮겨옴에 따라 육궁 六宮이 되었고, 1929년 마지막으로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이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서 이곳으로 옮겨옴으로써 오늘의 칠궁이 있게 되었습니다.
1) 저경궁 儲慶宮: 선조의 후궁이자 추존한 임금 원종 元宗의 생모인 인빈 仁嬪 김씨
2) 대빈궁 大嬪宮: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 景宗의 생모인 희빈 禧嬪 장씨
3) 육상궁 毓祥宮: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 英祖의 생모인 숙빈 淑嬪 최씨
4) 연호궁 延祜宮: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한 임금 진종 眞宗의 생모인 정빈 靖嬪 이씨
5) 선희궁 宣禧宮: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한 임금 장조 莊祖의 생모인 영빈 暎嬪 이씨
6) 경우궁 景祐宮: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 純祖의 생모인 유비 綏妃 박씨
7) 덕안궁 德安宮: 고종의 후궁이자 순종에 이어 이왕이 된 이은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칠궁은 종묘나 궁궐처럼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였으나 1968년 1·21 사태(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를 계기로 시민의 관람이 금지되었어요. 그 후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경내관람이 시작되면서 청와대 관람자에 한하여 칠궁을 볼 수 있게 되었으나, 2018년 6월부터는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칠궁만 단독으로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회가 되시면 한 번 둘러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