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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와 한국시의 감각성
신원철
우리 선조들이 몰두했던 것은 한시였고 한시를 잘 짓는 능력은 입신의 관문인 과거에서 아주 중요한 항목이었다. 지나치게 한시에 몰두하다보니 정작 우리말로 된 시를 소홀히 하거나 천시하기도 한 아쉬움이 있으나 한문으로 쓴 선조들의 시도 사실은 상당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러나 개화가 되고 서구의 문물이 물밀 듯 들어오면서 그 동안의 문학에 대한 일대 반성이 있었고 선조들이 한시를 습작했듯이 신세대의 시인들은 서구의 시를 모범으로 삼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자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를 벗어나 우리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우리말로 문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거기서 영시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당시 중국보다 훨씬 강한 국력과 새로운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영,미에 대한 동경이 영시에 대한 선호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당시 우리나라보다 여러 가지로 앞서있던 일본을 통해서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 유학생들이 일본어 번역을 통해서 접한 영문학이 바로 그 시초였던 것임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때부터 영시가 우리 시에 끼친 영향은 컸다. 식민지 기간 36년 중 길지 않은 문화기였던 20년 중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시단에 영향력이 컸던 분은 김억이었고 30년대 시단에서는 김기림이었으며 이 두 분이 각각 예이츠와 엘리엇을 선호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억이 예이츠의 시에서 읽은 것은 아무래도 그 초기시에서의 낭만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김기림이 좋아했던 시인은 엘리엇이었고 그것은 30년대의 주지주의적 흐름과 관련이 있다. 특히 예이츠의 시가 당시 한국시에 끼쳤던 영향은 컸다. 바로 초기 예이츠 시에서 보이는 낭만적 감각성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옛시조나 시가를 보면 감각에 호소하는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보며 그 변화에서 인생사의 영락을 보기를 좋아했고 시각, 청각, 촉각에 섬세하게 와 닿는 감각적 묘사를 즐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동양화와 서양화에서도 비교가 되는데 아름다운 산수 속에 사람의 모습은 아주 작게 그려 넣고 구름과 산봉우리와 소나무와 폭포를 중요한 배경으로 처리하는 동양화와 사람의 육체 구석구석을 경이의 눈으로 묘사해내는 서양화를 비교해 보면 서양인들이 시각, 특히 손끝에 와 닿는 촉각적 감각을 매우 선호하고 몰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이후 우리의 선배 시인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영시였다면 거기서 감각성은 대단히 중요한 특징이다. 19세기 존 키츠(John Keats)부터 시작된 이 감각성은 그 이후 영시를 대단히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으며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주의 시들의 영향을 받아 예이츠의 시에서 꽃피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우리 시를 현대화 시킨 선구자들의 시에서 이 감각성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들 중 상당수가 영문학 전공자였다는 것은 당시의 선구자들이 얼마나 거기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며 또 그것이 우리시의 발전에서 중요한 점이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분들 중 정지용을 가장 선구적인 예로 들고자 한다. 그는 교토의 동지사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당시 영문학은 신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학문이었고 그들이 영시에서 배웠던 것은 세련된 이미지와 감각적인 표현들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영시의 감각시들과 그것들에게서 영향받았을 초기 우리시의 감각성을 비교 고찰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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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의 감각성은 존 키츠(John Keats)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Beauty is Truth, Truth beauty) 에서의 미에 대한 집착은 사실 감각에 대한 추구이며, 이것이 영시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다섯 낭만시인 중에서도 사실 가장 많은 영향을 후대에 끼치게 했다. 그것은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몰두이며 그것이 그의 시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의 절창인 「나이팅게일의 노래」(‘‘Ode to a Nightingale”)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 들어가 오로지 새의 소리와 숲의 향기에 도취하는 모습(“그러나 향기로운 어둠 속에서/ 계절의 다달이 부여하는 풀과 덤불과 과일나무가 뿌리는/ 제각각의 달콤함을 짐작해 보라”(But, in embalmed darkness, guess each sweet/ Wherewith the seasonable month endows/ The grass, the thicket, and the fruit-tree wild;))(NA 791)은 후각에 대한 뛰어난 묘사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Ode to a Grecian Urn”)에서는 고대 회랍의 도자기에 새겨진 부조물을 보고 거기서 천상의 음을 상상하는 것은(“들리는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것은 더 아름다우니/ 너 부드러운 피리여 계속 불어라”(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Are sweeter; therefore, ye soft pipes, play on;))(NA 793) 구절은 다름 아닌 청각에 대한 환상적 묘사인 것이다. 여기서는 「가을에」(“To Autumn”)라는 작품의 한 구절을 나른한 감각의 예로 읽어보자.
그대 추수의 벌판에 무심히 앉아
머리칼은 키질하는 바람에 부드럽게 쳐들리거나,
아니면 아편의 연기에 취하여 반쯤 추수한 밭이랑에서
곤히 잠들어있느니,그동안 그대의 낫은
다음번 낫질이나 꼬인 꽃타래들을 까맣게 잊고 있거니.
Thee sitting careless on a granary floor,
Thy hair soft-lifted by the winnowing wind;
Or on a half-reap'd furrow sound asleep,
Drowsed with the fume of poppies, while thy hook
Spares the next swath and all its twined flowers: (NA 813)
가을을 의인화한 이 구절은 가을을 밭둑에 게으르게 앉아 머리칼을 휘날리는 농사꾼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혹은 아편을 먹고 곤히 잠든 모습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즉 가을을 의인화한 그는 나태하고 늘어진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나태함을 잘 나타내는 것이 키질하는 바람과 거기에 쳐들려 흩날리는 머리칼이다. 가을의 풍요로움과 추수후의 만족스럽고 나태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가을날 오후의 나른하고 졸리는 상황은 매우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당대의 워즈워드(Wiliam Wordsworth)나 바이런(Lord Byron) 등과는 다른 시를 찾던 키츠에게 바로 이런 감각성이 해답처럼 찾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에 가서 엘리엇의 객관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이론에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단단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더없는 선례였던 것이다.
키츠의 감각성은 테니슨(Alfred Tennyson)에게 계승된다. 전설의 아더(King Arthur) 왕국을 찾아 상상 속을 헤매던 테니슨에게는 그 감각성이 환상적 표현을 완성시키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버드나무는 하얗게 피고, 사시나무는 떨고
작은 산들바람은 캐멀롯을 향해
홀러가는 강 속의 섬의 가장자리를
영원히 찰싹이는 물결 사이로 어스름 속에서 떠는데
그의 맑고 넓은 이마는 햇살 속에서 번쩍이고,
햇살에 반사되는 발굽으로 그의 전마는 뚜걱이고,
그가 캐멀롯을 향해 말달릴 때
혼들릴 때마다 그의 투구 아래로
혹연처럼 검은 머리칼이 홀러내렸던 것이다.
Willows whiten, aspens quiver,
Little breezes dusk and shiver
Through the wave that runs forever
By the island in the river
Flowing down to Camelot.
His broad clear brow in sunlight glow'd;
On burnish'd hooves his war-horse trode;
From underneath his helmet flow'd
His coal-black curls as on he rode,
As he rode down to Camelot. (NA 1061)
이 구절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오두막에 숨어 사는 신비로운 처녀와 그 오두막이 있는 섬과 그것을 감고 흐르는 강과 거기에 스치는 미풍,그리고 그 섬의 옆길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기사 랜슬로트를 묘사한 것이다. 이 시는 아더왕의 전설 중 한 부분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나간,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구절구절에서 보이는 감각적 묘사는 눈여겨 볼만하다. 버드나무는 하얗게 꽃을 피우고 사시나무는 떨고 강의 물결위에 어스름이 내리고 하는 모습들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참으로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또한 위 구절에서의 미남기사 랜슬로트의 모습도 환상적이다. 그의 모습은 햇살아래 반짝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넓은 이마는 햇살아래 반짝이고 그의 전마는 발굽을 번쩍이며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이 말 등에서 흔들릴 때마다 검은 머리칼이 헬멧 아래로 홀러내리며 펄럭이고 있다. 이런 묘사들은 미술적 감각과 안목이 있지 않으면 만들어내기 힘든 것이며 시에 생명을 부여한다.
그리고 현대영시를 열었던 예이츠(W. B. Yeats)의 시에서도 풍부한 감각성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의 몽상적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이 시인의 초기 시에서의 감각성이야말로 그 몽상적 표현에서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의 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의 한 구절을 읽어 보자.
그리고 난 거기서 약간의 평화를 얻으리,평화란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것이니,
아침의 장막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거기의 한 밤중은 온통 부연 별빛이고 대낮은 하나의 자줏빛 불길,
저녁은 온통 홍방울새 날개 짓으로 가득할 테니.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f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CPY 39)
흔히 이 시를 예이츠의 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것은 바로 감각성이라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여기서는 이니스프리 섬의 아침, 한낮, 저녁, 밤의 모습이 뛰어난 감각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침은 평화로운 안개인데 그것을 아침의 베일에서부터 뚝뚝 방울져 떨어지며 귀뚜라미 우는 풀뿌리까지 스며든다고 말한다. 안개의 습기가 뿌리까지 스며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뿌연 안개를 아침의 드리운 베일이라고 비유한 것도 매우 선명한 시각적 표현이다. 거기의 밤은 부연 별빛이 덮여있어서 빛의 천공을 이루고 있으며 대낮은 지천으로 피어난 히드 꽃의 장관을 온통 보랏빛으로 타오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섬은 낮이나 밤이나 빛으로 싸여 어둠이라고는 없다. 그리고 여기의 저녁은 숲속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자리를 잡는 홍방울새들의 날개 부스럭거리는 소리 즉 청각으로 집중되고 있다. 하루 종일 놀다가 쉴 때가 되어 잠에 드는 새들의 지저귀고 부스럭대는 소란이 상상되는 것이다. 이 섬의 아침 점심 저녁을 묘사하는데 동원되는 것은 청각, 시각, 촉각을 망라한 모든 감각들이다. 이러한 감각구사에 있어서 예이츠는 뛰어난 천재였다.
그리고 20세기 영국시단은 예이츠와 엘리엇이라는 두 거물의 그림자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 영국 시단에 한 반항적 주정꾼이 등장했는데 그는 옥스퍼드도 캠브리지도 아닌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였다. 그의 시는 생명에 대한 찬탄으로 특색지어진다. 당시 지나친 지성에의 몰입에 식상하여 원초적 생명의 아름다움에 몰두하게 되었던 대표적인 문인이 로렌스(D. H. Lawrence)였으며 딜런 토마스도 거기에 가세했다. 토마스의 시 중에서 가장 애송되는 시는 바로 어릴 때의 고향과 그 속에서 순진무구하게 뛰어 놀던 자신을 그린 회상 시이다. 「펀 힐」 (“Fem Hill”)이 바로 그것이며 역시 뛰어난 감각의 시이다. 시의 시작은 낙원이다.
훙얼대는 집 둘레 능금나무 가지 아래
내 어리고 맘 편하며 풀이 푸르듯 즐거움고
골짜기 위 밤하늘에 별이 가득 돋았을 때
Now as I was young and easy under the apple boughs
About the lilting house and happy as the grass was green,
The night above the dingle starrry...............(NA 2284)
이 구절에서 그의 고향은 풀의 초록색과 골짝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과 열매를 가득 달고 혼들리는 능금나무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어린 그의 눈에 비친 웨일즈의 시골 마을은 이토록 아름다웠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인 청각이미지로 선명하게 이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교회당의 종소리와 여우 울음소리이다.
송아지는 내 풀피리 따라 노래하고 산의 여우는 맑고 차게 울며
안식일의 종은 천천히
거룩한 시냇물 조약돌 속에 울렸었다.
the calves
Sang to my horn,the foxes on the hills barked clearand cold,
and the sabbath rang slowly
In the pebbles of the holy streams. (NA 2284)
송아지는 아이의 풀피리에 맞춰 메메 울고 여우는 차갑고 선명하게 울며 교회 종소리는 개울물 속의 조약돌에 천천히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세 개의 소리는 낙원의 정황을 참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아이의 풀피리에 맞춰 송아지가 우는 것은 걸림 없는 평화이다. 여우가 맑고 차갑게 우는 것은 아마 배가 고파서일 테지만 어둡고 탁하지 않다. 압권은 조약돌에 반향되는 교회당 종소리이다. 맑은 시냇물 속에서 종소리가 돌에 반향할 리는 없지만 시인의 상상 속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감각에 의해 이 시는 훌륭하게 승화되는 것이다. 이 시 속의 아이는 아무런 근심이 없다. 사실 딜런 토마스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 고 교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홀로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했다(Ackerman29).
그의 시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방랑자를 보는데 그것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의 감각성이다. 그것은 그가 주변의 사물들에서 생명을 보았으며 그 하나 하나의 변모를 기뻐하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영시에 있어서 감각성은 시를 살아 움직이게 한다. 그 감각성으로 인하여 시의 구절 하나하나가 꿈틀대며 손에 만져지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성은 20세기 들어와서 시의 견고한 이미지로 승부한다는 모더니스트들의 시작법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자면 엘리엇 시의 절묘한 비유들,저녁하늘을 수술대 위에서 마취된 환자에 비유한다거나 지루한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등의 이미지로 결과지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그때 전혀 새로운 시라고 만들어낸 것들이 결국 키츠의 의미보다도 감각적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네거티브 캐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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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신문학이 싹트던 1920년대와 30년대는 사실 영문학 전공자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었다. 20년대의 김억은 게이오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오산고보의 영어교사였고 30년대의 김기림도 도호쿠대학 영문과 출신이었다. 김억의 제자 김소월이 스승을 통하여 예이츠의 시를 소개 받았으리라는 것은 거의 정설로 통하고 있다. 그의 시 「진달래 꽃」에서 유명한 구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의 꽃을 밟고 간다는 발상은 예이츠의 시 『천국의 천』(“The Cloths of Heaven”)에서의 하늘 천과 같은 꿈을 밟고 간다는 표현(“내가 꿈을 당신의 발아래 깔았으니/ 부드럽게 밟으시라 내 꿈을 밟는 것이니”(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CPY 73)에서 힌트를 얻었으리라는 것은 이미 많이 언급되었다.
당시의 한국 시단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시인들은 일종의 신천지를 개척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정지용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고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교토의 동지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6년간 휘문고보 영어교사를 거쳐(이승원 37) 해방 후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고(51) 1939년 『문장』지를 발간하고 박목월,조지훈,박두진까지 발굴해낸(43) 그는 한국현대시의 역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다. 그의 절창 『향수』의 우수성은 그 비유와 이미지의 감각에서 온다.
이상오는 “정지용의 시에서 우리는 사물들에 대한 감각적 체험으로 자연의 있음을 발견하고 그 시공을 자신의 실존으로 연결하려했던 하나의 시도를 볼 수 있으며 감각적 체험 과 그 형상화 과정이라는 관점은 정지용 시세계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175-76). 또한 노춘기는 정지용의 초기시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감정을 통제하고 감각적이고 절제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혁신적인 시어의 용법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그 결과 그의 시가 “주지주의적 시작 방법론의 확립으로 평가”(140)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지용에게 감각은 그가 경험한 세계의 표상으로서 시적 대상에 대한 정서적 거리를 드러내는 장치이면 서 동시에 시적 주체의 심리적 상황을 함축하는 형식”(158)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정지용이 “정적인 풍경을 동적인 사건으로 전환하는 형상화의 방식이 뛰어나다”(158)고 평하기도 한다. 이것을 그의 시 『향수』를 통해서 읽어보자.
시의 첫 연에서 고향의 아름다움은 실개천과 황소로 대변되고 있다. 실개천이 흐르는 모습은 “옛이야기 지즐대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황소는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둘 다가 뛰어난 청각 이미지이지만 특히 두 번째 황소의 울음은 중첩되는 형용사와 부사로 수식되고 있다. 그 울음소리는 “금빛”과 “게으른”이라는 두 개의 형용사로 수식되고 있는데 그 형용과 함께 “헤설피”라는 뛰어난 부사가 붙어 있다. 이 부사로 인해 느릿느릿 되새김질하며 내는 누런 소의 울음소리가 잡힐 듯이 다가오는 것이다(“얼룩백이 황소가/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두 번째 연의 경우도 겨울 밤바람 소리와 늙으신 아버지가 선명히 대조되고 있다. 밤바람 소리는 말발굽 소리에 비유됨으로써 그 요란스러움이 들리는 듯하며 이제 늙어 젊어서의 기운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쇠잔함이 짚베개라는 물상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3연에서는 흙과 하늘이 대조를 이룬다. 흙은 시적화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토를 말하는 것이며 하늘은 그 고향을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뛰쳐나가려는 회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의 지향할 바를 모르는 무목적성은 활을 쏘는 행위로 나타나며 그것은 확실한 목표물을 향하는 것이 아닌 “함부로 쏜” 화살이 되는 것이다. 3연에서도 종아리를 이슬에 적시는 촉각이 좋다.
4연에서는 두 여자가 등장하는데 어린 누이와 아내가 그들이다. 누이는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며 아내는 “사철 발벗은” 소박한 모습이다. 어린 누이의 머리타래를 비유한 밤물결은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지만 매우 풍성한 시각적 이미지이다. 사실은 숱 많은 머리를 치렁대는 성숙한 여인의 머리이지 어린 계집아이의 머리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내의 소박함은 발 벗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 4연에서 가장 뛰어난 표현은 “따가운 햇살 등에 지고”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이 당시 여인네들의 신산을 말하는 것이면서 향토적인 상황을 선연히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리고 마지막 5연에서는 “서리까마귀”와 “흐릿한 불빛”이라는 차갑고 따뜻한 감각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밖에는 해가져서 서리 맞은 까마귀가 울고 갈 정도로 차가운 날씨다. 그런데 초라한 집이지만 그 안에서는 흐릿한 불빛 아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정다운 식구들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란도란”이 전달해 주는 따스함은 그 소리와 함께 매우 정겹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비」에서도 종류가 다른 감각을 읽을 수 있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거리.
여울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둣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잎
소란히 밟고 간다. (『향수』 126-27)
이것은 여름 날 잠깐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린 것인데 마치 영미권의 이미지스트들의 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갑자기 하늘이 구름이 덮이는 것을 “돌에/ 그늘에 차”라는 표현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자락을 종종걸음 치는 작은 산새의 움직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행을 짧게 자름으로써 새의 가벼운 움직임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순식간에 작은 개울이 생겨 모래와 돌 틈으로 손가락처럼 갈라져 흐르고 붉은 꽃잎에 송송히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김학동은 “비라는 광물적인 속성을 생명체로 형상화하고 있는 마음의 깊이를” 보고 있다(67). 즉 비라는 자연현상에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도 감각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하나 더 예를 들자면 봄눈을 보며 느낀 정지용의 서늘한 감각이다. “정지용이 보여준 감각적 표상들은 그 초점 이 단순한 풍경의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자신의 내적인 긴장과 상처를 자신의 육체적 감각을 통하여 증명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입체적이고 정교한 구성물”(노춘기 160)이라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철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하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향수』 117)
『춘설』이라는 제목의 이 시가 주는 느낌은 봄의 상큼함과 눈의 서늘함의 동시적 감각이다. 춥고 답답한 겨울을 보내고 우수를 맞이하는데 멀리 산에 눈이 덮여있음을 갑자기 발견하고 이마에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 느낌이 그 산과 서늘한 이마받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가 향토적인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지용이 바로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한국적인 정서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 한국적인 정서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들의 구사에서 바로 영시의 기법을 보게 된다.
정지용에 더해서 또 한 사람의 예를 들자면 김광균을 말할 수 있다. 정지용이 농촌의 토속적 감각이라면 김광균은 도시적 감각이다. 그의 시 『추일서정』에서의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김광균 전집』 65)
와 같은 구절은 아주 감각적이다. 넥타이처럼 풀어진 길은 저 멀리 지평선으로 사라지고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오후 시간에 저 멀리 급행열차가 달리고 있다는 단순한 내용이 넥타이와 폭포,담배 연기 등의 감각적 이미지로 인하여 하오의 나른한 풍경으로 뚜렷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을 나희덕은 “감각적 조형능력’’(106)이라고 평하며 그의 시가 “서로 다른 대상들을 하나의 화면 속에 배치하고 그 풍경을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섬세한 조형적 능력을 보여준다”(107)고 설명한다. 또한 『와사등』에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도 도시 감각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되어 입을 다물다 (『김광균 전집』 40)
길고 긴 여름 하늘을 달리던 해가 드디어 날개를 접었다. 고층빌딩들은 묘석같이 늘어서 있고 야경은 잡초처럼 헝클어져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것은 도시의 무생명성이지만 역시 감각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날개를 단 해와 묘석같은 빌딩, 잡초처럼 엉클어진 도시의 불빛은 그 무생명성을 한껏 두드러지게 한다. 시적화자는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의
찬란한 등ㅅ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홀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냐(『김광균 전집』 40)
에서의 감상성은 “시적 자아의 고독감과 비애를 표현한 구절’’(김진희 14)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감상이 덜 노출된 완성도 있는 작품이 「설야」가 될 것 같다.
어느 먼 곳의 그되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김광균 전집』 48)
눈 내리는 밤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시가 또 있을까. 처음에 눈은 소리없이 오는 그리운 소식으로 환치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서글픈 옛 자취로 기억이 되며 다시 하이얀 입김으로 차가운 공기를 느끼게 한다. 절정은 멀리서 들려오는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청각적 감각이다. 이 부분이 시의 클라이막스인 것이다. 나희덕은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 중에서 김광균은 시적 조형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시인”(98)이라고 말하며 특히 회화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그의 시가 회화적 이미지스트의 시임을 말하는 것이다. 김광균은 이와 같이 이미지스트 시인으로 분류되지만 본격적으로 영문학을 공부한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김기림의 영힝올 받았음은 중요한 사실이다. 김기림은 “영미 이미지즘을 가장 의욕적으로 소개한 사람”(김진희14)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정주의 시에서 그것을 찾아보자. 그는 프랑스 상징파 시에 매료 당했다. 서정주의 초기시가 보들레르와 상징주의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거의 “통설이며 보편적인 인식”(이상오 39)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서정주는 1933년부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애독하였다고 한다(임현순 161). 임현순은 서정주의 『자화상』에 보이는 ‘저주받은 출생’이 보들레르의 시 『축복』에서의 ‘속죄의 씨앗’이라는 구절과 상통한다고 말하고 있다(162). 그런데 그 상징주의 시야 말로 감각미에 열광했던 시풍이었다. 미당의 초기시 『대낮』에서 그 영향은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따서 먹으면 자는 둣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랭이같은 등어릿 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 (『미당 시전집』 38)
서정주의 초기 시에서 한 특징은 “원시적인 힘의 세계”(이상오 43)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 젊은 남녀는 아편 밭에서 만남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편에 취하면 죽은 듯 잠이 든다. 그 상황과 붉은 꽃이라는 색채가 강열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농촌의 황토 길은 아편을 먹고 취해 자빠진 능구렁이의 등허리에 비유된다. 그 길을 달아나며 님은 나를 부르고 화자는 철철 흐르는 붉은 코피를 받으며 뒤쫓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실제 코피가 흐른다기 보다는 뜨거운 공기와 숨찬 호흡을 연상하게 한다. “밤처럼 고요한’과 “끌른 대낮’은 서로 상충된다. 하지만 그 두 상충되는 상황은 긴박함을 아주 상승시키고 있다.
4
우리 현대시에 끼친 영시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오랫동안 한시에만 안주하던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선각자들이 영시를 읽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육체적 감각에 와 닿는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시가 훨씬 단단해지고 세련되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그분들은 아마 그러한 감각미에 미친 듯이 몰두했을 것이다. 영시의 경우 이러한 감각성은 오랜 세월을 두고 숙성되어 왔다. 키츠가 본격적으로 거기에 몰두했지만 그 이전에 셰익스피어 대사의 구절구절에도 이러한 감각성은 보인다. 말하자면 좋은 시에는 거의 예외 없이 뛰어난 감각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키츠 이후에 테니슨, 세기말 시인들, 예이츠로 이어지는 시적 전통에서 영시의 감각미는 무르익고 꽃피었다. 특히 예이츠의 초기시에서 보이는 감각성은 시에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나중에 예이츠의 후기 시, 엘리엇의 모더니즘으로 연결되면서 시를 단단하고 세련된 언어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양국의 시를 비교해서 읽다보면 뒤늦게 개화한 식민지 조선의 시인 정지용의 애상 같은 것을 느끼게 되며 김광균과 서정주의 시에서도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정지용은 당시 우리나라 선배시인들 중 가장 먼저 거기에 몰두한 시인이었으며 그 토속적 감각미는 탄복할만하다. 오랫동안 금독으로 되어 있던 그의 시가 해금되고 『향수』가 노래로 작곡되어 사람들 사이에 불리어졌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향수의 구절구절은 그냥 홀러가는 것이 아니라 귤의 과즙 주머니가 하나씩 씹히듯이 톡톡 터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 시의 곳곳에 숨어있는 감각적 요소 때문이다. 김광균의 시에서 느끼게 되는 도시적 감각미는 무척 세련되어 있다. 그의 대표시인 『와사등』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아마 그 반응은 매우 뜨거웠을 것이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감각성은 사실 엘리엇의 초기시에서 보이는 퇴락한 도시의 무생명성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스승 김기림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여 서정주의 시는 앞의 두 선배 시인과는 다른 원시적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관능적 감각이야 말로 상징주의자들의 가장 애호하는 바였던 것이다. 그의 시가 현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시로 성장하고 후배 시인들에게 길이 영힝을 끼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원시적 감각과 힘이 매력으로 작용한 탓일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현대시가 서구의 시에서 많은 것을 배웠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문화의 성격이 그렇지만 문학도 타국의 문학과 비교하고 자극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우리의 경우 나라의 힘이 가장 미약하고 일본에 대한 반발과 열등감에 파묻혀 있을 때 바로 그 서양의 문학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영시를 유달리 좋아하던 일본인들의 번역을 통하여 우리의 선각자들이 영시의 매력에 빠져들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나라의 경제력이 커지고 우리나라의 대학들에 영문학과가 난립하면서 오히려 영시에 대한 선호는 줄어든 느낌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시인들의 영시나 외국 시에 대한 이해나 인식은 매우 약하다. 아마 이것은 그들의 영시의 원문을 읽을 만한 능력부족과 잘못된 번역을 통한 오해도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주제어: 영시, 한국시, 감각성, 정지용, 식민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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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철
시인, 영미시전문가, 세계문학연구자, 강원대 명예교수, 시집 <세상을 사랑하는 법><동양하숙><닥터존슨><노천탁자의 기억><나무의 손끝>, 저서 <20세기 영미시인 순례><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