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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가 되고 싶어서(1)
2024년 9월 15일 / 마 11:29-30
마 11:29-30 /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아래의 설교는 토머스 왓슨의 온유에 대한 글을 참고로 하였다.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은 임마누엘 칼리지(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한 비국교도(청교도) 목사였다. 1639년에 문학사 학위를 받고, 1642년에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646년에 결혼하였고, 같은 해에 런던의 성 스테판 교회의 교구 목사가 되었다. 장로교 신학을 가졌으며, 크리스토퍼 러브와 찰스 2세를 복원하기를 원했다. 1662.8.24. 통일령과 대방출령으로 인하여 강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작별 설교를 세 번이나 했는데, 경건생활 20가지 지침을 설교하였다. 1672년 신교 자유령에 의해 크로스비 하우스에 있는 대강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았다. 1675년부터는 스테판 차녹의 협동 목사로도 사역을 하였다. 설교의 황제 찰스 해돈 스펄전은 토머스 왓슨을 스승으로 삼았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작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찰스 해돈 스펄전 / 건전한 교리와 심령을 꿰뚫는 경험과 실천적인 지혜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하나님을 향한 온유
하나님을 향한 온유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❶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❷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순함이다.
1.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언성을 높이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조용한 자세를 취하여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 해야 한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하고자 하시든 무슨 조건을 새기고자 하시든지 그가 기뻐하시면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옥한 땅이든지 불모지든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아십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그분의 일을 마음대로 하시게 하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셨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그 어느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시는 법도를 지켜나가자.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을 위하여 제일 좋은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 요셉, 욥과 같은 걸출한 신앙인도 나중에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 찬양할 정도였다. 하나님 앞에 함부로 댓글을 달거나 대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test)했지만 그는 한 순간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리아 산을 올라가면서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제사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요?’ 이때 아브라함은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단다!’ 하나님을 신뢰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히 11:19 / 만일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리라고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죽을 운명에 놓여 있던 이삭이 살아 있는 그대로 다시 아브라함에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은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처럼 내면에 숨겨진 ‘쓴 뿌리 기대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창조적 기대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며 믿음이 성숙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 잠시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과 다툰 이야기를 묵상해 보자.
이것은 온유하지 못한 마음 – 지혜롭지 못한 마음이다.
요나가 활동하던 시대에 살았던 여로보암 2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왕하 14:23-29). 일찍이 앗수르는 근동에서 군림하는 자리를 차지하였고 예후로 부터 조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시리아(앗수르)는 아람 족속들을 쳐부순 다음에 내부적인 다툼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대제국이 되기를 희망하던 아시리아가 잠시 쇠퇴해진 틈을 타서 여로보암 2세는 일찍이 아람에 속해 있었던 영토를 장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다른 예언서에서 지금까지 언급했던 바와 같이 죄악이 극심했기 때문에 호세아와 아모스를 보내어 이스라엘에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게 하셨다. 요나는 후일에 자기 나라를 멸망시킬 적들을 돕는 일에 자신이 쓰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니느웨는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로부터 약 55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티그리스강 동쪽 제방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니느웨는 큰 성읍으로서 바벨론과 마찬가지로 외곽의 성벽과 내곽의 성벽으로 둘러 싸여 보호를 받고 있었다. 요나가 이렇게 난공불락의 도시처럼 보이는 철옹성에 도착하기 전에 두 가지의 재앙이 이 도시를 덮쳤고(B.C.765과 759), 이 일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징으로 받아들여졌고, 또 759년경에 왜 니느웨가 요나의 메시지에 속히 응답하였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북왕국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기네들을 괴롭히는 아시리아가 멸망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요나 선지자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니느웨에 가서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외치라는 것을 요나 선지자는 피하였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자기가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는 경고를 외치면 이방나라라 할지라도 저들은 회개할 것이요 그럼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요나 선지자이기에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받기를 원하여 그 명령을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속에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떠밀리다시피 억지로 니느웨 도성 안으로 들어가 걸어서 돌아보려면 사흘이나 걸려야 하는 길을 겨우 하루 동안 걸어다니며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라고 외쳤다. 이런 모습에 요나 선지자에게 무슨 긍휼이 있었을까? 나팔을 불듯이 의무적으로 소리만 지르는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 할 일인가? 이런 모습이 과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성도들의 온유한 마음인가?
그럼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들은 금식을 선언하고, 가장 높은 사람에서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초상 때에나 입는 굵고 거친 베옷을 입었다. 요나가 선포한 말씀이 니느웨의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자기의 용상에서 일어나 통치자의 화려한 예복을 벗고 베옷을 입은 다음 티끌 속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 왕은 자신과 자기 대신들의 이름으로 니느웨 도성에 조서를 선포하도록 하였다.
‘어느 한 사람도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된다. 짐승들까지도 풀을 뜯어먹거나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베옷을 입고 오직 하나님께 힘을 다하여 부르짖어야 한다. 그리고 각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폭력과 강탈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두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이글거리는 분노를 돌이키심으로, 우리들이 멸망하지 않게 될는지 누가 알겠느냐?’
그런 다음, 그들이 실제로 그 흉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그런 행실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들을 멸망시키려던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욘 3:5-10).
요나 선지자의 모습을 보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들을 변경시키시자 요나가 잔뜩 화가 났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주님! 제가 고향 땅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요 노를 더디 내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그 악한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세웠던 계획을 쉽게 취소하시리라는 것을 제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주님, 제발 저를 죽이십시오! 제가 그들에게 전해 준 일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바에야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반문하셨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욘 4:1-4)
요나는 그 도성을 나가 동쪽으로 가서 나뭇잎으로 초막을 만들고 그 그늘 밑에 앉아서 니느웨 도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기다렸다. 요나가 만든 초막의 나뭇잎들이 모두 뙤약볕에 시들어 버렸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하나 지정해 두셨다. 그러자 그 박넝쿨이 급속히 자라 요나의 머리 위로 넓은 잎들을 펼쳐서 그늘을 마련해 주었다. 요나는 화가 풀렸고 그 박넝쿨 때문에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날 동이 틀 때에 벌레를 한 마리 지정해 두셨다. 그러자 그 벌레가 박넝쿨을 다 갉아먹어서 박넝쿨이 시들어 죽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에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풍을 지정해 두셨다. 불타는 듯한 동풍이 불어오고 뜨거운 햇볕이 요나의 머리를 내리쬐자 요나는 마침내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그래서 그가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더 좋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물으셨다. ‘네가 저 박넝쿨 한포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옳은 일이지요!’ 요나가 대답하였다. ‘죽고 싶을 만큼 화가 납니다!’
요나서 4:10-11은 우리 모두가 ‘아! 그랬었구나!’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다.
욘 4:10-11 / 그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수고도 하지 않았고 네가 키우지도 않았고 그저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저 박넝쿨 한 포기에 대하여서도 슬퍼하고 있다. 11) 그렇다면 좌우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 이상이나 있고 수많은 가축들이 있는 저 큰 도성 니느웨에 대해 어찌 내가 슬퍼하지 않겠느냐?’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 / 만일 요나가 니느웨를 회개시켜 멸망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했다면 요나는 무릎을 꿇고 멸망을 앞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요나서 4:11 다음에 이런 글이 붙었다면 우리 모두가 ‘아멘! 아멘!’했을 것이다.
너는 수고도 하지 않았고 네가 키우지도 않았고 그저 하룻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저 니느웨를 내가 용서하여 그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했다면 아직도 좌우를 구별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몇 백만 명이 있는데, 내가 그들의 멸망을 어찌 슬퍼하지 않겠느냐? 이방사람인 니느웨가 회개하여 돌이켰을 때에 용서한 것처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여 돌이킨다면 내가 어찌 멸망시키겠느냐?
이스라엘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회개를 촉구하신 하나님의 열심도 무색하게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순함이다.
말씀이 기꺼이 내 영혼을 지배하도록 하고 모든 율법과 훈계에 유연하게 대하는 것, 하나님을 따르고 말씀의 가르침과 다투지 않고 자기 마음의 부패와 다투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다.
약 1:19-2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 하나님의 말씀에 온유함으로 화답한 믿음의 사람들
어린 사무엘 : 삼상 3:10 / 사무엘이 다시 누워 자는데, 여호와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오셔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마리아 : 눅 1:30-38 / 천사가 말하였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맡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리셨다. 31) 너는 이제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처녀인 내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35) 천사가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3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나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고넬료 :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위엄있는 말씀을 온유한 말씀으로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예수님의 가르치심인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막 4:20 / 그러나 좋은 땅에 씨가 뿌려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사람, 즉 그 마음속에 심어진 씨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눅 8:15 /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나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려면
먼저 말씀을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관심하게 생각하고 말씀을 저버린다면 옥토가 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등을 돌리는 인본주의적인 삶을 회개해야 한다.
눅 8:15 /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나갈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함으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깨어져서 회개하고 겸손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본주의적인 악을 회개하고 또 우리의 삶에 계명을 거역하며 사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
사 57:15 /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이렇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다.
삼상 15:22-23 / 그런데도 사무엘이 또 다시 사울을 책망하였다. ‘여호와께서 무엇을 더 좋게 보실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오.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화목제물을 더 좋게 생각하실 것 같소? 똑똑히 들으시오. 당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그보다 더 좋은 제물이 없을 것이오! 23)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점쟁이의 속임수와 같고, 여호와의 말씀보다 자기의 고집을 내세우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악이오. 이제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저버린 것같이 여호와께서 당신을 저버릴 것이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없소.’
나아가 인간적인 교만, 자기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고후 10:4-5 / 나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기가 아닌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여 악마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5)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든 교만한 사상과 사람들의 눈에서 하나님을 가리우는 온갖 장벽을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되돌아가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게 할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 인간의 교만과 자기 자랑이 있으면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항상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여 의지하며 말씀을 늘 묵상해야 한다. 시간만 있으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과 친해질 때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씀을 보면 빨간 줄을 긋고 그 말씀을 되씹으라. 소처럼 먹은 말씀을 반추(反芻)해야 한다.
시 1:2 / 얼마나 복되랴!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이는.
그리고 기도할 때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엡 3:20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잠 18:21 /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도 다르다.
때문에 우리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에 자기를 온전히 내어 놓아야 한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말씀을 묵상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하나님이 우리를 갈아엎어서 옥토로 만들도록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두려워 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일생을 맡기고 믿어야만 한다.
막 9:23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실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이 들어오면 당장 말씀으로써 의심을 내어 쫓아야 한다.
베드로는 믿을 때 물위로 걸었다. 그러나 말씀을 버리고 바람을 바라보고 물결을 바라볼 때 두려움이 들어오고 물에 빠졌다. 똑같은 바다요, 똑같은 베드로인데 말씀을 믿고 섰을 때는 물 위로 걸었으나 말씀을 버리고 의심하자 물에 빠졌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것은 베드로가 선택을 잘못했다. 계속 믿음을 선택해야지 의심을 선택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들어오는 의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내어 쫓아야 한다.
약 1:6-8 / 그러나 하나님께 구할 때는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구하십시오. 의심하는 마음은 바람에 밀려 파도치는 물결과 같아서 침착성이 없습니다. 7) 그런 상태에서 정한 결단은 처음에는 이랬다가 나중에는 저랬다가 하여 매우 불안정한 것입니다. 8) 만일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주께 어떤 것을 기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벧전 5:8-9 / 여러분의 최대의 적인 사단의 공격에 대비하여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십시오. 사단은 배가 고파서 울어대는 사나운 사자처럼 찢어 삼킬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9) 사단의 공격을 받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온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이같은 고난을 겪어 왔습니다.
마귀가 의심을 가지고 올 때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 마음을 개방해 버리면 안된다. 마귀가 가져오는 의심을 대적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먼저 할 것은 먼저하고 나중할 것은 나중 하는 순서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을 점령하도록 우리가 늘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삶에 최대 관심사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두어야 한다.
신 28:12-14 /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고들을 열어 때를 따라 여러분의 토지에 비를 내리셔서 여러분이 수고한 모든 일들이 열대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어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빌려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른 민족에게서 빌려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모든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 벗어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다니며 섬기지 마십시오.
땅을 개간하는 농부는 땅을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며 가시덩쿨과 나무뿌리를 뽑아내고 부드러운 옥토 즉 온유한 마음으로 만든다. 거기에다 씨를 뿌리면 최소 30배에서 60배, 100배를 거둘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기경하고 개간해야만 한다. 우리 마음을 길가나 돌짝밭, 가시밭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죄악의 마음을 회개하고, 세속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갈아엎고, 완고하고 불순종하며 불신한 마음을 깨뜨리고, 세상 욕심과 탐심을 다 토해내고, 순전한 옥토가 되어 그곳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심으면 그 말씀이 의의 말씀, 성결의 말씀, 치료의 말씀, 축복의 말씀, 영생 천국의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하면 우리 생애를 통해서 그에 해당하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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