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자: 2024.06.30 주일 낮 예배
- 말씀: 고후3:1-3
- 제목: 주님의 편지가 되라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 성경봉독:고후3:1-3절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 3절만 함께 봉독해 올립니다.
- 들어가는 말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잘생기고 키도 큰 아들들을 모두 뒤로 하고 말째되는 다윗을 지명하는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받은 대로 사울왕을 버리고 다윗대왕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천거하였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채용하면서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말입니다. 얼굴과 외모와 신체의 건장함, 언변과 문장 그리고 시시비비를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실 때, 사물과 사람을 보는 판단력과 지혜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돈, 명예, 외모 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우엘은 구약성서 사사들의 책, 사사기를 썼습니다. 사사란 무엇입니까? 판관들입니다. 13분의 판관들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잘 아시는 기드온, 삼손 등의 이야기를 기록하신 분입니다. 요즘 세상의 판관 즉, 재판관들은 윗분들 눈치보면서 재판을 했는데, 하나님의 판관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사사들의 행적을 나타낸 것입니다. -할릴루야
지금 고린도교회도 바로 이런 문제에 부닥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에 어떤 선생이라는 자들이 고린도교회에 왔습니다. 그들은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서를 들고 왔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조건들을 갖추었다는 사람들이 와서는 바울은 사도도 아니며 추천서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의 말을 듣지 말고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버리고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에 끌리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참으로 성질이 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자인 사도는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합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무엇이 진짜 중요한 추천서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여러모로 세상의 여러 가지 혼동되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잡탱이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주 뒷방 서재로 먼지 쌓인 채 뒹굴어 가는 현실에 우리 만나인들은 오늘의 참된 사도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진짜 믿음, 영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할렐루야 아멘.
1. 하나님의 위임받은 사도직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말씀의 하나는 바울이 자신의 업적을 지나치게 되풀이하여 선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이 천거서를 받지 못한 거짓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바울에 대한 이런 도전은 적대자들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일에 열을 올리며 천거서도 받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비난함으로써 자기들의 거짓됨을 은폐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바울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천거서란 사도시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일종의 소개장으로 어떤 사람의 직분과 권한에 대한 위임장 또는 신임장 역할을 하였다(행 9:2;18:27;고전 16:3, 10).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바울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울이 이 추천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그의 사도직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이다(행 26:12-18). 사도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당시의 유대사회에서는 때려 죽일만큼 미운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가지지 못한 거짓 사도라고 악선전을 하고 다녔음에 틀림없다. 바울은 이 추천서 자체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도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서를 이용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8:16-24;롬 16:1, 2;고전 16:3, 10, 11).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칭찬과 승인과 위임보다 하나님의 승인이 훨씬 더 우위에 있고 또한 한통의 추천서보다는 사도 자신의 깨끗한 양심과 성도를 통해 나타나는 열매에 사도로서의 그의 진정성(眞正性)이 확인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어디서 추천서를 얻어다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여주거나, 그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대적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내준 추천서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추천서요, 너희가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심비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마 5: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부정과 부패, 거짓과 불의를 물리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길을 보여 주고 인도하듯이 죄악의 어두움에서 갈 길을 못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보여 주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편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주님의 심비가 되어야 한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먹으로 쓰인 천거서를 가지고 율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에 분열을 일으키지만, 바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추천서를 가지고 있고 복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하나님께서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수여한 옛 계명에(출 24:12) 매여있는 반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 즉 새 계명을 새겨 넣은 것이다(렘 31:33;겔11:19;36:26). 이로써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제기된 추천장 문제는 바울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적대자들은 율법을 강요했으나 바울은 복음을 선포했다는 점과 적대자들은 분열이라는 악한 열매를 맺었으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하는 생명
의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자신은 예루살렘 교회가 준 추천서 때문에 사도가 된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위임해 주셨고, 보장해 주셨는데, 어찌 사람의 추천서가 없다고 사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대적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내준 추천서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추천서요, 너희가 편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심비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이런 면에서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편지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처음으로 불렀습니다. 즉 사람들의 눈에 안디옥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낸 확실한 편지가 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칭찬하며 본이 되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살전 1:6-7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고 했습니다.
- 맺는 말씀
사랑하는 만나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본을 보이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의 편지이며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이요 그것이 바로 주님의 편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만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어!” 또는 “저런 사람 때문에 교회 갈 마음 이 없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일찌기 인도의 성자 간디는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는 믿지만 교회는 아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도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광고이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즉,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여야 하는데 편지가 아니고 목에 걸고 다니는 십자가로 주님의 편지행세만 하지 일반인보다 더 했으면 했지 못할 것없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만나인만큼은 오늘 이후 꼭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편지가 되는 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주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