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8월 22일(목) 이사야 21:1-10 찬송 456장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개역 개정)
- 바벨론 멸망에 대한 두 번째 예언 -
바벨론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미 13:1-14:23에서 주어진 바가 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하고 있다.
앞에서는 바벨론 멸망 전후로 한 전반적인 멸망 상황과
신학적인 측면에서 만가(挽歌)를 통하여 바벨론이 멸망한 것처럼
이 세상의 공중 권세자 사단과 그 수하 세력이
궁극적으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바벨론 멸망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보여준 반면
여기서는 단순하게 하나님의 심판 도구 엘람(바사)과 메대에 의한
국가로서의 바벨론 멸망상만을 묘사해 주고 있다.
본문의 냉용르 간략하게 살펴보면,
1-5절은 엘람(바사)과 메대에 의한 바벨론 함락시의 공포를,
6-9절은 바벨론 침략군의 위용을,
10절은 멸망 예언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 왔다는
예언의 신적 기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이사야는 바벨론 멸망의 이유나 비참상 등등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다만 멸망시의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침략군의 위용만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① 바벨론 멸망이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② 그렇게 강대했던 바벨론 제국조차도 순식간에 멸망시키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불러 일으킨다.
③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적대적인 세상 나라는 아무리 강대할지라도
결국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함을 교훈한다.(히11:16)
10절)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한다.
「아, 짓밟히던 나의 겨레여, 타작마당에서 으깨지던 나의 동포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내가 그대들에게 전한다」
이 말씀은 장차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고난을 당하게 될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다.
왜 하나님의 선민이 타작마당의 곡식과 같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죄와 구별되는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작마당’이란 고난을 상징한다.
타작마당이란 곡식을 지푸라기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타작하는 곳이다.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선민이 타작마당의 곡식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순수함을 갖추기 위하여
죄로부터 분리되기 위한 고난을 당하였다는 말이다.
구약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수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타작마당에서의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거룩한 성민으로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지 못했고,
실제적 삶에 있어서도 거룩하다고 불릴 수 없는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죄에 오염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후에도 수없이 죄를 저질렀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이라는 타작마당으로 불러내어
그들을 타작하심으로 그들을 죄로부터 순수하게 분리하시고
그 후에야 다시금 당신의 기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신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알곡이 되어
하나님의 천국 곳간에 들여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타작의 고통을 감수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가라지가 아닌 곡식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 해도
그것으로 천국 곳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달린 지푸라기라는 죄를 떼어내지 않고는
천국 곳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 곳간에 들이기 위하여
우리를 타작마당으로 불러내어 타작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이러한 타작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이 찾아오게 될 때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분리하여 순수하게 만들어 가심을
믿고 의지하며 모든 타작의 과정을 마치기까지 믿음의 인내를 감수해야 한다.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단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