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38) 일어선 간웅
이날 밤은 달이 무척이나 밝았다.
두 사람은 밤늦게 한가한 객주집에 들었다.
조조는 밥과 술을 마시기가 무섭게 자리에 눕더니 이내 골아 떨어졌다.
죄없는 사람을 너댓이나 죽였건만 아무런 고민도 없이 태연히 자고 있었다.
실로 대담무쌍한 태도다.
(지금이라도 나는 무고한 사람을 수 없이 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 조차 없는 저 간악한 조조를 얼마든지 찔러 죽일 수가 있다. 차라리 저 자를 죽여 없애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진궁은 자고있는 조조를 바라보면서 몇 번이고 칼자루를 잡았다놨다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조란 저 자는 충신이 아니라 간웅(奸雄)임이 분명하다. 이런 자는 후환이 없도록 진작 죽여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어지러운 세상에는 조조 같은 간웅도 필요하기에 천지신명께서 저런 자를 일부러 세상에 내보낸 것이 아니런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나는 저자 처럼 부질없이 남의 생명을 빼앗을 생각을 말고, 차라리 조조와 헤어져서 내 갈 길로 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이렇게 진궁은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조조가 곤하게 잠든 틈에 말을 타고 동군(東郡)을 향하여 미련없이 길을 떠났다.
새벽이 되어 조조가 잠을 깨어 보니, 진궁은 말과 함께 보이지 않았다.
(허허허... 진궁이 어제 일로 나를 믿지 못하고 결국은 떠나 버린 모양이로구나! 할 수 없지, 떠날 사람은 떠날 수밖에! 허허허...)
조조는 먼 하늘을 우러러보며 쓴 웃음을 웃고 나서 말을 타고 진류땅으로 향하였다.
며칠 후에 조조는 고향에 도착하자, 부친을 찾아가 자신이 처한 곤경을 말하고 나서,
"상황이 이런 만큼 이제는 의병(義兵)을 규합하여 동탁을 제거하고 천하 대세를 쥐어 볼 생각입니다."
하고 아버지 조승(曺嵩)에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 놓으니, 조승은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다가,
"네가 실로 어머어마한 꿈을 꾸고 있구나. 그런면 이 애비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
하고 물었다.
"제 꿈을 실현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아버님께서 군비(軍費)를 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애비가 무엇을 아끼겠냐마는 막대한 군비를 애비가 계속 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부호 몇 사람을 저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우리 가문이 승상 조참(曺參)의 후손으서 한 왕실 대대로 명문거족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까, 친분있는 부호들에게 말하면 군비를 조달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위홍(衛弘)이라는 사람에게 말해 보기로 할까?"
"위홍은 어떤 사람입니까?"
"위홍은 하남(河南)에서는 첫째가는 거부(巨富)인데, 그 사람은 충의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라, 그 사람이 응해 주면 군비는 염려없을 것 같구나."
"그럼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너는 모든 일을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구나."
"큰일은 오히려 간단하게 해치우는 것이 대사를 성공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허허허,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걸!"
조승은 웃으면서 아들의 말에 응낙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두 사람은 거부 위홍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조조는 위홍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동탁이 황제를 맘대로 갈아내고 권세를 휘두르며 백성들을 도탄에 몰아넣고 있으니, 한나라에는 지금 주인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해 볼까 하는데 힘이 부족하니, 대인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조조는 위홍이 필연코 자신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어조로 당당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의외로 위홍은 지극히 간단하게 대답한다.
"나도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다만 천하를 구할 영웅을 만나지 못했던 것 뿐이라네, 그런데 맹덕 자네가 그런 뜻을 실행에 옮기겠다니 내 어찌 도움을 마다하리."
조조는 위홍의 이같은 태도에 크게 기뻐하면서,
"옛? 저의 부탁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렴, 군비는 내가 담당할 테니, 승산이 서거든 대사를 도모해 보도록 하게."
"군비만 조달해 주신다면 하남 천지를 의병으로 뒤덮을 자신이 있습니다."
조조는 그날부터 의병을 대대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백기(白旗)하나를 만들어 높이 세웠는데, 그 깃발에는 충의(忠義)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 놓고 각지의 장군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문을 띄웠다.
격문
대의(大義)로서 천하에 고하노니, 동탁은 하늘과 땅을 속이고, 천자를 죽이고 나라를 망쳤다.
이로 인하여 황궁은 피폐 해 지고 매사에 음모와 죄악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이에 나는 천자의 은밀한 뜻을 받들어 의병을 모아 동탁의 무리를 몰아내려 한다.
원컨데 충의의 용사들은 나와 함께, 위로는 황실을 살리고 아래로는 백성을 구하자.
이 격문이 당도하는 즉시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아끼는 분연한 마음을 한테 모아 역적의 무리를
쳐 없애는데 힘을 보태기 바란다.
<교위 조조>
사람이 비록 영웅의 자질을 가지고 태었났다 하더라도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을 비롯하여 사람과의 화합을 얻지 못하면 영웅의 기세를 떨쳐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 조조는 격문을 돌림으로서 이때 <하늘의 때>를 잡았던 것이다.
각지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있던 지역의 영웅들은 이 격문을 보고 속속 하남으로 모여 들었다.
모여든 사람 중에는 수병(水兵)을 거느리고 있던 지방의 토호(土豪)도 있었는데, 양평(陽平) 출신인 악진(樂進)과 산양(山陽)출신인 이전(李典)같은 사람들은 병사를 삼천여 명 씩이나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조조는 악진과 이전 두 사람을 좌우군 장전리(帳前吏: 군기장)을 삼았다.
다음날에는 초군 출신의 하후돈(夏侯惇)이 그의 동생 하후연(夏侯淵)과 함께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찾아왔고, 다시 며칠 후에는 조조의 족제인 조인(曺仁)과 조홍(曺洪) 형제가 각각 군사 천여 명을 데리고 달려왔는데, 그들은 모두가 병마(兵馬)와 싸움에 능숙한 무장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찍이 동탁의 횡포에 분개하여 고향으로 낙향했던 발해 태수 원소(袁紹)가 동탁을 토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고 군사 만여 명을 이끌고 조조에게로 달려온 것이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에서는 군비를 조달해 주겠다는 부호들이 우후의 죽순처럼 많아져서 위세는 나날이 등등해 졌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모여 온 영웅들은 아래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제일진, 남양 태수 원술 (南陽 太守 袁術)
제이진, 기주 지사 한복 (冀州 刺史 韓馥)
제삼진, 예주 자사 공주 (豫州 刺史 孔紬)
제사진, 연주 자사 유대
제오진, 하내군 태수 왕광 (河內郡 太守 王匡)
제육진, 진류 태수 장막 (陳留 太守 張邈)
제칠진, 동군 태수 교모 (東郡 太守 喬瑁)
제팔진, 산양 태수 원유 (山陽 太守 袁遺)
제구진, 제북상 포신 (濟北相 鮑信)
제십진, 북해 태수 공융 (北海 太守 孔融)
제십일진, 광릉 태수 장초 (廣陵 太守 張超)
제십이진, 서주 자사 도겸 (徐州 刺史 陶謙)
제십삼진, 서량 태수 마등 (西凉 太守 馬騰)
제십사진, 북평 태수 공손찬 (北平 太守 公孫瓚)
제십오진, 상당 태수 장양 (上黨 太守 張楊)
제십육진, 오정후 장사 태수 손견 (烏程侯 長沙 太守 孫堅)
제십칠진, 기향후 발해 태수 원소 (祁鄕侯 渤海 太守 袁紹)
이상과 같은 무장들은 모두가 일만 이상의 병사들을 이끌고 모여든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제십육진의 대장인 손견 같은 장래의 대지(大志)를 품고 있는 영웅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