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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통쾌한 죽음 여자는 열두 음탕한 마녀 중 하나,남자는 자기의 아저씨 청풍명사 청룡백호. 이들 남녀 두 사람은 상고 시대의 원시인으로 변한 듯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몸 위에서 극히 추악하고 귀에 거슬리는 음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청풍명사 청룡백호도 욕정을 억제치 못하고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터질 듯 풍만하고 요염한 여인의 육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러한 광경을 본 비류신은 진정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광경을 본 순간 그는 전신의 힘이 쭉 빠져 고함을 치려고 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아서 소리를 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옆쪽 침상에서 일어나는 괴성은 갈수록 높아져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이상하게 혈맥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상처 입은 짐승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꿩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류신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그만 소스라쳐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침상 위의 남녀는 이때 위치를 바꾸었던 것이다.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비류신은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부르짖었다. “청룡 아저씨… …” 그러나 청룡백호는 비류신의 외침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불길 같은 욕정에 전신의 혈맥이 팽창되어 다른 것은 전혀 그의 전신 감각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맥이 빠진 듯 독사 같은 음녀의 배 위에서 서서히 전신을 늘어뜨렸다. 그는 진정 통쾌하게 죽은 것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갑자가 음녀가 다리를 치켜들자 청풍명사 청룡백호의 몸뚱이는 일 장 밖으로 날아가 퍽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한 마디 신음소리도 없었다. 비류신은 이번에야말로 크게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슬피 부르짖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반쯤 일으켰다가 다시 침상에 쓰러졌다. “청룡 아저씨! 청룡… …” 애석하게도 강철같이 단단하던 사나이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열두 음탕 마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정력이 모조리 소모되어 죽어 버렸다. 그의 죽음은 진정 너무나 가치 없는 죽음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완전히 의지를 상실하여 추악함을 모르고 단지 만족한 통쾌함만 있었던 것이다. 실로 통탄할 일이었다. “아하하하… …” 돌연 극히 음탕하고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가 비류신의 통곡소리를 중단시켰다. 비류신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한 음탕한 마녀가 만면에 음탕한 웃음을 띤 채 자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비류신의 하체로 쏠려 있었다. 그 눈빛은 색에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비류신은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자기의 하체로 눈길을 돌렸다. 못된 물건이 몽둥이처럼 뻣뻣하게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비류신은 날벼락 같은 고함을 치면서 급히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겨우 두 자 정도 나가다가 침상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그는 절세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신의 근골(筋骨)이 노곤하여 진기를 끌어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비류신은 분노가 충천하여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의 눈에서 원망서린 악독한 빛이 싸늘한 서릿발처럼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이때 그는 통분과 원한이 극도에 달하였다. 그는 자기의 아저씨가 극히 치욕적인 일로 인하여 정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자기 역시 그런 과정을 밟는다면 처참한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열두 명의 음탕마녀들은 지신도 소대천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에 능하였다. 그래서 음약(淫藥)에 중독되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들에게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정혈(精血)이 고갈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열두 명의 음탕한 마녀들은 경우가 달랐다. 그녀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남자와 교접하게 되면 무공이 날로 정진하여 진정 죽지 않는 여마귀로 변하게 된다. 지금 비류신 앞에 나타난 마녀는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백옥같이 흰 두 팔로 비류신의 영준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이 음탕한 웃음을 흘렸다. 비류신은 혐오감이 극도에 달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너희들은 수치도 모르는 음부로구나… …” 음탕한 마녀는 그의 말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팔을 비스듬히 들면서 풍만한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몸에 걸려있던 붉은 나삼(羅杉)이 그녀의 몸뚱이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순간, 비류신의 눈앞에 희고 보드라운 육체의 곡선과 거무스름한 음부가 드러났다. 이 마녀는 실로 아름다움만으로 뭉쳐진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두 명의 음탕 마녀들은 모두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음탕한 웃음을 발할 수 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상한 점이었다. 이 음탕한 마녀는 열두 명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 같았다. 그녀는 풍만한 유방을 흔들면서 두 손으로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채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숨이 가쁜 듯 쌔근거리며 엉덩이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침상 가로 다가들었다. 비류신은 이것이 죽음의 유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동작이 음약과 같은 작용을 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정신마저 약간 흐리멍덩해졌다. 마녀는 비류신의 준미한 얼굴과 건장한 체격에 가슴이 울렁이고 욕정의 불길이 타오르는 듯 아름다운 두 눈에 춘정(春情)을 듬뿍 머금고 얼굴에 홍조를 떠올렸다. 그녀는 더 이상 욕정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침상 위로 뛰어오르더니 비류신의 알몸뚱이를 덮쳐눌렀다. 비류신도 더 이상 자신의 몸에 퍼진 약의 유혹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참혹한 운명을 저주했다. 도저히 약력에 저항할 수 없어 상대방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 여인이 욕정에 시달릴 때 그것을 필요도 하는 정도는 거의 발광에 가깝도록 열렬한 것이어서 필요로 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이 음악(淫惡)하기 그지없는 마녀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다른 여인보다 훨씬 높은 것이었다. 그녀는 수시로 육체의 즐거움을 누려 왔지만, 지금 자신이 누르고 있는 사나이는 전에 보지 못하던 준수한 얼굴과 건장한 육체를 지니고 있어서 더욱 불타는 욕정에 부채질을 했다. 일 단 욕정의 불길이 상대방에게 옮겨 붙자 그녀는 진정 신선의 경지를 헤매는 듯하여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았다.그녀는 몸뚱이를 찰싹 밀착시키고 두 팔에 힘을 주어 비류신을 안은 채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비류신의 머릿속에서 우레가 이는 듯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눈에서는 샘솟듯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녀 간의 행위는 본래 괘락이지만 그에게는 극단의 고통이었다. 바로 이 풍류의 죄를 배척하기 어려워 고통에 시달릴 무렵, 그리고 한창 춘색이 방안에 넘쳐흐르며 음탕한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올 무렵-- 남쪽의 열려진 방문 앞에 느닷없이 한 백의소녀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미목이 수려하고 피부가 백옥같이 흰 미소녀였다. 그녀는 방안의 정경에 미혹(迷惑)된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음탕한 마녀가 침상을 향해 덮쳐갈 때 이곳에 나타났던 것이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어리둥절해진 그녀는 문 뒤에 숨어서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참지 못하여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녀는 피신하여 물러가려고 했으나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청풍명사 청룡백호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보자, 일찍이 들은 바 있는 부친에 관한 수치스러운 일이 생각나서 자기라도 나서서 남을 구하여 부친의 죄악을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백의소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면서 이를 악물었다.그제 서야 울렁거리는 가슴을 황급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추태를 보고 싶지 않았다. 즉시 손을 치켜들어 뾰족한 손가락으로 음탕한 마녀의 혼문(魂門), 매변(梅邊), 풍문(風門) 세 혈도를 한 번씩 찔렀다. 그러자 마녀의 정열적으로 춤추던 곡선이 돌연 멈췄다. 이어 요염하고 풍만한 몸뚱이가 힘없이 늘어졌다. 비류신은 몹시 의아하여 눈을 번쩍 떴다. 순간 한 덩이의 흰 육체가 그의 눈을 어지럽게 하여 그는 전신의 기력을 다해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비류신에게는 그만한 기력조차 없었다. 그 유일한 부분을 제외하고 비류신의 전신은 솜처럼 맥없이 노곤하였다. 이때 백의소녀는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사뭇 늠름하게 침상 가로 다가가서 가볍게 밀어내었다. 그러자 음탕한 마녀의 몸뚱이는 곧 한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백의소녀는 진정 백합같이 우아하고 선녀처럼 성결(聖潔)하게 보였다. 그리고 지혜로운 두 눈에서는 순박한 광채가 반짝거려 감히 정면으로 마주볼 수 없었다. 비류신은 첫눈에 그녀가 누구인가 알고 놀라 소리쳤다. “앗! 소 낭자, 당신이… …” 이 백의소녀는 바로 왕년의 지령보주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의 무남독녀인 소월녀였다. 비류신은 지난날 변장을 하고 지령보에서 말을 보살피는 천한 일을 맡아보고 있을 때 소월녀를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월녀는 처음에 비류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비류신이 지난날에는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류신이 자기를 알아보고 외쳐 부르자 그녀는 움찔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비류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류신이 극히 준미하게 생겼을 뿐 아니라 얼굴 또한 아주 낯익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일시에 생각나지 않아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류신은 정신이 맑아지자 그녀의 웃음 속에 기이한 정념(情念)이 서린 것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소월녀의 눈길은 그의 얼굴에서 차츰차츰 아래로 옮겨 갔다.이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비류신의 그 괴상한 물건의 괴이한 꼴을 보자 오히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 웃음은 실로 백합꽃이 갓 피어난 듯 보드라운 두 뺨에 보조개까지 움푹 패여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그리고 섬세하고 흰 손은 수줍음에 붉어진 두 볼을 다 가리지 못하고 또 그녀의 그 정감을 이기지 못하는 교태도 다 감추지 못했다. 비류신은 그녀의 웃음에 어리둥절하여 자기의 하체로 눈길을 돌렸다. 그 괴상한 물건은 여전히 발끈 성을 내고 있었다. 이런 추태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뛰어들고 싶은 창피함을 주었다. 더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소녀 앞이니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비류신은 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앗!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졸도해 버렸다. 소월녀는 그의 은사 소대호의 무남독녀이며 규방 처녀인데, 그가 어찌 이런 추태를 그녀에게 보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또 이런 추태를 보이고서 어떻게 은사의 당부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류신이 깨어났을 때 그는 한 석실 안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워진 박달나무 침상 위에 뉘어 있었다. 이 석실은 아주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고 사면의 벽은 거울처럼 빛났다. 유리 궁등(宮燈) 두 개가 온 실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데, 소월녀는 백의를 걸친 채 손으로 턱을 고이고 비단이불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비류신이 비단 이불을 약간 젖히고 고개를 내밀자 소월녀는 벌써 알아차리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깨셨군요.” 그녀는 천천히 침상 앞으로 다가와 휘장을 걷어 올렸다. 비류신은 얼마 전의 광경이 생각나 부끄럽고 분하기 그지없어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난 일이 악몽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또 소월녀에게 갚을 수 없는 정의 부채가 있음을 느꼈다. 은사 소대호가 죽기 전에 자기에게 딸의 장래를 보살펴 달라고 당부하던 일과, 자기 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응낙한 것을 생각하면 자기는 당연히 자상하고 처량한 노인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모친과의 난륜(亂倫)을 생각하면 그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만화신검 홍부용이 자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이것 역시 소월녀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는 요인의 하나였다. 이때 비류신은 진정 고통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소월녀는 비류신이 오랫동안 말하지 않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보세요! 어째서 멍청히 말이 없지요?” 비류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낭자, 아니! 소매(蘇姝), 나는… 나는… …” “당신은 무슨 사람이 만나자마자 이렇듯 친숙하게 부르지요? 흥, 당신이 경망한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당신을 구하지 않았을 거예요.” 비류신은 소월녀의 말을 듣자 어리둥절했으나 곧 깨닫고 입을 열었다. “소매, 당신은 사정을 모르지만, 우리는 잘 아는 사이요.” 소월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우리는 아는 사이 같아요.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데, 당신의 성함이 어떻게 되지요?” “나는… 나는 바로 지난날 마구간 일을 보던 청복(淸福)이오… …” 소월녀는 이 말을 듣자 돌연 눈을 크게 뜨더니 한 번도 깜박이지 않고 비류신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별안간 그녀는 희열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 당신은 정말 청복이군요… 그러나 청복은 이미 죽었잖아요? 실종되었잖아요.… 당신의 얼굴이 어째서 변했죠? 이렇게 준수하게… …”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소매,나의 진짜 이름은 비류신이오. 지난날엔 귀 보(貴堡)를 탐지하기 위해서 변장을 하고 마부와 하인 노릇을 한 것이오. 아… …” 그는 자기의 과거를 밝히고 나서 극히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월녀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오! 당신이 비류신이에요? 비류신이란 이름은 지금 무림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던데요.” 비류신은 서글픈 한숨을 내쉬었다. “소매!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나를 구해 주었소?” 소월녀는 이 말을 듣자 만면에 우울한 빛을 드러내며, “아! 나는 당신과 얘기하는 데만 정신을 팔았군요.… 당신은 빨리 약을 먹고 나가세요!” “소매, 무슨 약을 먹으란 말이오?” 소월녀는 연신 방글거리고 웃었다. “당신은 요녀의 음향류산(淫香流散)에 중독되었어요. 듣자니 음향류산에 중독되면 영원히 정신이 혼미해져서 해독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내가 보기엔 당신의 중독은 별로 심하지 않은 것 같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주려고 하지탕(何芝湯)을 한 그릇 끓여놓았어요. 이 하지탕만이 음향류산의 극독을 풀 수 있어요.” 이어 그녀는 탁자 옆으로 가서 벽옥(碧玉)으로 만든 그릇을 받쳐 들더니 비류신에게 건네 주었다. 비류신은 소월녀의 말을 듣고 내심 크게 놀랐다. 그는 재빨리 감격스럽게 벽옥 그릇을 받아들고 반 그릇의 엷은 남색 약물을 단숨에 쭉 들이켰다.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는 약물이었다. 비류신은 약을 마시고 나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소매, 당신은 이 약이 음향류산의 독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소월녀는 이 말을 듣더니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소리쳤다. “큰일 났군요! 그 약은 어쩌면 한 방울이라도 창자를 끊을 수 있는 독약일지 모르니 어서 토하세요.” 비류신은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이 약이 한 방울이라도 창자를 끊을 수 있는 독약이라면 나는 벌써 숨을 거두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한 감이 남아 있었다. 소월녀에게 어떤 해독 능력이 있는지 자세히 모르기 때문이었다. 소월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마셨어도 죽지 않는 걸 보니 어쩌면 무서운 독약이 아닐 거예요. 그러나 만성독약이 틀림없으니 빨리 진기를 체내에 고루 보내어 이상한 곳이 없는지 시험해 보세요.” 비류신은 그녀가 이토록 신중하게 말하자 즉시 가볍게 진기를 끌어올렸다. 다음 순간 그의 안색은 처참하게 변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니, 하늘이나 사람을 원망할 수는 없는 거요!” 순간 그는 아랫배 단전이 마비되는 듯한 감을 느꼈다. 그리고 전신의 진기가 자동적으로 유전하여 억제키 어려웠다. 그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천명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인력으로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극히 냉담해지기 마련이다. 비류신도 지금 그러했다. 그는 깨끗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마녀의 육체 공세를 받고 목숨을 잃었다면,이름을 더럽히고 구천에 가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니 그것을 면한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느낀 것이다. 비류신은 지금 노하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죽어도 아주 의젓하게 영웅다운 기세를 가지고 죽으려 했다. 소월녀는 비류신의 기색을 살피다가 갑자기 물었다.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세요? 아! 모두 내 잘못이에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당신에게 약을 먹였으니… …” 비류신은 서글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매,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이것은 나의 운명이오. 이 비류신이 지금까지 목숨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완전히 당신이 구해준 덕분이오. 그러니 죽어도 한이 없소… …” 그는 말을 채 마치지도 않아서 별안간 가슴 속 기혈이 뒤집히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원래 그는 부모의 원한과 치욕을 아직 씻지 못하고 또 은사의 은혜도 갚지 못했는데 어떻게 한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의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그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이를 본 소월녀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비류신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녀는 몹시 후회하고 있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황급히 말했다. “울지 마세요! 그것은 독약이 아니에요!” 비류신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눈을 슬며시 감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이 감겨지는 순간 수정 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소월녀는 비류신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더욱 초조하여 돌연 비류신의 손을 잡고 흔들어대면서 다급히 말했다. “당신은 죽지 않아요! 당신이 복용한 하지탕은 정말로 음향류산의 독을 해소시킬 수 있어요.” 비류신은 자기의 손이 그녀의 보들보들한 손에 잡히자 가슴이 철렁하여 눈을 번쩍 뜨고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한 옷맵시와 긴 속눈썹, 그리고 시원스럽고 서글서글한 눈은 사람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또한 성결하고 순진스러운 자태는 진정 달나라의 항아(姮娥)가 하강한 듯, 요지(瑤池)의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했다. 비류신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소매,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오직 피맺힌 원한을 씻지 못하여 이렇게 일찍 죽고 싶지 않을 뿐이오.… 아!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일을 알려주고 싶은데… …” 비류신은 지신도 소대천의 천성이 잔인하고 악독하여 자기가 그의 독약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결코 음향류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월녀가 나에게 먹인 것이 정말 음향류산의 독을 해소시킬 수 있는 약이라 할지라도 다른 독은 해소시키지 못할 것이다. 설사 다른 독을 해소시킬 수 있다 해도 악독한 소대천이 지령보에서 나를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지금 지령보의 기관 속에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죽기 전에 소월녀의 신세를 그녀에게 알려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문득 은사 소대호가 소월녀의 신세를 얘기하지 말라고 자기에게 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다른 정신적인 부채로 인하여 그녀에게 꼭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었다. 이에 비류신은 깊은 생각에 잠겨 말을 하지 않고 주저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소월녀는 비류신이 자기에게 알려줄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주저하고 있는 것을 보자 안색이 변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비… 비… 당신은 혹시 단전이 마비되어 진기를 자유자재로 운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비류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월녀는 크게 기뻐했다. “그것은 하지탕의 약력(藥力)에 의한 현상이므로 앉아서 반시간만 조식하면 곧 낫게 될 거에요.그 후부터 당신은 이 약에 상해를 입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이 하지탕은 온갖 독을 해소시키는 영약이므로 체내에 잠복해 있는 어떠한 독소라도 해소시킬 수 있어요.” 비류신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진기를 운행하여 암암리에 조식을 하였다. 소월녀는 그가 다시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다급한 나머지 손가락에 약간 힘을 주어 그의 운공조식을 도우려 했다. 그때, 돌연 한 줄기 거센 잠력이 뻗쳐와 그녀의 손가락을 밀어내었다. 그녀는 소스라쳐 놀라며 잇달아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소월녀는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한쪽으로 물러나서 손으로 턱을 고인 채 비류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류신의 준수한 얼굴에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의 내공이 백부님보다 훨씬 높을 줄 몰랐구나. 아버님보다는 뒤떨어지지만 젊은 나이에 이러한 공력이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청복! 아니 비류신, 나는 벌써부터 당신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추측이 맞았군요.’ 이때 별안간 비류신이 길게 소리를 내질렀다. 기쁨이 충만해 있는 소리였다. 이것은 그의 체내에 잠복해 있던 독소가 제거된 기쁨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비류신은 소리를 그치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와서 공손히 읍을 하며 웃었다. “이 비류신이 영존(令尊)의 바다 같은 은혜를 갚기도 전에 오늘 다시 소매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이생에서 몸이 가루가 되어도 은혜의 만 분의 일도 갚기 어려울 것 같소이다… …” 소월녀는 이 말을 듣자 어리둥절하여 눈을 크게 뜨고 생각했다. ‘비류신이 어째서 나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가 중독된 것은 전혀 아버지의 죄가 아니란 말인가?’ 가련한 소월녀, 그녀는 물론 자기의 신세를 알지 못하고 지신도 소대천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오인하고 있었다. 비류신이 그녀의 부친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 것은, 물론 유실 속에 갇혀 십팔 년 동안 비참한 세월을 보내다가 한 많은 일생을 마친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를 두고 한 말이었다. 소월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돌연 피식 웃었다. “누가 당신더러 큰 은혜를 갚으라고 했어요? 이런 일들은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 …” “오! 아버지께서 이런 일들을 저질렀으니 나로 하여금… …” 소월녀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녀는 비류신 앞에서 자기 부친의 죄과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소월녀는 갑자기 서글픈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나의 사부님께서도 아버님의 행동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해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구한 것은 완전히 나의 사부님의 의사를 따라 한 것인데, 누가 당신더러 은혜를 갚으라고 했나요?” 그녀의 말은 모호한 데가 있어서 비류신은 그녀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에 그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소매, 그렇다면 나는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한 말을 취소하겠소. 그러나 나는 이 마음을 변치 않고 영원히 당신 부녀의 온정을 가슴깊이 새겨두었다가 후일 반드시 갚도록 하겠소.” 소월녀는 홀연 입을 가리고 웃었다. “당신의 그 말은 정말 말이 안 되는군요!” 비류신은 어리둥절하여 몇 마디 해명을 하려 했다. 소월녀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은혜를 갚겠다는 말을 취소한 이상 또 무엇 때문에 날 보답하겠다는 꼬리를 달지요?” 비류신은 더 이상 그녀와 이런 중요하지 않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소매, 당신은 내가 체내에 스며든 독을 해소시킨 것을 어떻게 알았소?” 소월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은방울을 흔드는 것처럼 간드러지게 웃었다. 그녀는 웃음을 그치고 애교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다행히 당신은 나를 아주 친숙하게 불러 주면서도 우리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는 것 같군요.그러나 당신은 당신에게 독을 쓴 사람의 딸을 알고 있는데, 그 딸이 아버지의 성격을 닮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겠지요?”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내심 몹시 처량했다. 그는 소월녀의 진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바다 같은 은혜를 입은 은사 소대호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소월녀를 바라보았다. “소매… …”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