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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번째 금강경 28장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라도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須菩提-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꼬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着일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 단어공부
忍 ~ 한자의 ‘참을 인(忍)’자를 보면 ‘마음 심(心)’자 위에
‘칼날 인(刃)’자가 놓여 있다. 이는 사람의 마음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미는 것을 의미한다. 극도의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공자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 중에 인내가 으뜸이다.’라고 했고
송나라의 대문학가 정이는 ‘인이란 도덕 수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인내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도덕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라고 했다.
진정한 ‘인’은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인내한다는 것은 남에게 비굴하게 굴거나 말없이 모욕을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힘을 축적하는 것이다. 당장의 작은 손해를 참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음으로서 훗날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진정한 강한 사람이 인을 아는 사람이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 해설
무아의 경지는 나와 남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나와 남이 없으니 내 것이 따로 없습니다.
또한, 내 것 아닌 것도 없습니다.
고로 주고받을 것도 없습니다.
이 경지에 들면 고도 고가 아니요. 낙도 낙이 아닙니다.
고와 낙을 초월하고 오직 모두가 즐길 거리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분에게는 복덕도 따로 없으며 주고받을 것도 없습니다.
<14-3 참조>
須菩提야 忍辱波羅蜜을 如來說非忍辱波羅蜜일새
是名忍辱波羅蜜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我昔爲歌利王의 割截身體로대
我於爾時에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호라
何以故오 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應生瞋恨일러니라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수행을 할 때 산중에서 정진하고 계시는데 가리왕(歌利王)이 신하들과 어여쁜 궁녀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하러 나왔다. 사냥하러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다가 가리왕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왕이 잠이 드니까 왕을 모시고 나온 궁녀들이 무료해서 근처로 산책을 하다가 어느 나무 밑에를 보니까 선인(仙人)이 좌선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그 얼굴이 너무 청수(淸秀)하고 참 거룩하게 생겼다. 얼굴도 빼어나게 잘 생긴 데다가 수행(修行)을 하니까 그렇게 청수해서 대번에 첫눈에 존경심이 났다.
그래서 선인에게 가까이 가게 되었고, 그 선인(仙人)이 여러 가지로 좋은 법문을 해줘서 법문을 들으니까 모두 환희심이 나고, 존경심이 나고, 그래서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가리왕이 한참 실컷 자고 눈을 떠보니까 궁녀들이 어디로 간 곳이 없다. 그래서 궁녀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다가 보니, 궁녀들이 인욕선인을 둘러싸고 앉아서 말을 물어보고 듣고 모두 그러고 있었다.
그래 왕이 속에서 확! 아주 진심(瞋心)이 났어. 그래서 쫓아가서 그 인욕선인(忍辱仙人)을 칼로 그저 온 몸뚱이를 난도질을 쳤어. 그래도 인욕선인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쪼끔도 진심(瞋心)을 내지 아니한 채 고대로 그 날카로운 칼을 다 받았다 그 말이여.
‘만약에 가리왕이 몸을 갖다가 그렇게 칼로 찍고 자르고 한데, 한 생각이라도 진심(瞋心)을 냈다면 어찌 내가 성불(成佛)을 했겠느냐? 어찌 내가 부처님께 장차 성불하리라고 하는 수기(授記)를 받았겠느냐?’ 이렇게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菩薩은 福德에 不應貪着이니라.
所作福德를 不受福德이니라.
복을 짓고 받지 않으면 이자가 붙습니다.
복을 짓고 자랑하면 바람에 날려 조금씩 감소합니다.
받을 것을 잊었는데 받게 되면 엄청 고맙습니다.
원기 109년 7월 18일
제목 : 남편은 투덜거림
가족이 함께 여행 가기로 한 것을 딸이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딸이 다니는 학원 두 군데가 방학이 서로 다르고, 해외 봉사도 6일간 다녀오기로 하여서 수업을 너무 많이 빠지면 보강하기 힘들다고 가족 여행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남편에게 전달하자 처음에는 받아들였다.
어제저녁 통화에서 하는 말이 ‘탁구 치는 아줌마들이 자기만 쏙 빼놓고 같이 안치려 하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린다.’라고 한다. 그리고는 ‘날짜를 잘 정했어야지 이게 뭐냐? 딸이 자기를 무시한다, 당신도 나를 무시한다.’ 그러면서, ‘친구네만 왔다 가라고 할까? 여행을 아예 취소할까? 아들도 오지 말라고 하고 어른들만 여행할까? 진주 여행을 하고 나서 익산에 올라갈 거니까 당신은 친구네 차를 타고 와라’ 그러는 거다. 갱년기 우울증인 것 같다.
외롭다는 말이기도 하고, 가족이 모두 함께하길 바라는 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볼지 갈팡질팡하기도 한 것이기에 맞장구치며 잘 들어주었다.
한 가지, 내 차를 운전하고 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친구네 차를 타고 오라고 한 것에 대해서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익산으로 올 때 남편은 자기 차를 혼자 운전하고 오게 될 것 같아서 외로운 운전이 힘들다는 뜻인 것 같다고 짐작하니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이럴 때마다 투덜이라고 생각해 왔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투덜거릴 수도 있다. 아내한테 투덜거리지 누구에게 하겠는가. 그대로 들으면 나 좀 알아주라는 자기표현이고, 못 알아차리면 투덜거림이다.
아침에 다시 통화할 때에는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어제 한 이야기 기억나는지 물었더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웃는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딸만 못 간다고 했으니 딸이 빠진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정리를 하였다. (친구네 딸도 캐나다에 있는 이모 댁에 다녀오기로 해서 진작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친구네 아들은 울 아들이 간다고 하니까 가기로 한 것이고) 그랬더니 알겠다고 한다.
그동안 남편과 대화하면서 주로 들었던 내용을 떠올려 보면, ‘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해’였다. 이걸 비난으로 들었다. 무시한다는 말도 그 말에 걸려서 속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서운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주고 지금 상황에서 서로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결정하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자기표현을 비난으로 들으면, 그 표현(속마음)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만든 장막 때문에 그대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이구나.
교무의 의견
가족 여행을 하기로 하였네요. 친구네와 함께 가기로 한 것 같네요. 그런데 딸이 못간다고 하니 처음에는 이해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남편의 마음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고 투덜거림으로 발전을 하였네요.
남편의 투덜거림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이 마음의 표현이었네요. 그 마음을 읽으니 남편을 이해할 수 있었네요.
외부의 경계를 우리는 좋은 경계 나쁜 경계로 정의를 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좋고 나쁨을 정한 것은 자기의 마음입니다. 경계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면 좋은 경계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쁜 경계입니다. 자기의 분별하는 마음은 자기의 분별성과 주착심에 기인한 것입니다.
좋은 경계는 순경이라 하고 나쁜 경계는 역경이라 합니다. 순역을 나는 기준은 자기가 활용할 수 있으면 좋고 활용하기 어려우면 역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신성품 12장에 굴곡을 당할 때마다 좋은 일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하고 낮은 일이 돌아오면 저의 잘못을 경계하여 주시니 또한 감사하다 하여, 좋으나 낮으나 경계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더욱 묶어지고 신앙이 더욱 깊어져서 이렇듯 낙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는 법문에서 보면 매사가 나에게 도움이 되니 즐겁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항상 챙기고 또 챙겨서 신앙으로 모든 환경을 지배는 할지언정 환경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용렬한 사람은 되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모든 것은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과의 이치를 활용하여 내가 인을 심고 과를 얻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원기 109년 7월 23일
제목 : 잊어버림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습관으로 종종 부딪힌다. 그래도 다행히 공부 덕인지 예전처럼 원망심이 나오진 않는다. 바로 경계임을 알아차리고 상대를 인정하니 제법 여유 있는 대화로 마무리 되어진다.
남편이 목욕 후 사용한 물품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있어서 그것을 말하니 남편은 다른 것을 하다 보니 잊어버렸단다.
“그것을 왜 잊어버리지? 난 이해가 안 돼.” 이런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 잊어버린다니 어쩌겠어.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해야지~’ 하는 마음도 일어난다.
오늘은 욕실 앞에 벗어놓은 남편의 바지가 그대로 놓여 있어 그것을 말하니 또 잊어버렸단다. “그것을 또 잊어버렸다고? 진짜 이해하기 어렵군.”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 이해는 안 되지만 잊어버린다니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이런 생각도 일어난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모두들 그렇게 잊어버린단다. “친구들이 잊어버린다고 해서 잊어버리는 사실을 당연시하면 안 되지. 항상 유념해야지~“
한번은 남편이 “당신도 나처럼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내가 다 해주고 있어” 한다. “그래?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는데? 나도 잘못하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해줘~”“아니, 나는 그냥 말하지 않고 내가 해주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하고 있어.”“그래도 얘기 해줘. 그래야 내가 놓치는 부분을 알아서 다음부터는 유념하지.”
자칫하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나를 보고 상대를 보니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고 바로 인정이 되어졌다. 그냥 그대로 봐주면 되는 것을. 그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져야 한다는 분별성과 주착심에 끌려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대를 탓하고 원망심으로 지적했음을 깨닫는다. 나는 보지 않고 상대만 본 것이다.
잘한 것은 당연하고 잘못한 것만 드러내는 이기적인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그럴 수도 있는데 내 생각에 맞추어서 그렇게 하면 틀렸어 그렇게 하면 안 돼 라고 하지는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내 생각에만 맞추고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안 될 것 같다.
교무의 의견
혼자 살 때는 잘 모르다가 누군가와 함께 생활을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각자가 취향이 바르고 익혀온 습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할 때 보면 차문을 열자는 사람도 있고 닫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어컨을 켜자는 사람도 있고 끄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여건의 표현입니다. 이를 인정하면 서로 협조를 구하면 될 일입니다.
대개 남자들은 정리정돈을 잘 안 하고 털털하게 살고, 여성들은 세세한 곳을 살펴 청소를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세세한 것을 가지고 따진다고 하고 여성들은 대충 대충한다고 남자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수행품 31장에 보면 남자들은 대체로 너그러우나 허한 듯하여 견실성(堅實性) 없는 것이 병이 되고, 여자들은 대체로 주밀하나 고정하여 용납성 없는 것이 병이 되므로, 사람이 원만한 인품을 이루려 하면 남자는 너그러운 가운데 내심(內心)이 견고하고 진실되기에 주로 노력하고, 여자는 주밀한 가운데 내심이 원만하고 관대하기에 주로 노력하여야 되리라. 하셨듯이 대체로 성에 따른 특성도 있고 개인의 성향도 있은 것 같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성품에서 경계따라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경계로 한번 두 번 마음을 내다보면 길(사투리로 질)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습관이 드는 것을 성질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당하는 환경이 다르고 마음을 내는 것이 다르다 보니 각자의 분별성과 주착심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분별성과 주착심이 외경과 합하여 생각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습관도 영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익혀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인정을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습관을 바꾸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사람들이 싫어하는 습관이면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유무념 대조로 습관을 고쳐라 하셨습니다.
자기의 분별성과 주착심으로 남을 비난하지 말고 살아오는 동안에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았구나 하며 인정을 하자는 것입니다. 모두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00년 0월 0일
제목 : 시의원의 식사 접대
마을 북 콘서트 준비를 하는데 회장님이 끝나고 시의회 모 의원이 식사를 대접한다며 가자고 안내를 한다. 순간 '어, 선거법 위반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다. 옆에 단원이 선거법을 얘기한다. 나 또한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건 그냥 공연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한다. 아니 도서관 행사에서도하물며 시장도 선거법 때문에 대접을 못 해 미안하다고 했는데 저건 또 뭔 소리! 거부감 경계가 요란을 떤다. 그 요란한 경계의 출렁임을 보고 있는데 옆에 다른 회원이 더 나간다. 담엔 시장님께 밥을 한 번 사라 해야겠다고 한다.
이런저런 시비하는 맘을 멈춘다. 흠, 의식 자체가 그리 형성이 된 사람들임을 인정한다. 문제의식이 있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것을 제기하는 사람이 별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행사를 마치고 먼저 집으로 오니 어디를 갔냐며 전화와 카톡이 난리가 났다. 또 다른 수업이 있어 먼저 왔노라고 미안하다 답을 한다. (전 같았으면 그런 곳에 왜 가느냐며 상대 비난 돌직구를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대표할 일꾼을 뽑아놓고 그 사람이 바르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유권자들의 의무가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마음공부를 한 도반이 시장님이 되고 보니 행여 옳지 않은 그 어떤 것도 가까이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꼿꼿하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주착심, 그 사람은 맑다는 주착심, 그 맑고 바르다는 주착심이 일어낸 시비의 회오리가 한바탕 흔들고 갔다.
일기를 기재하고 나니 시원하니 좋다.
교무의 의견
북 콘서트를 마치고 난 후 시의원이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였네요. 시의원에게 식사를 대접 받으면 선거법에 문제가 되지요. 식사하러 가자는 사람과 안가야 된다는 사람으로 나누어지지요. 특히 정치는 팬덤이 강하여 쉽게 상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지요.
마음공부 모임에 참석했던 분이 시장님이 되셨고 시장님은 바르게 사셔서 불의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시네요. 그 생각이 있으니 주변에 맑고 바른 사람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네요.
그런데 자기 마음속에 주착심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굴절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란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착심임을 알면 주착심에 끌리지 않고 요란함도 평정되리라 생각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