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장. 총알도 뚫지 못한다
발명 또는 발견의 계기가 되는 우연이라는 것은 화합연구에서는 실지로 온갖 형태로 나타 난다. 어떤 경우에는 출발물질 중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불순물의 존재일 때가 있었다. 이것 은 예컨대 크라운 에테르를 발견함으로써 찰스 J. 페더센과 도날드 J. 크램 그리고 장 마리 렌 이상 3인이 1987년도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경우이다(제36장). 또 어떤 경우에는 우연한 촉매의 존재로써 나타나, 영국의 화학자들이 에틸렌 중합에 이용하여 레이다용의 이상적인 절연체를 적시 적절한 때에 제조할 수가 있었다(제26장). 그리고 때로는 필요한 시약이 약품 고에 없어서 무엇이든 다른 것으로 대용했다는 실로 단순한 계기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였 다. 이것은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연구소에서 어떤 유용한 폴리에스테르의 발명으로 이어 졌다. 여기서 발명된 폴리에스테르는 우리가 입고 있는 종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매 일 접촉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라는 이름은 생소할지 모르 지만 당신의 자동차 범퍼나 미등이 이것으로 되어있을지도 모르고, 제트비행기의 좌석 옆의 창문에 사용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대통령이나 로마 교황의 자동차가 이것으로 방호되 어 있는 것을 당신이 보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런 것들 중 무엇인가를 보게 되면 1953 년의 어느날 다니엘 폭스가 약품고에서 원하는 물질을 찾지 못했던 사건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년 전에 오클라호마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폭스 박사는 뉴욕 주스케넥터디에 있는 G.E. 사의 연구소에서 고온도와 고습도에서도 분해되지 않는 전자 자석용 전선의 절연체를 개발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룹의 기획회의에서 "가수분해에 견고한 폴리에스테르만 있다면 좋 겠는데..."라고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장황스럽게 투덜댔다. 즉, 이것을 열이나 습기로 분해 되지 않는 폴리에스테르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폭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전에 박사 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을 때에 구아야콜이라는 페놀성 화합물의 탄산에스테르가 예상외로 가수분해가 안 되는 사실을 알고 그는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 형태의 화합물이 대체로 물에 분해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약품고로 가서 구아야콜과 화학적으로 가까운 비스-구아야콜을 찾아보았다. 그는 이 화합물을 분자의 양끝에서 연결하 여 원하는 폴리에스테르로 만들 작정이었다. 결과적으로 다행스럽게 약품고에는 비스-구아야콜이 없었으므로 폭스는 관련된 화합물인 비스페놀(bisphenol)A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마침 그 무렵에 시판되기 시작한 에폭 시 수지의 성분이어서 엽가이고 입수하기가 쉬웠다. 탄산알킬(지방족 탄산에스테르)류를 비 스페놀A와 가열하는 실험을 몇 번인가 시도했으나 잘 될 것 같지가 않아서 폭스는 방향족 화합물인 탄산디페닐을 비스페놀A와 가열해 보았다. 이 반응의 부생성물로 예상되는 페놀 (끓는점이 높은 액체)을 반응용기에서 증류함에 따라 용기의 내용물은 점점 점도가 높아졌 다. 서서히 온도를 올리고 압력을 내림으로써 끓는점이 높은 페놀을 더 제거했다. 이것을 하 는 도중에 휘젓는 교반봉이 더 이상 돌지 않게 되고 모터가 멎어버렸다. 생성물은 점도가 너무 강해 플라스코 밖으로 꺼낼 수 없어서 그대로 냉각시켰다. 냉각되자 생성물은 굳으면서 줄어들었고 플라스코의 유리에서 분리되었다. 폭스가 플라스코를 깨고 굳은 내용물을 꺼내보니 교반봉 끝에 반구형의 덩어리가 되었으며 군데군데 유리 플라스코 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1987년의 강연에서 폭스 박사는 그 후의 전말을 다음과 같이 술회 했다. 이 생성물 덩어리를 두들겨 보고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도 보았는데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무에 못을 때려 박는 망치 대신으로 쓸만도 했다. 결국 톱으로 단면을 자르고 그 몇 개를 섭씨 300도쯤의 온도에서 압축하여 천연 그대로의 필름으로 만들었다. ... 연구소에는 정식으 로 교육을 받은 고분자화학자가 많이 있었는데도 우리 그룹의 대부분은 열가소성 고분자의 합성에 관한 경험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으며 또한 이 포리카보네이트처럼 색다른 고분자의 상업적인 중요성에 관해서 전혀 평가할 줄을 몰랐다. 간단히 말해, 폴리카보네이트의 활용은 한동안 보류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특히 신규사업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여 피츠필드에 생긴 G.E.사의 화학개 발부가 새로운 연구과제를 찾고 있었다. 당시의 개발부장은 피츠버그 판 유리(P.P.G.) 사에 서 옮겨 온 페츠커스 박사로 그는 P.P.G.사에서 지방족 폴리카보네이트에 관해서 상당한 경 혐을 쌓았었다. P.P.G.사의 저융점에서도 부서지기 쉬운 지방족 폴리카보네이트와 G.E.사의 고용융점에서도 매우 강한 방향족 폴리카보네이트의 차이를 아는 그는 당장에 초기의 폴리 카보네이트 개발을 위한 옹호자가 되었다. 새로운 플라스틱 개발이라는 것이 시간도 걸리도 간단하지는 않지만 결국 G.E. 사는 성공 하여 갖가지 새로운 응용을 발견했다. 그런데 방향족 폴리카보네이트를 개발하고 있던 곳은 G.E. 사뿐만이 아니었다. 제조법은 다소 다르지만 독일의 바이엘 사도 잘 알려져 있다. 정확 하게 말하자면 폭스의 발견은 사실상 재발견인 셈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용도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그 당시에는 어떤 고분자였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할지라도 이 것과 유사한 고분자가 1902년에 이미 독일에서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G.E. 사가 강 조한 것은 폴리카보네이트의 투명성과 강도였다. 곧, 다른 플라스틱들도 ' 폴리카보네이트 와 거의 같은 정도로 강하다' 거나 '폴리카보네이트와 같은 강도' 등의 광고를 내게 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투명하고 매우 강하며 넓은 온도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투명한 방 탄 구조물을 만들 수 있으므로 대통령이나 로마 교황을 지키는 보호물, 외국 대사관의 건물, 은행 출납부의 창구, 교도소의 철창이 없는 창문, 값을 메길 수없을 만큼 귀중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피복, 아이스하키 경기장의 관객 보호용 받침대, 초음속 제트기의 지붕, 스쿠버 다 이빙용 마스크, 기동대원이 사용하는 방패 등에 이용된다. 폴리카보네이트의 강도, 투명성, 증기 멸균이 가능한 성질 등의 특성 때문에 우유병 5갤론 (약19리터)들이 용기와 의료용 기구인 보호용 안경과 헬멧 등에고 사용되고 있다. 앰트랙 (Amtrak:미국 철도 여객 운송 공사)의 앞 유리창에는 석탄덩어리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 록, 또 항공기의 밖으로 나온 차양에는 새와 초음속의 속도로 부딪쳐도 끄떡없도록 각각 폴 리카보네이트의 얇은 층으로 설계되었다. 그토록 철저하리 만큼 엄격성이 요구되지 않는 용 도로는 승용차, 버스, 열차, 항공기의 창이나 항공기 객실의 선반, 자동차의 미등이나 새로운 디자인의 헤드라이트 등도 포함된다. 또한, 다른 플라스틱과 혼합함으로써 충돌에 대비한 범 퍼가 만들어지는 등 전세계에서 35종의 모델의 자동차에 사용되고 있다. 폭스 박사는 1987년의 강연을 다음과 같이 맺는다. "교반봉 끝에 붙은 반구형의 덩어리가 어디까지 성장하는가를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또 개인적인 만족감의 크나큰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 우리는 그가 처음에 원했던 출발물질을 입수하지 못했다는 운 좋은 실패 와 그 대신 세렌디피티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과 그리고 폭스 박사와 그의 공동연구자들의 예민한 직관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