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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자연, 곰배령 길목에서
곰배령으로 야생화 보러 떠났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곰배령 가는 길은 주소에서부터 두메산골 숲길이다.
점봉산(1424m) 자락에 흩어진 여러 고갯마루 사이에 넉넉하게 살집 좋은 곰의 배 형상을 하여 이름도 곰배령.
곰배령으로 가기 위해 여장을 푼 곳은 진동리 설피마을이다.
설피마을.. 그 옛날 흰눈이 허리까지 쌓인 어느 겨울, 꼼짝도 못하고 갇힌 두메산골 초가지붕을 닮은 이름이다.
우리같은 남도 사람에게 그 눈쌓인 고립의 고요는 한사흘 갇혀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어엿한 낭만이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낭만 떠올리고 싶지 않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그리워지는,
우리들의 고행에 관한 아름다운 작용 있지 않은가. 장성한 남자들에게 군대란 것이 그렇듯이....
그 설피마을로 들어가는 마음엔 벌써 하얀 겨울의 눈사람 초가집과 화전민의 굴피집이 얽히고 설킨다.
여름 길목에도 가을 혹은 겨울이 떠오르는 강원도라는 두메와, 선들하고 삽삽한 냉기가 기분 좋아지는 상상.
우리는 그렇게 곰배령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놀부와 흥부 펜션
그 마을 '놀부와 흥부'펜션에 도착한 시간은 초여름 저녁 산들바람이 묽은 어둠에 묻혀 올 무렵이었다.
화전민도 겨울의 눈쌓인 초가집도 이젠 자취도 없이 2차선 도로가 어엿하지만, 드문드문 펜션 집들의 간격부터
깊은 산중으로 이끄는 나들목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상상력을 침범하지 않은 것과 함께 산행 후의 달달한 휴식도 미루고
한바퀴 둘러보고픈 마을이다. 그 끝에 살짝 얹히는 초저녁 바람이 그렇게 꼬셨을까.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와 곰취, 하얗게 터지고 있던 불두화까지.. 묽은 어둠 속에서 참으로 평화롭다.
흐릿한 백열등도 묽게 빛을 내는 것으로 봐서 이른 저녁의 어둠이 아직 깊지 않은 시각이다.
그런데 우리를 맞이하는 주인장의 연세가 상상을 깬다.
70대 할머니와 팔순의 할아버지다. 이 두 분이서 마흔 다섯명의 아침과 점심 도시락, 좀있다 있을 저녁만찬을 책임지신단 말인가?
웬만한 젊음도 모든 것이 귀찮아 주는 밥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아우성인데, 그것 다 껴안는 이 밝은 미소는 무언가?
순간 쿵, 하고 떨어지는 어떤 몹쓸 미안함과 노년의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것에 대해 괜시리 겸연쩍은 마음 가득해진다.
돈으로 따지기 미안해지는 평화라는 얼굴 말이다. 무릇 허리아픔과 고단함, 상상도 하기 싫은 일감들이 즐비할텐데
이 분들은 어떤 고단한 생을 지나왔기에 이토록 사람의 닫힌 열기를 건드리는 것인가.
텃밭의 곰취와 꼿꼿하고 깔끔하게 솟은 상추와 하얀 불두화 꽃무리가 이 마을에 없는 가로등보다 환한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모두가 반딧불이다. 드문드문 초저녁 바람이 삽삽한데, 도대체 곰배령에서 무얼 담아가려고 이다지도 훈훈한가.
강원도 곰배령 자락, 첫 마음부터 이렇게 열리고 만다.
저녁 만찬, 그 남자들
언제부터인가 남자들의 삶은 가장이라는 타이틀에서도 당연시 되었지만,
아내의 고단함을 몰라주면 간큰남자라는 수식에서도 당연해지게 되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텐트 하나 못치면 허접한 취급 받게 되었고, 사소한 부드러움의 차이에서도 한끗발 뒤지면
비교라는 울에서 절치부심 해야 했다.
아내가 적당히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건망증이다, 갱년기다, 우울증이다.. 여자는 빠지는 핑계도 다양했지만,
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고 가정에서도 자상해지는 더하기를 더했다. 그리고 가끔 그것이 삶을 현자처럼 살아온듯
논리적인 것과 부드러움에서, 또 타고난 자부심에서 그들만의 아우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성의 여러가지 다양한 재능을 뺀 것이 아니라(내가 무어라고 감히 그러겠나),
남자들의 좋은 면을 발견했던 하룻밤의 내 관찰기이다.
펜션의 야외 바베큐 파티를 위해 아이스박스에 준비된 물건들을 차례로 실어나르는 것이야 기본이고,
준비된 고기와 소세지를 숯불에 굽는 포장마차 풍경 한 토막을 연상시키는 남자들의 분주함.
상추와 깻잎 그외의 기타 쟁반에 놓여지는 세심함 하나하나, 오직 피곤한 여자들을 위해 만찬이 차려지면 불러내야 한다며
마지막 젓가락 하나까지 갖춰지고 나서야 파티를 즐겼다. 그 서빙의 즐거움.. 그 속에서 아내를 여왕개미처럼 만드는
병정개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알맹이 쏙 빼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마련하는 여자들 떠난 빈자리에 남자들의 조촐한 낭만 파티가 시작되었다.
여자들은 깔끔하게 치우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조금 어질러져도 술한잔 걸치면 무어 대수냐는 듯이 기꺼이 밤하늘 아래 앉았다.
별이야 몇 송이 밤하늘에 피어 났지만, 별 그까이거 관심없다며 털털하게 웃는 남자들은 그때 '자기소개'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40대 모두 넘기고 50줄에 앉은 다 큰 아이의 아버지들이 자기소개를 한다는 신선한 말을 그렇게 하였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말이 잘 통한단다. 그러기에 마음 맞는 친구끼리 수다 한번 풀면 하룻밤도 다 못할 삼매경에 빠지듯이
남자들도 남자들끼리 단합할 때 멋있게 보인다. 이처럼 여왕들을 위해 부지런히 파티를 마련하는 모습, 정말 멋지다.
가끔 그렇게 보여주면 사랑받는다는 꿈을 꾸겠지. 그러면서 콧노래도 부르겠지.
여자는 그렇게 오늘도 남자들을 전쟁터로 내몰 것이다. 그것이 어느덧 익숙해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게임을 즐길 것이고...
곰배령 들어가기
설피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15분여를 달리니 진동리 주차장이 나온다. 길은 비포장 도로이다.
덜커덩거리는 길이 깊은 원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호흡처럼 기쁘게 와닿는다. 언제 이런 툴툴거리는 길을 달려봤던가.
약간 옛시절의 기억과 함께 달리는 사이로 극상의 활엽수 천국이라는 점봉산의 기운이 포근하게 안긴다.
이곳 주차장에서 하산하고 점봉산 생태관리센터에서 예약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땅에 들어서는 당연한 절차이지만 약간의 긴장감이랄까.
길게 늘어선 줄로 신분증 확인이라는 꼼꼼한 확인작업이 경각심을 갖게 한다.
야생화 천국이라는 곰배령의 입산 허가는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는 방법과 민박집에서 투숙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산림청에서는 매달 20일 아침 9시에 다음달의 탐방예약을 받는다. 인원수도 200명 제한이다.
이 외에 민박집 투숙을 통해 예약을 하는데 이 경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진동1리와 2리의 민박 업체에서 입산허가를 대행하는 셈이다. 게다가 월,화요일은 입산 휴무이다.
까다로운 만큼 당일날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이 신분증이 있어야 노란 '입산허가증'을 얻을 수 있고
곰배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곰배령은 이렇게 들어가는 허락부터 까다로운데, 탐방로의 모든 구간이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되어 왔는데 2009년 탐방로를 지정하여 입산 허가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천혜의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에 이 정도의 수고스러움은 자연 그대로의 곰배령을 물려주기 위한 겨우 작은 하나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길섶 벗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자꾸만 되뇌이고 싶은 깊은 청정림의 주소이다.
탐방센터 입구에는 노거목으로 늙은 돌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250년! 이쯤되면 돌배나무가 아니라 할배나무다.
탐방센터를 지나니 곧바로 깊은 숲그늘 드리워진 여름의 별천지가 길을 연다.
길섶에는 제법 넓은 계곡물이 나란히 길을 걷는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위로 오른다지만 한동안 이 평탄한 어깨동무는 계속된다.
나작한 길섶엔 봄을 열었던 '노루귀'가 꽃을 떠나보내고 얼룩무늬 노루의 귀만 지천으로 깔려있다.
모두가 봄꽃 벗고 여름 입느라 초록이 지천이다.
6월은 곰배령 야생화가 초록옷을 입는 때라 자연의 이어달리기 중 바톤 터치하는 순간이다.
곰배령 꽃이 조금 어중간하게 피고 지는 중이라지만 가장 적기인 5월의 꽃사태에 오더라도 관찰이 아니라 그저 걷기에 둔다면
길섶 벗들의 그 귀한 수줍음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강선마을
강선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난 것은 탐방센터에서 느긋하게 2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이 깊은 수목의 조화로움 속에 어인 마을인가? 그것도 강선마을. 그 이름에서 강가의 신선놀음하는 분네들이 떠오른다.
강과 같이 선한 사람들이 열매와 반찬을 교환하는 산속의 정다운 풍경이 이름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드문드문 기다림도 잊은 즐거운 나홀로 집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꼭 그 모습들이 한국전쟁 때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았다던 상상 속의 동막골을 보는 듯하다.
홀아비 바람꽃
곰배령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친구는 지금 곰배령에 '홀아비 바람꽃'이 장관을 연출한다고 일러 주었다.
바람꽃 종류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야생화 도감에서 본 바람꽃은 내 삽화의 단골 소재가 될만큼 어여뻤다.
그런데 이곳 곰배령에 '홀아비 바람꽃'이라.... 그 끌리는 이름에서 홀씨로 흩날리고 있을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표지판 주위의 '홀아비 바람꽃'을 찾아도 정작 그 닮은 잎사귀도 하나 없다.
홀아비는 바람을 피지 않는다는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며 산길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지천으로 피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함과 동시에 꽃은 지고,
잎은 내가 더 낮고 정확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옆자리 어디쯤에서 웃었으리라.
붓꽃과 산수국
조붓한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완만해서 숨가쁘지 않고 그저 숲이어서 숨어드는 맛이 일품이다.
조용조용 보랏빛 붓꽃이 처음 나타난 집 앞 울타리 아래 피어 있다.
가만가만 더 가니 하얀 산수국도 차례로 돌려 피었다. 산중에서 만나는 산꽃들이다.
모두 새색시처럼 곱고 어여쁘다.
빨강 우체통
물론 깎아지른 듯 날렵한 디지털 세상 피해 이렇게 들어앉은 마을에서나 어울리는
그리운 손편지.
꽃빛 물드는 꽃편지 받고 싶다.
곰배령 끝집의 엉겅퀴
나작나작 이어지던 길 따라 집들이 꼭 야생화를 닮았다. 생김대로 수더분한 모양의 집들이다.
곰배령 끝집.. 뭉클한 목적지를 안내하듯 곰살맞은 소개를 해놓았다.
커다란 엉겅퀴 한 그루가 보기좋은 나무 한 그루처럼 그 집의 노란 벽에 그려져 있었다.
잘 그린 벽화 한 점 보며 지나간다. 사람들 놀라라고 참 멋지게도 서 있었던 엉겅퀴 한 그루.
징검다리
곰배령 끝집을 지나자 징검다리가 나온다. 낮고 넓은 물줄기가 도란도란 참 정답다.
징검다리 건널 때면 의례히 그 다리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내게 마침 참으로 안아주고 싶은 강아지 하나 건너온다.
폴짝폴짝 토끼같이 뛰었던 것도 같다.
강아지나 토끼나.. 산골짜기에서 그렇게 만났으니 아이는 그렇게 나폴거리는 게 어울린다.
내가 저를 찍는 줄도 모르고 저는 저대로 징검다리 건넜다. 아이는 순식간에 건너와 버렸다.
아쉬워 아이에게 다시 찍고 싶다 말해 보았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뭐, 어려울 것도 없단 듯 쿨하게 달려나간다.
그리고 각오한 듯이 깡총 깡총 건너온다. 사진은 빠른 움직임을 붙잡을 수 없고...
내 카메라 속에서 아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줌마의 예쁜 강아지 토끼가 되어 주었다.
그 아이는 하산하다가 다시 만났다. 목소리만 듣고도 내가 아는 체를 할 수 있었으니..
그 아이가 설마 월월 강아지처럼 말하진 않았겠지. 참으로 귀여운 징검다리 인연이었다.
관중
징검다리 지나 곰배령까지 구간은 제법 오르막이다. 만만하게 걸어오다가 제법인걸, 하고 놀랄 정도이다.
산의 깊이가 숨가쁘게 오르내리는 양옆으로 바위만한 관중이 포진되어 눈맛을 시원하게 만든다.
비늘 잎이 빼곡한 관중들이 한아름의 크기로 제각각의 왕관표식을 띄고 있다. 숲의 안방마님 같이 푸르고 우아하다.
난티나무
빼곡한 숲에서 할 일이라곤 키나 키우며 놀고 자는 듯, 키큰 나무 한 그루 올려다 본다.
이름이 난티나무다. 산골짜기 물가 옆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게으르게'라는 표현이 빠진 듯하다.
그도 그럴듯이 잎 끝이 벌레 먹은 듯하다는 그것만으로도 게으름 남 못주고 잎이나 뜯긴 모양새이니...
게다가 동화책에 나오는 도깨비 뿔을 닮은 것이 특징이란다. 처음 보는 나무이지만 첫눈에 보고도 알 것 같다.
난티나무.. 산골짜기 물가 옆에서 게으르게 자라는 나무라고 고쳐 쓰며 웃는다.
곰배령 하늘정원
마치 처음 하늘이 열리듯 그늘 숲에서 토해져 나왔다. 두 시간 만에 보는 완연한 하늘이었고 널따란 대지의 육성이었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건 꽃이 아니라 들풀이었다. 탐방로 주위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오로지 풀 한포기라도 이곳에서만큼은 중요한 취급을 받는듯 함부로 밟을 수 없으니, 저쪽 끝에서 하늘거리는 하얀 은하수 무리를 알 길이 없다.
그저 들풀 가득한 이 곳이 하늘정원이라는 사실에 숨을 토하기까지 약간의 받아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봐온 야생화 무리는 정원에서 가꾸어진 아름다운 꽃빛 다함께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는 개별성의 꽃이었다.
곰배령을 일러 다듬어지지 않는 생태의 보고라고 부르는 정확한 뜻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저 야생화 천국이라면 이름까지 친절하게 써놓고 우리를 맞아주는 야생화 관찰용 정원을 상상하였으리라.
기껏 하늘정원에 올랐는데 화려한 꽃밭은 커녕 풀들이 지천으로 깔린 언덕으로 바람만이 분다.
우리가 상상했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 뿐, 이내 모든 것이 이해된다.
곰배령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거룩한 본질이란 것에 관해.
나도 그 마을을 가기 전에 잘 가꾸어진 천상의 화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이름들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려니, 하는 안일한 꽃 대하기.
바람 부는 양지 언덕에 알프스 소녀처럼 작은 꽃들이 만발하리라는 기대감.
그것은 꾸며진 정원에 어느덧 익숙해진 내 잊혀진 원시에 대한 우물 안 시각이라는 반증이었다.
들풀 만발한 그곳을 왜 천상의 화원이라 부르는지 다녀오고 나서는 더욱 이해가 되었다. 아니 그리웁기까지 했다.
그곳이야말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하늘 아래 열린 평원의 순수함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순수하다고 부르는 것에는 다듬어지지 않는 무질서의 질서와 흐트러진 듯 수수한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이를 것이다.
곰배령 그곳이 빛났던 건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최상의 여유로움, 그토록 찬란한 꽃빛이 아니라
초록 무성한 들판이라는 선물이었다.
곰배령에서 만난 야생화들
야생화.. 진짜배기 야생화는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두고 보호하며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꽃이 보고싶다면 직접 달려와 보도록 하는 것이 곰배령의 가르침이란 생각이다.
그것도 쉽게 와서 스윽 지나칠거면 차라리 오지 말고 잘 차려진 정원에서 구입하라고 가르치는 듯하다.
풀을 들춰봐야 겨우 찾을까 말까 하는 작은 꽃, 소박하다 못해 수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정원.
1100미터 고지에 5만평의 평원으로 늘 바람이 불고 햇살이 산다.
있는 그대로 눈을 맞고 비를 맞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어서 야생은 꽃도 씩씩하고 안스럽지 않다.
-졸방 제비꽃-
-어수리-
-광대수염-
-삿갓나물-
-단풍취-
-구실바위취-
-요강나물-
-벌깨덩굴-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
곰배령 그곳은...
누군가 살면서 인위적으로 가꾼 것이 아니기에 천혜의 자연 그대로이다.
그러기에 멋지게 감동적이라기보다는 그냥 한편의 우리 삶인 듯하다. 꾸밀 것도 없고 들려줄 것도 굳이 없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곰배령의 매력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렸고 마음속에 눈 감아야 만나는 깊은 옛이야기의 것과 닮았다.
그 옛날 우리네 고향이 떠나오고 나서야 자꾸만 다시 가고픈 곳이듯 곰배령엔 그런 정서의 맥이랄까,
눈맛보다는 마음을 건드리는 이상한 짜릿함을 전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더 놀다 오고 싶은 내마음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곰배령 푯말처럼 자꾸만 서성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