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성벽이 장안성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길을 나섰다. 시안 여행 셋째 날, 화산에 가기로 했으나 바람이 심해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시안성벽, 비림과 문서 거리를 둘러본 후 마사지를 받고 대당 불야성을 관광할 예정이다. 여행을 함께하지 못한 친구가 챙겨 준 500위안을 가이드 팁으로 지출했다. 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호텔이 시내 중심가와 가까워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열 시쯤에 시안 성벽 동문인 장악문을 통해 성벽에 올랐다. 입장료는 성인 54위안으로 중국의 문화재 입장료는 다른 물가에 비해 비싼 편이다. 일곱 명의 사나이가 어제의 뒤풀이 후유증을 무릅쓰고 자전거를 타고 성벽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자전거 한 대의 대여료는 45위안이고 일곱 대의 보증금은 100위안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덜컹거리며 벽돌길을 달렸다. 시안성벽은 명나라 초기에 당나라 장안 황성의 기초위에 건설했고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고성벽이다. 성벽은 동서로 길쭉한 장방형이다. 전체 둘레가 13.74km로 성벽 위의 길은 4차선 도로와 비슷한 폭이 13m이고 높이는 12m이다. 성벽의 벽돌에는 보수할 당시 벽돌을 만든 지역을 상징하는 표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황제만 다닐 수 있었다는 남문인 영녕문에서 자전거를 내렸다. 빌려준 자전거를 회수하고 남쪽 성벽 끝부분까지 걸어서 관광한 다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이 구간에는 각종 행사 조형물이 있고 당나라 복장을 한 상인들이 기념품을 판다. 성벽 안쪽은 오래된 건물과 저층 건물이 주를 이루고 성 밖은 아파트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고 깊다. 해 질 녘 성벽에서 보는 석양은 해자와 어울려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성벽에 앉아 바이두 지도와 구글 지도를 번갈아 보며 여행할 곳을 찾아 눈으로 확인했다. 성벽 안은 종루를 중심으로 장악문 방향으로 동대가, 안정문 쪽으로는 서대가, 영녕문 방향으로 남대가, 영원문 쪽으로는 북대가가 반듯하게 보인다. 종루 서북쪽에는 고루 박물관과 고루, 회민가와 회교 사원인 청진사가 있고 남쪽 성벽 안쪽에는 오늘 여행할 비림과 문서 거리가 보인다.
성벽 바깥 남쪽에는 시안박물관, 산시역사박물관, 대자은사와 대안탑, 대당불야성과 대당부용원이 있고 동쪽으로 흥경궁과 장채공원,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있다. 북쪽으로는 당나라 황제들이 거주하던 대명궁이 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안정문을 지난다.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출발하는 상인들의 웅성이는 소리와 낙타 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서벽 북쪽 끝에 있는 광인사 주변에는 당나라 전통 복장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 신랑 신부가 여럿 보인다. 북벽 안쪽은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유적지와 명나라 당시 만들어진 연호 공원이 있다. 내리쬐는 햇살과 엉덩이의 통증을 참으며 한 바퀴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안성벽을 따라 시내를 조망하고 나니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는 고사와 함께 13개 왕조의 수도였다는 사실이 이해되었다. 고층 건물을 넘어 아른거리는 지평선과 시내를 둘러싸고 흐르는 위강과 파하강이 시안을 관중 평원의 중심지로 만든 것이다.
장안의 전성기는 당나라 도읍이 되면서 시작되었고 인구가 백만 명에 달했다. 장안과 더불어 세계 3대 도시였던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보다 인구가 많고 규모가 컸다. 장안성의 크기가 현재의 시안성벽 내의 면적보다 일곱 배가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7~8세기경, 장안성의 도시계획과 관심사는 동북아시아의 유행이 되었고 발해의 상경용천부와 일본의 헤이조쿄, 신라 금성의 외양이 장안성과 비슷했다. “장안의 화제”란 말이 생각난다.
전통주 ‘랑’을 반주로 점심을 먹고 시안비림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비림은 비석의 숲이라는 뜻으로 공자묘(文墓)에 역대 중국의 귀중한 비석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한나라 때의 비석부터 시작해 비석과 묘지(墓誌)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당나라 장안성 국자감 내에 현종이 서(序)와 주해(注解)를 직접 쓴 효경의 내용을 새긴 ‘석대효경비’와 문종의 명으로 역경, 서경, 효경 등 12편의 중국 고전을 114개의 비석 양면에 새긴 ‘개경석경비’가 눈에 띈다. 특히 석대효경비 안내문에는 “당 천보 4년(745) 당 현종 이륭기가 서를 쓰고 주해를 달고 적은 것이다.”라고 한글로 설명되어 있다.
당나라 시대는 과거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시기라 시험과 관련되는 유교 경전이 많았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경전을 베껴서 보급하다 보니 오류가 많아 경전의 권위와 정확성을 보증하기 위해 만든 것이 개경석경비다. 유교의 최고 권위와 정확성을 가진 원본인 셈이다.
비림에는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등 서예 대가의 친필 석각을 비롯해 석각 예술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서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중국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은 방문해 볼만하다.
흥미로운 비석은 2전시실에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다.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교의 교리와 선교에 관련된 비석이다. 중국의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연구해 볼만한 비석이다.
비림을 관광한 다음 성벽 옆에 있는 문서 거리로 갔다. 노점의 수박 주스와 야외카페의 음료를 마시며 지친 심신을 달랜다. 거리를 둘러보며 기념품이나 서예에 필요한 붓과 종이를 사는 친구도 있다. 역시 여행의 맛은 쇼핑과 먹거리에 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시간은 90분 정도로 가격은 120위안이다. 개인적으로 받으면 더 비싸다고 한다. 매너 팁 20위안을 주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역시 피로에는 마사지다.
대자은사 부근에서 딸이 근무하는 회사의 로고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부모의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아래로 흐르는가 보다.
한식 전문 식당에서 삼겹살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나오니 대자은사 앞은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인산인해다. 그렇지! 대당 불야성이다. 당나라 복장을 한 청춘들이 대자은사와 대안탑, 삼장법사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며 불야성을 즐기고 있다. 당나라 전통복 대여점과 대자은사와 불야성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 성업하고 있다고 한다.
시안을 신라 천 년의 경주와 비교하며 상상했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수백만 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머나먼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바라고 유라시아 동북 끝자락의 신라와 동맹을 맺었을까?
전성기의 당나라 문화와 장안성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일의 화산을 꿈꾼다.
2025.4.9.(55)
첫댓글 여행은 즐거움 좋은 체험을 하게 되어 넉넉한 마음의 자산이 됩니다.
주희 쌤 덕분에 시안 여행 간접 경험을 느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