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이면
아버지는 이미 들에 나가셨다가 집으로 돌아오신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어제의 고단함이 미처 가시지도 않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신다.
잠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으시고는
이내 부엌으로 향하신다.
우리 집 정제는 마루 곁에 붙어 있었다.
부엌과 마루가 이어지는 곳에는 큰 창이 하나 있어
아침이면 그 창으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부엌 한가운데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불을 지폈던 솥인지
솥 표면은 세월과 불기운에 닳고 닳아
번들번들 윤기가 나 있었다.
그 큰 가마솥에는
한번 밥을 지으면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먹을 만큼
많은 밥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솥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에는 참 큰 솥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큰 솥 오른쪽에는
그보다 조금 작은 가마솥이 하나 더 걸려 있었다.
두 솥 사이에는
조항물이 하얀 사기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새벽의 부엌은
아직 말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불을 지피고
가마솥을 살피며
가족의 아침을 준비하셨다.
부엌 뒤편에는
왕대를 잘게 쪼개어 발처럼 엮어 만든
오래된 살강이 있었다.
세월이 오래되어
대나무에는 사람의 손길과 시간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 살강 위에는 우리 식구들이 사용하던
밥그릇과 국그릇이며
여러 가지 사기그릇들이
하나둘 엎어진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풍경이라
그것이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을 씻어 살강에 엎어놓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부엌 하나에도
우리 가족의 한 시대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가족의 밥이 끓었고,
살강 위에서는
하루의 삶이 조용히 쌓여갔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새벽부터 어머니가 묵묵히 감당하셨다.
어머니에게 아침은
해가 뜨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눈을 뜨기 훨씬 전,
어머니의 눈이 먼저 떠지는 순간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그것을 몰랐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셨는지,
왜 늘 눈에 피곤함이 묻어 있었는지,
왜 가마솥 앞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 계셨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 시절을 돌아보니
그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 집의 아침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지어진 밥 한 그릇이
아버지와 우리 식구들을 하루하루 살아가게 했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가마솥에는 밥이 있었고,
힘겨운 농사철에도
어머니는 가족의 끼니를 거르지 않으셨다.
그것이 어머니가 우리 가족에게 주신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큰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