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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떤 책인가? 2/ 디모데후서 3:16-1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영국의 19세 청년 레너드 나이트(Leonard Knight) 이병에게 있었던 실화입니다. 그는 치열한 전선으로 떠나며 어머니로부터 작은 포켓용 성경 한 권을 건네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어떤 순간에도 이 말씀을 심장 가까이에 품고 있어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군복 왼쪽 가슴 주머니, 심장 바로 위에 그 성경을 넣고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어느 날 적의 총알이 그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쓰러진 나이트는 가슴을 더듬었습니다. 놀랍게도 피는 흐르지 않았고, 심장 부위에 맞은 총탄은 왼쪽 주머니 속 성경책 한가운데에 박혀있었습니다. 총탄이 멈춰 선 페이지는 시편 91:7이었습니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성경책을 부적처럼 품속에 넣고 다니면 사고를 피한다는 미신적인 교훈을 주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시험과 유혹, 죄악의 불화살이 빗발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는 데 있다는 교훈입니다. 성경을 방치하지 마시고, 매일 읽고 묵상하며 말씀의 보호막 안에 거하십시오. 세상의 어떤 공격과 절망도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하여 생명과 구원의 능력을 풍성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의 네 가지 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계시성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눈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하나님과 구원의 길을 하나님께서 친히 베일을 벗겨 명백히 보여주신 책입니다.
둘째, 영감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무오성입니다. 성경은 역사와 과학 그리고 구원의 모든 영역에서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은 신앙과 삶을 결코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입니다.
넷째, 충분성입니다. 성경은 죄인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구원의 완성작입니다.
오늘도 성경의 특성 네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5. 명료성
명료(明瞭)는 ‘분명하고 똑똑하여 조금도 흐릿하거나 의심스러운 데가 없음’을 뜻합니다. 신학에서 성경의 ‘명료성’을 말할 때는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안개나 가림막이 걷힌 상태를 말합니다. 흐릿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대낮의 햇빛처럼 환하게 드러나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암호가 아닌 열린 언어입니다. 소수만 아는 비밀 기호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직관적이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였다는 뜻입니다. 셋째, 구원의 길이 뚜렷합니다. 성경 전체에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진리가 왜곡이나 흐림 없이 또렷하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목사나 지식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읽고 알 수 있는 밝고 분명한 책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깊고 심오한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고 영원한 천국에 가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명료합니다. 다섯 단계로 정리하면 첫째,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넷째, 이것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다섯째, 구원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에 갑니다. 학식이 뛰어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성도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녀에게 어머니가 쓴 편지를 생각해봅시다. 어머니는 어려운 철학 용어나 난해한 문장을 쓰지 않습니다. “아침 거르지 마라”, “감기 조심해라”, “사랑한다”는 말처럼 누구나 읽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가장 쉽고 따뜻한 말로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이면 누구나 생명의 길을 깨닫도록 가장 분명하고 명료한 언어로 성경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에 미얀마 선교 잘 다녀왔습니다. 화요일에는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선교사님 말로는 그곳에 참석한 목회자들의 평균 학력 수준이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목회자는 초등학교 4년 다닌 게 전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잘 이해하고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성경의 명료성과 성령님의 역사 때문입니다.
성경의 명료성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실 때 사용하신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당대의 지식인이나 엘리트 귀족들만 쓰는 고상하고 난해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정이나 시장에서 쓰던 가장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 헬라어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전 아티카 헬라어입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과 귀족 엘리트들이 쓰던 헬라어입니다. 엄격하고 난해한 문학적, 철학적 언어였습니다. 또 하나는 코이네(Koine) 헬라어입니다. ‘코이네’는 ‘공통의, 평범한’이라는 뜻입니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우물가에서 아줌마들이 대화할 때, 항구의 뱃사람들이 소통할 때 쓰던 생활 언어, 골목 언어였습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는 신비한 언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복음을 전 인류에게 전하시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배울 수 있는 난해한 언어가 아니라 시장에서 통용되던 가장 쉬운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에게나 명료합니다. 19세기 말 이집트의 쓰레기 더미와 파피루스 유적에서 당시 평범한 서민들의 영수증, 연애편지, 계약서, 장보기 메모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기에 적힌 헬라어가 바로 신약성경에 사용된 코이네 헬라어입니다. 가장 친숙한 민중의 언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성경을 읽어보니 어려운 단어가 많던데요. 성경은 결코 명료하지 않아요.” 그건 번역의 문제입니다. 번역 과정에서 옛 한자어나 고어가 섞여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성경은 하나님께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주신 명료한 책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두 가지 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입니다. 구약 히브리어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 언어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행동과 시각적 묘사 중심의 직관적인 언어입니다. 광야의 목동들도, 농사를 짓던 백성들도 직관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언어였습니다.
포로기 이후 유대 백성들이 히브리어보다 일상 공용어인 아람어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러자 성경 일부(다니엘서, 에스라 등)와 예수님의 실제 가르침은 민중의 언어인 아람어로 선포되었습니다 “달리다굼”, “에바다”, “아바”, “마라나타”등은 아람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언어 역시 가장 낮은 자들의 자리로 내려온 성육신의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가난하고 평범한 성도라도 겸손히 무릎 꿇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성경은 대낮처럼 밝고 명료하게 구원의 길을 열어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적 언어로 명료하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춰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믿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읽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성경으로 하나님과 깊이 소통하며 복음을 생활 속에서 누리기를 바랍니다.
6. 기준성
세상의 사상과 윤리 기준, 인간의 경험과 교회의 오랜 전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져도, 우리의 양심과 가치관은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비추어 매일 오차를 교정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보에라는 악기를 아시나요? 저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에 무대 위는 온갖 악기들이 내는 무질서한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때 모든 불협화음을 잠재우는 단 하나의 악기가 오보에입니다. 모든 악기는 오보에의 A음을 기준으로 조율합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오보에보다 크고 화려한 악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보에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도 음이 가장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보에가 모든 조율의 기준이 됩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자기 고집을 버리고 오보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미세한 오차를 조율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수많은 목소리와 유행이 요동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져도, 우리의 양심과 가치관은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교정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이라는 절대 기준음에 삶을 조율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백성이 평생 붙들어야 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준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좌우명은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나도 멈춘다.”였습니다. 그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곳까지는 목숨 걸고 나아가되, 성경이 침묵하고 멈추라 명하는 선 너머로는 단 한 걸음도 월권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는 이런 원칙을 지키며 성경을 연구했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까지도 개혁주의자들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준을 잡아줍니다. 디모데후서 3:16-17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책망해 굽은 길을 바르게 펴줍니다. 거룩한 삶의 기준을 세워줍니다. 그러므로 내 감정과 세상 풍조에 흔들릴 때마다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에 나를 정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감당할 온전한 성도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수백 명의 장병들이 넓은 연병장에 어지럽게 흩어져 운동하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직사관의 쩌렁쩌렁한 호령 한마디가 들렸습니다. “전원 주목! 본부석 앞, 10열 횡대로 헤쳐모여!”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한 병사가 본부석 앞 왼쪽에서 기준을 잡았습니다. 기준병은 손을 번쩍 들고 외칩니다. “기준!” 그러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병사들이 일제히 기준병에게 맞추어 줄을 섰습니다. 제가 군대 생활 할 때 흔히 있었던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욕심대로 어지럽게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의 굽은 신앙과 삶을 단숨에 제자리로 정렬시키는 영원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번쩍 들려진 말씀의 기준을 따라 살 때 빛과 소금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대형을 맞추는 순종 뒤에는 치열한 내면의 씨름이 따릅니다. 때로는 세상의 계산법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송두리째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줍니다.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려니 생업이 위태로운 것 같습니까? 성경의 기준대로 사랑하고 용서하려니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습니까? 우리는 어려워도, 손해가 돼도, 두려움이 엄습해도 성경의 기준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면 항상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의 잣대로는 질 것 같은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승리의 출발점입니다. 나의 계산을 멈추고 성경의 기준을 따라 살 때, 하나님께서는 승리와 역전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7. 그리스도 중심성
복잡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보물 지도를 손에 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산맥의 높이, 강물의 길이, 지도의 종이 재질이나 나침반 기호에만 감탄하며 연구한다면 그는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보물 지도의 모든 선과 기호는 오직 보물을 찾는데 집중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페이지가 가리키는 궁극적인 보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쉼 없이 예표했습니다. 신약은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39에서 선포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성경 문자 자체에 영생이 있다고 여겨 연구에 집착했으나, 정작 말씀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봤지만 그리스도 중심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가 멀리 있는 아름다운 산을 가리키며 “저기를 보세요”라고 말하자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산을 가리키는 제 손가락을 본다면 여러분은 제 의도를 오해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문자적 조항과 율법이라는 손가락에 집착했습니다. 정작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손가락이며, 실체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며, 오직 주님을 믿을 때 참된 영생을 얻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 후, 두 제자는 깊은 절망에 빠져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풀어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예언이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을 가리킨다는 그리스도 중심성의 진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졌고, 닫혔던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성을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미로에 갇히면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갇히게 됩니다. 그때 미로 입구부터 출구까지 단 하나로 길게 이어진 붉은 줄을 쥐고 있다면, 아무리 길이 꼬여 있어도 그 줄만 따라가면 반드시 밖으로 나옵니다. 성경 66권은 역사와 족보, 다양한 사건들이 얽혀 있는 거대한 숲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치의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붉은 줄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줄을 놓치면 성경은 지루한 옛날이야기가 되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성경 전체가 생명의 길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나 역사책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그리스도 중심성의 책입니다.
8. 언약성
수십억 원짜리 집을 거래할 때 사람들은 말로만 “내가 이 집을 당신에게 넘길 테니 믿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법적 효력을 가진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어 ‘등기권리증’으로 소유권을 확정합니다. 성경의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은 한자로 ‘옛 언약’과 ‘새 언약’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고 반드시 구원하겠다.”고 독생자의 피로 붉은 인장을 찍어 법적으로 건네주신 가장 확실한 등기권리증입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뼈대를 이해하는 틀 중에 하나는 ‘언약 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언약’이라는 방식을 통해 역사 속에서 펼치셨습니다. 우리는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몇 가지 언약이 나옵니다.
첫째, 에덴동산에서 맺으신 ‘행위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대표인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과로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와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과 육체적, 영원한 사망의 형벌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행위언약은 처참히 깨지고 온 인류에게 죄와 사망이 임했습니다.
둘째, 인류 구원을 위한 ‘은혜 언약’입니다. 행위언약을 깨뜨려 영원한 사망에 처한 죄인을 위해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은혜 언약은 창세기 15장의 횃불 언약에서 잘 보여줍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조약은 양 당사자가 쪼갠 고기 사이를 함께 지나므로 이루어졌습니다. 약속을 어길 시 쪼개진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러나 깊은 흑암 중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잠들어 있었고, 오직 하나님을 보여주는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만 그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는 약속을 끝까지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아셨기에, 장차 인간이 언약을 파기했을 때 치러야 할 죽음의 저주와 형벌마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온몸으로 짊어지시겠다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죄인을 대신해 하나님께서 친히 죽으심으로써 구원을 완성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언약입니다.
스스로 헤엄칠 힘이 있거나 의식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밧줄을 던져 잡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의식 없는 사람에게는 밧줄이 소용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조대원이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어 건져내야만 삽니다. 은혜 언약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하나님을 향해 손 하나 까닥할 수 없던 죄인을 향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생명의 손을 뻗어 건져내신 절대적인 구원입니다.
셋째,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체결된 ‘옛 언약’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낭독한 후, 소를 잡아 피의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백성에게 뿌리며 외쳤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는 하나님과 백성이 피를 나눈 한 생명 공동체로 묶였으며, 말씀을 어길 시 피 흘려 죽은 짐승처럼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시각적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영원한 속죄를 이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된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반복되던 짐승 제사와 옛 언약의 한계를 십자가로 단번에 뛰어넘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 보혈을 흘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완성하셨습니다.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악성 종양으로 고통받는 암 환자가 있습니다. 그가 매일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매주 병원에서 통증 주사를 맞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증은 잠시 가라앉을 뿐 약효가 떨어지면 살을 에는 고통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옵니다. 진통제는 암세포라는 병의 뿌리를 뽑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명의를 만나 암 덩어리를 뿌리째 완전히 도려내는 절제 수술을 단 한 번 완벽하게 받고 나면, 환자는 더 이상 마약성 진통제에 매달리거나 매주 주사실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의 짐승의 피는 죄의 통증과 증상을 잠시 덮어두는 진통제에 불과했습니다. 반면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와 사망이라는 악성 종양을 단번에 도려내어 완전한 생명을 주신 완치 수술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는 깨어진 행위언약과 옛 언약을 넘어, 십자가의 피로 영원한 새 언약을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이 가진 놀라운 네 가지 특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째, 성경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철학책이 아닙니다. 자녀를 살리기 위해 가장 밝고 환한 언어로 써 내려가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편지, 곧 명료성의 책입니다. 그러므로 어렵다는 핑계로 멀리하지 말고, 매일 겸손히 성경을 펼쳐 읽으십시오.
둘째, 성경은 세상 풍조와 내 생각을 날마다 교정해 주는 유일한 절대 기준, 곧 기준성의 책입니다. 기준병을 향해 대형을 맞추듯, 세상의 계산법을 내려놓고 말씀이 명하는 바른 기준에 여러분의 삶을 정렬하십시오.
셋째, 성경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나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잡한 미로 속에서 붉은 줄을 붙잡듯, 66권 모든 페이지 속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리스도 중심성의 책입니다. 성경을 펼칠 때마다 "오늘도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옵소서"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십시오.
넷째, 성경은 우리의 자격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피로 인장 찍은 구원의 확실한 등기권리증, 곧 은혜의 언약성을 담은 책입니다. 암세포 같은 죄의 뿌리를 영원히 도려내신 십자가의 새 언약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성경은 목마른 인생에 생수를 공급하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어제 물을 마셨어도 오늘 다시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번에 끝나는 지식이 아니라 매일 영혼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성경을 계속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날마다 생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며 승리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