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열 명이 다시 뭉쳤다. 유치환의 시 <생명의 서>를 외치며 아라비아 사막 대신 몽골 초원과 고비 사막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느끼기 위해 산시성의 시안과 허난성의 뤄양을 누볐던 친구들이다.
이번에는 <삼국지연의>에서 촉의 제갈량과 남만의 맹획 사이에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성어가 생긴 곳,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이상향의 도시가 있는 윈난성(云南省, 운남성)을 여행지로 정했다. 모임의 회장이 주축이 되어 아내가 여행사를 운영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세웠다. 여행 시기는 4월 말경에서 5월 초순에 9박 11일, 장소는 다리(大理, 대리), 리장(丽江, 여강), 옥룡설산(玉龙雪山), 차마고도(茶马古道), 호도협(虎跳峡), 샹그릴라(香格里拉, 향격리랍), 운남민족촌(云南民族村), 석림(石林)으로 결정했다. 자유여행을 원칙으로 가이드는 리장에서 이틀, 샹그릴라에서 하루, 총 삼 일만 쓰기로 했다.
가족 여행과 친구와의 여행을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친구끼리의 여행은 해방과 자유, 미지에 대한 도전, 배려와 인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여행은 체험이나 경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 평생을 같이한다. 필요한 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여행을 마치고 사진을 정리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다가 관련된 글을 읽거나 사진을 보면 잠자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윈난성을 선택한 이유는 고지대에서 신체의 변화를 체험하고 싶었고 왜 차마고도가 생겼는지, 이상향의 도시는 존재하는지, 소수민족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여행의 고수는 짐이 적다는 말을 핑계로 20인치 캐리어에 맞도록 짐을 줄였다. 우리나라 술이나 포장된 음식을 준비는 친구도 있지만 필요하면 현지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현지의 시장이나 상점을 이용하고 노점판에서 여유롭게 맛난 음식을 즐기는 것이 자유여행의 멋이 아니겠는가.
국적기를 타고 네 시간 반을 날아 쿤밍 창수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빨랐고 예약한 버스를 타고 중황호텔(中凰酒店)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아무리 졸음이 와도 룸메이트는 정해야 한다. 지난 여행을 거울삼아 이번 여행에서는 호텔이 바뀔 때마다 뽑기를 해서 룸메이트를 정하기로 했다. 뽑기 도구를 준비한 친구의 아이디어는 기발했다. ‘A~E’까지 글자마다 두 개씩, 얇고 둥근 나무판 열 개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왔다. 같은 글자를 뽑으면 룸메이트가 된다. 쿤밍에서의 첫 룸메이트는 현역 시절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친구로 결정되었다. 남자들은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사는 어지간하면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주 만나거나 여행을 통해 마음이 열리면 속 깊은 말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묻어둔 사소한 대화라도 나누고 싶다.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채 풀지 못한 짐을 다시 챙겨 8시 34분에 출발하는 다리(大理, 대리)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쿤밍역(昆明站, 곤명참)으로 갔다. 한 시간 전에 도착해 보안검색대를 거쳐 맞이방에 도착해서야 한숨을 돌렸다. 어디 가나 언어장벽이나 풍습의 차이는 있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놓으면 실수가 적다.
여유 시간을 이용해 여행 일정을 다시 점검했다. 쿤밍의 해발고도는 1,900m 내외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고도에 따른 몸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여행 일정을 설계할 때도 쿤밍시를 기준으로 고도를 서서히 높여 4,500m 이상의 등반에도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천공항 약국에서 고산병약도 준비했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여 시속 190㎞를 넘나들며 고원지대의 농촌과 도시를 스치며 달렸다. 창밖 고원지대의 풍경과 마을을 감상하다 보니 두 시간여 만에 다리역에 도착했다. 예약한 버스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탔다. 대형 버스로 공간이 넓고 좌석이 편안했다. 차는 한참을 달려 다리 고성 내에 있는 난림각호텔(蘭林阁酒店)에 도착했다. 고관대작이 살던 고가를 호텔로 개조한 것처럼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통양식의 호텔이다.
다리에서의 룸메이트는 화요일마다 모임을 하는 친구로 정해졌다. 다리 고성(大理古城)은 얼하이 호수와 창산 산맥 사이에 있는 성으로 남조국과 대리국의 수도였다. 역사적인 건물들과 어우러진 거리는 명·청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고성의 길은 돌로 포장되어 있고 길옆에는 수로가 있어 물이 흐른다. 오래된 길이라 돌이 미끄러워 비가 오면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길 양쪽으로는 유적지와 관광명소, 상점, 카페 등으로 가득하다. 차마고도의 차를 보급하는 지역이라 보이차가 유명하다.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내일부터 노동절 연휴라 고성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먼저 호텔 건너편에 있는 대리 비물질문화유산박물관(大理非物质文化遗产博物馆)에 들렀다. 박물관은 다리에 있는 바이족(白族) 자치주 지역의 독특한 무형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연구, 전시하는 공간이다. 특히 바이족의 전통공예와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고성의 중심부 사거리에서 친구 둘과 함께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이 많은 남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도와준다. 양인 거리, 대성전, 문묘를 지나 남조국 시기에 통치자들이 방문객을 맞이하던 오화루(五華楼)에 올랐다. 동쪽으로는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창산, 다리 박물관 쪽으로 남문과 문묘 쪽으로는 북문이 보인다. 북서쪽으로는 고성의 상징인 숭성사삼탑(崇聖寺三塔)이 남조국과 대리국의 역사를 머금고 묵묵히 서 있다.
오화루에서 내려와 총통병마대원수부를 둘러보고 비각 옆에서 잠시 쉬다가 비슷비슷한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대리중학교 앞에 있는 캐리커처 전문점에서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별로 닮지 않은 초상화를 그렸다. 현재의 나와 차이가 있지만 젊은 시절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건네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중국판 스타벅스인 패왕차희에서 차 한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창산 자락에 있는 고성의 고도는 2,000m 정도로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차고 피로가 빨리 왔다. 저녁을 먹고 전통 정원과 은행나무 풍경으로 유명한 옥이원(玉洱园)을 산책한 다음 호텔의 모임 공간에서 해지람(海之藍)이란 백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했다. 고산병이나 감기에 걸리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9시에 호텔을 나와 10시 40분경에 얼하이(洱海, 이해) 호수를 끼고 있는 쌍랑고진(双廊古镇)에 도착했다. 유람선을 타려고 했으나 출발 시간을 놓쳐 창이풍광제일진(苍洱风光第一镇)으로 가는 셔틀을 타고 거리의 풍경을 구경했다. 종점에서 내려 출발지인 선착장까지 걸으며 보는 고진 거리는 “창산과 얼라이호의 풍경 중 최고의 마을”이라는 뜻처럼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경로당처럼 보이는 건물의 2층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마작 놀이를 하고 마당 한편에는 바이족의 모자를 쓴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장미꽃잎을 바구니 담아 늘어놓은 꽃빵 집에서 빵을 맛보고 귀국 선물로 점찍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바이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15위안에 고기가 들어간 채소 볶음밥을 배불리 먹고도 양이 많아 남겼다.
자전거를 타고 얼하이 호수를 둘러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다리 고성이 있는 호수 쪽으로 갔다. 전동스쿠터는 호수 둘레길에 들어갈 수 없어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여우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지만 싱그러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노동절 연휴라 인파가 밀려들지만 넓은 호수는 모두를 품어 안고 여유로움을 되돌려준다. 다리시가 ‘슬로시티’로 인기 높은 이유는 온화한 기후와 뛰어난 자연풍광, 유유자적할 수 있는 환경 때문이 아닐까. 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달리다, 전망 좋은 카페에 들러 점심값의 두 배가 넘는 바닐라 라테를 먹으며 얼라이 호수와 ‘물멍’의 시간을 가졌다.
다리 고성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휘황찬란한 조명과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로 나왔다. 비가 간간이 내리는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낮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남문과 연결된 야시장에서 꼬치와 백주를 먹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의 일정을 점검했다. 내일은 고도가 더 높은 리장고성이다. 더불어 출발한 여행 기차에서 아프거나 힘들어서 먼저 내리는 일이 없도록 건배했다.
2026.5.17.(86)
첫댓글
좋은 여행을 하셨습니다. 멋진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