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건,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사이에 끼어 신음하던 작은 사람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작은 사람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와 가족과 내가 속한 세상을 성찰하는 것이 신학입니다.
바르게 성찰하면 회개(悔改,메타노이아)합니다. 회개를 뜻하는 그리스말 메타노이아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εω)의 명사형입니다. ‘메타μετα’는 ‘함께’, ‘가운데’, ‘후에’ 등을 뜻하는 접두어이고, ‘노에오νοεω’는 ‘안다’, ‘깨닫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전두환의 둘째 아들 전재용 씨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극동방송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신학이 성경을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므로, 전재용은 전두환의 아들로서 ‘자신’과 ‘아버지 전두환’과 ‘전두환이 파괴했던 세상’을 성찰하며 공부하길 권면합니다. 신학의 결국은 회개하는 것이어서, 부동산 부자 전재용 씨가 신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탈세와 감옥살이의 원인이었던 막대한 부동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결단을 해야 할 겁니다. 나아가 신학의 깊이를 갖게 된다면 전두환의 아들로서 시민을 학살한 아버지의 죄를 인지하고 아버지의 전두환을 대신해서라도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해야합니다. 518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면 신학도 전재용은 낙제입니다. 전재용이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면 지금 버마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시민들을 향하여 발포한 ‘민 아응 흘라잉’에게서 아버지 전두환의 얼굴을 보고 통한의 눈물을 쏟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전재용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전재용이 회개하여 신학을 공부한다면, 아버지가 시민들을 죽이고 획득한 권력을 이용해 축적한 재산을 내놓고,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해야 겨우 필수 학점을 이수할 수 있습니다. 전재용이 다니는 신학교는 제대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신학교수들이 전재용을 잘 가르치길 바랍니다. 전재용은 바른 학점을 받아 졸업하길 기대합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건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하거나 회한을 품거나 뉘우치는 마음 따위는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변화되는 것이며,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처절하게 뉘우치기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를 넘겨준 유다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쳐μεταμελομαι, 그 은돈 서른 닢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고, 말하였다. "내가 죄 없는 피를 팔아 넘김으로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그대의 문제요"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마27:3~5)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를 판 걸 뉘우쳤고 자결했지만, 회개한 건 아닙니다. 회개는 자결에 이를 만큼 처절하게 뉘우치는 게 아닙니다. 자책하는 마음이 커서 자결한다 해도, 그건 회개가 아닙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야 회개한 것입니다. 처절하게 뉘우치며 참회하는 것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회개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구원이 열립니다.
나는 전재용을 염려하진 않습니다. 전재용의 구원에 그닥 관심 없습니다. 전재용을 위해 기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 품이 이렇게 작습니다.
속 좁은 나는 내 구원을 얻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기도합니다. 학점을 받는 정규신학과정은 끝났습니다만,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배우고, 가정이라는 현장에서 실습하며, 이웃과 가족에게 바른 학점 받는 신자 되길 기도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빌2:12~13)
글/ 김영준 목사_민들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