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갑자기 출신 모교인 중동고와 왜 이렇게도 가까워지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손양원 목사님 때문이란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동안 묻혀있던 손 목사님과 중동학교와의 관계가 새롭게 밝혀졌고, 지난 2월 중동고 졸업식에서 손 목사님은 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이미 고인이 되신 손 목사님을 대신해 큰딸 손동희 권사가 받음). 한국 기독교 순교 영성을 대표하는 손 목사님이 1919년부터 만 1년간 중동학교에서 수학한 것을 백강수 총동문회장을 비롯해 몇 사람 밝혀내고 명예 졸업장 수여를 추진한 것이다.
초청 문자를 받고 나는 모교 졸업식에 가게 되었고, 또 그 명예졸업장을 여수 손양원순교기념관에 전달할 때 동문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동행해 그 날 행사를 정리해서 인터넷신문 <뉴스앤조이>에 기고하기도 했다(기고 제목-손양원 목사 명예졸업장을 여수시에 전달하고 와서). 그동안 나는 모교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37년 만에 모교를 방문한 것을 보면 증명되고도 남는다. 학교와 동문회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손양원 목사님은 나를 모교로 연결시켜 준 고마운 분임이 확실하다.
이렇게 된 마당에 중동고등학교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을 얻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백강수 총동문회장(변호사)에게 <中東百年史(중동백년사)>를 한 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목사인 내가 이 책에서 혹 기독교와 연관된 내용이 있으면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책을 부탁할 때까지만 해도 동문들에게 그냥 배부해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5만원을 받고 유가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했다. 책을 그냥 받고 무척 미안했다. 모교 중동고와 총동문회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중동백년사>는 2007년 12월에 발간되었다. 그 해 말 중동 총동문회 송년회 때 100주년 기념행사를 겸해 가졌는데, 거기에 맞춰 출판된 것 같다. 한 질 두 권으로 된 <중동백년사>는 '한국의 민족사학 <中東百年史> 同門史'편과 '세계의 명문사학 <中東百年史> 學園史'편으로 나뉘어 편찬되었다. 중동의 인맥이 한국에서 세계로 뻗어 나감을 상징하는 수식어구가 두 책에 나누어 표기되어 있다. 각각 500 여 쪽이니 총 1천 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방대한 분량의 책을 만들어내기까지 편찬위원과 집필위원들의 노고가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개(個) 단체나 기관에 대한 역사를 책으로 엮어낼 때 보통 그 방면의 권위자에게 위탁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재정적 부담은 있지만 그렇게 해야 객관성이 담보될 뿐만 아니라 사계(斯界)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할 역량이 된다면 스스로 자신들이 속했던 단체(기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동백년사>를 받아보고 과연 중동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중동에서 배출된 재사(才士)들이 도처에 포진해 있으니 짧은 시간에 중량감 있는 중동의 역사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학원사(學園史)'에 대한 서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이 자리에는 '동문사(同門史)'에 대해 읽고 느낀 점을 간단하게 피력하려 한다.
나는 '동문사'를 읽고 우리 중동학교가 한국 현대사에 이렇게 출중하면서도 필요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것에 적이 놀랐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 등 제반 영역의 중추적 인물은 대부분 중동과 인연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소위 SKY(서울대 고대 연대)인맥을 말하지만 고등학교를 따진다면 우리 중동이 단연 앞자리를 점할 것이었다. 동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역사의 구비구비 없어서는 안 될 많은 인물들이 우리 중동 출신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양주동(국어국문), 이병도(역사), 손진태(민속 역사), 신석호(역사), 이희승(국어), 이훈구(교육 및 농업), 김재준(신학), 조용욱(교육), 이헌구(문학), 정인섭(국어), 오화섭(영문 및 연극), 이병주(한문), 양일동(정치)(이상 '동문사' 중 '일제하부터 산업화 시기까지 중동을 빛낸 동문들' 수록 순) 등 헤아릴 수 없는 역군(役軍)들이 중동을 거쳐 나갔다.
<중동백년사> '동문사' 편은 총 16 개의 장과 '중동 이야기', '중동 스크랩','편집 후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 별로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집필을 맡았기 때문에 하나 하나가 학술 논문이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이다. 맨 먼저 올려진 글이 '백농 최규동 선생과 중동'(이명학 성균관대 교수)이다. 중동은 1906년 오규신 유광렬 김원배 세 분이 한어(漢語) 학교로 출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1914년 최규동 선생이 그 학교를 인수해서 운영 오늘날까지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질 수 있었으니 백농 선생을 설립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동은 서양 선교사가 세운 학교(배재 경신학교처럼)도 아니요 그렇다고 정부에서 세운 관립학교(경기 서울 경복고처럼)도 아니다. 또 일제 당시 재력가가 세운 학교(보성 중앙고처럼)도 아니고 구한 말 황실 자산으로 세운 학교(휘문 양정 숙명 진명여고처럼)는 더군다나 아니다. 중동학교는 오직 민족 교육에 뜻을 둔 가난한 한 교육자 백농 선생이 설립한 학교였다(26쪽).
'동문사'에 수록된 각 영역과 집필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교육발전과 중동인(1.일제하 시대부터 산업화 시기까지 중동을 빛낸 동문들 / 김경훤 성균관대 교수, 2.80년 대 이후 학계를 빛낸 중동인 / 김정우 영남대 교수), 한국 문학사를 이끈 중동의 힘(유영봉 홍익대 교수), 한국 정치 행정 발전과 중동인(1.한국의 정치 발전과 중동인의 역할 / 양승함 연세대 교수, 2.행정부에서의 중동인 / 유진 연합뉴스 기자), 한국 경제 발전과 중동인(이정훈 한국생산성본부 근무), 한국 법조계와 중동인(김제완 고려대 교수), 한국 언론과 백농 언론인(유진 연합뉴스 기자), 한국 사회운동과 중동인(한동민 수원시청 근무), 한국의 과학 기술과 의료를 빛낸 중동인(1.첨단 과학 기술을 리더하는 중동인 /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2.중동 100년과 의료계 / 중동의사회), 한국 환경 보전과 중동인의 역할(최주섭 청록회 부회장), 한국 예술계를 빛낸 중동인(유영봉 홍익대 교수), 백년 중동 연극의 르네상스(민동원), 중동 축구 100년의 발자취(변종국 유소년축구아카데미 단장, 유진 연합뉴스 기자), 도전과 희생정신의 중동 100년 산악사(천성구 에베레스트원정대 지원대장) 등이다. 덧붙여 100년의 중동 역사와 50 여 년의 총동문회의 역사를 요약해서 말미에 실어놓고 있다(윤태익 전 중동중 교장, 김진규 총동문회 총무).
<중동백년사> '동문사'편을 읽고 느낀 점은 '의(義)'를 기치로 한 중동 정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 페이지마다 녹아 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중동동문회 임원들을 볼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어느 일방이 아닌 학교를 사랑하는 각 영역의 인사들이 동문회를 이끌어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역대 동문회장만 봐도 여야(與野) 성향을 가리지 않고 국가를 사랑하고 학교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맡아 잘 이끌어왔다. 하지만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 분연히 일어나 앞장 선 중동인들이었음을 역사가 굴절될 때마다 읽을 수 있었다.
중동학교의 역사는 5만이 넘는 중동인이 연면히 일구어온 역사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중동인들로서 이곳에 소개해도 모자라지 않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든 중동인을 이 글에서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런 사람도 중동인었다니!'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열거하려고 한다. 이해해서 읽어주기 바란다. 어찌 보면 이들은 많은 중동인들 중 극소수에 해당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초석(礎石)을 담당했던 몇 동문은 상술했으니 피하겠다. 그 외 '동문사'에 실려 있는 대로 명기해 보자면, 미술사학자 안휘준(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문학인들로서 계용묵(소설가), 김동환(시인), 김광섭(시인), 김지하(시인), 안정효(소설가), 정치인들로 윤치영(민주공화당 의장), 전진한(정치인), 안호상(초대 문교부 장관), 김무성(국회의원), 기업 경영가로서 이병철(삼성 창업주), 문국현(전 유한킴벌리 사장), 법조계의 한격만(전 검찰총장), 오세훈(전 서울시장), 사회운동 쪽의 송두율(재독 통일운동가), 예술계의 하길종(영화 감독), 김충현(서예가) 등 제씨가 중동을 거쳐 사회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이다.
내가 처음에 <중동백년사>를 입수해 읽고 싶었던 이유는 100년의 중동 역사에서 기독교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목회자로 한국신학대학 학장을 지낸 김재준 교수와 평신도로 한국기독학생회(IVF) 이사장을 맡아 일하고 있는 강원대 박의범 교수 외에는 '동문사'에 언급된 사람이 없었다. 다음 '동문사'를 발간할 때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영역도 한 챕터 넣어 서술하는 것이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2010년에 발간된 중동 직장 직능 지역별 명부에 기독교 목회자 70 여 명에 천주교 신부와 불교의 스님들까지 합하면 현역이 100 여 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한 부문으로 '동문사'를 채워도 부족하지 않을 비중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은 '동문사'는 잘 알다시피 사람으로 채워나가는 학교의 역사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중동고등학교는 더욱 그렇다. 각 페이지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뒤에 인명 색인이라도 붙였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자주 찾게 되는 책자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100년의 역사를 담아내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음 번 중동학교 역사에 대한 책을 발간할 때에는 어렵겠지만 이 점을 고려하면 좋겠다. 한 사람이 책을 집필할 때와 여러 사람이 집필할 때에 각각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글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통일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중동백년사> '동문사'편에서도 이런 점이 노정되고 있었다. 가령 책을 표시하는 부호와 논문을 표시하는 부호가 상이하다든지, 인용 문헌을 어떤 것은 각주로 또 어떤 것은 인용 단락 말미에 괄호로 처리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인물 서술에 대한 불균형을 지적할 수 있겠다. 가령 전진한이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4쪽의 분량을 할애한 것이라든지 김지하에게도 그에 버금가는 쪽수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의 중복도 중간중간 산견되는데 이런 것은 모두 통일성을 해치는 것들이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위의 몇 가지가 읽는 데 좀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중동백년사>를 집필하고 만들어 낸 분들의 노고는 중동의 역사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 현대사에서 10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기관)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학교가 변함없이 100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국가와 민족에 필요한 동량들을 배출한 학교는 더욱 그렇다. 중동이 금년 107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백농 최규동 선생의 건학과 교육 이념이 어느 정도는 실현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동문들이 하나되어 학교를 사랑하고 동문회에 애정을 갖고 그 마음을 국가 발전으로 승화시킬 때 온전한 중동 정신을 발양(發揚)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방대한 책을 5만 동문 앞에 내놓기 위해 애쓴 <중동백년사> 편찬위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으로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