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고집) 앉은 자리 풀도 안 난다 유래
그 유래대하여 잘 알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모으고도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부족한 글로 올리게 됨을 이해하시면서 봐주세요,
우리나라 성씨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최씨이며 역사상 수많은 인재들로
신라시대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 세 사람이 똑같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명성을 날림으로서 1대 3최라 불려왔으며 특히 문창후 최치원과 같은
대문장가는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의 어느 역사 속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명현으로 도학과 문장은 동양최고의 한문학이며 고려사를 보면 최씨들이 역사를
수놓았으며 서기 1196년 (명종26)ㅡ1258년(고종 45)까지 60여 년간
군벌정치로 한때 최씨왕국을 방불케 했다
충절의 명장 최영은 수많은 국내외침입과 반란이 있을 때마다 격퇴 평정하여
고려의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에 공헌했으며 죽음에 임했어도 끝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충절은 우리 민족의 얼이요 최씨의 특성이다
그 외 고려 때 문신 최유청 최윤의 최유엄 최재 최항 최충 등이 유명했으며
무신으로는 최충헌이 있다
조선시대 때 와서 명신 최명길 양명학의 대가 최석정 학자 최수성 문신 최응현
최항 최만리 최익현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신문학 운동과 국학의 개척자 최만선
항일투사 최재형 동학의 제2교주 최시형 등 많은 최씨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가에 공헌했다
한 씨족의 가문을 가늠하는데는 흔히 문과 급제자 수를 따지고 명문의 척도를
정치적 세력의 성장과 관련시키는 관료적인 조선사회에서 당시 과거제도가
권세가의 농락을 받은 일이 많아 견식과 인격을 겸비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최씨들에게는 벼슬이 그다지 중요시 되지 않았으므로 신라와 고려에서 명성을
날린 최씨가 조선시대 때 와서 의외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경주시 교동에 자리한 최부자집은 12대 만석과 10대진사로 유명하여 문공부가
1969년에 (신라의집)으로 선정하고 길이 보전하기로 했다
만석군 최 준은 이씨조선청백리 정무공 최진립의 11세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 100억원(현대기준)을 보내어 해방후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백범김구선생께서 제일 먼저 만나보고 싶어한 분이 최 준이라고 하였으며
이등박문을 제외한 역대 조선총독들이 모두경주 최 준의 집을 방문하여 당시
문교부장(현 문교부장관)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조선 때 명종 선조 인조 임금은 선현 문창후 최치원은 우리 동방의 이학시조이니
그의 자손은 귀천이나 적서를 막론하고 비록 먼 시골에 사는 사람까지라도
대대로 군역에 동원하지 마라 고 전교하였으며 정종은 태강 서원을 도뢰시킴의
예에 넣지 말고 범하는 수령은 처벌하라 고 전교하였다
이렇게 신라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국난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최씨들이
등장하여 나라에 공하였으며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던 항일투사와 의병 및 근대사회
발전에 공헌한 많은 최씨들의 거룩한 발자취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인
최씨 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서 최씨 (고집) 앉은 자리에 풀도 안난다 라고 유래가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