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폐허의 옛 절터를 거닐다, 보령 성주사지 '
▲ 눈에 뒤덮힌 폐허의 성주사지
겨울 제국의 한복판을
헤매던 1월의 어느 평화로운 날, 충남 예산과 보령 지역을 찾았다. |
|
♠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곳, 허나 지금은 |
|
성주산(聖住山) 남쪽
평지에 포근히 자리를 깐 성주사터는 백제 법왕(法王, 재위 599~600) 때 |
|
|
|
훤칠한 키의 5층석탑
그늘에 자리하여 조금은 초췌해 보이는 이 석등은 조선 초기 것으로 여겨 |
|
▲ 성주사지 5층석탑 - 보물 19호 |
|
금당터 앞에 자리한 5층석탑은
성주사터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존재이다. 금당터 뒤쪽에 있는 |
|
|
|
금당터는 특이하게도
동쪽도 남쪽도 아닌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왜 방향을 그리 정했는지는 |
|
|
|
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2개가 있는데, 위로 올라갈 수록 계단의 폭이 줄어드는 형태를 취하 |
|
|
|
금당터 중앙에 자리한
연화대석은 금당에 봉안했던 불상의 보금자리로 불상과 좌대(座臺)는 전 |
|
|
♠ 성주사지 금당터 주변 |
|
▲ 성주사지 중앙3층석탑 - 보물 20호 |
|
금당터 뒤쪽에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3층석탑 3형제가 서로를 보듬으며 정을 누리고 있다. 이 |
|
|
|
3층석탑 3형제 중
동북쪽에 자리한 동3층석탑은 중앙3층석탑과 비슷한 모습이다. 중앙과 서3층 |
|
|
|
3층석탑 3형제의
둘째라고 할 수 있는 서3층석탑은 중앙/동3층석탑과 비슷한 모습이다. 역시나 |
|
|
|
이 석불은 마치 온몸에
붕대를 둘둘 감은 듯한 우울한 모습으로 얼굴은 거의 타원형이다.
타원 |
|
|
♠
최치원의 문장이 담긴 성주사터 제일의 보물 |
|
강당터 서남쪽에는
성주사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보물이 있다. 바로 낭혜화상탑비이다. 비각 |
|
|
|
비석의 주인공인
낭혜화상 무염(801~888)은 무열왕(武烈王)의 8세손으로 신라 왕족이다. (성은 |
|
|
|
▲
글씨가 선명하게 남은 비신 |
▲ 비각 안에 담긴 낭혜화상탑비 |
|
|
|
* 까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딱 9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상업적 이용은 댓글이나 메일, 전화연락 등으로 반드시 상의바람, 무단 사용은 안됨)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 사용 기기(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따라 글이 이상
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가급적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시기 바람)
* 공개일 - 2017년 2월 16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7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