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로 Ingres (1780~1867)】 "오송빌 백작 부인(Comtesse d'Haussonville)
【앵그로 Dominique Ingres (1780~1867)】 "오송빌 백작 부인(Comtesse d'Haussonville)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대표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오송빌 백작부인(Comtesse d'Haussonville,1845)>
신고전주의는 절대적인 이상미을 추구하는 고전주의로 그리스 조형작품 같은 조화롭고 균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앵그로는 신고전주의적인 틍직에서 더 나아가 그림에 관능미와 우아함을 첨가했다.
오송빌 백작부인은(Comtesse d'Haussonville)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여인을 내밀하고 정교하게 그림으로써 미술사에 손꼽히는 초상화 중 하나다.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오송빌 백작부인은 자유주의적인 작가요 지식인으로서 존경받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감수성과 사색적인 면모를 표현하기 위해 앵그로는 무려 3년의 시간을 투자해 작품을 완성했다.
턱을 살짝 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헬라의 정적이지만 역동적인 조각상의 서있는 듯한 조형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녀는 생각에 잠깃 듯 미소띤 표정으로 도도하리만큼 당당한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에서 돋보이는 눈을 바라보면 거리낌 없이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앵그로는 부인의 눈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렸던가?
앵그로는 회청색 천의 질감을 어찌 그리 사실적으로 표현했던가!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그녀의 붉은 머리끈은 윤기가 흐른다. 벽난로을 덮고 있는 벨벳 소재의 천, 등 촉감이 느껴질 것처럼 보인다.
유행은 지났지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고운 회청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한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며 생각에 빠져있다. 여인의 맑은 피부에 서린 홍조와 총명해 보이는 표정이 여인의 분위기를 더 우아하게 만들어준다. 단정히 빗어 틀어올린 머리를 장식하는 붉은 머리 장식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특별히 화려한 장식 없이도 손가락에 끼워진 터키석 금반지와, 세트를 이루는 팔찌는 여인의 고상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맨틀피스 위에는 꽃과 아름다운 화병, 메모지처럼 보이는 명함들과 오페라용 쌍안경이 얹혀져 있으나 어지럽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의 우아한 취미를 표현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이 비춰진 거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방을 보여주는데, 그로 인해서 온전히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림을 집중해서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손가락으로 턱을 괸 오른손이 거울에 비춰질 수 없는 각도임에도 비춰지고, 왼팔은 지나치게 아래로 내려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는 앵그르의 평면적이고 이상적인 화풍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오송빌 백작 부인으로 알려진 루이즈 드 브로글리(Louise de Broglie)로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전기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낭만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마담 드 스탈의 손녀라고 한다. 이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앵그르는 3년이라는 습작 기간을 거쳤으며, 마침내 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는 프랑스 남부 출신으로18세기 말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밑에서 수학했다. 1801년 로마 대상(Grand Prix de Rome)을 수상하여 1801년부터 1824년까지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고전회화와 르네상스 회화, 특히 이태리 라파엘로의 화풍을 연구했다. 그는 초상화가로서도 천재적인 소묘력과 고전풍의 세련미를 발휘,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했다. 1824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살롱전에 출품한 <루이 13세의 성모에의 서약>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당시 들라크루아가 이끄는 신흥 낭만주의 운동에 대항하여 신고전주의화파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상화, 역사화에 능했고 그리스 조각을 연상케하는 우아한 누드화에서 특히 자신의 기교를 발휘했다. 해부학적 구조를 무시하였지만, 시인 보들레르의 표현처럼 기묘하고 관능적인 작품을 제작한 그의 화풍은 보는 이의 흥미와 아름다움을 여과없이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