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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염화실 인터넷 법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장마중인데도 아침부터 비가 멎고, 땅은 아주 촉촉하게 젖어서 먼지가 한점도 일지 않는 그런 날 이었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범어사에서는 백일 지장기도 중에 고승들 열 분을 모셔서 법문을 열흘마다 한번씩 하는데 오늘 마침 고승법회가 있는 날 이었습니다. 옛날부터, 초기에 포교원장을 오래 지내셨던 초기포교를 개척하신 분이라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아주 말씀도 잘하시고 하는 무진장큰스님이 오셔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직접 듣지는 못했는데, 마침 염화실 가족들도 듣고 올라와서, 이런저런 전해주는 말씀을 들으니 상당히 유익하고 좋은 말씀을 하시더라고 들려줘서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오늘은 법화경 법사공덕 품, 28품 가운데 제19품 법사공덕 품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이 법사공덕품은 앞에서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5종 법사를 뜻하는 것이지요. 법화경을 지니는 사람, 읽는 사람, 외우는 사람, 해설하는 사람, 서사사경 하는 사람, 이 五종법사는 육근이 청정해지는 공덕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五종법사는 법화삼매와 육바라밀을 실천해서 일불승을 지향함으로써 일불승에 나아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좋은 육근을 성취하게 된다고 그랬습니다. 이 내용이 법화경을 수지 독송 해설 서사하는 공덕으로 육근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또 아주 예민해지고,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는 능엄경에도 일부 보이고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인데 일단 경전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열중하고, 다른 어떤 세속적인 말을 듣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부처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법화경만을 열심히 수지 독송 서사 해설 이렇게 하는 것으로 업을 삼고, 이것을 최상의 정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순수하게 그것만을 하고 사는 사람은, 여러 가지 모습이 달라지고, 그 육근을 활용 하는데 있어서, 그 기능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도 틀림없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든지 그 분야에 열심히 하고, 또 마음을 집중 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상상도 못하는 뛰어난 능력과, 어떤 경지를 터득하고 있는 사례들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법화경에서 법화경을 수지 독송 서사 해설하고 법화경만을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삼는 그런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이야기 된 대로, 그와 같은 상상도 못하는 능력과 공덕이 반드시 따르리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六根(육근)의 功德(공덕)을 밝히고 나서 하나하나 眼(안), 耳(이), 鼻(비), 舌(설), 身(신), 意(의) 의 공덕을 해설해 나갑니다.
p,173
제 19 법사공덕품((法使攻德品)
1.육근(六根)의 공덕을 모두 밝히다
1 그 때에 부처님께서 상정진(常精進)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벌써, 많은 보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정진 보살을 지칭을 해서 이야기하는 데는 상당한 의미가 있지요. “아, 常精進(상정진)!” 항상 정진 하는 분! 이런 뜻이지요. 그러니까 법화경과 인연이 되어서, 한두 번 듣고 읽는 정도로 법화경을 인연 삼는 것이 아니라, 常精進(상정진)! 항상 법화경과 정진하고 있는 그런 의미를 벌써 여기의 보살의 이름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늘 이렇게 상징성이 깔려 있습니다
부처님의 이름에서부터 보살의 이름, 어떤 숫자, 또 거기에서 벌어지는 어떻게 보면 우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상징하고 있는 깊은 뜻, 이런 것 들이 다 내면에 깔려있는데, 그것을 참 확연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드러내서 설명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아쉬운 점으로 늘 남습니다.
그나름 대로 과거 스님들부터 해석을 하고 그것을 개발을 하고요. 그래서 좋은 해석서 를 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경전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표현되어지지 않고 밝혀지지 않고 있는 숨은 뜻 들이 많거든요 법화경이... 그래서 경전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 상정진 보살 한 분을 이야기를 하면서, 따라서 모든 경전에 상징하고 있는 뜻들을 시원스럽게 다 드러낼 수 있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화경(法華經)을 받아 지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쓴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눈의 팔백 공덕과 귀의 천이백 공덕과 코의 팔백 공덕과 혀의 천이백 공덕과 몸의 팔백 공덕과 의식의 천이백 공덕을 얻을 것이니라. 이러한 공덕으로 육근(六根)을 장엄하여 모두 청정하리라.
예를 들어서 눈, ‘눈에는 팔백 공덕’이 있다. 또 ‘귀에는 천이백 공덕’이 있다. 이 숫자가 능엄경에도 나오는 숫자이기는 하는데 글쎄요, 이것을 옛날 조사스님들도 간혹 이리저리 풀이를 했습니다만, 정확한 뜻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눈은 팔백 공덕’이고, ‘귀는 천이백 공덕’이냐? 이것을, 눈은 보는 방향이 사실은 앞은 볼 수 있지만 뒤는 볼 수 없지요. 그래봐야 전체를 다 본다고 할 때 천이백으로 잡거든요.
귀는 뒤에서 말하나, 앞에서 말하나, 왼쪽에서 말하나, 오른쪽에서 말하나 다 들을 수 있으니까 천이백 공덕이다. 천이백은 만점짜리 공덕을 뜻하는 것이라면, ‘눈은 팔백 공덕이다’라고 했는데, 사실은 앞만 보고 뒤는 못 본다고 하면 6백밖에 안되지요 사실은...그러나 고개를 조금 돌리면 뒤는 완전히 못 본다 하더라도, 그래도 반 이상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팔백 공덕을 합리화시켜서 해석을 합니다만, 이것이 맞는 해석 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지요. 눈 같은 경우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데, 그 외에 귀도 1200 이라고 만점공덕 이라고 보았을 때, 귀의 공덕을 1200 공덕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고 하고요, 그 다음에 ‘코의 팔백 공덕’ ‘혀의 천이백 공덕’ ‘몸의 팔백 공덕’ ‘의식의 천이백 공덕’ 이런 것들도 경문을 통해서 이해가 되고 문제가 풀릴런지 주시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밝히지요.
2,눈의 공덕을 밝히다
(1) 장항(長行)
2 이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가 낳아준 청정한 육안(肉眼)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안과 밖에 있는 산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며, 아래로 아비지옥(阿鼻地獄)과 위로 유정천(有頂天)을 보느니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을 보고, 업(業)의 인연과 과보로 태어나는 곳을 모두 보고 다 아느니라."
정말 이런 능력을 우리는 부정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여기서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 서사 해설하는 일이지요. 여기에 아주 일심으로, 아주 일심으로 집중하면 눈으로써 肉眼(육안)이 淸淨(청정)해서, 부모가 낳아준 육안이 청정해서 라고 했는데, 눈을 감고도 볼 거예요 아마... 육안 하고 관계없이 삼천대천세계를 보고, 아비지옥도 보고 유정천도 보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이렇게 척 보면, 그 사람의 심성도 알고 그 사람의 장점도 알고 단점도 알고, 무슨 병이 있는지 어디가 탈났는지 이런 것들도, 환히 알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제가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를 설명을 할 때, 그대로 정직하게 해석을 하면, 모든 존재가 우리 마음을 통해서 인식되어 진다라고, 이렇게 일차적으로 일체유심조를 해석을 하지요. 그러나 造(조) 字(자)가 만든다는 뜻이거든요. 만든다. 그렇다면 현재에 존재하는 것만을 만들었다라고, 우리 미음이 만들었다라고 그렇게 한다면, 그러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만들어야 되지요. 왜 존재하는 것만 만들었다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만들어내지 못하느냐?
정말 일체유심조 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만들어야 됩니다. 그것이 가능한거예요. 얼마든지 가능 합니다. 쉬운 일은 물론 아니지요.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우리 육신을 두고 말할 때는, 意生身(의생신) 또는 意成身(의성신)이라고 그렇게 하고, 또 器世間(기세간), 우리 육신 이 외에, 내(我아)육신 외에 다른 사람들의 육신 다른 세계, 그것을 器世間(기세간) 이렇게 하는데, 그 기세간은 意成天(의성천), 意成世間(의성세간)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意識(의식)이 만든 세상! 의식이 만든 하늘! 이렇게 부를 수가 있는데. 그렇게 부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일체유심조가 완벽해지는 것이지요.
존재하는 것만 일체유심조다 라고 그거야 누군들 말 못합니까? 우리 의식을 통해서 인식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역사라 하더라도, 내가 인식 하는 그 순간, 그야말로 一念卽心無量劫(일념즉심무량겁) 이라고, 1300년이 된 범어사도 내가 인식 하는 이 순간에 그 1300년 된 역사까지도 바로 이 순간에 만들어지고 창조 되어진다고 그렇게 일반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정말 이 마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새롭게 만들 수도 있어야 된다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법화경을 서사 수지 독송 해설 이것에 아주 온 힘을 다 기울였을 때 눈으로써 이러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한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이야기 한 것도 아니고요. 얼마든지 사실로 가능한 일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구절만 사실은 제대로 이해를 하면 다른 밑의 것은 똑같이 이해하는 방식은 같습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의 의식차이가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날까요. 한번 우리가 계산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한 50년 전과 지금과의 세상의 변화와 복잡성을 비교해 본다고 하더라도, 50년 전에... 글쎄요. 도시가 아니면 차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도저히 차를 볼 수가 없었지요. 또 시골에, 일제시대에 전기시설을 해서 전기가 잠깐 들어왔다가 전기선이 끊어져 버린 그런 일도 있었지만, 대개 50년 전에 시골에서는 전기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절에서 50년까지는 채 안되는데, 40년, 45년 그 무렵에 사찰에 전기를 넣는 불사를 한다고, 그때는 전기 넣는 불사가 큰 불사였어요. 그래서 제가 저기 설악산 갔을 때, 그 전기 공사를 하는데 권선책을 읽고, 그 勸善文의 글이 근사해서 그 때 “야, 글 잘 썼다!” 싶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기껏해야 한 40년 전? 그 무렵이었거든요. 4, 50년 전의 그 당시 상황과 오늘날의 시대의 상황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이 60년대 초하고 지금하고 2,000배 늘어났다고 그러지요. 수출이 2,000배 늘어났다면, 그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런데 사회상의 변화가 얼마나 변화 했는가? 2,000배, 20,000배, 4,50년 전과 비교한다면, 몇 만 배가 변화했을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의식은 순수했을 것이고, 덜 산만했을 것입니다. 무엇에 집중하면 그래도 집중이 잘되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만약에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오늘날 사람들의 그 많은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놓고, 싫든 좋든 간에 우리 머리 속에는 그 수많은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 100년 전쯤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 당시 사회에 대한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손 치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만분의 일 이 될까 말까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만분의 일 이 될까 말까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과 만 배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아주 복잡다다 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마음을 집중 했을 때 그 집중력이 누가 효과가 더 있겠는가? 이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비교가 안 되지요.
그렇다면,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한 200년, 300년 전, 400년, 500년 전으로 이렇게 거슬러 올라갔을 때, 그 때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그 정신력, 또 정신으로써의 어떤 정진의 집중력, 여기경전에서 말하는 서사 수지 독송하는 문제에 집중 했던지, 화두를 드는데 집중 했던지, 어떤 관법을 하는데 집중 했던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정신력으로 집중해서, 어떤 일을 이룰려고 했을 때, 거기에 따르는 성과가 대단하다는 것이지요.
소설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마는, 사명대사 정도만 하더라도, 사명대사 정도만 하더라도 어떻습니까. 일본에 갔을 때 방에 일본사람들이 불을 많이 지펴서 방을 아주 절절끓게, 아주 뜨겁게 그야말로 못 견디도록 그렇게 뜨겁게 했는데, 사명대사는 그 사람들의 속심을 알고는, 아침에 나올 때 수염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고 덜덜 떨면서 이불을 껴안고는 떨면서 ‘왜 이렇게 대접을 하느냐, 사신을 왜 불 도 안 때주고 방을 이렇게 춥게 만들어서 이런 푸대접을 하느냐’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대사정도만 하더라도 한순간에 마음자세를 딱 가지면, 아무리 뜨겁게 해도, 아주 추운 환경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거예요.
50년 전에, 컴퓨터를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어요?
100년 전에, 비행기가 이렇게 미국으로 어디로 그냥 막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것을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습니까? 200년, 300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도저히 이것은 상상할 수 가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람들은 200년 전, 300년 전의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상상 못합니다. 이해를 못해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이해도 못합니다.
옛날의 기록들을, 경전의 내용이라든지 다른 기록들을 보면, 이건 소설이고 전설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자기의 잣대로 재는 것 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이 시대의 사람들의 삶을 전혀 이해 못하듯이, 이 시대 사람들도 옛날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을 미루어서, 경전의 이야기나 옛날 사람들이 정신력에 대해서 좀 이해하는 그런 마음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의 법화경 법사공덕 품의 내용이, 눈의 공덕을 밝히는데, 부모가 낳아준 이 肉眼(육안)으로 저~아비지옥까지 유정천까지, 뭐 아비지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유정천 이라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화~ㄴ히 다~, 마음만 딱 보내면, 바로 어디까지라도 내 뜻대로 볼 수 있다는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보고 ‘업의 인연과 과보로 태어나는 곳을 모두 보고 다 아느니라.’ 이렇게 했어요.
사람을 척 보고 어디에 무슨 병이 있고, 무엇 때문에 그 병은 걸렸고, 이런 것 까지도 화~ㄴ히 알 수 있는 것, 이것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00년 전 사람에게 지금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텔레비젼이나, 전화나, 컴퓨터나, 방송이나,이런 것 들을 이야기 했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100년 전, 200년 전 사람들이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지금 사람들의 이 산만한 정신을 가지고, 옛날 사람들의 그 순수하고 집중력 강한 그런 시대의 사람들의 정신 능력과 마음 자세를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의 이런 내용들을 부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하는 이런 이야기이지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귀의 공덕이 됐든지, 혀의 공덕이 됐든지, 뭐 어떤 공덕이 됐든지, 전부 납득이 가는 내용이 되겠지요. 게송으로 다시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2) 게송(偈頌)
3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법화경을 해설한다면 그 공덕을 그대가 들어라. 이 사람은 훌륭한 눈의 팔백 공덕을 얻으리니 이렇게 장엄 하였으므로 그 눈이 매우 청정하리라. 부모가 낳아준 눈으로써 삼천대천세계의 안팎에 있는 미루산과 수미산과 철위산을 모두 보고 그 밖의 여러 산과 숲과 큰 바다와 강과 시내와 아래로는 아비지옥과 위로는 유정천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중생들을 모두 다 보게 되나니 천안통(天眼通)이 없어도 육안으로 보는 힘이 이러 하니라."
‘천안통이 설사 없어도 육안으로 보는 힘이 이와 같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법화경공부 한다는 것이, 사실 공부하는 것입니까. 머리 속에는 온갖 잡다한 정보가 꽉 들어있어서 산만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지요. 저기 저 신문지 같지요. 신문지는 그래도 질서정연 하게 써져 있지만, 우리들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온갖 잡다한 것,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 그 좋지 아니한 것, 이런 것들이 아주 꽈~ㄱ, 그야말로 쓰레기를 산처럼 모아놓은 쓰레기장, 난지도와 거의 다를 바가 없지요.
우리가 그런 상태에서 정진을 한들, 그것이 제대로 될 것이며, 법화경을 읽고 한들 그런 공덕이 쉽게 그렇게 나올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쉽게 나오지가 않거든요.
여기에 표현한 대로의 공덕이 나오려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말 과거 아무것도 그런 잡다한 정보가 없을 때 수~ㄴ수한 정신, 순수한 정신으로 마음을 집중해서 읽고 쓰고 외우고하는 그런 사람들, 하루에 책 몇 권을 외웠다고 하니까요. 그것이 결코 전설이 아니고 보는 대로 외우지요. 보는 대로...
잡다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순수 합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읽으면, 하나도 놓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특별히 뛰어난 천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거이 그러리라는 믿음이 가게 됩니다.
우리가 어릴 때, 그러니까 50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비교해본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50년 전에 얼마나 순수했고 단순했습니까. 삶이 얼마나 단순했습니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단순했거든요. 그것을 비춰서 우리가 한 500년 전 이다, 300년 전 이다, 1000년 전 이다, 이렇게 생각 했을 때, 그때 사람들의 정신의 세계라고 하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p,175
3.귀의 공덕을 밝히다
(1) 장항(長行)
4 "또 상정진(常精進)보살이여,- 상 정진 보살입니다. 늘 정진하는, 늘 정진한다고 하는 말 속에는 시간적으로도 늘 이지만, 공간적으로도 다른 아무런 잡다한 생각이 없는 거기에 먼지 하나도 개입되지 아니한 정진! 이것이 상 정진 입니다.
생각할 것 다 하고, 살필 것 다 살피고, 이것저것 다 하나도 안 놓지면서, 그러면서 관세음보살 백날 불러봤자 거기에 무슨 영험이 있겠어요?
정말 상 정진! 시간적으로도 끊이지 않고, 공간적으로도 온 우주가 바늘 끝 하나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내세계가 우주 化(화) 되어버린! 내 정신세계가 完全(완전)히 우주와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精進(정진)! 그것이 常 精進(상 정진)이지요. 시간적으로 恒常(항상)하고, 공간적으로 항상 하는 그런 정진! 우리가 그렇게 이해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또 상정진(常精進)보살이여,) 선남자. 선 여인이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어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쓴다 면 귀의 일천 이백 공덕을 얻으리라.
이 청정한 귀로 삼천대천세계에서 아래로 아비지옥과 위 로 유정천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있는 가지가지 말과 음성을 들으리라.
코끼리소리. 말소리. 소소리. 수레소리. 우는소리. 수심 하는 소리. 소라소리. 북소리. 종소리. 방울소리. 웃는 소리. 말하는 소리. 남자의 소리. 여인의 소리. 동자의 소리. 동녀의 소리. 법다운 소리. 법답지 않은 소리. 괴로운 소리. 즐거운 소리며, 범부의 소리. 성인의 소리. 기쁜 소리. 기쁘지 않은 소리. 하늘의 소리. 용의소리. 야차의 소리 건달바의 소리. 아수라의 소리. 가루라의 소리. 긴나라의 소리. 마후라가의 소리. 물소리. 불 소리. 바람소리. 지옥소리. 축생의 소리. 아귀의 소리. 비구의 소리. 비구니의 소리. 성문의 소리. 벽지불의 소리. 보살의 소리. 부처님의 소리를 다 들으리라.
마음 집중하면 정말 아무 잡념 없이 순수하게 법화경에 정진한 그런 사람의 정신세계는 얼마든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으로 말하자면,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안팎에 있는 여러 가지 소리들을 천이통(天耳通)을 얻지 않고도 부모가 낳아준 청정한 보통의 귀로써 모두 듣고 알 것이며, 이렇게 여러 가지 음성을 분별하여도 귀가 상하지 않느니라."
그런 소리를 다 들어도 귀가 하나도 안 상한다 이 말이지요. 그만한 능력이 갖추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수행생활, 깨달음, 이런 것을 이론은 고도로 발달해서 모르는 것이 없지요. 그런데 그저 그렇게 생활하고 있을 뿐이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기도면 기도생활이고, 참선은 참선생활이고, 경전은 그저 경전생활이고, 그저 생활하는 정도일 뿐이지, 여기에서 밝히고 있는 이런 정도의 어떤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로 그렇게 집중력 있게 공부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은...
그 대신에 또,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사니까 얼마나 많은 것을 수용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압니까. 컴퓨터 할줄 알지요. 운전 할줄 알지요. T.V 볼 줄 알지요. 라디오 들을 줄 알지요. 100년 전에 없던 온갖 모든 것 들을 전부 우리가, 다 이해하고 살지 않습니까?
100년 전, 200년 전에 없던 이 세상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바로 다 보고 듣고 이해하면서 산다고요. 그것이 우리들 의식 속에 제 팔식 아뢰야식 속에 꽈~ㄱ 박혀 있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아는 것은 많고 분별력은 뛰어난 데, 뭔가 집중하려고 하는 그 힘은 도대체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산만 할대로 산만 하지요. 아이들만 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른도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정신이 산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거기는 거기대로 좋은 점이 충분히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우리가 그것을 활용하고 발견해내고, 그것을 발견해서 활용해야 되겠지요.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고 우리의 몫입니다.
(2)게송(偈頌)
5 이 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 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낳아준 귀는 청정하고 더럽지 않아 이러한 보통의 귀로써 삼천대천세계 의 소리를 듣느니라. 코끼리. 말. 수레. 소의 소리와 종. 풍경. 소라. 북소리 와 거문고. 비파. 젓대 소리와 퉁소와 피리에서 나는 소리와 맑고도 좋은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도 집착이 없고 무수한 여러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또 모두 이해하느니라. 또 여러 하늘의 소리와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남자의 소리. 여자의 소리와 동자. 동녀의 소리도 듣느니라. 험한 산천과 골짜기에서 나는 가릉빈가의 소리도 듣고 명명(命命)새와 여러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도 듣느니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소리와 갖가지 고생하는 소리와 아귀가 기갈에 시달리어 음식을 구하는 소리도 듣느니라. 여러 아수라들이 큰 바닷가에 있으며 서로를 말하는 때에 큰 음 성으로 떠드는 소리도 듣느니라.
이 법을 말하는 이가 여기에 편안히 있어서 그 여러 가지 음성을 들어도 귀가 손상되지 않느니라.
6 시방의 여러 세계에서 새와 짐승들을 부르는 소리를 법 을 말하는 그 이 여기서 모두 듣느니라. 여러 범천(梵天)의 위에 있는 광음천(光音天)과 변정천(遍淨天), 유정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말과 그 음성을 법사가 여기 있으면서 모두 다 듣느니라.
모든 비구 대중과 비구니들이 이 경을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을 법사가 여기 있으면서 모두 다 듣느니라.
이 법화경에서 말하는 법사의 법화경공부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공부능력이라고 봐야겠지요.
7 또 여러 보살들이 이 경을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하거 나 경을 편찬하고 그 뜻을 해석하는 이런 여러 가지 음성을 모두 다 듣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거룩하신 세존이 여러 중생들을 교화 하 느 라고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미묘한 법을 설하시는 말씀을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사람은 모두 다 듣고 아느니라. 삼천대천세계의 안에서 나고 밖에서 나는 음성과 아래로는 아비지옥에서 위로는 색구경천 까지 그 많은 음성들을 모두 들어도 귀는 조금도 상하지 않고 그 귀가 총명하여서 모두 분별해 아느니라.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사람은 비록 천이통(天耳通)못 얻었으나 부모가 낳아준 귀의 그 공덕이 이러하니라."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앞에서 누차 설명한 그 내용과 똑 같지요. 지금도 불가능 한 것은 결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관념 다 끊고, 모든 산란 심 다 끊고 정말 한 가지
일에 법화경 이라면 법화경을 공부하는 일에 집중 하거나,
기도라면 기도에 집중하거나, 화두라면 화두에 딱 집중해서,
정말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딱 화두 들면,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쭈~~욱 연결 되어서 지속되는, 기도든 무엇이든 그렇게 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치가 그렇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그러므로 해서 이 경전의 이야기가 결코 허황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법화경공부 조금 특이 하지요? 그동안 공부해왔던 내용하고는 조금 특이하지만, 진정한 법사의 뛰어난 공덕은 이와 같다는 내용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록: 수경심, 정리:대원성.
첫댓글 감사 드립니다._()()()_ 미륵골님! 대단히 감사 합니다. 목차를 쉽게 찾을 수 있게 정리해 주시고, 사이 사이 녹취록을 올려 주셔서 법화경 공부하는데 크게 도움믈 주셨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공부 하겠습니다. 나무묘법연화경.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감사합니다._()()()_
시간적으로도 끊이지 않고, 공간적으로도 온 우주가 바늘 끝 하나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내세계가 우주 化(화) 되어버린! 내 정신세계가 完全(완전)히 우주와 하나가 되어 버린 그런 精進(정진)! 그것이 常 精進...나무묘법연화경
부처님의 이름에서부터 보살의 이름, 어떤 숫자, 또 거기에서 벌어지는 어떻게 보면 우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상징하고 있는 깊은 뜻, 이런 것 들이 다 내면에 깔려있는데, 그것을 참 확연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드러내서 설명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아쉬운 점으로 늘 남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