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지옥(不信地獄)
가끔 지하철을 타고가다가 보면 차안에까지 들어와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참말로 열정이 대단하구나 싶지만 조금도 그들이 존경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복음전파가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고, 또한 전교활동 자체는 흉을 볼 일이 아니지만 지하철 객차 안에까지 들어와서 조용히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전도를 해야 하나 싶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더구나 오늘처럼 빨간 글씨로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고 써서 붙이고 조용한 차중에 들어와서 갑자기 “회개하시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는 데는 정말 짜증을 넘어 내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눌러 참았다.
성미 같아서는 그 아주머니를 붙잡고 “성경 어느 구절에 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소?”하고 묻고 싶었지만 오만상을 찡그리면서도 가만히 참고 있는 다른 이들을 생각해서 다시 참았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식사 전(前) 기도'를 눈을 감고 회상함으로서 불쑥 치밀었던 내 마음을 다스리며 기분전환을 했다.
지난달 20일 경, 우리 구에 있는 감리교 태화복지법인산하 사회복지관 운영위원회에 참석했던 날이었다.
그날은 00사회복지관의 2008년도 결산과 2009년도 예산을 심의하던 날이었는데 감리교 태화복지재단에서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사회복지관이기에 운영위원들은 대부분 교인들이었다. 그 중에는 목사님이 세 분, 장로님이 두 분, 권사, 집사님들이시고 타교인은 오로지 지역주민대표 몫으로 배정된 운영위원인 나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천주교신자인 나는 운영위원회 회의 때마다 목사님이 진행하는 시작기도며 찬송가 성경봉독 그리고 설교로 이어지는 시작예배에 참가하여 전혀 거부감이 없이 가사만 약간 다를 뿐인 찬송가를 소리 높여 함께 부르곤 했고, 십자성호만 그었을 뿐이지 기도 또한 다른 이들과 늘 함께 하였다.
가끔 운영위원회 위원장이신 당회장목사님께서 내게 기도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시기는 했어도 나는 늘 사양을 했었는데, 그날 회의가 끝나고 나서 점심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운영위원장님께서 또 나에게
“권위원님께서 오늘은 식사 전 기도를 좀 해 주시지요”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 며칠 전에 TV에서 보았던 장면이 생각나기에 싱긋이 웃으며
“좋습니다. 위원장님께서 번번이 저더러 기도를 하라고 하시니 오늘은 그럼 저가 한번 하지요.”하면서 그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다.
“얼마 전에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하루는 TV를 보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동성당에 문상을 와서 방송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스피치를 하는데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저가 청와대 있을 때 조찬기도회를 매달 했거든요. 한번은 김수환추기경님을 그 자리에 모셔서 식사 전 기도를 좀 해 달라 캤더니 그짝(쪽) 기도는 참 짧데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식사 전 기도는 꼭 김추기경님 보고 하시라고 캣심니더’ 그러더군요. 오늘은 저가 바로 그 짧다는 천주교식 식사전 기도로 한번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기도 합시다.”
하고는 모두 고개를 숙인 후, 내가 목소리를 내어 식사 전 기도를 했다.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 집사님도 모두 한 목소리로 ‘아멘!’을 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데 감히 ‘아멘’이라고 안 할 사람이 그 자리에 누가 있겠는가......,
다들 ‘아멘!’을 해놓고 보니 역시 기도가 너무 짧아서 이상했든가 서로가 어리둥절하여 바라보다가 하하하 웃음으로 식사 전 기도를 끝냈다.
(나는 다만 천주교식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하는 식사 전 기도의 끝부분 ‘비나이다’만을 ‘기도하옵나이다’로만 바꾸었을 뿐이다)
운영위원장이신 당회장 목사님께서
“그쪽 기도가 역시 짧네요. 더구나 오늘은 회의가 너무 길어져서 점심이 늦어 배가 고픈데 권위원님이 하신 짧은 기도가 훨씬 좋네요.”하시면서 약간은 좀 개면적어 하는 나를 배려하시는 발언을 하셔서 더욱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점심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남의 종교를 비방하는 사람, 또는 불상이나 성모상에 경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나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단군상의 목을 잘라 부셔놓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남의 성당 담을 타고 안으로 들어와 하얀 대리석 성모상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리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일까? 천만에.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 자체이신 야훼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아니라 단지 광신자, 즉 정신병자일 뿐이다. 타교인에게 증오심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천국에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보다 오히려
“오늘처럼 회의가 길어져서 점심이 늦어 배가 고픈데 기도가 짧아서 좋네요.”하시는 말씀으로 타교인을 배려하시는 그런 분이 심판날에 천국에 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