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군대에 의해서 부모형제를 잃고 고향을 떠나온 소녀 '오다 줄리아'- 그녀는 규슈(九州) 히고국 우토(宇土)의 크리스천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그의 부인 '쥬스타'의 양녀(養女)가 되어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성장해 간다. 그러나, 어린 시절 조선에서 겪었던 전화(戰禍)의 기억을 가슴 속 깊이 묻고 있다.>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 극단(와라비 座)이 '오다 줄리아'를 뮤지컬로 환생시켰다. 10월 1일 구마모토 현 우토 시(市)에서 규슈 순회공연이 시작된 뮤지컬이 지난 24일 쓰시마(對馬島)에서 펼쳐졌다. 이유인즉, 쓰시마가 '오다 줄리아'가 일본에 끌려갈 당시 잠시 머물렀던 곳이자, 그녀의 양부(養父)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관련이 많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중간 거점으로써 조선 침략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쓰시마 도주(對馬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 1568-1615)'가 '고니시'의 사위이고, '고니시 마리아'가 딸이다.
'전국(戰國)의 시대를 살아남아 꽃을 피운 늠름한 여인!'
필자가 관람한 뮤지컬 <줄리아 오다>는 쓰시마의 중심지역인 이즈하라(巖原)의 '쓰시마시 교류센터'에서 오후 7시 공연으로 예고돼 있었다. 쇼핑센터 몇 곳에 포스터가 붙어 있을 뿐 거리에 현수막도 걸려있지 않았다.
"5시 반부터 관객들이 오셔서 기다립니다. '오다 줄리아'에 대한 관심도가 높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오다 줄리아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선 관객들의 모습
와라비 좌(座) 극단 '이다 히사에(井田 尙江)'씨의 말이다. 그녀의 말 그대로 6시가 조금 지나자 관객들의 줄이 공연장의 입구를 가득 메웠다. 총 700석을 갖춘 공연장은 2층을 개방하지 않고 1층(500석)만 열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줄은 필수. 본토와 150km나 떨어진 작은 섬 쓰시마도 일본임에 틀림없었다. 필자도 일본인들과 함께 줄을 섰다. 인파에 밀려 당초보다 10분을 앞당겨서 6시 20분부터 입장을 시작했다. 관객들은 상기된 얼굴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역사의 거친 파도를 넘어야 했던 그녀가 바랐던 것은?'
막(幕)이 오르자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일상의 낭만적인 파도 소리가 아닌 격랑(激浪)이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13명의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흔들었다. 모두 하얀 소복 차림이었다.
"줄리아! 오다아! 오다아!"
"줄리아! 오다아! 오다아!"
"이것은 우리들의 이야기로다."
공연의 서막
뮤지컬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줄리아'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부각시켰다. 특히, '줄리아'가 약재(藥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대목이 특이했다.
"어머니! 이 풀(草)을 보세요."
"아! 잘도 찾아냈구나."
"어머니, 이 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호장(虎杖: 잠제풀)이라는 것이다. 생명력이 아주 강하지. 상처를 낫게 하고, 병도 치료한단다."
오다 줄리아와 양(養) 어머니 고니시 부인
'유키나가'가 설립한 시약원(施藥院: 궁핍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하는 시설)일을 거들게 된 '오다 줄리아'는 가난해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돕는다.
"우리와 출생 신분이 다른 조센징이다."
"신분에 조선, 일본이 따로 있나요? 사람은 다 같은 존재입니다."
'줄리아'는 조선인이라고 핍박받는 한 청년과 친구가 되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선인 남매를 돕는다. 공연장은 침묵의 도가니- 조선인 청년과 나란히 앉아서 부르는 노래가 눈물겨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로구나.
여기 살랑거리는 봄 꽃,
여기 살랑거리는 봄 꽃,
그리운 고향은 어느 곳일까?"
고니시 유키나가(전)와 오다 줄리아(후)
이윽고 싸움터로 나가는 '유키나가'는 "싸움이 없는 바다의 저 편의 나라들과의 교역의 꿈"을 강조하면서, 무사와 이상의 사이에서 고민한다. '유키나가'의 뜻에 따라 '오다 줄리아'는 <사는 것의 의미=사랑>을 터득하고 '양(養) 아버지의 소원을 계승하면서 살리라' 결심한다.
'인간의 삶은 어디에 근본을 두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깊고 깊은 사랑이리라.'
'히데요시(秀吉)'의 편에 선 '유키나가'는 1600년 10월 21일 일본 중부의 기후 현의 '세키가하라(原)'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군대에 패해 죽음을 당한다. 일본의 법대로라면 그가 할복(腹切)을 해야 하나, 크리스천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거부한다. '유키나가'의 처형과 동시에 집안은 붕비박산(風飛雹山)-.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오다 줄리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시녀로 전락한다. 새로운 고난의 서막이다.
"줄리아! 넌 살아갈 가치가 없다."
"줄리아! 넌 무슨 이유로 이렇게 사니?"
'줄리아'는 궁(宮) 안의 측실 시녀들로부터 각종 야유와 굴욕을 당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크리스천의 본분을 지켜나가면서 굿굿히 살아간다.
이에야스(家康)와 당당히 맞서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와 오다 줄리아-쓰러진 조선인 청년을 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오다 줄리아'의 미모와 재기(才氣)에 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측실이 되어 달라'고 청한다.
"기리스탄(크리스천)에서 빠져 나와라! 나의 측실이 되어라."
"싫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꼴도 보기 싫다. 저 아이를 일본 밖의 섬 오오시마(大島)에 유배시켜라."
2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하던 공연장의 침묵이 일시에 깨진 것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여인상 조명해
공연장 밖으로 나오자 '오다 줄리아'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관련 자료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오타(大田)'라는 60세 정도의 여인은 "너무나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쓰시마 사람으로서 '고니시 유키나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줄리아 오다'에 대해서는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조선 여인입니다"면서 "실제로 '이에야스'가 '줄리아'를 오오시마(大島)에 유배 보냈나요?" 필자에게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태평양 한 복판에 있는 이즈제도의 오오시마로 보내졌다가 최종적으로 고즈시마(神津島)에 유배됐고, 거기에서 약초를 캐서 섬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그 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필자의 말을 듣던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물었다.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뭐라고요? 한국의 서울에서요?"
쓰시마 시청에서 필자의 팔에 채워준 보라색 완장 때문이다. 완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2층 공연장 중앙에서 마음껏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고,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도 사전 동의 없이 수시로 가능했다. 비공개 리허설 때는 더욱 자유로웠다. 쓰시마에서 고급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시마모토 미호코(島本 美穗子)'씨는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이 지역과 관계가 있는 스토리라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딸 '마리아'의 신사(神社)도 이곳에 있습니다. 저는 공연 포스터를 보고 일찍이 표를 예매했습니다. 저의 친구들도 많이 왔습니다."
관객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많았다. 드물게 중학생도 있었다. 한 중학생은 공연을 본 소감에 대해
"배우들의 노래와 춤이 멋이 있었다"고 했다. 서로가 관심 대상이 다른 것이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스즈키 히가시(鈴木 Higashi)'씨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오다 줄리아의 살아온 과정과 인간미 중심으로 조명했다"고 했다. 그는 또 "어려운 시대에 슬픔에 빠지지 않고 용기를 보여준 주인공 '오다 줄리아'가 키운 꽃의 관점에서 들여다봤다"면서 "양국 관계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스즈키 씨는 한국 공연에 대한 의욕도 나타냈다.
그렇다. 민간인 차원에서 보면 한일 관계는 더 없이 가까운 존재다. 한일간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솔로먼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다 줄리아의 내면을 보이려고 땀 흘려
주인공 오다 줄리아 역의 배우우스이 료코 씨
'오다 줄리아' 역(役)을 맡은 주연 배우 '우스이 료코(碓井 凉子)'씨는 약간은 지친 모습으로 필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답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오다 줄리아'의 역할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숭고하고, 고결한 그녀의 내면을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수차례의 공연을 했지만, 제 스스로 그 분의 몇 분의 일, 아니 몇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뿐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인 '쥬스타'를 시작으로 1인 4역을 소화해 낸 노련한 배우 '마루야마 유코(丸山 有子)'씨는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고니시 부인 쥬스타 역의 마루야마 유코 씨
"지난 7월 대본을 받아들고 처음으로 '오다 줄리아'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400여 년 전의 시대에 이토록 고결하고 아름다운 조선 여인이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와라비 좌(座) 극단 요원들은 "이날 밤 자정까지 뒤처리를 하고 다음날 아침 8시 페리로 후쿠오카로 돌아간다"고 했다. 26일 나가사키(長崎)에서의 공연을 위해서다. 400년이 지난 오늘도 이토록 일본인들이 '오다 줄리아'에 매료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다 줄리아'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세운 신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섬 쓰시마에서 뮤지컬로 환생한 조선의 꽃 '오다 줄리아!' 영원히 시들지 않고 우리 곁에 피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