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사실 누락ㆍ잘못 서술..’역사교육 학술회의’
내년부터 도입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잘못 서술되거나 누락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21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에서 한국역사교육학회와 한국역사연구회 등이 공동 주최한 ’역사교육의 위기와 검정 한국사 교과서’ 학술회의에서 현대사 부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작은 분량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다”며 내용 부실 문제를 지적했다.
박 교수는 “6종 검정 교과서의 현대사 분량은 대부분 80∼100쪽인데 국제정세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북한까지 담고 있어 이전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내용이 부실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을 중심으로 다루다 보니 특정 시기의 상황에 대한 왜곡된 서술이 나타나고 개략적 서술로 내용이 꼼꼼하지 못할 뿐 아니라 소제목이 본문 내용이나 당시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지학사 교과서의 경우 1948∼1950년을 ’자유시장 경제의 확립’이라고 했지만 기획처의 물동계획, 쌀 수집 등이 이뤄진 이 시기의 경제체제는 자유시장 확립과는 관계가 없고 명백한 통제경제라는 것이다.
북한과 국제정세 분야에 대한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대부분 교과서가 3∼5쪽뿐인 북한 관련 부분에 60년이 넘는 역사를 기술했고 국제정세도 10여쪽 안에 냉전과 탈냉전의 전체 역사가 서술돼 있다는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소련군정이 제목에 등장하고(삼화, 304쪽), 모든 교과서가 1970년대를 냉전의 완화로, 1990년대를 냉전의 붕괴로 서술함으로써 1990년대 과정이 1970년대부터 연결된 듯한 인상을 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비상의 교과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동서 간의 갈등,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980년대 신냉전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냉전의 핵심인 미사일 경쟁은 어느 교과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임시정부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제헌헌법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역사적 법통을 계승한 민주공화국임을 밝혔다’(미래, 355쪽)거나, 다국적군 소속이었던 이라크 파병을 ’평화유지군’(삼화, 391쪽)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므로 울릉도만 기록돼 있으면 독도는 자동으로 한국 영토로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법문사, 347쪽)는 내용도 지적을 받았다.
전근대 부분에 대한 발표에 나선 윤재운 대구대 교수는 “새 교육과정은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해 특정 과목을 특정 학기에 몰아 수업하고 학교자율로 교육과정을 20% 범위 안에서 증감할 수 있도록 해 한국사 교과서는 선택이 안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새 한국사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근현대사 부분과 서술체제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며 “Ⅲ단원인 조선후기부터는 세계사와의 관련을 강조하지만 Ⅰ,Ⅱ단원에는 해당 내용이 전혀 없고 지나치게 정치사 위주로 서술돼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산업기술대 서영희 교수는 개항기 부분과 관련해 “너무 많은 근대사 내용을 담고 있고 외워야 할 ’사실’도 지나치게 많아 더 많은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제강점기 부분 분석에서 “대부분 교과서가 간도와 만주 문제 서술에서 일제의 침략과 영토 상실을 강조하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 땅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국수주의적 인식만 심어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장 연구위원은 “현 정부 들어 보수화된 사회분위기와 교육부의 교육과정 등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이나 진보적 대중운동에 대한 서술이 거의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며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으며 노동자들의 생활상, 노동운동사 등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전병철 세광고 교사는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사실상 한국사를 안 배우고 졸업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 교과서마저 졸속으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연합
■ 관련학회들 검토 결과 논의
“새 한국사 교과서는 전근대사 서술이 대폭 축소된 데다 전근대 부분과 근현대사 부분의 체제가 일치하지 않는다.”(윤재운 대구대 교수), “현대사 서술에서는 너무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박태균 서울대 교수)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에서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학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교육연구회 아시아평화와교육연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학술회의 ‘역사교육의 위기와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서 나온 지적이다. 2009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5월 검정결과가 발표된 고교 1학년 ‘한국사’의 교과과정을 검토 및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교과서는 2011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다.
2009년 개정교육과정은 학생의 학습부담을 줄인다는 목표 아래 필수였던 2007년 개정교육과정의 고교 1학년 ‘역사’를 선택과목화하고 심화학습과목인 고교 2, 3학년 선택과목 중 ‘한국문화사’를 폐지해 역사교육 축소라는 역사학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날 ‘2007, 2009년 교육과정과 한국사 교과서 검정’을 발표한 양정현 부산대 교수는 발표문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과정과 수정 지시를 살펴보면 교과서마다 서로 다른 검정 기준이 적용되는 등 검정위원의 전문성 여부는 물론이고 합의된 검정기준이 있었는지조차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동학농민운동 관련 기술에서 전체 6개 출판사 중 두 곳은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삭제하거나 다른 자료로 대체하라는 수정권고를 받았지만 다른 출판사는 이 같은 권고를 받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양 교수는 “검정위원 전공이 조선사에 집중돼 있고 현대사나 역사교육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맞춰 만들어진 이번 교과서가 2009년 개정교육과정이 새로 발표되면서 불가피하게 내용 개편이 이뤄져 이 과정에서 교과서 서술체계가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재운 대구대 교수는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의 전근대 내용과 문제점’에서 “교과목의 이름만 ‘한국사’일 뿐이지 실제로는 7차 교육과정의 ‘한국근현대사’ 과목과 차이가 거의 없다. 고조선과 삼국시대, 고려 등 고대사와 중세사 부분은 거의 구색을 갖추는 수준에 불과하다. 분량도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경제 사회분야 서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1945년 이후 현대사 부분 역시 지나치게 소략해 서술함으로써 학습에 적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부분에 대한 분석’에서 “80∼100쪽의 분량에 국제정세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뿐 아니라 북한 관련 내용까지 담고 있다. 북한 관련 서술은 3∼5쪽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