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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8월 2일, 목요일)이다.
시원~하고 개운~하게 잠을 잔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있었더라면 초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눈이 퀭~하고 부스스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을 텐데 말이다. 시계를 보니 5시 반을 갓 넘긴 시간이었다. 참고로 내가 머문 방에는 시계가 있었지만, 배터리 때문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8시 46분만 가리키고 있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SK에서 조성했다는 <울산 대공원>을 산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어젯밤에 숙소에 도착한 탓에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울산 대공원>도 어느 방향에 있는지 몰라 잠시 방황하다가 공원이 숙소와 가깝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공원이라면 당연히 나무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 나무가 우거진 곳을 찾았는데 마침 어느 아주머니가 운동복 차림으로 산비탈 비스무리한 곳에서 내려오기에 ‘아! 저기가 대공원인가보다’ 생각하고 올라가니... 허거걱! 인조잔디가 깔린 학성고등학교 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이게 아닌데... ㅠㅠ
하지만 이왕에 올라왔으니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어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오늘의 일과와 내일 '주나래장로교회'(이하 '주나래교회')에서 있을 연주회를 위해 기도한 다음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대공원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나 확인해 보자는 마음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있는데... 길 건너편에 상당히 낯익은 사람이 휘적휘적 걸어가는 게 보였다. 이돈영 집사님이었다!
영원한 청년 이 집사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잠이 줄어들었는지 이른 아침에 운동하러 숙소를 나와 대공원을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둘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좌우를 살피면서 걷다보니 대공원 담장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담장이 어찌나 긴지 곧 있을 것 같은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으니 그제야 비로소 대공원 동문(東門)이 나왔다.
대공원에는 이미 많은 주민들이 나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는 걷기 위해 나왔지만, 이 집사님은 조깅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내가 집사님의 조깅을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조깅하는 집사님을 보낸 후에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이거 참 난감했다. 왜냐하면, 공원 바닥에는 새끼 뱀만한 지렁이가 한 가득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지렁이들이 여기에 다 모인 듯 했다. 어떤 거는 완전히 말라 납작해진 것도 있고, 또 어떤 거는 거의 반 건조된 꾸덕꾸덕한 상태로, 또 어떤 거는 여전히 꿈틀꿈틀 대며 살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어떤 거는 몸의 절반은 납작하고 나머지 절반은 통통했다. 아마 사람이나, 자전거 바퀴에 밟힌 듯 했다.
작은 지렁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편안하게 무시하며 걸을 수 있는데 이건 거의 15~20cm 정도의 통통한 지렁이들이 대부분이라 어떻게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지렁이를 피해 걷는 것도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공원 한 바퀴 돌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빨리 출구를 찾아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우리가 들어온 출구로 되돌아가려면 또 다시 지렁이 밭을 지나야 하기에 다른 출구를 찾았다. 마침 이정표에 정문 표시가 있기에 거기를 향해 열심히 걸었다. 하여간, 이렇게 많은 지렁이를 한꺼번에 본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울산! 하면 지렁이가 떠오를 것 같다.
다행히 정문을 잘 찾았고, 대공원 담장만 따라 내려가면 숙소가 있을 것 같아 걷는데 거기서 이돈영 집사님을 또 만났다. 집사님은 얼굴이 벌겋게 달은 상태로 땀에 흠뻑 젖었다.
“집사님! 공원 바닥에 새끼 뱀만한 지렁이가 득실득실 하던데 그거 봤어요?” “예. 상당히 큰 지렁이가 많던데요?” “나는 지렁이를 밟을까봐 이리저리 피하며 땅만 보고 걷느라 불편했는데 집사님은 그 와중에 어떻게 뛰었어요?” “조깅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피하면서 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아래는 안 보고 그냥 앞만 보고 뛰었어요. 하하하”
지렁이는 무시하고 앞만 보고 무작정 뛰었다? 그렇다면, 집사님 때문에 깔려죽은 지렁이가 부지기수일 텐데, 도대체 집사님의 신발 바닥은 어떤 상태일까 글을 쓰는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우리만 대공원을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허창호 장로님 역시 대공원을 한 바퀴 돌았단다. 허 장로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허창호 장로님과 남명관 집사님이 묵은 곳은 에어컨이 고장 났단다. 냉방은 안 되고 송풍만 되어 좁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하룻밤을 보내야 했는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어깨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등에는 땀이 주르르... 아마도 에어컨의 냉매가 빠져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에어컨을 빵빵 틀어댔으니 참 미안하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교회 갈 준비를 했다. 버스는 특강과 두 번째 찬양을 드릴 <주나래교회>로 향했다. <주나래교회>는 전에 우리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던 김재형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다. 원래 김 목사님은 <울산 사랑의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 6년간 섬기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해 교회 부지를 넓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어 6년마다 있는 재신임 투표도 마다하고 그 교회에서 나와 지금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참고로 ‘나래’는 ‘날개’를 뜻하는 문학적 표현으로 날개보다는 부드러운 어감을 주는 말이다. 우리 주보에서는 두 차례나 <주날개교회>로 광고가 나왔었다.) 김 목사님의 개척에 관한 이야기도 참 흥미진진한데 그 모든 걸 여기에 옮길 수는 없지만, 대강은 이렇다.
<울산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할 때, 교회에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예배에 잘 참석하던 부부 집사님이 있었다. 남자 집사님의 직업은 중고차 매매. 김 목사님은 남자 집사님을 통해 중고차를 구입해 잘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울산 사랑의교회>를 사임하고 나서 잠시 공백이 있을 때, 마침 차에 문제가 생겨 그 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기가 왜 오랫동안 교회에 등록하지 않았는지 아시느냐고 묻더라나? 그래 모른다고 했더니 김 목사님이 그 교회에 오래 계시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단다. 그러면서 그 교회를 사임하셨으니 잘 되었다며, 함께 개척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남자 집사님은 이왕 시작할 거니, 가정교회에서 시작하지 말고 아예 상가를 구입해 정식으로 예배드리자고 하여 지금에 이르렀단다.
남자 집사님은 김봉현 집사님이고, 여자 집사님은 정삼순 집사님이다. 내가 왜 이 두 분의 이름을 거론하느냐 하면, 남자 집사님은 줄인형(마리오네뜨)을 선보이신 분이고, 여자 집사님은 우리의 아침식사를 제공하시고, 우리가 울산을 떠나는 날 꼼꼼하게 간식까지 챙겨주신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김 목사님에게 헌신적으로 섬기는 분들을 붙여주셔서 3년 만에 세 가정에서 60여 명의 성도가 예배드리는 교회로 만드셨고, 올해는 그 작은 교회가 터키의 쿠르드 족에서 선교하는 선교사 가정을 파송했을 뿐만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으로 교인의 1/3이 단기선교로 섬기는 교회로 성장시켜 주셨다. 참 놀라운 일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숙소를 출발한 버스는 대로로 나가기 위해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가야 했다. 그런데 대형 버스라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급기야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로 합류하는 길에서 차가 옴짝달싹 못했다. 대로로 나가는 길과 대로에서 들어오는 길이 분리된 탓에 폭이 좁아진 거다. 대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로에서 들어오는 길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위 역방향이었다. 이때 이성훈 장로님이 급히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오려는 차들을 막고 나서야 버스가 골목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주나래교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창환 집사님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목사님! 어제 큰숲교회에서 찬양했잖아요? 근데 베이스가 훨씬 좋더라구요.” 나는 혹시 베이스 파트에서 노래 부른 내 목소리를 칭찬하는 소리인가 지레 짐작하고 감사한 마음에 생글생글 웃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왜요?” “아, 글쎄 어제 찬양하고 났더니 너무 배가 고픈 거예요. 베이스 할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급 실망이다. 내 짐작이 틀린 거였다. 갑자기 속에서 부아가 났다.
“(버럭 화를 내며), 아 난 또... 갑자기 테너와 배고픈 게 무슨 상관이요?” “ㅋㅋㅋ 전에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테너로 옮기고 나니까 소리를 내는 데 무지 힘들어요. 그래서 이번 순회 연주를 마치면 다시 베이스로 갈까 해요.” “어허? 누구 맘대로? 누가 받아 준다나? 안 돼요, 안 돼. 한 번 간 사람, 절대로 받아줄 수 없어요.” “ㅋㅋㅋ 정말 안 받아 줄 건가요?” “암만!” "ㅋㅋㅋ" "ㅋㅋㅋ" <주나래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혹은 걸어서 4층에 올라갔다. 교회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린 김 목사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는 간단식으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워낙 빵이 맛있어서 그런지, 잼도 필요 없이 토스트기에 굽기만 해도 고소하고 맛있었고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대원들의 식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렇게 빵을 많이 준비했어도 순식간에 동이 나 버렸다.
대충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자리를 정돈해 특강을 기다렸다. 9시20분부터 특강이 시작되었는데 본문은 <사사기>였다. <사사기> 6~8장을 한 목소리로 통독하는 것도 좋았고,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아멘!”하며 복창하는 것도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사의 예’다.
“우리의 삶이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사를 돌리면 나사가 그 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는 거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것 같아 어떤 때는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향하여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할 것이 있다. 나사를 거꾸로 돌리면 나사는 앞으로 전진하지 않고 뒤로 빠진다. 그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거다. <사사기>는 나사가 앞으로 전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후퇴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사기>처럼 뒤로 후퇴하는 게 아니라, <사도행전>처럼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 단순한 예 하나로 우리 삶에 대한 결론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아주 인상깊은 예였다.
10시 35분에 특강이 끝나고 다시 버스를 이용해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얼음골’과 ‘밀양 아리랑’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밀양에 도착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역시 식사! 버스는 <가마솥에 누룽지>라는 식당 바로 앞에 섰고,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급히 식당으로 들어섰는데... 이때 황당한 일이 생겼다.
우리가 우르르 식당에 들어오는 것을 본 식당 종업원들은 예약하지 않은 단체 손님은 받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는 거였다. 정말 황당했다. 이때 답사를 했던 대원들이 식당 사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며 담판을 지었다. 내가 전해 들은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수련회 답사 때 이곳 식당의 비빔밥이 맛있어서 식사 후에 이곳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예약은 받지 않는다며 그냥 오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이번에 예약 없이 왔는데 식당에서는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드는 걸 보고는 다른 손님들을 받기 위한 빌미로 예약 운운하며 우리를 거절한 거였다. 예약 없는 단체는 안 받는다며... 하지만 거짓말은 금새 들통나는 법. 지난번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예약을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더니 이번에는 예약은 안 받지만, 단체 손님도 안 받는다고 또 말을 돌리는 거였다. 그러면 우리가 5명씩 들어가도 단체 손님이라며 안 받을 건가?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너무 속보이는 식당의 상술에 이미지가 구겨졌다. 결국 식당에서는 우리의 항의에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는지 이내 백기를 들었다. 예루살렘 승! 식당 패! 어디서 감히 우리를 속이려 들어?
내 짐작이지만, 식당 측에서는 개인으로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비싼 백숙을 시켜 먹는데 우리가 그보다 조금 저렴한 비빔밥을 주문하기 때문에 돈 욕심이 나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이미지는 구겨졌지만, 그래도 비빔밥을 먹으니 맛은 있었다. 비빔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옆의 계곡으로 내려가 커다란 평상을 하나 빌려 그곳을 본부로 삼고 가져온 수박으로 입가심을 한 후 각자의 취향에 따라 흩어졌다.
밀양에서의 프로그램은 ‘얼음골 방문’과 ‘케이블카 탑승’이며, 이도 저도 원하지 않으면 계곡에 몸을 담그며 물놀이를 즐기는 거였다. 나와 김옥자 권사님, 그리고 염집사님 부부는 물놀이를 택하고 나머지는 모두 얼음골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