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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효림 스님, 사회: 혜안, 인례: 자광, 헌향: 자명행, 헌다: 명조, 묘행주, 발원문: 노원구 명등 명락성, 촬영 및 방송: 방송담당 대원3구 법회팀, 음악: 마하보디 합창단, 지휘자, 반주자, 취재: 미디어팀 , 법회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보광당 좌석 배치: 청정팀, 법회 후 뒷정리: 송파 7구, 광진 2구, 대원 2구, 법회보 제작 : 법회보 제작팀, 법회보 배부: 송파 17구 법회, 데스크 안내: 법당 안내팀, 새법우 안내: 새법우 교육팀, 엘리베이터 안내 : 송파 27구, 재일법회 재 공양물 준비 : 보문부, 떡 및 생수 보시 : 강남구, 강동 1, 2, 3구. 보현행자의 서원 : 청법분
일주문 입구에서 주보를 배부하는 구법회, 사무국에서 추석 제사 접수하시는 봉사팀,, 엘리베이터 안내 봉사팀. 일요법회 시작.
보광당 입구에서 법회 안내하시는 봉사팀 및 생수와 떡을 배부하시는 구 법회 보살님들의 일사불란한 모습.
법회 전, 천수경 독송으로 도량을 맑히고, 헌다 차를 준비하시고, 타종에 이어 헌향, 헌다, 사회자님의 인사로 법회를 시작합니다.
백중도 끝나고, 성묘도 바쁘실텐데 보광당 가득 모인 불광 형제들. 효림 스님 말씀대로 정상화의 염원 때문일 것입니다.
금주의 법문 : 효림 스님(경원사 주지)
금주의 법어 : 무아(無我)는 세상을 구제하는 사상입니다.
불광사 입구에 ‘전법도량’이라고 적혀있는데 느낌이 오네요. 불광 법회에서 내세운 슬로건 가운데 ‘우리 모두 정법 호지 발원에 동참하여 빛나는 한국불교의 새 길을 닦습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말인데 옛날 큰 스님들이 늘 상 해오시던 말씀 가운데 ’사자지충(獅子之蟲)‘이라는 말이 있는데, '밀림의 왕인 사자는 다른 동물에 의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자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벌레에 의해 잡아먹히고 만다"는 뜻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불교가 쇠퇴하고 망하는 것은, 불교의 진리에 오류가 있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불교는 인류 문화역사상 가장 훌륭한 문화역사일 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사상과 철학이 그 어떤 종교나 사상철학하고 비유할 수 없을뿐더러 가장 위대합니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불교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불교가 그러하기 때문에 절대적 불경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불교자체 내에서 수행에 게을리 하고 그 사상과 철학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고 스스로 내부에서 불교를 망치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해서 나아가는 것은 불교 자체 내에서 끊임없는 ‘자기 정화운동’을 해야 합니다.
스님들은 끊임없이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내부의 자정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철학과 사상에 있어서도 제가 공부한 바로서는 불교의 사상과 철학 같은 쉬운 것이 어디 있는가? 너무 쉽다. 금강경 하나만 보아도 '아상(我相)만 버리면 너는 부처님이다.' 우리가 아상만 버리면 되는데 그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정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그중에 불광사는 한국불교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그동안 몇 번에 걸쳐 이야기 했습니다만 거듭하여 여러분들에게 인지하도록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불광사는 한국불교의 새 길을 닦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절입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는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불광사가 일찍이 불교사에 없었던 일을 70년대부터 한국불교에 시도를 했고 위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우리 모든 불자가 스스로를 밝히는 등불일 뿐 아니라 전법을 전하는 내가 나를 밝히는 등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는 역할을 하자. 횃불이 되자, 등불이 되자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해결해야 되는 문제도 많이 산적해 있고 여러분들이 많은 피로에 지쳐있겠으나 그러나 이렇게 가면 언젠가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가 오늘 법회에서 이것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지향하고자하는 것은 불광 내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관계없이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전법도량’이다. 이것입니다.
더 많은 불자를 모으고 더 많은 불자에게 내 마음의 등불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서두에 꺼냈습니다. [노래 : 사랑은 왜 늘 도망가]
오늘도 한시(漢詩)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尋昔祇園問如來 (심석기원문여래)
近日安否伺逍遊 (근일안부사소유)
斯處娑婆古不變 (사처사파고불변)
三毒醉衆左往右 (삼독취중좌왕우)
옛 기원정사를 찾아서 부처님께 묻습니다.
근일 편안하십니까? (잘 지내십니까)
이곳 사바세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삼독에 취해있는 중생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은 안 변했다.
기원정사는 금강경을 설법하셨던 사찰입니다.
중국의 사찰이 한국에 와서 설법을 하는 도량, 내지는 전법을 하는 도량이라는 개념보다는 스님들이 주거하면서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는 것이 더 강해졌고 오늘날에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불광사 만이 전법을 중심으로 하는 도량, 이것이 광덕 큰스님의 본래 원력이고, 사찰의 기본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시어서 우리를 위하여 설법을 하고 가셨는데, 이 사바세계의. 문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찰도 많이 부유해지고, 사람들도 많이 영리해지는 이런 변화는 있지만 옛날과 동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독을 버리고 아상을 버리고 부처님이 되라'고 말씀하셨으나 삼독에 우왕좌왕하는 중생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계실 때는, 설법을 듣고 감동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그런 사람이 드뭅니다. 우선 나부터도 정말 내가 불법을 통하여 알고, 깨달은 것을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여러분들을 감동을 못 시킵니다.
'마음을 고치지 않고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하나 바꾸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극락이고 천당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불광법회가 다른 사찰과 다른 특성은, 많은 수고로움이 있겠으나 전통을 통해서 법회보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설법하는 것이지만, 저도 주보를 바탕으로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오늘 주보 세 번째 단락을 보십시오.
나는 아상(我相)을 영어의 에고(ego)라고 이해해도 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또 내가 내 의지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 때의 주체가 에고입니다. 이러한 에고가 어떻게 발동하느냐?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공익을 위해서 행동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그 주체를 에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에고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 자기중심주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고(ego) 가 철학적 용어로 수용되면서 매우 복잡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말하는 ‘나’라는 것과 불교에서 아(我)라고 할 때 ‘나‘라는 것은 매우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그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옛날 큰스님들께서는 '불교는 마음을 닦는 종교다. 마음을 아는 종교. 즉 ‘심즉불(心則佛’) , 마음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과 불교에서의 마음이 대동소이하나 매우 심오한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에고(ego)가 어떻게 발동하느냐?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행동하는, 자기중심주의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에고(ego)를 ‘아(我}’라는 말로는 부족하니 ’아(我)‘에 상(相)을 하나 붙인 것과 같은 뜻인 ’에고이즘(egoism): 자기중심주의’ 라는 말을 씁니다. 에고이즘(egoism)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정신분열’을 일으킨 사람들을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표현했으나, 요즘엔 조울증, 공황증에 걸렸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의식가운데 그런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노이로제에 걸리는 원인이 바로 그 에고이즘(egoism)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불교적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상(我相)이 너무 지나친 경우입니다.
마음에 화가 일어날 때, 가장 좋은 것은 화가 안 나는 것입니다. 이미 명치끝을 치고 분노가 나오면 그것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화를 내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떤 이는 화가 나면 풀어버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그런 방식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 또 화를 참는 것도 스트레스로 인하여 병이 되니 그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한 갓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내 마음 가운데 아집(我執)을 버리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금강경에 무아상(無我相)을 깨달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노래: 마음둘 곳]
원문을 읽기 전에 거기에 보충 설명하자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중 받으려면 내가 마음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됩니다. 아집이 강한 ‘에고이즘’이 문제가 되는 것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버리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인데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사상이 제가 예전에 소천 선사를 모시고 있을 때 ‘전쟁 없는 평화‘라는 제목의 책을 쓰셨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전쟁 없는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선사가 하시는 말씀이
“전쟁 없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를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세상사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전쟁 없는 세계 평화가 온다.“
지난번에 혜담 스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어떤 보살님이 혜담 스님께 물었습니다.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소리를 얼마만큼 크게 독송해야 됩니까?” 물었을 때, 제 생각에는 그것이 어떤 기준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혜담 스님께서는 “보살님 귀에 들릴 만큼만 하면 됩니다.” 너무 간단하고 정말 훌륭한 선문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귀에 들리면 부처님 귀에도 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크게 독송해도 경 읽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읽는 경전 소리를 내가 놓치지 않으면 경전 읽는 삼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문제 같지만 그것이 또 그렇게 어렵습니다. 아상을 버리는 것이 간단한 것이지만 내가 읽는 경전 소리를 내가 듣는 것만큼 쉬운 것 같고, 내가 읽는 경전 소리를 내가 듣기 어려운 것처럼, 쉽고도 어려운 것이 아상(我相)을 버리는 것입니다. 여하튼 혜담 스님의 그 말씀은, 그것이 바로 불광 법문이었습니다.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는 곧 모든 법과 같이 보느냐. 만약 사람이 있어 말하되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지 아니하여서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느니라.
내가 자주 예를 들고 있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다는 그 생각이 없을 때가 진짜 사랑한 것’이라는 말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 그것이 상이 없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 가운데 실도 없고 허도 없느니라.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그런 말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여래가 말씀하시되 ‘일체법이 다 이것이 불법이니라.’
불교는 사탄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아무리 뛰어난 성리학자라는 사람도 그 사상을 살펴보면 ‘사문난적(斯文亂賊) : 유교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역적)’ 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사문난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성리학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기신 분이 송시열‘이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사문난적‘으로 친구도, 제자도 죽이는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실지 우리가 의식이 바르면 도둑이나 사기꾼에게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의 의식이 잘못되어 있으면 부처님의 법문을 들어도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는 불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천체물리학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이 모두 다 불법(佛法)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연과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생명존중 사상을 더 깊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말한 일체법이란 것도 곧 일체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이름 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하면 사람 몸이 장대(長大)함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 몸의 장대도 곧 이것이 큰 몸이 아니옵고 그 이름이 큰 몸이옵니다.”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런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무량 중생을 멸도하리라’ 한다면 이는 곧 보살이라 이름 할 수 없느니라.
큰스님이라는 것도, 내가 큰스님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 즉, 자기가 큰 스님이라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 큰스님이라는 뜻이며,,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자비로운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큰사람입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 진주에 돈을 많이 벌었던 어느 한의사님에게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은 돈을 벌었는가를 물었더니 정직하게 하니 돈이 많이 벌리더라고 대답하셨는데 정직함, 그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렇게 번 돈은 아낌없이 보시하셨습니다. 그 옆에 계신분이 “부처님 가르침의 무주상 보시를 정말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 프로를 보면서 저도 큰 감동 받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장엄하는 그런 분이 바로 큰사람입니다.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실로 법이란 있지 아니하고 이름이 보살이니라. 이러한 연고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체 법이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 하시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하면 이는 보살이라 이름 할 수 없느니라. 어찌한 연고니라 여래가 말한 장엄국토는 장엄이 아니요, 이 이름이 장엄인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와 법이 없음을 통달한 자면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설명하느니라.
그래서 금강경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고 하지만, 늘 자기 귀에 들리도록 금강경을 독송하면 문득 이러한 글자 하나하나가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면 경전 잘 읽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서두에 말했듯이, 지금 현재 불광 법회가 피로에 지쳐있지만 안정 국면에 들어갔다라고 봅니다. 아직 소송도 진행되고 있지만 혜담 스님과 회장단 및 정수위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좋은 것은, 스님들이 설법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아, 우리가 법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이런 의지가 가장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것임을 말씀드리며 이것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관세음의 노래]
음악을 위해 효림 스님과 함께 오시는 가수분들이 오늘도 '사랑은 왜 늘 도망가' '마음 둘 곳' '관세음의 노래'로 법회를 빛내십니다.
♬ 찬탄곡 : 향심 ( 정율스님 작사, 조영근 작곡) 마하보디 합창단 ♬
마음에 먹물들이고 모든 것 다 바치렵니다. 마음에 먹물들이고 모든 것 다 드리렵니다.
금빛 찬란한 당신 말씀 말씀에 두 귀 기울이며 오로지 님의 진리만 들을 수 있게 하여주소서
가녀린 마디마디 손끝마다 흐르는 이 향연. 님을 향하는 자세로 님을 그리는 마음으로
언제나 우러러 합장하게 하여주소서 님이시여 님이시여 당신께 원하옵니다.
마음에 먹물들이고 모든 것 다 바치렵니다. 마음에 먹물들이고 모든 것 다 드리렵니다.
자비로움 가득한 당신 모습 모습에 두 눈 감고서도 오로지 님의 사랑만 볼 수 있게 하여주소서
가녀린 마디마디 손끝마다 흐르는 이 향연. 님을 향하는 자세로 님을 그리는 마음으로
언제나 우러러 합장하게 하여주소서 님이시여 님이시여 당신께 원하옵니다.
수능 백일 기도 축원 : 혜담 스님, 대중 함께
발원문 낭독 : 노원구 명등 명락성 보살님 (불광법회.불광사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법회 봉사팀 자은성 보살님 회향식
법회가 끝나고 각 구법회마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법등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일요 법회가 끝나고 이어지는 금강경 독송 때에도 목탁을 치며 진행할 수 있습니다.
토요일엔, 늘~ 법회를 준비하며 보광당 청결과 의자 배치를 해주시는 청정 팀의 봉사로 더욱 빛나는 법회가 되었습니다.
불광기본교육 7, 8회가 오후 2시 보광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강사 : 만성 스님, 수석 부회장 현문 거사님.
강의내용 : 육바라밀 실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난주에 조계사, 동명사, 화광사 1인 시위 및 불광사에서는 토요법회 법사님들께 불광사태 진실 알리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마음님 고맙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효림스님의 한시를 정확히 녹취하셨네요. 어렵겠다 여겼는데요.
화보도 축소 등 적절히 편집하여 전체의 사진들을 100% 활용하셨습니다.
무아를 무아상 그리고 에고이즘 으로의 사상과 곁들여 설명하신 법문도 좋았습니다.
회장단과 정수위에 힘을
실어주는일은
법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는 말씀에 용기백배 합니다.
일요법회에 보광당을 가득메운 불광형제들의 열정처럼
저 고약한 주지 동명스님과 보광같은 스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하는 것도 없을 겁니다.
일요일이면 만사제쳐두고 보광당 일요법회에 모입시다.
마음님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마음님 매번 정성 들여 일지 작성하심에 감사합니다_()()()_
광덕스님과 불광의 사상을 이해하시는 효림스님 같은 분이 몇 분만 더 계셔서 힘 실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