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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소설 삼청교육대>는 12·12 쿠데타를 주도한 신 군부가 5·18 민주 항쟁 이후 군부에서 민간인을 살상하고 은폐시킨 내용입니다. 이것은 국민의 적정인원을 군부에서 관리함으로써 신군부의 위세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기존 군부의 장병들 위에 신군부가 군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의 대부분은 필자가 80년대초 한탄강 인근 군부대에 복무하면서 겪은 실화입니다. 필자는 당시 사망자 시신을 은폐시킨 야전병원 "시체 처리 부대"의 실체 규명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 삼청교육대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5천여명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의문사로 밝혀진 사람은 5사단에 입소된 단 한 명뿐입니다.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이 역사의 진실 앞에 밝혀지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글을 썼습니다. 또한 반인간적 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신군부의 잘못된 과거를 작품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국방의 정통성이 지켜지길 고대하는 마음입니다.
<소설 삼청교육대>는 총 22장으로 구성했으며 각 장은 단편에 해당되는 사건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엮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 소설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거나,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정보를 갖고 계신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필자(yyukr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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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제 5공화국 정권 창출의 소용돌이속에서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삼청교육대 입소생들이 봉 체조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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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
| 제 1장 1급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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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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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육군3사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및 소위 임관 육군통신학교 수료 1981년 육군 통신 소위 근무 1982년 계엄 포고령 불복종죄 군사재판 회부 1983년 무죄. 현역 복귀 및 전역 1994년 <월간 신문고> 기자 2001년 <연합뉴스> 동북아정보 기획2팀 프리랜서 르포 취재 2002년 <한국마케팅신문> 특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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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가 그쳤어요…." "정말이군!" "…."
잔뜩 찌푸린 하늘에는 햇빛이 나타났다. 일기예보는 빗나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추적거렸던 비가 멈춘 것이다. 내린 양은 많지 않았지만 갈증을 해소한 나무들은 축축한 가지를 반짝였다. 연병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먹은 황토들이 뒹구는 축구 골대 주변은 질척임이 여전하긴 했지만 군화가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와 같이 걸었던 전령이 뛰어갔다. 녀석의 동작은 잽쌌다. 어느새 위병소를 넘어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정문에는 출입자가 없었다. 입구를 차단한 바리케이드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노출한 채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통신대도 마찬가지였다. 절간처럼 호젓한 느낌을 자아낸 외딴 막사는 아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카멜레온같이 적응된 보호색 때문이었다. 지붕과 벽을 둘러싼 낡은 위장망이 바람에 풀럭거렸다. 초록이 돋으면 새 것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막사로 들어섰다.
실내는 적막했다. 교환장비에 눈길을 멈춘 근무병 이외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무전기마저 전파를 빨아먹다 지쳤는지 대롱처럼 생긴 긴 안테나를 벽에 기대고 있었다. 중식 시간은 항상 그랬다. 정지된 분위기로 시간을 더디게 만들었다. 이제 휴식을 반납한 건 벽시계뿐이었다. 째깍거림은 변함이 없었다. 본연의 충성스러움에 질투심이 날 정도로 초침은 그저 고독한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날아든 곤충 한 마리가 책상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무당벌레였다. 붉은 빛깔의 광기로 겁을 주는 콩알만한 표피에는 까만 점들이 어른댔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만졌을 때 고약한 냄새도 생각났다. 정말 생긴 자태처럼 접근하면 별로 이득될 게 없었다. 식물 피를 빨아먹는 진딧물과 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점박이 벌레는 날개를 퍼덕였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내 눈길이 창가에 머무는 순간 교환병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호가! 암호가 떨어졌답니다!" "…."
압축된 목소리는 급박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지금 시간에 전문이 날아왔다면 위급한 상황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환실을 나온 나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암호실 주변은 꽤나 질퍽거렸다. 괴인 돌을 따라 밟았으나 군화창에 엉겨붙은 진흙들이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배수로를 내었어도 시원치가 않았다. 땅이 꺼졌기 때문에 흙을 돋구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던 선임하사가 문득 떠올랐다. 암호실 입구에 도착해서야 진득이는 촉감이 사라졌다.
초인종을 누르자 쪽문이 열렸다. 순간 특이한 냄새가 풍겼다. 암호병이 액체를 방금 사용했던 모양이었다. 컴컴한 밀실은 산소가 부족했다. 콘크리트 벽을 뚫은 오십 파이 연통 한 개만이 유일한 통풍구였다. 이것도 "ㄷ" 자로 구부렸다. 야간에 불빛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부하가 삼십촉 전구를 밝히자 책상에 놓인 서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전문을 검토했다. 아라비아 숫자들이 빼곡이 나열된 암호문은 분량이 많은 걸로 미루어 몇 분 전에 떨어진 전문이 아니었다. 하달된 건 난수표였다. 책자에서 난수표 페이지를 찾아 든 나는 이차 암호를 풀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글 조합이 완료되자 암호병이 입을 열었다.
"전문이 밤부터 떨어졌는데 말입니다. 비상도 아닌데… 유격 훈련을 암호로 보낸 것은 비밀을 남용하는 거 아닙니까? 소대장님?" "…." "…."
암호병을 쳐다봤다. 안경을 투과한 눈빛이 아무래도 내 생각을 엿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전문을 다시 확인했다. 훈련 상황이 대외비면 몰라도 일급 비밀로 분류된 건 처음이었다. 그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난감한 생각이 들었던 나는 그냥 얼버무렸다.
"글쎄…." "…."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비밀 분류는 통신 소관이 아니었다. 사단 암호 책임자가 보안대 준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 때문에 유격 훈련을 일급 비밀로 통보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기밀사항이 이미 하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시비를 논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의 침묵에 불만스러웠던지 암호병이 볼멘 소리를 내었다.
"일반적으로 말입니다. 연례 행사처럼 하는 유격훈련을 암호로 하달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소대장님! 뭐… 중요한 것도 없잖아요? 이렇게 많은 분량을 암호로 보낸 건 말입니다… 똥개 훈련을 시키는 건지 장난하는 건지… 일급 비밀이 뭡니까? 쳇! 어젯밤에 이걸 받느라 잠잘 새가 없었어요. 병장 말년에 날벼락이지 뭡니까? 회의 가시면 건의 좀…." "…." "…."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일반 훈련은 서류로 하달되었는데 암호로 통보된 것이 꺼림직한 건 사실이었다. 비밀 생산자가 착오를 일으켰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모품이 부족하다는 김 병장의 요구에 고개만 끄덕인 나는 암호실을 나왔다.
연병장을 걷는 동안 상쾌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시큼한 약품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초산은 잉크 흔적을 없애기에는 그만이었다. 암호 분량이 많을수록 약품이 더 필요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 때 대대 본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대대장실에는 마침 부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전문을 제출하자 그는 훑어봤다. 그런데 대대장이 갑자기 다그쳤다.
"황 소위! 이건 유격 훈련이잖아? 작전 장교한테 줘야지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아직 업무 파악을 못했나? 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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