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살전 5:14) >>>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우리의 삶에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기쁨의 사전적 의미는 욕망과 욕구의 충족으로 일어나는 흡족과 흐뭇함의 상태를 말한다. 육체가 힘들고 피곤하여도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하면 그 삶은 그만큼 행복한 것이다. 믿음도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듯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는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고후 9:7).
기쁨은 육체적 기쁨과 영적 기쁨으로 구분된다. 육체적 기쁨은 일시적으로 미련하게도 세상의 즐거움을 좇아 성령을 거슬리게 한다, 영적인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면류관이다(행 20:24). 우리의 삶에는 분명하게 기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어리석게도 육체적 기쁨만 추구하는 것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강건케 하는 영의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우리에게 몇 가지의 일을 부탁하고 있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TV 프로그램 한블리(한문철 블랙박스 리뷰)는 다양한 교통사고의 장면을 보여주므로 교통안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킨다.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고의 원인은 교통법규와 질서를 지키지 않고 그 위험성을 무시한 규모 없는 자들 때문이다. 믿음에도 지켜야 할 법규와 질서가 있다.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믿음이지’라고 말하는 것은 규모 없는 믿음으로 교회의 성도와 자신에게 사고와 위험을 초래한다.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규모 없는’ a[takto" (813 아탁토스 APAMP ajtavktou")
무질서한. 대열을 벗어난. 게으른.
규모 없음은 행군 중의 병사가 자기 멋대로 대열을 벗어나 낙오된 상태를 말한다. 낙오된 병사는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해 조직과 대열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적당한 변명과 핑계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한다. 믿음 생활에도 규모 없는 자는 믿음의 게으름으로 헌신과 섬김의 수고를 하지 않는다(살후 3:6). 교회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하며 말한다. 혼인 잔치를 앞두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 게으르고 슬기롭지 못한 신부와 같다. 그러하기에 사도바울은 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칠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 사랑은 규모 없는 자들을 무조건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권면으로 영혼의 강건함을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다.
고전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규모 없이 자신의 성품과 성격, 욕심과 욕망을 위해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능력을 좇아 하나님과 화평하여 하나님의 복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려야 하겠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마음이 약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 자기 의견과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거나 눈치를 볼 때 ‘마음이 약해서’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가 없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일을 대신해 주기 바란다. 마음이 약함은 질병은 아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이 약한 자와도 함께 하신다.
살전 5:14 ...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마음이 약한’ ojligovyuco" (3642 올리곱쉬코스 APAMS ojligoyuvcou")
겁많은. 낙심한
하나님은 자신의 욕심을 좇거나 탐욕의 우상 섬기는 자를 마음이 약한 자라고 말씀하신다(겔 16:30). 이들은 영적으로 강하지 못하고 겁이 많아 예배보다 세상 즐거움을 좇아 달려간다. 우리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심어진 영적 심장이 힘 있게 뛰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자들은 세상 미혹과 유혹에 쉽게 낙심하여서 그 기능이 상실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가나안을 향하면서도 겁이 많아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나이 들어 낙심 가득하여 자신의 방법으로 후손을 취한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으신 것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예배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음이 약한 자들을 멸시하지 않고 예배를 통해 위로와 격려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어둠에 갇힌 인생으로 살게 하지 않으신다. 빛을 비추어 어둠의 낙심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겁 많은 세상에서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빛의 아들로 살게 하신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영혼의 강건함으로 깨어 있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자들을 깨우는 데 힘써야 한다.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다윗은 극한 상황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시 18:19)’라고 말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다윗을 늘 붙잡아 주셨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도 붙잡아 주신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붙잡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이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주시고 붙잡아 주심은 은혜중 은혜이다.
살전 5:14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붙들어 주며’ ajntevcomai (472 안테코마이 VMPNYP ajntevcesqe)
관심을 갖다. 돌보다. 헌신하다. 섬기다.
인생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로 어둠에 갇혀 소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계속된 관심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영혼의 강건을 회복하여 평안을 베푸셨다. 이제는 우리에게 힘이 없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을 돌보아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라 말씀하신다. 축복은 하나님께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받는 것이 인생의 전부이며 자신의 권리로 착각한다. 이것은 영적 질병으로 믿음을 나약하고 쉽게 낙심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살전 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구원하심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하나님께 합당함을 이루게 함이다. 우리는 규모 없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를 지키며 그 은혜를 좇아야 한다. 그리고 작은 두려움과 염려에도 겁을 내며 낙심하는 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믿음은 동정(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영적 강건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심을 잊지 않는 믿음이기를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