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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의 한이 서린 죽산 마을 길쌈
죽산 최한규박사
죽산의 여인들이 대부분 길쌈을 하고 살았다. 우리 어머니 또한 시집와서 70여년을 길쌈을 하셨다. 난 어머니의 수고의 대가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주경야독하며 학문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어머니는 공자님이요 부처님이요 예수님이었다. 어머님의 가없는 사랑과 살아가는 지혜와 철학을 내 어머니는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이제 팔십오세의 육신세계의 삶을 마치고 영계로 돌아가셨다. 그토록 아들의 성공을 기도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나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이를 토대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했다. 그리고 어머님의 자존심 챙겨 드리고 싶었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의 삼베 짜기를 일컫는다. 석곡의 원래 이름이 ‘돌실’이며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 패총에서 골침(骨針, 동물의 뼈로 만든 바늘)에 감긴 마사가 출토되어 그때부터 베를 짰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돌실나이는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렸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 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 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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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0315 / 전남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 / 베틀노래
1990.1.31 / 김순심(여,57) 김경례(여,57) 양남숙(여,47) 김야순(여,59) 김길순(여,48)
세상에는 할일 없어 청삼을 째어 내어
벳틀 다리는 네다리요 가리씨장 쏘와 놓고
앉을개는 도리 놓고 나삼을 밟아차고
부테 허리 두른양은 만첩산천 높은 봉에
허리안개 두르는듯
북이라고 나는양은 칠년태한 가무름에
물만 먹는 외기러기 백운강에 넘어드네
보디집 치는양은 백립 같이도 절어내어
은자 놋자 재어 내어
모질개물 주는양은 칠팔월 세우강산 뿌리는듯
잉앳대는 삼형제요 눌림대는 홀아비라
배거리 노는양은 이 나라 장부 저 나라 장부
만군사가 휘어들며
용두머리 우는양은 청천에 저기러기
벗부르는 소리로세
운절없고 도투마리 정절없고 뒤넘어가네
-모두 같이 제창으로 두번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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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실나이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에는 ‘돌실나이’가 있다. ‘돌실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 또는 삼베를 잘 짜는 사람을 가리킨다. 죽산리는 예로부터 삼베 짜는 마을로 유명하여 1970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삼삼는소리」는 모시나 삼의 올실을 길게 잇는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피곤함과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부른다. 삼삼기를 할 때 여럿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도 하면 삼 삼기는 한결 수월해진다.
삼베짜는 마을로 유명한 곡성 죽산리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는 해발 650m의 한동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 죽산제라 불리는 저수지가 있어 벼농사를 짓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만, 산자락이 넓은 탓에 논이 그렇게 많지 않다. 마을에 ‘돌실나이’라는 곳이 있는데, 돌실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 또는 삼베를 잘 짜는 사람을 가리킨다.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삼베 짜는 마을로 유명하여 1970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삼베를 만드는 과정
삼베는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삼씨를 밭에 뿌린 후 키워 삼을 베어 삼 껍질을 벗긴다. 삼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는 삼을 찌는데 이를 삼굿이라 한다. 삼굿한 삼은 물에 담갔다가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후 섬유질 결대로 가늘게 짼다. 짼 외올은 외올끼리 끝을 이어서 긴 삼실로 만드는 이를 삼삼기라 한다. 「삼삼는소리」는 이렇듯 모시나 삼의 올실을 길게 잇는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전짓다리에 걸쳐 있는 삼실 한 올을 빼서 끝을 이빨로 물고 반을 가르고, 다른 한 올 끝을 이빨로 뾰족하게 하여 가른 곳에 넣고는 허벅지 살에 대고 비비면 삼실은 이어진다.
지루하고 졸린 삼삼는 과정을 이겨내는 노래
이렇듯 삼을 삼는 작업은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반복해서 오랫동안 하는 까닭에 지루할 뿐만 아니라 고되다. 삼을 많이 삼는 시기는 7월과 8월인데, 이때는 논농사도 바쁘기에 낮에 삼 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저녁에 삼을 삼으며 밤까지 이어진다. 삼 삼기를 늦은 밤까지 하니 밀려오는 졸음이 또 다른 괴로움이다. 삼삼는 여성들은 피곤함과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노래를 한다. 혼자서 삼을 삼는 경우도 있지만 여럿이 모여 할 때도 있는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도 하면 일은 한결 수월해진다.
붕어눈을 부릅뜨고 송곳니를 악 물고
예전에는 처녀들도 삼을 삼았지만 기혼 여성이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노래 또한 삼을 삼고 있는 기혼 여성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먼저 째어놓은 삼가리를 빨리 삼자고 스스로 독려한다. 그리하여 졸음이 와서 자꾸 눈이 감기지만 붕어눈처럼 눈을 부릅뜨고, 이를 물고 손바닥을 허벅지에 부지런히 비벼 삼 잇기를 잘하자고 한다. 그래서 전짓다리에 올려 있는 삼 올을 다 삼고, 사랑하는 임이 누워 있는 양단 이불 속으로 잠자러 가자고 한다. 「삼삼기소리」는 정해져 있지 않으나 삼 삼기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여성의 노동이므로 평소 여성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조용하지만 내용이 길게 이어진 길쌈과 관련된 노래가 대부분이다.
부가정보
전짓다리
삼이나 모시를 삼을 때 쓰는 제구. 가지 돋친 기둥 두 개를 각각 토막나무에 박아 세운 것으로, 이 둘을 벌려 세우고 그 위에 삼 가래나 모시 가래를 건너질러 놓고 한 도막씩 빼내어 삼는다.
참고자료
단행본
문화방송.한국민요대전 전라남도민요해설집.서울:(주)문화방송,1993, 157.
단행본
강등학.한국 민요의 존재양상과 판도.서울:민속원,2016, 180∼184.
웹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곡성의 돌실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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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谷城) 돌실나이 ~ 석곡 죽산마을
죽산 최한규박사 편저
곡성의 돌실나이1)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의 삼베짜기를 일컫는다. 석곡의 원래 이름이 ‘돌실’이며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 패총에서 골침(骨針, 동물의 뼈로 만든 바늘)에 감긴 마사가 출토되어 그때부터 베를 짰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오늘날 삼베의 폭은 30~35㎝ 정도로 돌실나이가 9승, 안동포가 12승이 짜지고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섬세한 포가 된다. 예전에는 북포(함경도 육진), 강포(강원도), 영포(경상도), 안동포(경북 안동)가 유명하였으나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라 가내수공업으로 전락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라에서 흔히 말하는 삼은 대마(大麻)이다. 삼은 일년생 식물로 이른 봄인 3월 하순, 곧 한식(寒食,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무렵에 습기가 많은 땅에 씨앗을 뿌린다. 소서(小署, 하지와 대서 사이로 양력 7월 7일경)가 지나면 삼의 키가 2~2.5미터 자라는데 이때 삼을 베어 삼칼로 잎과 가지를 치고 단으로 묶는다.
잎을 훑은 삼단은 돌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긴다. 돌삼굿은 냇가 가까운 곳에 삼단이 들어갈 구덩이를 파서 아궁이를 만들고, 물돌로 쌓아 만든 것이다. 돌삼굿의 바닥에 통나무를 깔고 벽에도 나무를 세운다. 다음 그 사이에 삼단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 돌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흙을 덮고 물을 부어 김이 골을 통해 들어가서 삼이 쪄지게 된다. 이 과정이 잘되어야 좋은 삼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마을 공동 작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삼굿에서 꺼낸 삼단은 물에 불려 삼껍질을 벗긴다. 벗긴 삼껍질은 물에 담가 때를 빼고 햇볕에 말린다.
말린 삼은 부드러워질 때까지 물에 담가 두었다가 건져서 물기를 꼭 짠다. 삼올을 왼손에 잡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는 삼톱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내려 껍질을 벗긴다. 겉껍질을 다 벗긴 삼은 다시 가늘게 짼다. 삼머리 부분을 왼손 엄지에 감아 잡고 오른손 엄지손톱으로는 삼을 하나씩 잡고 알맞은 넓이로 짼다. 이때 삼의 길이가 길어서 한 번에 쭉 쨀 수 없으면 무릎에 걸치면서 째기도 한다. 짼 삼은 왼손에 모두 쥐고 도마에 얹어 삼톱으로 삼는다. 쪼갠 삼은 오래도록 햇볕에 말린다. 오래 말릴수록 빛이 좋아지고 질긴 올이 된다.
삼째기에서 짼 삼을 등급별로 나누어 전지다리에 걸어 놓고 한올한올 빼어 짧은 실을 길게 잇는다. 이것을 삼삼기라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삼삼는 과정에는 경사(經絲, 날실)를 잇는 방법과 위사(緯絲, 씨실)를 잇는 방법이 있으며, 경사를 잇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날실을 이으려면 왼손으로 한 올의 삼꼬리 부분을 잡고 앞니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실을 Y자형으로 벌려야 한다. 그런 다음 오른손으로 다른 한 올의 삼 앞부분을 잡아 입에 대고 뾰족하게 만든다. Y자형 가운데에 한가지를 날실의 뾰족한 부분과 합쳐서 비벼 꼰 다음 다른 한가지를 합쳐서 무릎에 대고 같이 비벼 꼰다. 그리고 실들을 끌어 모으면서 앞으로 당겨 비볐다가 다시 밖으로 내밀며 비벼 꼰다. 이때 이어지는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비벼 가면서 꼰다.
날실을 잇는 또 다른 방법은 곱비벼 꼬기이다. 한올의 끝과 다른 한올의 앞을 오른쪽 무릎 위에 나란히 겹쳐 놓고 손으로 비벼 꼰다. 이것을 뒤로 제껴 뒤의 실과 같이 놓고 오른쪽 무릎 위에서 오른손으로 다시 비벼 꼰다. 이때 이어지는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를 비비면서 꼰다. 날실을 이을 때 전체를 비벼 꼬는 이유는 날실이 베짜는 동안에 힘을 받으므로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씨실을 삼는 방법으로는 한올의 머리쪽과 한올의 끝쪽을 무릎 위에다 서로 나란히 겹쳐 놓은 다음 겹친 부분만 오른손으로 비벼 꼰다.
이은 실은 채 또는 소쿠리에 둘레둘레 담았다가 이것을 다시 물에 적셔 물레에 걸어 놓은 다음 돌곳에 올려 실컷(타래)을 만들어서 햇볕에 말린다. 실컷은 다시 물에 적셔 짚재에 버무려서 섭씨 35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방안에서 일주일 동안 띄운다. 띄운 실은 꺼내어 재를 털고 솥에 실컷이 잠기게 물을 붓고 푹 삶는다. 삶은 실컷은 냇가에서 방망이질하여 깨끗이 빨아 2, 3일 동안 물에 적신다. 다음 햇볕에 바래어서 쌀뜨물에 담가 반나절을 두었다가 그대로 짜서 말려 돌곳에 메워 내린다. 이 과정은 색을 곱게 내기 위한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치잣물을 들이기도 한다. 내린 실컷은 다듬어서 고르게 한 뒤 소쿠리 또는 채에 담아 실떡(삼떡)을 만들어 볏짚으로 열십 자로 맨다. 실떡 세 근이 한 필 거리이다.
베를 짜기 위하여 새와 날실의 길이를 결정하여 실을 준비하는 과정(베날기), 한 필의 길이와 삼베의 승수에 따라 고무래의 열 개 구멍을 통과하여 나온 베실을 모아 날틀과 겉틀을 사용하여 날실(경사)을 준비하는 과정 및 베짜기는 모시나 무명과 동일하다.
1)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이는 삼베를 짜는 일(길쌈)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곡성의 돌실나이는 예로부터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여 삼베의 대명사로 불리웠다. 삼베는 전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궁산조개더미에서 뼈로 만든 바늘에 실이 감겨 있는 것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였고,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모시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면의 재배로 삼베의 생산이 약간 줄어들었다. 삼베의 제작과정을 보면 우선 재배를 해서 수확을 한 후, 잎을 훑은 삼단을 삼굿에 넣고 쪄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린다. 삼을 쪼개는 과정을 거친 후, 실을 한올 한올 길게 잇는다. 그후 베 한 필의 길이와 삼베에 따라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풀 먹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짠다.
오늘날 삼베의 폭은 30~35㎝ 정도로 돌실나이가 9승, 안동포가 12승이 짜지고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섬세한 포가 된다. 예전에는 북포(함경도 육진), 강포(강원도), 영포(경상도), 안동포(경북 안동)가 유명하였으나 서양문물의 유입에 따라 가내수공업으로 전락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