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방법과 차제
보안보살이 대중과 함께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은 뒤,
무릎을 꿇고 합장한 자세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회중에 모인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보살의 수행하는 방법과 차제를 말씀해 주십시오.
또 어떻게 사유하며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깨닫지 못한 중생을 위해 어떤 방편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이 바른 사유와 방편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삼매 법문을 들어도 혼란스러워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저회와 말세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해주십시오.”
보안 보살이 부처님께 세 번 거듭 청하고, 다시 청하려고 할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특하구나, 선남자여, 그대가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수행하는 방법과 차제, 어떻게 사유하고 수지하는 방법 등 여러 방편을 물었는데, 법을 설해주리니 잘 들어라.
선남자여, 새로 배우는 보살과 말세 중생이 여래의 청정하고 원만한 깨달음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바른 생각으로 모든 허깨비를 멀리 여의어야 한다. 먼저 사마타 수행으로 하고,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대중과 함께 평온하게 지내면서 고요한 방에 앉아 늘 이런 생각을 하여라.“
지금 나의 이 몸은 4대(지.수.화.풍)로 화합된 것이다.
곧 머리카락. 털. 손발톱과 치아, 가죽과 살, 힘줄. 뼈와 골수 등 딱딱한 고체덩이는 흙으로 돌아가고,
침과 콧물, 고름. 피. 진액. 가래. 눈물. 정기. 똥과 오줌 등 액체 기운은 모두 물로 돌아가며,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몸속에 움직이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바람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사대가 각각 분리되면 현재 허망한 이 몸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 몸은 끝내 자성이 없어 실체가 없으며
임시로 화합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몸은 허깨비와 같은 것이다.
네 가지 인연이 임시로 화합해서 허망하게 6근이 생겼고, 6근과 6근과 4대가 안팎으로 합해져 허망한 기체가 이루어졌으며, 허망한 기운이 가운데 쌓이고 쌓여 반연하는 형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임시로 이름 붙여 놓은 것이다.
선남자여, 거짓으로 이름 붙인 허망한 마음은 6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4대가 각각 흩어져 버리면 티끌도 있을 수 없다.
그 가운데 모인 인연과 티끌이 각각 흩어져 없어지면 반연된 마음이란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선남자여, 허깨비와 같은 육신이 없어지면, 허깨비와 같은 마음 또한 사라지며,
허깨비와 같은 마음이 사라지면, 허깨비와 같은 티끌도 사라진다.
허깨비와 같은 티끌이 사라지면, 허깨비의 사라짐도 없으며
허깨비의 사라짐이 없으면, 허깨비 아닌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거울을 닦아 때가 없어지면 밝음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몸과 마음이 허깨비의 때이니
이 때가 없어지면 시방세계가 청정하다.
비유하면, 청정한 마니 구슬에 5색을 비추면
5색이 방향마다 각각 다른 빛깔이 나타나는데,
어리석은 이들은 그 마니 구슬에
5색이 실제로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원각의 청정한 자성이 몸과 마음에 각각 상응한 것이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청정한 원각에 몸과 마음의 형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이렇기 때문에 중생이 환화를 멀리 여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여래)가 몸과 마음을 ‘허깨비의 때’라고 하였다.
이 허깨비의 때를 여읜 이를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허깨비의 때가 다하여 대도 없어지면,
대와 때도 없고, 대니 때니 하고 하는 이름조차 사라진다.
선남자여,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 환화를 분명히 알고 증득하면
영상이 멸해버렸기 때문에 이때, 문득 끝없는 청정을 얻는다.
이때 허공이 원각에 나타난다.
원각이 뚜렷하고 밝기 때문에 원각에 드러난 마음이 청정하고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보이는 경계가 청정하며
보이는 경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안근이 청정하고
안근이 청정하기 때문에 안식이 청정하다.
안식이 청정하므로 듣는 경계가 청정하고
듣는 경계가 청정하므로 이근이 청정하며
이근이 청정하므로 이식이 청정하고
이식이 청정하므로 느끼는 감각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비, 설. 신. 의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선남자여, 근이 청정하기 때문에 색경이 청정하고,
보이는 대상이 청정하므로 소리가 청정하며,
향기. 맛. 감촉. 대상이 모두 청정하다.
선남자여, 6경이 청정하므로 지대가 청정하고,
지대가 청정하므로 수대 또한 청정하며,
화대, 풍대 모두 청정하다.
4대가 청정하므로 12처. 18계. 25유가 청정하고,
그들이 각각 청정하므로 10력. 4무소외. 4무애지. 18불공법. 37조도품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팔만사천 다라니문까지 청정하다.
선남자여, 모든 존재의 실상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에 한 몸이 청정하고, 한 몸이 청정하기 때문에 여러 몸이 청정하며 여러 몸이 청정하기 때문에 시방 중생의 원각도 청정하다.
선남자여, 한 세계가 청정하므로 여러 세계가 청정하고
여러 세계가 청정하므로 허공의 시방삼세가
평등하고 청정해 동요하지 않는다.
선남자여, 허공이 청정하고 평등해 동요되지 않으니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되지 않으며
4대가 동요하지 않으므로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해 동요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팔만사천 다라니문의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으므로
깨달음의 성품도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는다.
선남자여, 깨달음의 성품이 동요하지 않고
원만하여 끝이 없으므로 6근이 법계에 충만하다.
6근이 충만하므로 6경이 법계에 충만하고
6경이 충만하므로 4대가 법계에 충만하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충만해 팔만사천 다라니문이 법계에 충만한 것이다.
선남자여, 미묘한 깨달음의 성품이 충만하므로
근의 성품과 대상의 성품이 무너지지 않고, 뒤섞임도 없으며,
근과 대상이 무너지고 뒤섞임이 없으므로
모든 것과 다라니문도 무너지거나 뒤섞임이 없다.
이것은 마치 백천 개의 등불이 방 안을 비추면
그 빛이 함께 가득찰지라도 서로 무너지거나 뒤섞임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깨달음을 완성한 보살은
법의 속박을 싫어하지도 않고, 진리의 해탈을 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생사를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계를 지키는 사람을 특별히 공경하지도 않지만
계를 파한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또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지만
처음 배우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원각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안광이 앞의 경계를 비쳐볼 때
그 빛 자체는 원만해 미움도 사랑도 없다.
광명 자체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보살과 말세 중생이 마음을 닦아 깨달으면
여기에는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
원각이 두루 비추고 고요해 차별 없는 세계요,
둘이 없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백천만억 아승지 항하사와 같은 무수한 부처님 세계가
마치 허공 꽃이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즉하지도 아니하고, 여의지도 아니하며,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
중생은 본래 성불해 있는 것이요,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의 꿈과 같다.
선남자여, 지난밤의 꿈과 같으므로 생사와 열반이 생겨난 곳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오고가는 것도 없느니라.
증득할 것도 없고, 증득을 잃은 것도 아니며,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
혹 증득한 사람일지라도
지음. 맡김. 그침. 사라짐이 없으며
이런 증득에 증득할 자. 증득되는 자가 없어서
마침내 증득함도 없고 증득하는 자도 없나니
일체 법의 성품이 평등해 뒤섞이거나 무너짐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보살들이 이와 같이 수행하고, 수행하는 차제를 알아야 하며
이와 같이 법을 구한다면, 절대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제 3보안보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