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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20612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전도자의 멍에 |
성경 | 누가복음 10:21-24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10:21-24)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예정 속에 예수 믿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인 전도와 선교에 자신을 드리는 가장 축복된 예배가 되시기를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성은이 만극하나이다!” 하고 고백을 하죠. 정철이 왕에게 입었던 그 사랑이 너무 마음에 사무쳐서 ’사미인곡‘이라는 곡까지도 만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왕에게 입은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겁니다. 출애굽기 33:19절 말씀 보면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대상자가 되는 겁니다.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았나요?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았어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 행함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하나님의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건져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70인 제자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세 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전도자를 세우기 위하여서 그 인생 전체를 두고 전도자로 세워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전도자로 세우기 위하여서 귀족 가문에 태어나게 만들고, 바리새인으로서, 다소 출생으로 문학과 철학을 배우게 만들고, 예수님과 동시대에 태어나게 만들어서 예수님을 핍박하게 만들었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게 되는....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바울을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그릇으로 다듬어 가셨던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만들기 위해 참 수많은 일들을 하셨음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 앞에 어떨 때는 부끄럽고, 미안하고, 어쩌다가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목사 삼기로 계획하셔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어렵게 만드시기도 하면서 나를 이렇게 목사로 만드신 것인가? 그래서 가끔 이제 서동주의 시를 제가 읊을 때가 있어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세우시기 위해 내 인생의 전체를 두고 섭리하셨습니다. 이건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전도자로 세우기 위해 인생 전체를 두고 여기까지 불러주셨습니다.
자, 두 번째 전도와 선교는 놀라운 일입니다. 개인의 역사를 바꾸고, 시대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일이 들이 전도와 선교 속에 들어있습니다. 과거에 예수님 오기 전까지 역사는 동양 중심이었습니다. 모든 문명의 발상지가 동양이 있었어요. 근데 이 문화의 중심이 서양 문화로 바뀐 전환점이 어디에 있는가? 기독교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서 뭐라고 기록하는 것인가 하면 사도행전 16:6-10절 말씀 보면 아시아의 복음 전하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요. 그리고 꿈 속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는 음성을 듣고 소아시아 지방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의 첫 관문입니다. 이 시작이 무엇을 바꾸는가? 바로 동양 중심의 역사가 서양 중심의 역사로 바뀌는 사건, 이것이 전도자 바울의 발걸음 속에서 일어났다고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죠. 이것이 오늘날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시작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그 팀들이 건너 간 거예요. 구한말에 한성 감옥에 갇혔던 이승만, 그 한 사람은 성경을 읽다가 회심하게 되는데 그 한 사람의 변화가 자유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걸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황해도 깡패였던 김익두 목사도 스왈론(W.L. Swallon) 선교사님을 통해서 말씀 듣고 개종한 사실 때문에 그 한 사람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 받도록 만드셨어요. 바로 우리가 전도와 선교를 한다는 것은 그 개인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문과 시대까지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입니다.
세 번째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이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방편입니다. 에베소서 1:3 이하를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죠. 사도행전 13:48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야기하죠. 여러분 전도라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그 자를 내가 만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인도를 받아야 된다 이야기하는 것은 누가 이 시점에 구원받을 자인 것인지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만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1014년에 평양신학교에 마펫 선교사가 온 그때가 일본이 신의주에서 시작해서 부산까지 철로를 깔았어요. 철길을 따라서 이 선교사가 선교하며 내려오다가 그때 하나님이 우리 할머니를 준비해 놓으셨다가 우리 할머니 열네 살 때 그 곳에서 만나서 예수 믿게 되지 거예요. 하나님의 기적 같은 만남 들이에요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세전에 예비한 그 사람을 만나는 이 놀라운 사건이 이것이 바로 전도와 선교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전도자로 쓰기 위하여서 그 인생 전체를 두고 승리하셨고 우리를 이곳에서 예배드리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이 전도 선교는 개인과 민족과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것이 바로 뭡니까 이 복음의 능력이에요. 바로 이 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쓰임받도록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입니다.
1.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복음은 비밀입니다. 계시를 받은 자 이외에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계시라는 것은 감춰져 있는 것을 들어서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을 계시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는 책이야. 성경에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도 없어요. 성경을 읽는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 보여줘야 되는 겁니다. 오늘 2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이 복음의 비밀을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겐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은 어린아이들에게만 복음의 비밀을 보여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세상의 지혜와 슬기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음을 우리에게 설명을 합니다. 세상이 지혜와 슬기로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가진 자들의 눈에는 고린도후서 7:18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것이요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 능력이 되시지만 믿지 않을 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여져요. 예수 믿고 어떻게 구원받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거든요.
고린도후서 1:21 말씀에서 이 세상이 자기 죄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죠. 바울은 빌리보서 3:7 말씀에서 기록을 해요. 내가 너무 가진 것이 많아가지고 내가 로마 시민권에 최고의 학문에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내가 예수를 아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고 그렇게 표현한 것을 우리가 보기도 합니다. 바로 세상의 성공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급 할 수가 없는 모습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 비유로 마태복음 13:13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 하나님이 비유로 말하는 것은 들을 자만 듣도록 만들기 위해 비유로 말씀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보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고 감춰진 복음이 돌려지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구원하신 것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을 복 주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거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서 예수 믿게 만들어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주어지지 않은 자들은 똑같이 복음을 들어도 그 복음을 받지를 않아요. 자, 이 현장에 복음을 전해보면 벤치에 두사람에게 똑같이 복음을 전했는데 한 사람을 예수 믿고 한 사람은 예수를 안믿어요. 성령께서 그 마음 문을 열어 주어야만이, 그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 만이 예수 믿어요. 전도라 하면 바로 뭐가 전도인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 작정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전도가 되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가난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인생에 문제를 주시기도 해요. 제가 현장에 전도를 다니면서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암 걸리고 난 이후에 그들이 복음 듣고 예수 영접하고.. 낫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어요. 거의 다 암으로 죽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암이 왜 걸리도록 만든 것인가? 그 암 때문에 예수 믿어요. 암 안걸렸으면 예수 안믿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 암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구원하고 죽더라고요. 제가 병원 전도를 갔을 때에 한 사람은 바로 그 포주, 색시 장사하는.. 나이도 한 40대 밖에 안됬는데, 포주 하는데 도저히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죠. 이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다리 두 개가 다 골절이 되가지고.. 이렇게 줄을 달아가지고 꼼짝없이 몇 개월동안 누워 있는 거에요. 도망도 못가, 누워있으니까.. 이분이 복음을 전하니까 한껏 복음을 거절하다가 나중에 예수 영접 했는데, 내가 그분한테 이야기했어요. 당신이 이렇게 안하면 하나님께 당신이 예수 안믿을 거 같아가지고,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를 왜 가난케 하시는 것인가? 뭐하기 위해가지고? 내가 문제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사건 때문에 예수 믿었다면 그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가 된 것,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완전히 멸망 상태 속에, 우리의 배경이 어디에 있었나요? 지옥과 재앙과 흑암의 배경 속에서, 영적인 문제로 정신 문제로 육신 문제로 완전히 멸망 받아야 할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겁니다. 그럼 하나님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대가없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인가요? 아니에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하여서 내 모든 죄 문제를 다 해결해 놓으시고 은혜란 말은 값 없이 주신 선물이에요. 다 완성시켜놓고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우리에게 주신 바로 그 은혜의 대상으로 우릴 부르셨다고.. 그래서 우리는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는 내 공로가 하나도 없어요. 우린 무엇만 남아야 될까요? 하나님 앞에 은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밖에 우리들 속에 나올 것이 없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도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도다.. 창세기 3장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내가 여인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셨어요. 그리하여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살릴 것을 약속하셨고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바로 그 씨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네 씨로 내가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죠. 신명기 18장 15절 보면은 모세에게 약속합니다.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신다.. 바로 예수님이 누구로 오셨죠? 바로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다니엘서 7장 13절 말씀을 보면 ‘인자같은 이가‘ 예수님께서 이를 인용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시는 장면이 나오죠. 이사야 7장 14절 말씀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시면서 하나님이 인생에 개입하여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그 메시야가 무엇을 온다고요? 시편 132편 11절 이하에 보면은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그분이 올 것으로 성경은 예언하고 있었죠. 그래서 바디매오가 예수를 향하여 뭐라고 외치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고백하는 장면들이 나오죠.
그래서 각 시대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기다리며, 대망하며 기다렸어요.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자들이 나오죠. 바로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의 박사들이, 그들이 메시야를 만나게 되어서 기다렸던 그 메시야에게 그들이 와서 경배하는 장면을 우리가 보죠. 누가복음 2장 25절 이하를 보면은 결례를 받기 위하여서 올라갔던 어린 예수님에게 누가 만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시므온이라는 남자와 안나라는 여자가 그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며 기다렸던 그들입니다. 누가복음 2장 29절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 영광이니이다’ 기대했던 그 메시야를 만나는 그 감격 속에 시므온이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안나는 어떤가요? 결혼한지 칠년 만에 과부가 되어서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며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어요. 금식하며 무엇을 기다렸어요? 메시야를 만나고 죽겠다고,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지요.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만났는데 오늘 24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바로 구약성경에서 수없이 예견되었던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바 그리스도가 왔고, 그 그리스도를 너희들이 만났고, 그 음성을 듣고 있는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 만나서 그 제자가 되었고 이 메시지 듣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제자들은 몰라요. 이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 바로 그분이 누구인가요? 창조주 하나님이세요. 그분이 누구인가요? 그분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되신 바로 그분을, 지금 몸소 보고, 지금 그 음성을 듣고 있는데도 제자들은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 만나서 직접 그 예수님께로부터 훈련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 제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 된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으로 내속에 내주인도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이걸 지금 놓치고 사는 거죠.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만약에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이 복음을 들었겠냐? 만약에 내가 북한 땅에 태어났다고 그러면 내가 지금 이 복음 들을 수 있겠냐? 불가능해요. 하나님이 이 시대에 자유롭게 복음들을 수 있는 시대 속에 나로 하여금 이 복음 듣고서 이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만들어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격스러운 거예요. 제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은 예수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고 두 번째 감사하는 것은 목사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예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감사가 있어요. 바로 이 복음 깨달은 목사가 됐다는 사실이에요. 미국의 한 목사는 그렇게 간증을 해요. 목사가 복음 깨닫는 것이 길 가다가 벼락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셔야 돼야 돼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늘 듣는, 예수께 듣는 그 복음을 듣는 것 자체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아느냐? 오늘 그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이 복음이 어떤 복음인가요? 이사야가 복음 전하고 난 이후에 칠백 년 만에 초대교회 복음이 선포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복음이 천오백년 이후에 마틴 루터를 통해서 개혁 운동이 일어나졌어요. 그리고 온 땅이 사단에게 또 사기당하여서 틀린 복음으로 망할 복음으로 다른 복음으로 완전히 망가진 이와 같은 시대 속에 하나님은 한 전도자를 세우셔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여 주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복음 메시지를 듣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자리에 내가 앉아 있다는 사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인식을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그분이 참 선지자요, 참 제사장이요, 참 왕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듣는 이 사실 자체가 여러분들이 얼마나 축복된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것인지 이걸 여러분들이 깨달으셔야 해요. 제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현장을 봤을 때 정말 비참한 현장들이예요. 말만 교회고, 말만 성도지 거의 99% 복음 없이 그냥 교회만 다녀요. 그게 현실이에요. 여러분 정확한 복음을 듣는 이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이 이것을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제가 그런 고백을 했어요. 하나님 내가 목사 된 거 감사한데 더 감사한 것은 복음 깨닫는 목사가 되어서 이 복음 전하도록 나를 불러주신 거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내가 다시 태어나도 복음 전하는 목사라면 다시 또 목사 하겠다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어디로 부르신 것인가? 바로 이 복음을 가진 축복된 자리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누가복음 10장 21절에서 24절 말씀을 제가 읽었죠. 꼭 같은 평형구절이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27절에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그 이후에 나오는 내용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속고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하여서 모두가 어디에 빠져 있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멸망 속에 다 빠져 있어요. 참 안식도 평안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진다고 우리가 찬송가 부른 것처럼, 이 속에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제가 파키스탄에 가면 많이 보는 짐승 가운데 하나가 나귀입니다. 거기는 뭐 고급 차도 그냥 달리는가 하면 또 나귀가 운송 수단이 되어서 나귀에 짐을 실어서 제일 편하게 나귀를 많이 사용하더라고요. 공사판에 그 모래 나르고 자갈을 나르는 것도 전부 나귀가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그러고는 짐 실어 나르는 것도 나귀가 하는데 복잡한 시장 바닥이나 차가 빵빵대는 곳에 나귀가 그냥 가면은 막 놀라니까 눈에다가 가죽으로 가리개를 만들어서 앞만 쳐다보고 가도록 만들었어요. 그ㄹ고 빨리 안 간다고 두들겨 맞으면서... 밤에 보니까 추운 겨울날에 거죽데기 하나 덮고서 서서 자더라고요. 그래서 야 팔자도 더럽기는 더럽다. 하필이면 나귀 새끼로 태어나가지고 일평생 동안 매 맞고 저렇게 짐 실어 날라야 되는 것이로구나. 차라리 고양이나 개로 태어났다면 저 고생은 안 할 건데.... 바로 그 나귀 인생이 바로 우리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 인류의 모습입니다. 참 행복도 평안도 없이 죄앙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데 예수님께서 오늘 굉장한 선언을 합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널 쉬게 하리라.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바로 그분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바로 그 예수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선포하신 바로 그분이 창조주요 하나님 되신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 되신 바로 그 분이 함께함을 제자들이 이것을 못 깨달은 것입니다. 이 사실이 깨달아졌다고 그러면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예수님을 섬겼을까요? 여러분 교회에 나와서 오늘 예배를 드립니다. 내가 믿는 예수가 도대체 누군가요? 그분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려라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서 오셨나요? 어떤 말 못할 사정을 여러분이 갖고 오셨나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널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 예배를 어떤 예배를 드려야 될까요? 주님 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늘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정말 이 예배가 바로 그 주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세요. 바로 그분을 정말 만나게 된다면 그분을 체험하게 되신다면 여러분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이 다 벗겨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가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에 힘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뭘 메라고 이야기하죠? 멍에를 메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에게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오늘 제목이 무슨 제목인가요? 전도자의 멍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은혜로 구원하여 주셨나요? 이 멍에를 메고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서 고통당하는 세상을 살리도록 하나님은 나의 부르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의 멍에는 가장 영광스럽고 복음 누리는 축복된 미션인 겁니다.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내 인생의 방향을 맞출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보좌의 능력이 누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이 미션 감당하는 자에게 입니다.
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하는 건가? 멍에는 소나 말이나 짐승들 목에다가 이렇게 나무로 기억자로 꺾어 가지고 목에 메는 그게 멍에입니다. 뭐 때문에 멍에 하나요? 거기다가 수레를 달아서 끌도록 만드는 게 그게 멍에입니다. 그러면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는 것은, 어미 소 두 마리가 멍에를 메고서 수레를 달아요. 그러면 그 사이에 새끼 송아지를 집어 넣어서 멍에를 다는데, 송아지의 멍에에는 수레가 안 달려요. 뭐하고 묶어놓은 것인가 하면, 양 옆에 있는 어미소에 묶어서 같이 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죠. 자, 수레는 누가 끌죠? 어미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이고 그 중간에 있는 송아지는 멍에는 메었는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요.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이에요. 바로 전도자가 메는 멍에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정말 내가 복음 전하겠다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가면은 양 옆에 있는 어미 소들이 새끼 소를 보호해서 가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내 인생 가운데에 보좌의 능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서, 237개 나라에 빛을 비추도록 내 멍에를 메고 가도록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는 겁니다.
그래서 멍에가 어떻다고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왜요? 그분이 다 하고 있으니까.. 이 때 우리에게 뭐가 온다고요?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여러분, 오늘 중요한 마지막 결론을 잡으셔야 합니다. 내가 정말 전도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며 이 멍에를 멜 때에 뭐가 오는 겁니가? 참 평안과 참 힘이 여기에서 오는 거에요. 여러분들 인생살이가 왜 고달프고 힘들죠? 이 멍에를 안 메려고 그러니까.. 정말 전도와 선교의 멍에를 메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속에 들어가게 되면은 하나님이 내게 참 힘을, 참 안식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비밀을 체험하고 누리도록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이에요.
서론에 3가지를 제가 설명을 했어요. 한 사람의 전도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 인생 전체를 두고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복음 듣게 만드셨어요. 이 복음은 개인과 가문과 민족과 시대를 바꾸는 역사가 이 복음으로 일어나는 그 귀한 일들에,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나를 쓰시기 위해 오늘 나를 불러 주신 것이란 말이에요. 세계복음화와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절대계획이에요. 여기에 내 인생의 방향을 맞추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4월, 5월을 지나면서 전도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눈만 깜빡깜빡 하고 지나갔어요. 오늘 우리가 뭐해야 될까요? 여러분들이 왜 하는 일들이 형통하지 못할까요? 강단에 메시지가 나왔는데 전혀 관심을 안 가지니까, 인생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뭐하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네 인생이 전도 속에 들어가도록 실제로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 해보라고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을 합니다. 뭐로 편집을 할까요? 전도 대상자를 찾아서 기록하고, 그때부터 그것이 편집의 시작이에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도를 찾으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편집이에요. 설계는 무엇을 설계할까요? 그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세요. 그것이 설계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는 것이에요. 그것이 디자인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이 이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가슴에 담고서, 오늘 제목이 무엇입니까? 전도자의 멍에입니다. 이 복음을 가진 우리가 이 멍에를 멜 때에 보좌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 하셔서 여러분들의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내가 있는 모든 현장 속에 하나님의 살아게심의 증거가 나타나도록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인데, 이것 놓치고 지금까지 살아오셨잖아요. 바로 오늘 우리가 결단할 수 있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 나를 구원하여 주셨고, 그리고 어느 누구도 듣지 못했던 이 원색적인 복음을 듣게 만들어 주신 것, 이것이 왠 은혜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우리가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이 전도자로 쓰기 위하여거 내 인생 전체를 두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섭리 하셨고, 이 복음을 증거하면은 개인과 가문과 시대와 민족을 살리는 이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 자체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 다 고통 중에 있는데, 이제 이 전도자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이 이 일에 내 인생이 쓰임받기를 원한다고 결단하며 나아가게 되졌을 때에 하나님이 모든 문을 여시고 참 힘과 참 안식과 참 축복 속에서 그 인생이 승리하게 될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정말 이 언약 잡고 승리할 수 있는 저희 삶이 되도록 주님이 이 한시간에 우리 마음과 생각을 붙잡아 주옵소서.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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