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맥문학가 협회에서 지난 8,4-5 양일간 강원도 양구지방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온 기행문이 한맥문학 9월호에 게재되었기에
알려드리오니 잠시 앉아서 편안한 기행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 송
양구지방 문학기행
-한맥가족 문학세미나 -
2012, 8, 4,
이 지상이 정상이 아니라고 하늘에서 내려준 재앙인지 보복인지 모르겠으나 이상기온으로 연일 36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로 시달리는 한 반도, 더구나 더위의 절정이라는 말복이 내일 모래인 고열인데도 강원도 양구지방으로 분단문학을 주제로 한 문학세미나를 간다기에 나도 용감하게 참여하여 말석의 자리를 메웠다.
09;10 서울 서대문 독립문 역 인근의 주차장에서 버스 3대에 120여명의 문우들을 싣고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다. 남산터널을 지나 한남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바꿔 타고 하남시에서 새로 뚫린 경춘 고속도로에 진입한 것 까지는 순풍에 돛단 듯이 잘 나갔다.
하남시는 이병도박사가 주장하는 한성백제시절의 수도인 하남위례성자리라고 비정하는 곳인데 고골이라는 지명이 바로 고 고을=옛 고을 바로 수도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근에 있는 검단산에는 백제시절 하늘에 제사를 모시던 제단이 있었다는 곳인데 그 곁에는 문인이요, 학자인 유진오 박사의 탯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는 한말의 개혁 개방을 주창한 선구자 유길준 선생의 묘소가 있고 그 밑에는 한국일보 사장이었던 장기영, 이 나라 경제계에 신화적 존재였던 정주영 회장의 묘소도 있는 곳이다.
톨게이트 인근에 있는 와부읍 석실에는 안동김씨가 한말에 세도정치로 이 나라를 쥐고 흔들던 장동김씨의 큰 갈래인 청음 김상헌의 묘소가 있는데 玉壺(옥호)저수형의 이곳 명당을 차지하고서 안동김씨 문중에서는 형제 영의정(김수흥-김수항), 부자 영의정(김수항-김창집. 김조순-김좌근))뿐 아니라 부자 대재학(김수항-김창협)을 배출한 곳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고 보니 한참 휴가의 계절인지라 모든 서울시내의 차량이 모두 이곳으로 몰린 듯 앞으로 나갈 수 가 없다. 조금 가다가 쉬다가 찔끔 찔끔 늙은이 오줌 누듯 하면서 기어간다.
3호차에는 김진희 한맥문학사 회장님과 이창년 한맥문학 편집인 겸 한맥문학가협회 자문위원이 탑승하였는데 영광스럽게도 나도 동승하게 되었다.
정다운 동인회 사무차장이 이번 문학기행의 목적과 여행계획을 설명하고 문인협회 김봉곤 부회장을 소개하였다.
김봉곤 부회장이 앞으로 나와서 “이 3호차에는 한맥문학의 VIP격인 김진희 발행인과 이창년 원로 문인이 타고 계셔서 행운이다. 행사 때마다 여러분을 뵈오니 반갑다. 우리는 문학기행 가는 것이 좋아서 기다려진다. 예전과 같이 앞에서부터 자기 소개하는 식으로 인사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인사를 마쳤다.
한옥희-영광된 모임에 참여를 했다. 나는 풍경소리”라는 불자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홍성암 박사-나는 세미나 있을 때마다 참여하여 뵈오니 고맙고 즐거운 모습이 반갑다.
김진희 회장-1,2호차는 점잖은 분이 많이 탔는데 3호차는 더 기대되는 분들이 타서 반갑다. 오늘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 갖도록 하자. 많은 것을 보고 배워서 좋은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시기 바란다.
김동설 동인회 회장-작열하는 태양아래 근심걱정 내려놓으시고 여기에 참여하신 여러분을 뵈오니 반갑다. 인생 70을 사나 여든을 사나 마찬가지인데 한맥을 통하여 이런 모임 갖는 것 큰 인연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맥문학의 발전을 기대한다.
정해각-나는 컴퓨터에 취미가 있어서 일찍부터 글을 컴퓨터로 발표를 했고 플레쉬, 동영상, 노래 등을 홈피에 올려 칭찬을 많이 들었다. 동방문학에 옮겨 글을 쓰기도 했는데 시집을 2번째 냈다 오늘도 시집을 가지고 왔는데 배포 해 드리겠다.
여학구-나는 성산동에 살고 있다. 좋은 모임 좋은 자리 고맙다.
김재엽-나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불교문학에도 관계하고 있다.
이창년 자문위원-우선 반갑다, 그리고 좋다. 좋은 시간 보내고 재미있는 시간 보내자. 밤 11시 이후에 내방에 찾아오면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니 찾아오시기 바란다.
김진용-한맥문학 행사에 많이 참여하여야 하나 참여를 못했다. 좋은 여행이 되기 바란다.
김민서-한맥 행사에 두 번째로 참석을 했다. 참석을 하면 꼭 한 가지는 얻어 갈 것 같다.
이현숙-친구 따라 문학기행에 왔다. 즐겁게 참여하겠다.
이순영-자는 친구 깨워서 데리고 왔다.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영중-오랜만에 나왔는데 다정스럽고 시원하고 즐거운 한맥 분위기가 좋다.
문기봉-한맥과 인연을 맺어 즐겁다. 조경례-나는 웃음치료사다
전용수-나는 시로 등단을 했다 잘 살펴주어서 고맙고 반갑다.
송재범-처음 참여하는 세미나에 가려니 기쁘다. 전통이 있는 문학행사가 되기 바란다.
이상근-나는 금년 6월에 시로 등단을 했다. 고명분-한맥이여 영원 하라.
백덕순-나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성악가인 백다솜-즐겁게 살고 즐겁게 지내자
한길수-나는 문학기행이나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기행문을 써서 한맥문학에 게재하여 여러분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성함을 물어보면 협조해 달라.
반윤희-나는 어제 저녁을 노모와 같이 하고 왔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 오늘 너무 길이 막혀 고생이 심하다. 우리가 가려는 그 곳에는 신계전 시인이 살고 있어서 빨리 가고 싶은 곳이다.
최순자-모두 건강하시기 바란다. 음치이지만 노래하나 하겠다. “내 마음의 강물”
서봉산-염천에 여러분을 만나는 것만도 시원하고 반갑다. 김봉곤 선생은 돈만 잘 버는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팔방미인이다. 여러분 박수 한번 보내자.
박일소-우리 말에 一怒一老, 一笑一少라는게 있다. 나는 한때 사고를 당해 웃음을 잊은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서울대학에 가라고 서울우유를 먹였으나 못 가서 연세대학에 가라고 연세우유를 먹였으나 실패, 이번에는 저지방우유를 먹였더니 지방대학에 갔다-웃음.
김호수-한맥의 역사를 엮어보겠다. 지난 89년 교남빌딩-서대문 농민문학과 동거-명지대 옆 -독립문시대-홍은동 시대. 회원 중에 노익장이 많았는데 일직 가신분이 많아서 아쉽다.
허홍구- 재담 “목로주점과 주모”
김정한-반갑습니다. 나는 고성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 출신이다. 어느 모임이나 귀한 사람을 늦게 부르는데 오늘 내가 높은 사람인 듯하다. 쾌지나 칭칭나네.......
방재원-일명 방 삿갓이다. 8년 전에 문화행사에 손일호 선생 보디가드를 했는데 어느 여인이 나가지 말라고 해서 못 나왔다가 이제 이곳에 나왔다.
문경남-난는 환경문상을 수상했다, 나는 10년간 문학동인회 이사를 했다.
박상덕 사무차장-나이가 어려 이 자리가 쑥스럽다. 여러분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하겠다.
이강홍-kbs, mbc에 봉사중이다. 항상 추억은 그립다고 하는데 어제의 어른들이 안보이니까 서운하다가도 새로운 사람이 보이면 반갑다. 국회의원선거에 몇 번 출마를 했는데 이용만 당했다.
이봉래-나는 인천에서 경제단체에 근무하다가 암에 걸려 고생을 했다. 늦게야 컴퓨터를 배워서 금년 봄에 시로 등단을 했다.
13;15 산 좋고 물이 좋은 양구에 도착하고 보니 자기차로 온 문인, 이곳으로 직접 온 문인 등 150여 명이나 되는 한맥 가족이 모였다.
“양구에 오시면 10년은 젊어집니다”라는 플랜카드가 우리의 눈길을 잡아당긴다.
오지중의 오지인 양구, 육지의 섬인 이곳은 산과 물, 그리고 청정한 공기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어 아무리 더운 염천이라고 해도 우리의 마음과 몸을 식혀주는 알파가 있으려니 했던 기대는 무너져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그러는지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그 지긋지긋한 더위는 양보를 하지 않고 따라붙는다. 그래도 산이 있어 좋고 물이 좋고 공기가 달고 주변이 아름다워 체감온도는 적정상태다.
楊口는 본래 고구려에서 양구라 불리다가 신라에서 양녹군으로 고쳐 불렀는데 고려에 외서 楊構현이라 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환원되었다. 해방 후에는 대부분이 3.8이북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일부를 회복했다.
양구군은 1읍 4개면에 201.2km2의 면적이며 인구는 22.000명, 세대는 9.775세대이며 2370억의 재정규모에 군의원은 7명, 공무원 수는 412명 차량은 8.996대가 등록되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2012, 8, 9,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고 깜작 놀랐다. 전국에서 3번째로 영세한 지방자치단체인 이곳에서 인구의 10%인 1800명이 릴레이 기부를 하여 장학금 69억을 조성하여 주민의 10%가 장학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장하다. 양구군민 만세!
양구의 특산물은 전국대상을 받은 메론, 사과, 곰취, 시래기, 토마토 등이 있으며 이곳에는 토마토 축제, 양구가 한반도의 중앙이라고 배꼽축제, 시래기 축제, 곰취 축제 등이 있다.
양구 KCP호텔에 도착하여 뷔페로 점심을 들고 14;00 대연회장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제1부> 김하경 사무국장의 사회로 국민의례를 마치고 임향 회장의 개회사가 있었다.
“양구군의 많은 협조에 감사드린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갖는 세미나 행사를 위하여 많은 협조를 하여주신 김진희 회장과 이곳에 살고 있는 신계전 회원에게도 감사드린다. 비록 부족하고 잘 못된 것이 있어도 이해하고 사랑으로 덮어주는 아량이 있기 바란다. 조국이 분단된 이 마당에 관할구역이 분단된 이 양구군에 와서 ”남북통일 지향과 한국문학“이라는 세미나를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회원들께서는 여기에 동참하여주시고 질의를 통하여 의견을 나누어주시기 바란다”
전창범 양구군수의 환영사 “양구군에 오셔서 한맥문학 세미나를 갖는 것을 고맙게 생각 한다. 임향 회장을 위시하여 이 행사를 준비하신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린다. 양구는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계의 보고이다. 박수근 화백의 고장 조선백자문화의 고장으로 최초로 조선백자문화가 꽃을 피운 고장이 이곳이다. 양구군은 휴전선으로 분단된 곳인데 이곳에서 세미나를 갖는 것은 커다란 뜻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 시간을 내서 양구의 곳곳을 살펴 자연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생태계를 보시고 문화 유적과 자연경관을 보시기 바란다.”
감사패 전달; 김진희 회장이 전창범 양구군수와 박승용 양구군 의회 전 의장에게 전달하고 전창범 군수가 김진희 회장과 이성미 시인에게 감사패를 전달, 한맥문학사 김진희 회장이 문학평론가 윤병로 선생의 문학비 건립에 따른 부지제공 협조요청 공문전달.
<제2부 세미나>
좌장 홍성암(문학박사 동덕여대 명예교수) 발표자 김송배(시인 한국문인협회 수석부이사장)
홍성암 박사-홍성암 입니다. 매년 이 모임에 참석하여 세미나를 갖게 된 것이 10년이 지났다. 여러분들을 이런 곳에서 만나니 반갑다. 한국문인협회 행사에도 버스2대정도의 회원이 참여를 한다는데 한맥문학은 버스3대의 회원이 참석을 하니 자랑스럽고 즐겁고 흐뭇하다.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여럿이 모여서 논의하면 여러 인간의 구원이 된다. 한맥은 환경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환경부와 공동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환경분야 문학작품을 공모하여 공동시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분단된 양구에 와서 이런 세미나를 갖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전쟁문학, 분단문학, 종북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문학 박게 없다. 그래서 오늘 양구에서 이를 논의하게 되니 잘 경청해 주시기 바란다.
김송배 시인으로부터 분단문학의 현실과 대책에 대하여 견해를 들으시기 바란다.
김송배 발표자- 나도 세미나에 여러 번 참석을 해서 논의도 하고 견해를 듣기도 했다. 분단된 양구에 와서 발표하는 것은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여 자료가 좀 부실한 감이 있으나 차후에 자료를 잘 정리해서 한맥문학에 발표하겠다.
오늘은 통일지향과 문학의 흐름, 분단문학과 남북 문화의 교류, 통일지향 문학의 전망과 과제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남북통일지향문학의 흐름
우리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하면서 분출한 문학의 소재와 주제는 우리나라 통일관으로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관한 작품을 다루는 종군 작가단을 결성하여 현장을 누비며 시와 소설을 써서 참전용사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종군문학에서 통일지향의 문학까지 형성하면서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장식하게 된다.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한명희 소위가 현장에서 쓴 “비목”, 최인훈의 소설 “광장”,선우휘의 “불꽃”등이 전쟁문학이라 할 수 있다.
분단문학과 남북문학 교류
2000, 6, 15, 남북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은 우리문학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저항문학, 참여문학, 민중문학, 민족문학 등으로 진보성향의 문학이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여 남북문학 교류의 물꼬를 텄다. 이때 민족문학 작가회가 주관한 한국문인협회는 몇 사람을 구색 맞추기로 끼어 넣고 자기들 일색으로 구성하여 북으로 가서 행사도 했으나 그쪽의 홍수피해로 중단되었다. 그 뒤 금강산에 가서 모임을 가졌는데 한국문협은 들러리가 되고 민족 문학가협회 주관으로 자기들 입맛대로 진행했다.
김남주 시인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에는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조국은 하나다....>이런 시를 회의장에서 읽어서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진정한 교류의 목적에서 벗어난 다른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임헌영 교수는 문단문학이란 8.15전후 분단의 잉태에서부터 앞으로 통일될 때까지 모든 문학을 통섭하는 한국현대사의 시대구분 명칭으로 풀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해도 어려운 과제가 포함되어있다.
통일 지향문학의 전망과 과제
전쟁문학에서 분단문학으로 전환 모색함으로서 새로운 통일문학을 지향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통일지향문학은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남북관계의 이질성을 동질성으로 봉합시킬 수 있는 정서의 창출에 대한 절실함이 필요했다. 새로운 통일문학은 남북한 사회통합으로의 지향 점을 모색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강산에서 만나는 행사마저 중단이 되어 북한의 공기를 마시고 영감을 얻어 글의 소재로 삼아 글을 쓰려하였는데 이의 중단으로 글의 소재마저 고갈되었다.
김종길 시인은 “우리는 하나다”에서 통합의 염원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우리 문인들은 통일국가건설의 한 초석을 놓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주제발표에 따른 회원들의 질의
장영준 회원-북한과 문학 교류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분단, 반공, 통일지향문학이라고 했는데 한국문협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김송배 시인 답변-문예진흥원에서 문인들에게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전에는 1000명에게 300만원씩을 지원 해 주었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니 100명에게 1000만원씩 지원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이 100명중에 90명이 민족작가회 회원이었다. 지난 10년간 이런 제도로 운영해 왔어도 한국문협에서는 말도 못하고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많이 개선이 되고 있다. 남북문인 교류도 그쪽 사람들 위주로 하다 보니 그리 되었는데 통일부와 의논해서 우리가 교류의 주체가 되기로 했다.
한길수 회원(본인)-북한문인들의 활동 주제, 또는 문학의식에 대하여 알려 달라.
김송배 시인-사실은 우리도 잘 모른다. 문학의 주제라는 것은 인본주의, 진선미, 자연문제 등이 주제인데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을 주축으로 한 것이 주제다. 작가가 자유주의를 논한다던지 하면은 그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 세습왕조를 칭찬하는 것이 주제가 되고 있다.
홍성암 좌장-북한문학사 5권을 보니 모두 김정일 할아버지로부터 김일성을 주제로 쓴 작품들이다. 피바다나 꽃파는 처녀 등 모두는 김일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요 집체성 문학이다.
이중희 회원-나는 예전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회담을 한 일이 있다. 회담 중에 어떤 문제에 부딪치니 회담을 중단하고 자기들끼리 별도회의를 하더라. 이런 상황에서 무슨 글을 쓰겠는가? 우리 문인끼리 남북문인회담을 하자고 한국문협에서 제의를 해 보아라.
김송배 시인-남북문인교류협회가 있는데 내가 부회장이다. 연구를 해 보았는데 그때마다 그쪽의 요구사항이 있다. 여비 1인당 400만원이 소요되고 그쪽에서 우리나라에 오면 체재비 일체를 우리가 부담하여야 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에서 신경 쓰는 자가 없다. 그래도 우리 문협에서는 꾸준히 노력 할 것이다.
윤철환 회원-이산가족간의 서신왕래가 어렵다. 중간에 사람을 넣어서 접촉을 했는데 실제로 이쪽에서 보낸 편지나 물품이 제대로 전달했는지 알 수 가 없다.
박유동 회원-북한의 실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 내가 강계발전소에 근무하였을 때 북한의 작가회 추천을 받았는데 제대군인 外라고 시험을 못 치게 하였다. 북한문학은 사회주의 문학으로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김일성 찬양이나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흑연에 대한 글을 썼다고 모임에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민족 끼리라는 말은 속임수다 여기에 홀려서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쓴 자도 있다.
홍성암 좌장-단동에 가면 황금평이라고 있다. 북한과 중국이 협정을 했는데 북한의 섬이 중국 측에 붙어서 중국에서 가져가 버렸다, 위화도는 북한 땅인데 중국에 개발권을 넘겨주어서 개발 중이다.
문학인들이 창의적 노력으로 분단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제대로 짚어줘야 한다. 이 분단문제에 대하여는 문협에서 적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주어야 한다.
김진희 회장-독서의 해를 맞이하여 2011년에 한맥문학 창간호에서부터 최근호까지 6000권을 경찰청에 보냈더니 책이 너무 많이 기증되었다고 되돌려 왔는데 양구군에서 새마을 도서관을 새로 신축하였다기에 이곳에 1000부를 보냈더니 나에게 감사패를 전한 것이다.
오늘 행사에 이두형 부회장이 150만원, 월하 20만원, 동인회 20만원, 염한직 10만원,양구군수, 양구읍장 등이 많은 협찬을 해 주셨다기에 큰 박수를 보냈다.
<3부 시낭송, 기타> 이창년 시인이 시 “색종이” 낭송
강당에서 전체회원 기념촬영을 마치고 버스에 승차하여 박수근 미술관으로 향했다.
서민의 화가 한국의 밀레라는 칭을 듣는 박수근 화백은 1914, 2. 21, 양구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어렵게 자라면서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되었다. 박수근 화가는 회백색을 주로 사용하여 단조로우나 한국적인 주제로 소박하고 서민적인 감각으로 그렸다. 또한 이름 없고 가난하고 서민적인 삶을 소재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면서 일생을 마친 화가이다.
박 화백은 집이 가난하여 초등학교 만 졸업을 하였으나 그림 한 폭이 경매에 나올 때 마다 사상최고가를 기록하는 화가가 되었다. 한국전쟁 후 서울창신동에 작은집을 마련한 뒤 생계를 위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사다 줄 돈이 없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는 만화를 그려서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박수근의 예술 혼을 기념하기위하여 박 화백이 태어나서 18세까지 거주했던 이곳에 양구군이 2002,10월에 기념관을 지어 개관하였다. 이곳 4500평의 동산에는 박수근 화백의 청동좌상이 있고 빨래터와 백양나무 숲, 그리고 그의 묘소도 있다.
호텔내의 배정된 방에서 조금 쉬다가 18;30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1km정도의 거리에 있는 양구 습지 내에 있는 용머리공원에서 “문학의 밤”행사를 가졌다.
오리고기 바비큐에 막걸리 소주는 기본이고 매실 주, 오디 주, 딸기 주, 오가피 주 등이 준비되어 있어 누구든지 골라서 얼마든지 마시고 즐길 수 있었다.
신계전 문우의 사회로 시낭송의 시간을 가졌는데 지정해 주는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맨 먼저 윤철환 문우-유치환의 바위, 임향 회장-모윤숙의 기다림
오희창 문우-김소월의 초혼 김주명 문우-박두진의 청산도 외에 마술 2점
조선영 시우-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송기은 문우-이은상의 고지가 저기다 외에 노래
윤종안 한맥문학사 고문이 임철호 양구읍장에게 감사패를 전달
김진희 회장이 윤병로 문학비 건립부지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 전달
양구읍장의 인사-감사합니다. 신계전 문인은 양구 마을문고의 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양구는 한반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양구의 기를 받아가지고 가면 10년은 젊어진다고 하니 기를 많이 받아가지고 가시라. 그리고 양구의 자연과 풍광을 보시고 추억을 많이 만들어 가시기 바란다. 끝으로 읍장의 노래 한 곡조 가사를 개사한“내고향 충청도”
호텔로 돌아와서 시인이며 서울시우문인회장인 오남식, 시인으로“불꽃 한 송이”란 시집을 낸 오희창, 시인으로 “무성한 나무”라는 시집을 낸 박유동 문우와 같이 한방의 인연을 맺었다.
8, 5,
05;30에 눈을 뜨고 4인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가 잔디밭에서 여러 문우들과 인사하는 교유의 장을 열었다.
09;20 출발한 우리 일행은 민통선 내 백두산부대가 관할하는 두타연과 폭포의 현장에 갔다. 일본여자로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다문화 가족 해설사의 해설을 들었다. “여기는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던 곳으로 금강산이 30km거리에 있다. 두타연에는 기리 70cm되는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다. 열목어는 눈에서 열이 나는 물고기로 찬물에 눈을 식혀야 하기에 청정수에서만 살고 있다. 두타연에는 자연굴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희정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에 두타사라는 절을 지었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여기에 흐르는 물은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니 고뇌가 있으면 여기에 흘려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내려가시기 바란다.”
두타연에 많은 물이 흐를 때는 연못이 한반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수심은 12m나 된다. 이외에 두타정과 장군바위가 있고 산사주나무가 꼭 끼어 안고 있는 남녀목이 있으며 소지섭 길도 있다. 두타정에서 장영규 시인과 서로 공감이 가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동면 임당리와 팔랑리를 거쳐 두타터널을 지나 치열한 전쟁터였던 펀치 볼 마을 해안면으로 향했다. 亥安面의 해는 돼지해자인데 옛날에 이곳에 뱀이 많아서 사람이 살 수가 없었는데 하루는 지나가던 스님이 이곳에 돼지를 가두지 말고 놓아서 기르라고 가르쳐 주기에 돼지를 길렀더니 돼지가 뱀을 다 잡아먹어서 돼지도 약 돼지가 되어 부자가 되고 편안하게 살았다고 편안안자가 지명에 들어갔다고 한다.
펀치 볼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4-500m의 분지로 옛날에는 이곳이 커다란 저수지였는데 물이 빠져나가서 화채그릇처럼 생겼다고 펀치 볼이라고 부른다. 주변에 대암산 도솔산 가칠봉 등은 6,25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고지들인데 국군 제5보병사단이 끝까지 지켜낸 곳이다. 이곳의 명물로는 시래기 축제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시래기와 곰취, 더덕, 오가피 등이 토산품으로 인기가 있다. 이곳의 볼거리로는 통일관, 전쟁기념관, 제4땅굴, 을지전망대 등이 있다.
해안면 복지회관으로 가서 이곳 부녀회원들이 12가지 산채나물에 돼지고기 볶음을 가미한 웰빙 청정 먹을거리로 마련한 맛깔스런 점심식사를 했는데 밥맛이 더 나서 가반을 하였다. 식사후 우리들은 통일관으로 가서 신고를 마치고 을지 전망대로 향했다.
을지 전망대에 가니 외국 관광객들이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2km이던 비무장지대를 양측에서 1km로 축소하여 철조망과 철책으로 방벽을 만들어 대치하고 있었다. 을지 전망대 왼쪽에 있는 1247m 가칠봉 관측소에는 물이 풍부하여 수영장도 있는데 미스 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그곳에서 했다는 장소라고 한다. 1.112m의 김일성 고지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고 1.290m 매봉은 북측에서 케이블카를 설치했다는 곳이다. 선녀폭포는 북쪽의 여군이 남쪽의 군인을 유혹하기위하여 나체로 목욕을 했다는 곳이다. 박달봉, 관모봉에는 북쪽의 1개 대대가 주둔한 곳인데 그 너머로 38km지점에 있는 금강산이 보인다. 북방 한계선의 철조망에는 2만V전류가 흐르고 있으며 그 밑에는 모래를 깔아 표시된 발자국을 살펴보도록 만들어 놓았다. 북측에서는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여 경작을 하는데 자급자족을 하기 위함이다. 아군 12사단 흰색초소는 북축 초소와의 거리가 780m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초소라고 한다.
14;30 이곳을 출발하여 양구읍내에 왔는데 읍장이 제공하는 초코바 1개씩을 빨면서 상경하는 귀로에 올랐는데 차창으로 보니 주변에 인삼밭이 너무나 많다. 머지않아서 이곳이 인삼고장으로 명성이 날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내에서 정다운, 문경남 사회로 흥겨운 장기자랑,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노래를 부르면 너무 잘 불렀다, 끝이 시원치 않다, 가사가 일부 틀렸다는 등 시비를 부쳐 금 1만원씩을 받아내 이를 모아서 1.2.3호차 기사들의 팁을 준비하고 차내 회원들에게는 5.000원씩을 저녁식사대금으로 나누어 주는 정이 가고 아름다운 미담행사에 모두 참여하여 많은 칭찬을 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끝으로 김진희 회장님이 “오늘의 좋은 발상은 지금까지 없었던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모임을 후원한 사람으로서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여러분의 이 미담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영원한 것이 될 것이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양구 8경>
두타연 펀치볼 사명산 광치계곡
파서탕 파로호 후곡약수 생태식물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