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끌었던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논란 끝에 지난달 11일 민주노총을 뺀 노사정 합의에 이르렀다. 노동부는 며칠 뒤 노사정 합의안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4일로 입법예고 기간도 끝났고, 국회 처리만 남았다. 통과되면 내년 7월1일부터 시행된다.
노사정 합의와 관련 3년간 유예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세간의 관심과 논란이 온통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노사분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당해고 구제제도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해 큰 변화를 맞는다. 부당해고를 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삭제돼 부당해고 자체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진다. 대신 부당해고 이행명령 불이행에 대한 사후적인 제재장치가 강화된다. 형사처벌 조항 삭제로 부당해고가 남발될 것이란 주장과 구제명령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논리들을 따라가 본다. 먼저 부당해고 구제제도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부터 살펴본다.<편집자>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기대효과를 “근로자 보호와 노동시장 유연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 노사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윈-윈(win-win)’이다. 이행강제금과 벌칙으로 구제명령의 실효성을 높여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한편 부당해고 벌칙조항을 삭제하고 금전보상제를 도입해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제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고려한 개정안이라는 자평이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이 미약해 해고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노동자들에게 부당해고를 자행한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의미 있는 제재장치 신설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고도 소송을 거쳐 부당해고가 확정된 후 복직시키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함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해고라는 행위 자체가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해고를 남발할 것이고, 따라서 노사 모두가 아닌 사측의 ‘윈’일 뿐이라는 것이 노동계 일각의 우려이고 주장이다.
노동부 “안정성-유연성 동시 고려”
부당해고 구제제도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부당해고 벌칙조항 삭제와 금전보상제 도입, 구제명령 불이행시 이행강제금 및 벌칙 부과, 해고의 서면 통보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표 참조>
우선 해고 등을 제한한 근로기준법 제30조 1항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기타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대한 벌칙을 없앴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법 제110조 벌칙조항의 대상에서 제30조 1항을 삭제한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부당해고가 형사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해고당한 노동자 대부분이 첫 대응책으로 삼았던 지방노동청 진정이나 고소가 사라지고, 사법권을 가진 근로감독관의 조사나 검찰의 기소 절차가 없어진다. 형사절차가 사라짐에 따라 노동자에게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는 행정절차와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는 민사절차만 남게 된다.
노동부는 “현행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에 대한 처벌은 근로자의 진의와는 달리 민사상 법률분쟁이 형사사건화 되고, 국제적으로도 입법례가 거의 없고, 사용자의 정당한 해고권이 제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고 개정배경을 설명했다.
또 현행법이 부당해고에 대한 무거운 벌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예가 없고, 100만원 이하의 소액 벌금형에 그쳐 벌칙조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도 현실적인 개정근거 중의 하나다.
그러나 같은 현실을 놓고 상반되는 주장도 있다. 벌칙조항에 따라 사용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예는 거의 없지만 이 형사처벌 조항 때문에 사용자가 해고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부당해고 진정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조사에 사용자가 부담감을 가져 일정한 해고 예방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벌칙조항이 있어도 다 빠져나갔는데 이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부당해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인가”라는 것이 노동계 일각의 비판이다.
부당해고 형사처벌 사라진다
그래서 노동부가 개정안에서 도입하려는 것이 구제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이행강제금과 벌칙이다.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확정돼 원직복직이 명령돼도 그동안은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버티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기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이행강제금으로도 구제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사용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법 제118조에 이행강제금이, 법 제113조의2에 벌칙이 신설된다. 이행강제금은 구제명령이 확정되었거나 중앙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있는 경우 1회에 2,000만원 이하로 1년에 2회, 2년까지 부과할 수 있다. 최대 8,000만원까지 이행강제금을 물릴 수 있는 것이다. 이행강제금을 미납할 경우 국세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강제징수한다. 구제명령이 확정된다는 것은 지방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에 재심을 신청하지 않거나 중노위 재심판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주목할 부분은 사용자가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도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행강제금은 구제명령이 확정된 것인지에 관계없이 사용자가 구제명령을 우선 이행하도록 하여 근로관계를 신속히 원상회복시키자는 취지”라며
“다만 지노위 판정은 중노위에서 번복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확정되지 않은 구제명령에 대한 이행강제금은 중노위의 판정에만 국한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벌칙과 이행강제금 모두 구제명령의 실효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벌칙은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이행강제금은 구제명령이 확정되지 않아도 중노위 판정 후에는 부과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행강제금으로 구제명령 강제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수단을 다양화하기 위해 금전보상제가 도입된다. 구제명령을 규정한 개정안 제33조의3 제4항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에 대한 구제명령을 내릴 때 근로자가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에게 당해 근로자의 원직복직을 명하는 대신 근로자가 해고기간 동안 근로를 제공했다면 지급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 이상의 금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명’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자가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 임금상당액과 별도의 위로금을 받고 근로관계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동부는 “원직복직은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효과적인 구제방법이 되지 못하므로 원직복직을 대신해 금전보상금을 지급하고 근로관계를 종결할 필요성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여건상 사용자에 의한 해고남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어 근로자가 원직복직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로 제한했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이번 개정안은 사용자에 대한 징벌과 제재를 강화해 부당해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측면보다는 구제명령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이행강제금과 복직을 대체하는 금전보상제를 도입해 사후구제의 실효성을 담보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부 노사정책팀 최종석 서기관은 “부당해고에 대한 벌칙조항이 있지만 관행상 처벌의 강도도 약했고, 항소하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사용자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며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를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고 처벌은 구제를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이행강제금과 벌칙을 통해 확정된 구제명령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처벌보다는 구제의 실효성 고려해야”
조용만 건국대 교수(법학)는 “형사처벌 조항이 실제 사례를 찾기는 힘들지만 부당한 해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 이것을 삭제하는 것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면서도 “민사적으로 해결할 것에 국가 형벌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측면에서는 벌칙조항 삭제가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금전보상제 도입과 관련 조 교수는 “원직복직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 금전으로 보상하고 근로관계를 종결하는 것이 금전보상제의 본래 취지인데, 해고 사유가 전혀 없는, 악의적인 해고까지 금전보상제의 대상으로 한다면 해고남발 등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하며 “악의적인 해고는 금전보상제에서 제외하거나 보상액수를 달리는 하는 등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소영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기준법이 부당해고를 제한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사용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해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해고제한 제도의 본래 취지상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해 해고를 제한해야 하며, 부당해고 구제의 실효성 확보에 보다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김 연구위원은 “구제명령에 대한 이행강제금과 같은 사후적인 구제제도로는 부당해고시 형사처벌이 갖는 예방적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지만 근로자의 복직을 직접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은 간접적인 강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공부할 것이 산더미 같아요/
자료 잘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