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람 얘기부터 해야겠다. 경상도의 투박함과 강원도의 질박함을 반씩 섞어 놓은 사람들. 내가 느낀 울릉도 사람들은 그랬다. 목청은 파도소리 같지만 낯빛엔 선한 웃음이 보름밤 박꽃 그림자처럼 은근했다. 마치 양푼에 담긴 보리밥처럼 천연스러웠다.
서울 가 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입씨름을 하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고 하듯이, 울릉도 사람에 대한 나의 인상은 주관적이다. 더욱이 처음 찾은 울릉도에서의 나흘 동안 사흘은 비를 맞았다. 고래 심줄 같은 비바람을 맞으며 성인봉을 올랐고, 안개 자욱한 나리분지를 걸었다. 덕분에 나는 울릉도로 스며들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는 풍광들은 나에게 조근조근 울릉도의 자연과 사람살이의 속내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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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봉 기슭의 숲.안개는 숲을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며 산으로 다가드는 이들과 포옹하게 한다.
울릉도의 자연 환경이 어떻게 울릉도 사람들의 삶을 빚었는지를 알려면 울릉도와 성인봉 그리고 나리분지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성인봉(986.7m)은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다. 울릉도의 모든 산줄기가 여기서 비롯하고 물줄기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왜 산으로 부르지 않고 ‘봉’이라 했을까? 성인봉에서 뻗어내리는 줄기에 맺힌 봉우리에도 간두산(968), 송곳산(695.6) 등으로 이름을 붙여놓았다(~봉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산들이 언제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산들의 조종(祖宗)을 산이라 호칭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 알 듯이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250만 년 전 동해에서 솟구친 용암이 굳어 이루어진 섬이다. 화산 분류법에 따르면 울릉도는 종상화산(鐘狀火山, tholoide)이다. 화산의 정상부가 종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는 얘기다. 성인봉은 화구벽(외륜산)의 정점을 이룬 용암 덩어리다. 종상화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용암의 점성이 높다는 점이다. 용암의 점성이 묽을 경우 길게 흘러 부드러운 경사를 이룰 테지만 고체에 가까운 형태로 분출될 때는 급경사를 이룰 수밖에 없다. 울릉도가 바로 이 경우다. 대부분의 해안이 가파른 절벽을 이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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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봉 북쪽 기슭의 나리분지.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다. 개척민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울릉도 문화의 한 축을 세웠다. 또한 나리분지는 비를 머금었다가 뿜어내는 물탱크 역할을 한다. 울릉도에 깃든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제주도에서는 먼발치 어디에서나 한라산이 보인다. 울릉도에서 성인봉은 그렇지 않다. 가장자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울릉도는 하나의 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이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성인봉이다. 그렇다고 울릉산이라 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일 터여서 굳이 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울릉도의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는 나리분지다. 나리분지 안에는 알봉분지라는 또 하나의 분지가 있다. 나리분지의 평균 해발 고도는 300m, 2차 용암 분출로 형성된 알봉분지의 평균 고도는 500m 정도라고 한다. 화산의 불구멍이었던 이곳은 한라산 백록담처럼 물이 고여 있는 호수가 아니다. 말 그대로 분지다. 동서 길이 약 1.5m, 남북 길이 약 2km, 면적 약 2km²의 편평한 땅이다. 역설적이게도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다. 여기에서 울릉도 근세사의 특질이 비롯된다.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현포, 남서, 저동 등에서 발견되는 지석묘와 무문토기 등으로 미루어 청동기시대 또는 철기시대 전기로 본다. 울릉도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고려에 조공했다. 이후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 때문에 주민을 본토로 귀환시키고 다시 보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를 일본이 ‘공도정책’이라는 말로, 섬을 비운 게 아니냐는 식의 주장을 펴지만 사실은 억지다.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거듭 본토 주민 이주를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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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리분지 야영장 솔숲 길. 안개가 소나무 숲을 수묵화로 바꿔놓았다. 금강송처럼 곧게 뻗었는데 나무껍질을 보면 곰솔(해송)이다.
조선시대에도 왜인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1696년(조선 2년)에 안용복이 두 번째로 도일해 백기주(伯耆州) 태수와 담판,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받고 일본인의 출어·벌채금지를 약속하는 문서를 받는다. 마침내 조선의 고종은 1882년(고종 19) 검찰사 이규원으로 하여금 울릉도를 검찰하게 한 뒤 개척령을 반포한다. 이듬해인 1883년 개척민 16호 54명이 울릉도로 이주한다. 이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나리분지다.
나리분지는 겨울이면 3m까지 쌓일 정도로 눈이 많다. 섬에 와서도 바다 근처는 얼씬도 않은 개척민에게 눈과 추위는 곧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들은 귀틀로 만든 벽 외부에 옥수수대나 억새로 엮은 우데기를 두른 울릉도 특유의 투막집과 너와집을 지었다.
지만 추위보다 더한 고통은 굶주림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일인들이 눈앞에서 전복을 따고 오징어를 잡아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다. 아이들이 일인들을 흉내내어 고기를 잡으면 사정없이 종아리를 때렸다. 이 때 이들을 살린 것은 깍새(현재는 멸종)와 ‘명이’, 즉 산마늘이었다. 개척민들의 명을 이어주었다고 해서 산마늘이 울릉도에서는‘명이’라고 불린 것이다(국어사전에는 ‘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후 일제강점기부터 울릉도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고기잡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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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겨울에는 벌레(곤충), 여름에는 풀’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동충하초’. 성인봉 숲의 원시적 건강성을 보여준다. 아래) 성인봉 등산로 초입에서 내려다 본 도동. 움푹 들어간 해안이 만든 천혜의 항구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나리분지는 또한 울릉도의 저수원이다. 이곳에 스며든 물이 성인봉 남쪽 기슭을 뚫고 봉래폭포를 이루니 그것은 울릉읍 주민들의 생명수다. 북쪽으로 용출소로 솟는 물은 추산수력발전소를 돌리는 힘의 원천이다. 성인봉과 나리분지가 곧 울릉도다.
강원도의 비탈밭도 울릉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평균 경사각이 45도에 이른다. 억척스레 밭을 일구었으나 그 면적은 전체의 1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 고비와 미역취, 부지깽이 같은 산나물과 더덕, 약초를 심는다. 아직도 명이는 야생인데 봄철이면 이곳 주민들의 주소득원이다. 절해고도이면서도 바닷가와 산간벽지의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개척민에 의해 형성된 농경문화와 이곳의 자연적 배경이 만든 울릉도만의 문화적 특질이다.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 볼 때 천연기념물만큼이나 소중한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다.
울릉도의 바탕 모양은 역삼각형에 가까운 오각형이다. 산줄기는 성인봉을 정점으로 오각형의 모서리를 향한다. 북동쪽 줄기는 천부리, 동쪽 줄기는 저동, 동남쪽 줄기는 도동, 남쪽 줄기는 남양, 서쪽 줄기는 부챗살처럼 현포와 태하로 펼쳐진다. 그 산줄기 사이사이로 늘 물이 흐르니 울릉도는 실로 신비로운 섬이다. 제주도와 다른 점이다.
성인봉을 오르는 길은 성인봉의 동쪽 기슭인 도동과 저동, 북쪽의 나리분지에서 시작된다. 가장 보편적인 길은 도동이나 대원사 기점이다. 등산로 초입의 콘크리트 포장길만 벗어나면 정상부까지 거의 원시림 분위기의 숲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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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리분지의 너와집(국가 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256호)과 투막집(국가 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256호). 눈과 바람이 많은 나리분지의 겨울이 만들어낸 울릉도 특유의 집이다.
성인봉 오르던 날, 숲이 시작되면서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거진 숲은 더없이 좋은 우산이었다. 안개가 흐르는 숲은 성인봉과 나의 거리를 껴안은 듯 좁혀준다. 비에 젖은 동백은 저무는 여름 숲에 짙푸른 열정을 쏟아낸다.
산허리쯤에서 함께 산행에 나선 조중호 형이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한때 이웃하고 살던 조중호 형은 1년 전부터 울릉도에 붙박이로 사는 산악인이다. 동충하초를 찾은 것이다. 머리 크기가 팥알만 한 것을 용케도 찾았다. 이제는 완전한 울릉도 주민이 된 듯 싶어서 미덥다. 나뭇잎에 동충하초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었다. 숙주인 노린재의 형체가 선명하다.
동충하초는 곤충의 애벌레나 성충을 숙주로 하여 생장하는 작은 버섯이다. 동충하초(冬蟲夏草)라는 이름에는 ‘겨울에는 벌레, 여름에는 풀(버섯)’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충하초가 자라기 위해서는 꽤 까다로운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한여름에는 서늘할 정도의 적당한 온습도, 늘 그늘을 이루는 울창한 숲, 곤충이 살기에 좋은 열매가 필요하다. 성인봉 기슭이 바로 그런 곳이라는 얘기다. 이곳의 원시림이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는가는 동충하초가 증명해 준다.
정상에 오르자 바람을 등에 업은 빗방울이 팽팽해진다. 서둘러 내려와 데크 로드 아래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초코바를 우물거린다. 나이와 체면 따위를 깡그리 내려놓게 하는 궁상스런 행복. 내게는 언제나 빼놓을 수 없는 산행의 즐거움이다.
나리분지로 내려서는 길은 잘 가꾼 산책로 같다. 나리분지로 흐르는 안개는 곧장 끝 모를 깊이의 바다로 나를 데려간다. 내 마음속에는 푸른 동해가 가득이다. 울릉도는 그 속에 깃든 모든 것을 푸르게 만드는 섬이다.
울릉도는 넓이 72.56㎢, 둘레 56.5km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으로 드러난 것만이다. 바닷속 몸뚱이는 수심 2,200m의 해저에 발을 딛고 있는 큰 화산이다. 그 거대한 불기둥은 동해 쪽빛을 온몸에 물들이고 우리네 삶과 문화를 살찌운다. 건강한 삶의 문화와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그린 아일랜드. 만약 울릉도에 투박하고 질박한 삶의 결이 사라진다면, 아무리 좋은 호텔에 들어서도 울릉도는 더 이상 그린 아일랜드가 아닐 것이다.
/ 글·사진 윤제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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