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하는 학생군사학교는 학군사관(ROTC) 훈련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입니다. 1년에 두 번 입영훈련을 하는데 후보생들이 대학생이다 보니 훈련은 학기 중을 피해 가장 추운 1월과 가장 더운 7~8월에 이뤄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계입영훈련이 시작돼 1만여 명의 후보생들이 들어왔고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일미사 때 성당을 가득 메운 후보생들이 내뿜는 젊고 활기찬 에너지를 접할 때면 기(氣)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저는 군생활에 대해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이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3년 전 군의관으로 임관하게 됐을 때 저는 공중보건의가 아닌 군의관으로서 38개월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같은 복무기간과 월급을 받고 군역을 이행하는데 좀 더 편한 생활이 보장되는 공중보건의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육군병장으로 제대하신 저의 아버지는 아들이 장교로 임관하게 된 것에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저는 아버지가 고지식한 옛날 사람이고 제가 처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의관으로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저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38개월이란 복무기간은 막막했고 하루가 전쟁과도 같았던 병원생활에 비해 간단한 환자의 진료와 훈련장 의무대기가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군의관 2년차 때 의무대장을 맡으면서 저의 불평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진료 외에 지휘관으로서 병력관리, 부대관리, 각종 회의 참석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큰 부담인데다 때때로 군의관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상처 주는 분들을 대하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억울한 마음에 처음에는 소화불량, 위염 증세가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정신과 상담까지 신청하게 됐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수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여의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주위의 시선들이 하나둘씩 격려의 눈길로 바뀌어 갔고,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지시와 명령들이 군인이자 지휘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제 마음 안에 굳게 자리 잡고 있던 불평이 서서히 작아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감사와 긍정의 마음이 점점 커져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비뚤어진 제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면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 옆에서는 자연스레 미소짓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한때 군생활의 많은 시간을 불평하며 보낸 적도 있지만 앞으로 남은 제 삶 속에서는 주변에 힘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하느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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