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산소에 비석을 세운 체험 후기
별과바람
섣달 스무닷새 날 오전 어머님 산소에 비석을 세웠다. 인부 두 명 굴착기 기사 한 분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과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비문을 작성했던 나는 비석을 세우는 작업 진척 사진을 찍으며 내내 콩닥거렸다. 전동차로 현장에 나와서 일을 지켜보셨던 아버지께서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오는 설에 집안 식구들이 모였을 때 어머님 산소에 비석이 반듯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님이셨다.
작업이 끝나자 수고하신 분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했다. 전날 준비하였던 제사 음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콩 시루떡과 귀한 문어를 비롯해서 푸짐하게 차릴 수 있었다. 진심 어린 감사에 고마워하며 달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아내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수고비와 비석 값 잔금을 정산하고자 아내와 평해에 내려갔다. 석물 가게 문을 열었더니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백만 원의 계약금 외에 부담해야 할 비용을 여쭈었더니 준비해둔 견적서를 보여주었다. 놀라웠다. 한 달 전에 아버님을 모시고 찾아서 상담했을 때 넉 자 비석의 총비용을 삼백만 원이라고 설명해놓고서는 넉 자 반 비석으로 했다손 치더라도 일백만 원을 더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사연인 즉 추가 비용 30만원에 인부들의 작업 품값과 장비 지원 값을 별도로 요구했던 것이다. 다행히 아버님의 통장을 준비하여 대처하였기에 망정이지 형제계금에서 송금해준 이백만 원으로는 낭패를 볼 뻔했다.
비록 비용은 추가로 들었지만 세운 비석이 그럴듯하여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아버지 거처방에서 붉은바위 형님과 아버님께 비석 설립 정산 내용을 설명하고 있을 때 초당 형님의 전화가 왔다. 둘째 셋째 딸 이름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비석에 새길 글을 최종적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사진을 받아보고서 손녀 두 명의 이름이 빠졌다는 연락을 내가 바로 했고, 당사자는 메모하는 통화가 있었는데 그 결과를 다시 확인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 일을 어찌하랴. 비석 글자를 새겼던 담당자에게 바로 항의 전화를 했더니 그런 전화 요구가 있었으면 그런 실수를 왜 하였겠느냐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미 계산까지 마쳤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통화내용을 빨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오후 아내와 함께 대구 집으로 나오면서 바로 KT 수성지점을 찾아갔다. 한 달 전에 통폐합 정리되면서 신암동 동대구지점으로 가보란다. 방문한 상담결과는 참담했다. 통화 번호만 조회될 뿐 통화 내용 확인은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이튿날 수성경찰서를 찾아가서 면담하였더니 큰 사건화 되었을 때만 검찰에서 해당 통신사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일반인들의 소소한 다툼에는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비문을 담당했던 사람은 나였다. 무엇에 홀렸는지 막내 재수 씨의 한자 이름도 틀린 것을 뒤늦게 알아내었고, 더욱 한심한 실수는 손자 손녀의 인원수를 깜박하였던 비문 표현이었다. 내 마음은 몹시 아팠다. 부끄럽기 짝이 없게 되었다. 치밀하게 확인하지 않은 성격 탓이다. 비석 대금 시비도 그렇다. 사전에 견적서를 받아두지 않고 아버지를 잘 아시는 분의 설명을 그냥 듣기만 했던 처신이 화근을 불렀던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돌이켜 후회한들 해결할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차선책이 있을 뿐이다. 빠트린 두 손녀 이름은 여백에 추가로 넣어주겠다는 당사자의 말에 동의를 해주는 것이 일차적인 대처다.
다행히 2월 6일(토)까지 산소 현장을 찾아와서 누락된 두 손녀 이름을 추가로 새겨놓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름 명기 순서를 바꾼 결과라서 눈에 거슬리지만, 실수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교훈으로 후손들에게 제값을 톡톡히 하리라고 위안해 본다.
최종적인 대처는 아버님께서 운명하시면 새로 비석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때 제대로 된 비석으로 바꿔서 세우는 방법이 있다. 책임자는 나이기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이백만 원 비용은 기꺼이 내가 감당하여야 하겠다. 좋은 경험을 한 것으로 그만한 값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른 일에 얼마든지 그 교훈으로 그 값을 대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순간순간의 세월을 맞이함에 방심의 실수가 없도록 좀 더 지혜롭게 살아야 하겠다.
첫댓글 큰 일을 수행하다보면 한두가지 누락하거나 실수가 흔히 발생하게 되고.......그런걸 예방하는 차원에서 계약서나 Check List로~
네~, 좋은 경험하였네요. 아버님께서 계약 선금 일백만 원 가지고 내려가서 상담할 때는 넉자 비석이 적당하며 설치비를 포함해서 200만 원에다 상석과 망부석 화병을 포함시키면 300만원 들 것이라는 설명이었고, 아버님께서 넉자 비석보다 좀 더 큰것을 물으니 여섯자 비석이 있는데 그것은 무거워 큰 포크레인이 동원되어야 하기에 육백만 원 들 것이라는 말을 생생히 들었기 때문에 옥신각신하게 따질 수밖에 없게 되었더랬습니다. 더구나 그분의 바로 위의 형이 울진에서 기계로 비석 비문을 새기는데 넉자 반 비석에 우리 비문을 새겨야 글 내용을 띄어 쓸 여유가 있다면서 권하기에 비용이 얼마냐 물었더니 150만원이라해서 오케이 했죠.
그래서 견적서 같은게 필요한데, 지난번 묘지공사때는 평해석물 사장이 직접 메모 해 준 것이 있어 혼돈이 없었는데,
비록 장군묘가 군왕묘가 되었어 좀 그렇지만, 근데 동네에서 특히 100세 가까운 아버님한테 바가지야 쉬웠겠는가, 한두번 보는 사이도 아닌데, 또 바로 수정 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일로 큰일 날 것은 없어니 그만 잊도록 하시게. 수고 많이 했네.
큰 위로 말씀 고맙습니다. 부끄러워 얼굴 들기가 뭣한 심정에 용기를 북돋워 주셨네요.
이번 일의 산 교훈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회생활 경험 부족의 민낯을 보이고 말았지요.
그날 시골까지 귀한 걸음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내일 뵐게요~.
별과바람님!
그동안 너무나 수고 하셨구요 !
대가족 대사를 혼자서 하시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답니다. 마음 편히갖이세요
그리고 어느가정이나 설겆이 많이 하는 장 본인이 힘들고 앞옷을 적시는 법이지요 !
너무나 수고 많이 했습니다
새해에는 더더욱 만사형통하시고 늘 기쁨이 충만하세요 !
네~형누님, 너그럽게 이해하여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