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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224금] 변협의 법관 평가 이해할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그제 발표한 2011년 재임용 대상 법관 180명에 대한 평가 결과는 '평가'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대상 선정부터 평가 방식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평가를 큰 성과라도 되는 양 언론에 알린 변협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누구와 무엇을 위한 법관 재임용 적합성 평가인지 모르겠다. 혹 법조계에서 변협의 위상과 존재감을 과시해 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앞섰던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평가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변협의 법관 재임용 적합성 평가를 이해한다 치자. 그렇다면 엄정한 평가를 위해 과학적, 체계적 방식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변협의 법관 평가 결과는 아무리 뜯어 봐도 평가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전체 소속 변호사의 1.4%인 155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는 결코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 내년 재임용 대상이 아닌 97명의 법관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아예 설문 평가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이처럼 허술하게 진행한 평가 결과를 조사 대상 법관의 실명과 함께 공개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변협은 잘못된 평가 결과의 공개로 실추된 법관들의 명예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변호사의 법관 평가가 적절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한 쪽 당사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 때문에 변호사의 법관 평가는 공정성과 객관성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재판 활동을 위축시키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평가가 '막말 판사'를 걸러내려는 것이라면 집단적 평가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법관 부적격자를 신고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변협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만 찾는'우를 범해선 안 된다. 변호사 업계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올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변호사가 42명으로, 지난해보다 2배 증가했다. 변협은 변호사들의 직업 윤리의식부터 높여 주기 바란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224금] 구제역 비상사태, 백신 믿지 말고 방역체계 다잡아야
경북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경기·강원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원 지역에선 평창, 화천, 원주에 이어 명품 한우로 유명한 횡성까지 구제역이 퍼졌다. 정부 방역 시스템의 철저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구제역이 1~2주의 잠복기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충청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부는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아래 철저한 방역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비상수단으로 백신 접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취약한 소 13만여마리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확산 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 일단 백신으로 항체가 형성되는 비율이 85%에 불과하다. 더욱이 소·돼지가 백신 접종을 전후해 감염되면 구제역 증상을 보이지 않은 채 바이러스를 가진 보균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런 가축들은 구제역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백신 접종을 믿고 안이하게 대처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 한달 동안의 구제역 발생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방역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이다. 무엇보다 사람과 가축의 이동 제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축산업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감염 확산의 경로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경북에서 한참 떨어진 경기로 전파됐다가 다시 강원으로 확산된 과정은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따라서 방역망을 재정비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대책이 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백신 접종을 한다 해도 구제역 확산을 막기 힘들 것이다.
이번 구제역은 국내 가축전염병 방역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발병만 1월, 4월에 이어 올 들어 세번째다. 정부는 이번에 한달이 다 되도록 감염 원인과 경로를 파악하지 못했다. 규모도 사상 최대다. 매몰된 소·돼지는 28만마리가 넘는다. 그런데도 확산 추세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사상 최악의 사태다. 백신 접종만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정부는 백신이 방역체계를 대신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비상한 각오로 구제역 차단에 나서주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20101224금] 안상수 대표에게 '말 선생'이라도 붙여 주든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22일 중증(重症)장애 아동시설에서 급식봉사를 한 뒤 여기자 3명과 점심을 먹으며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 요즘은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여성 비하 발언 논란이 빚어지자 "성형 부작용에 대한 소문을 얘기한 것"이라며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 데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세상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그 의미가 구성된다. 정치인이 말할 때마다 '자신의 의도는 이런 뜻이었다'고 사족(蛇足)을 붙여야 한다면 정치인으로선 낙제(落第)다. 안 대표가 장애 아이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나서 딸 같은 여기자들 앞에서 한 발언이라 더 이해하기 어렵다.
안 대표는 지난달 말 북한에 포격당한 연평도를 찾아갔다가 화염에 그을린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잘못 말해 TV 코미디프로의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안 대표는 여기자들에게 '보온병 파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다치기만 한 게 아니라 유명해지기도 했다는 뜻의 농담도 했다고 한다. 그런 식이라면 이번에 '자연산' 발언까지 보태졌으니 더 유명해지게 됐다.
그러나 집권당 대표가 그런 식으로 유명해져서는 곤란하다. 그 바람에 개인은 유명해졌을지 모르지만 '집권당'과 '대표' 값은 서푼짜리가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여자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성희롱 발언을 했던 강용석 의원을 제명했었다. 강 의원을 제명한 당 대표가 스스로 비슷한 사고를 쳤으니 한나라당 꼴이 더 우습게 됐다. 대표가 진퇴를 고민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대표 곁에 실언(失言) 방지용 '말 선생'이라도 붙여야 할 판이다.
[서울신문 사설-20101224금] 재범률 낮출 수 있는 보호감호제 돼야
보호감호를 받다가 집행정지로 풀려난 가출소자 가운데 3년 이내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다시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비율이 61.1%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다. 재복역률이 만기 석방자의 경우 21.9%, 가석방자는 7.8%인 것에 비하면 무척 높은 것이다. 마약사범의 경우 재복역률이 절반 가까이로 가장 높았고 절도·강도·성폭력·폭력·사기 순이었다. 보호감호제는 재범 우려가 높은 범죄자를 형 집행 후에도 일정기간 격리 수용해 사회적응을 돕는다는 취지로 1980년 도입됐다가 인권침해 및 이중처벌 같은 위헌 요소와 부작용 논란으로 지난 2005년 국회에서 폐지됐다. 이번 조사는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 형이 확정돼 보호감호가 적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과거 보호감호제의 실질적 교화 기능이나 사회적응 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법무부는 살인범이나 성폭행범 등 흉악범에 한해 상습범·누범가중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치료와 교화에 중점을 둔 새로운 개념의 보호감호제 도입을 핵심으로 한 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내년 1월 국회에 제출해 상반기 중 보호감호제를 재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형기를 마친 사람에게 ‘재범의 우려’를 이유로 별도의 보호처분을 내리는 것이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법리적·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감호제 재도입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연쇄살인범·아동 성폭행·살인 등과 같은 반인륜 흉악범죄를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법 집행의지의 반영일 것이다. 수감자의 인권보다 공공의 안전에 무게를 둔 결정이다.
보호감호제가 부활된다면 인권침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출소자의 재범 방지와 사회복귀 촉진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발전된 것이어야 한다. 위법 행위의 경중과 시점을 규정하고, 중범죄를 저지를 성향을 지닌 자로 국한시켜 적용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호감호 요건은 갖췄으나 위험성에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형 선고시점 유보를 선고하거나 형 집행 종료시점에 형행 단계에서의 변화 등을 종합 검토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224금] 산학협력 확대위한 획기적 유인책 마련해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경제 5단체장이 지난 22일 간담회를 갖고 산 · 학협력을 위한 산업계의 적극적 참여방안을 협의했다. 교과부 장관이 경제 단체장들을 만나 산 · 학협력을 논의한 것 자체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인데다 특히 교과부와 경제5단체가 산 · 학협력 태스크포스(TF)팀을 공동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것은 적지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교육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결국 산 · 학협력에 달린 일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교과부 장관은 기업들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직업훈련이나 실습교육을 할 때 소요되는 비용도 세제 지원을 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최근 삼성전자 등 기업들과 마이스터고 간 협력사례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 대학으로의 과잉진학이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평소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이 문제라고 인식해 왔던 기업으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이 같은 산 · 학협력이 대학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산돼야 한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의 약점으로 꼽히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산 · 학협력이고 특히 대학과 기업 간 협력이 문제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이 "교수들의 '밥그릇 챙기기' 탓에 대학이 필요한 학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고 한 지적은 국내 대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을 정확히 반영한다.
교육만이 아니다. 연구개발을 위한 산 · 학협력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산 · 학협력을 통해 나오는 수입이 대학 재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선진국 대학과 달리 국내 대학의 연구능력과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 장관은 산 · 학협력을 위한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주문했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대학의 강도 높은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고교든, 대학이든 산 · 학협력에 강한 학교일수록 정부의 연구와 교육지원에서 우대받을 수 있도록 정부는 보다 확실한 유인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224금] 최대 현안 물가불안, 선제적 대응 나서야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가격 급등과 함께 국내 제품가격도 잇달아 올라 물가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내년에는 공공요금을 비롯해 대학등록금 등도 줄줄이 오를 예정이어서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물가불안이 높아지자 정부는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67개 품목의 할당관세를 내리는 등 긴급대책에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올 들어 이상기후에 따른 농수산물가격 파동에 이어 이제 물가불안이 공산품으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업계는 원자재시세 급등으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제품가 인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설탕 출고가격을 평균 9.7%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제당업체들도 곧 인상에 나설 태세다. 국제 원당시세가 파운드당 33.2센트로 지난해 초에 비해 2배나 뛴 점을 감안하면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제 밀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분업계도 곧 제품가격 인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당ㆍ제분업계의 가격인상은 제과 및 제빵업계 등에 연쇄적으로 파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요금 인상도 물가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정부는 내년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기로 했지만 수도ㆍ도로ㆍ전기ㆍ우편ㆍ도시가스 등 대부분의 공공요금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상압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동결돼온 공공요금을 더 이상 묶어두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부 지자체들은 재정악화를 막기 위해 버스요금과 상하수도 이용료인상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내외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것을 비롯해 주요 원자재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있는데다 대내적으로도 물가인상 요인이 많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물가안정 노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수물가와 괴리가 큰 생활물가 안정을 위해 관세인하 확대 등으로 수급안정을 도모하고 독과점품목을 중심으로 한 가격담합과 불공정행위 등의 근절을 통해 공정거래질서 확립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해외의존도가 높고 가격변동이 심한 주요 원자재의 비축을 늘리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동아광장/윤석민(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20101224금] 히키코모리, 디스렉시아, 에코랄리아…
업무차 광화문에 왔다가 청계천을 지나는데, 그 물길 위에 영롱한 빛의 우산, 선물상자, 음표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어디선가 캐럴도 들려온다. 매서운 바람 탓만은 아닌 무언가에 몸이 떨리며 소름이 살짝 돋는다. 아, 한 해가 또 갔구나. 성탄절이 왔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천안함 폭침부터 연평도 포격, 북의 불바다 위협 속에 치러진 사격훈련까지 그 으뜸은 역시 북과의 관계 악화였다. 세종시, 4대강, 예산안 처리과정의 충돌 등 정치적 갈등도 여전했다. 우리네 팍팍한 삶도 나아진 게 없는 가운데 게임중독자의 친모(親母) 살해부터 연일 이어지는 짐승 같은 성범죄까지 절망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 너무도 많았다.
필자의 전공 탓일까? 국가안보로부터 개인 삶에 걸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따지고 보면 결국 소통의 장애 탓이었다는 판단이다. 소통은 물리적 강제, 협박, 사술에 의존하지 않고 대화, 설득, 진실에 기초한 상호작용이다. 동물적 본능적 일방적이 아닌 인간적 이성적 쌍방적 행위다. 이를 위해선 소통하려는 바(사고)와, 이를 표현하는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표현이 사고를 과도하게 앞서갈 때 상대방의 말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반향어(echolalia) 장애가 온다. 역으로 표현이 사고를 드러내지 못하면 실어증(aphasia)이나 난독증(難讀症·dyslexia)이 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결여될 때 이른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가 등장한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집안에 칩거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경우에 따라 3∼4년, 심할 경우 10년 이상을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소통 병리현상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존재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극한의 폐색(閉塞) 상태에 스스로를 가둔 채 야비한 공갈과 공격적 행위를 일삼는 북한의 행태는 영락없는 악성 히키코모리다. 정상적 소통능력을 상실한 동물적 상태로의 타락이다. 정도 차는 있지만 우리에게도 말 한마디 삐끗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곤욕을 치르거나 더 극단적인 일도 겪던 시절이 있었다. 그 폭력적 병영국가 상황에서 소통은 도서관 창틀에서 몸을 날리거나 몸에 시너를 붙고 자신을 불사르는 살신, 양심적 표현 한마디에 모든 걸 희생하는 언론인의 지사적 결기, 광장에서 제도적 폭력과 맨몸으로 부딪치는 투쟁을 의미했다. 다수의 사회성원들은 어쩔 수 없이 사회 및 타인들과 단절된 히키코모리 상태에 빠져들었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그리고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말처럼 삶의 미시적 영역에서 권력해체가 진전되며,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소통적 관계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처는 깊었다. 히키코모리의 뒤를 이은 건 또 다른 소통장애였다. 그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명약관화한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입에 담지도 못하는 일은 난독증 내지 실어증 그 자체다. 천안함 진실논쟁, 타블로 학력논란, 세습비판을 둘러싼 진보진영의 내부갈등 등 사례는 부지기수다. 다른 한 축에선 최소한의 인식능력이나 분별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남의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 증상이 기승을 부렸다. 개체적 이성이 마비된 의원들의 집단행위는 그 전형이다. 인터넷 마녀사냥의 광기는 또 어떤가. 최근 붐을 이루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이른바 소셜 소통행위 역시 많은 경우 집단지성에 앞서 군중의 무비판적 말 따라 하기 혐의가 짙다. 반사회적인 게임중독자, 성범죄자들 속에 히키코모리의 모습 또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 소통의 문제는 이처럼 총체적이고도 전면적이다. 진보건 보수건 일반인이건 식자건 정도의 차이일 뿐 이러한 장애에서 비켜가지 못한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필자 스스로 올 한 해 소통의 질병들을 통째로 앓았다. 반향어 증상에 빠져 이런저런 말들에 휘둘리고 또 그것들을 옮겼다. 난독증 상태에서 소중한 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고, 가망 없는 병을 앓던 이에게 간절했음에도 실어증에 걸린 듯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히키코모리로 틀어박힌 적도 허다하다.
2010년 전 우리를 구원하러 왔던 이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폭력과 협박이 횡행하던 시대, 그는 사랑의 힘을 설파했다. 향락의 장이 아닌 천하고 고통스러운 곳에 임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주었다. 그는 위대한 소통자였다.
아름다운 청계천의 성탄 장식들 앞에 필자는 한동안 서있었다. 그리고 소망했다.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남과 북, 여(與)와 야(野), 너와 나 간에 야멸치게 상처 주고 상처 입는 일 없이 서로 보듬는 날이 되기를.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에 미소와 눈물이 흐르는 오늘이 되기를. 이 땅 위에 진정한 소통 그리고 평화가 함께하기를….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신예리(논설위원)-20101224금] 글로벌 에이징
노인 운전자가 모는 차에 치여 죽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모든 노인에게 운전면허를 반납하라는 명이 떨어지고 일부가 무면허 운전으로 맞서다 감옥에 갇힌다. 이때 전격 구출작전에 나선 건 다름 아닌 미국퇴직자협회(AARP). 공중 투하된 회원들이 수감자들을 풀어준 뒤 3대 요구사항을 내건다. “운전면허를 돌려줘라.”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달라.” “애들이 길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걸 금지하라.”
2003년 미국에서 방영돼 화제를 불렀던 TV 만화영화 ‘잿빛 새벽(Grey Dawn)’ 얘기다.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들의 시대가 열림을 빗댄 제목이다. 4000만 명 이상의 퇴직자 회원을 둔 AARP는 영화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노인 권익 옹호의 기수를 자처한다. 2007년만 해도 ‘흩어지면 죽는다(Divided We Fail)’란 대대적 캠페인을 펼쳐 대선 후보들을 압박했었다.
미국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휘몰아칠 ‘고령화 쓰나미’로 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1946~64년생)의 맏형 격인 46년생이 노인용 공공 건강보험 ‘메디케어’와 연금 혜택을 받는 65세가 되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이들 세대 8000만 명이 차례로 노년층에 진입하는 걸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최대 유권자 그룹이기도 한 이들 눈치를 보느라 재정을 파탄 낼 입법이 잇따를 거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고령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된 일본과 유럽에선 이미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일본에선 노년층의 의료보험 부담을 늘리려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었다. 최근 연금 개혁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은 프랑스·그리스는 또 어떤가. 10여 년 전 피터 G 피터슨 전 미국 상무장관의 경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보다 지구고령화(global aging)가 더 심각한 위기다. 온난화처럼 전 세계가 공동의 해법을 강제해 개별 국가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그럴 기회를 놓친 각국 정부의 골치가 여간 아픈 게 아니다. 22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새해 업무계획에도 고민이 엿보인다. 당뇨·골다공증 치료제까지 건강보험을 적용해 노년층을 달래는 한편 동네병원을 ‘주치의’로 지정해 노인들의 습관성 의료 쇼핑을 막겠다는 식이다. “틀니도 보험 적용 해달라” “장기요양보험 대상을 더 늘려라” 노인들 요구는 갈수록 커지는데 선거는 다가오고…. 참 큰일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노응근(논설위원)-20101224금] 자연산
성형수술을 현대의학의 산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형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3000년쯤 이집트에서 도구를 이용한 수술로 코뼈나 턱 골절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성형이 성행하는가 하면, 미라도 성형했다고 한다. 기원전 500년쯤 인도의 수쉬루타라는 의사는 코를 잘라내는 형벌을 받은 사람에게 이마의 피부를 이용해 코를 만들어주는 수술을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성형수술이 크게 발전한 것은 18세기 이후다. 특히 마취술의 개발은 19세기 이후 성형수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손상된 신체 부위를 정상으로 돌려주는 ‘재건성형’과 함께 정상적인 상태이지만 미적으로 더 아름답게 만드는 ‘미용성형’이 이뤄져온 것이다. 성형의 역사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은 다르지만, 아름다움의 추구는 인종과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국내에서는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확산되면서 미용성형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여성은 26%가량이 성형 수술 및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은 약 6%로 여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연예인들도 과거와 달리 TV에 나와 성형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려 유명세를 타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형수술이 인터넷에 단체구매 이벤트 인기상품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함께 성형의료전문 소셜커머스도 성행하고 있다. 성형수술의 진화는 자연미인과 성형미인의 구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성형수술이 외모의 결점을 고쳐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도나도 ‘얼짱’ ‘몸짱’이 되도록 성형수술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여성을 ‘자연산’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제 여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발언이다. 안 대표는 그날 또 “고3 강연에서 ‘내가 보온병 안상수입니다’라고 했더니 다들 난리가 나더라. 보온병 발언이 나쁜 영향만 있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고도 했다고 한다. ‘자연산’ 발언 파문이 가라앉으면 ‘자연산 안상수’라고 떠들고 다닐 것인가. 그도 정치인이라 ‘부고 기사를 빼고는 다 좋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남유선(국민대 법대 교수)-20101224금] `슈퍼스타K`의 유혹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각종 매체는 2010년의 10대 뉴스, 기업, 정치인, 가수 등 분야별 순위를 정한다. 이 중 지난 8일 삼성그룹이 단행한 최고경영자(CEO)급을 포함한 사상 최대의 임원 인사가 올해의 10대 뉴스인 것은 그 파급력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여론조사기관 한국 갤럽은 올해 최고의 인기 신인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2` 우승자가 1위에 올랐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 사회를 보는 시각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삼성그룹 인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요 사장단 55명 가운데 40%가량이 소위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의 `별 중의 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한 `성과`였다는 것이다. 인사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한 `관리의 삼성`이 보여준 결과다.
우리나라를 흔히 학벌사회라고 한다. 그동안 학벌 중시 풍조는 전통적으로 인간관계가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기왕이면 동문을 끌어주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구직자의 역량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취업 시점에서 출신 대학이 주요 선발 기준인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입사 이후에는 업무처리 능력과 성과를 보면 되므로 출신 대학은 더 이상 비중 있는 인사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협동심, 리더십, 추진력 등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누적되어 삼성그룹 임원 인사에서 다수의 `비SKY`가 사장이 됐을 것이다. 삼성그룹 인사는 `변화`된 면모를 입증하는 고무적 사례다.
반면에 `슈퍼스타K 2`는 감동의 인생 역전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누적된 성과`를 중시한 삼성 인사와 대조되는 측면이 있다. 필자는 선진화된 사회의 조건으로 `예측 가능성`의 담보를 든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더 이상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인 낡은 사회라고 한탄하지 말고, `슈퍼스타`로의 드라마틱한 발탁만이 유일한 활로라는 생각은 접으면 어떨까. 슈퍼스타의 무분별한 속출은 선진화의 `반증`이며, 위험한 유혹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열린 선진사회를 기약하는 차근차근한 성숙한 노력이야말로 그 가치가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